세계 3대 마임축제로 꼽히는 춘천마임축제의 예술감독이자 국내 최고의 마임이스트 유진규 씨는 문화예술 명예교사이기도 하다. 그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꾸준히 마임 교실을 열어 왔으며, 아이들이 마임을 통해 꿈꿀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오랜 목표를 가지고 있다. 명예교사 마임이스트 유진규 씨, 그가 꿈꾸는 세상에는 과연 어떤 몸짓이 존재하고 있을까.

 

소통을 꿈꾸는 본능

 

마임은 그리스어 ‘미모스’에서 유래된 말로, 언어를 사용치 않고 몸짓과 표정만으로 표현하는 연기를 일컫는다. 현대에 와서야 연기의 한 장르로 인정받았으나 사실 마임의 역사는 유구하다. 언어가 체계화되지 않았던 시절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몸짓, 즉 마임이었던 것이다. 하여 마임은 소통을 꿈꾸는 본능이자 인류 공통의 언어다. 마임의 변하지 않는 목표는 서로 통하는 데 있다.

 

국내 마임 1세대, 마임이스트 유진규 씨는 ‘소통’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세계 3대 마임축제인 춘천마임축제를 창설,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그는 국경과 인종을 뛰어 넘어 마임으로 서로 울고 웃으며 소통하는 대중과 예술가들을 수없이 많이 보아 왔기 때문이다. 멀리서 예를 찾을 필요 없이 그 자신이 바로 마임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있기도 하다. 축제, 강의, 워크숍, 공연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마임으로 세상에 말 거는 유진규 씨. 2011년 상반기는 그에게 있어 무척 바쁜 날들이었다. 지난 5월 마임축제를 성황리에 마쳤을 뿐더러 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선정한 ‘100인의 예술가’에 추대되고, 문화예술 명예교사로 활동하는 등 다채로운 활동이 이어졌다.

 

“마임을 통한 문화예술교육은 제가 항상 추구해 온 것입니다. 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함께 현장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칠 수 있으니, 비록 몸은 바빠도 기쁨과 책임감, 보람이 느껴집니다.” 유진규 씨의 이야기다.

 

 

 

소리 없는 대화가 오가다

 

유진규 씨는 지난 6월 7일 인천 성동학교에서 명예교사 수업을 진행했다. 청각장애학생들이 공부하는 성동학교는 유진규 씨와 특별한 인연을 가진 교육기관. “10년 전 성동학교에서 마임 강의를 한 적이 있어요. 그때 이 학교에 마임동아리 ‘동그라미’가 생겨났죠. ‘동그라미’는 창작공연을 발표하고, 춘천마임축제에도 꾸준히 참여하는 실력 있는 아마추어 팀이 되었답니다. 성동학교 학생들에게 마임은 자신을 나타낼 수 있는 또 다른 언어에요. 그런 인연으로 이곳에서 명예교사 수업을 갖게 되었습니다.”

 

유진규 씨는 청각장애 학생들이 일반 학생보다 마임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고 말한다. 소리의 부재에 익숙한 아이들은 움직임으로 사물과 언어를 인지하기 때문에 표현력이 뛰어나다 것. 하지만 아직 국내에 청각장애인 마임이스트는 없다. 유진규 씨는 성동학교 학생들이 계속하여 마임을 하고 싶어 한다면 아낌없이 지원하겠다며 애정을 표시했다. 명예교사 유진규 씨의 유쾌한 수업에 마임을 처음 접해 보는 학생들도 금세 신이 나서 열심히 몸짓을 표현한다.

 

“예술이 어려운 게 아닙니다. 거창한 것도 아니고요. 마임을 하면 말을 하지 않아도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표현하는지 알 수 있잖아요? 예술도 그런 것이에요.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표현하는지 상대방이 느낄 수 있게 해 주면 돼요. 마임을 통해 내 이야기를 전해 보세요. 삶이 훨씬 아름다워질 겁니다.” 유진규 씨의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의 눈빛이 반짝인다.

 

 

몸짓 속 가득 담아 낸 상상력

 

“마임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상상력’이죠.” 어떠한 장치도 없이 오직 몸짓으로 천지 만물, 오색 감정을 표현하는 마임은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해석에 대한 방식도 규정되어 있지 않다. 내가 받아들인 것과 다른 사람이 받아들인 것이 달라도 상관없다. “하지만 요즘 학생들과 마임 수업을 하다 보면 조금 아쉽기도 해요. 학년이 올라갈수록 공부가 힘들어선지, 아니면 일찍 철이 들어선지 표현은커녕 상상조차 하지 않으려 하니까요.” 마치 어린왕자가 모자 모양의 어떤 것을 그리고 코끼리를 잡아먹은 보아뱀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무한한 상상력의 시선으로 보면 새로운 것이 보이는 마임이 획일화된 사고 속에 갇히는 것이 유진규 씨는 안타깝다.

 

“개인은 각자 누려야 할 삶의 자유가 있습니다. 타인의 요구에 따라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삶은 반 쪽짜리 삶이죠. 상상하고 꿈꾸는 것은 바로 인간의 본성 아닐까요?” 유진규 씨는 마임을 통해 아이들에게 자신 내면의 소리를 일깨워 주고 싶다. 억눌린 어떤 것, 절실하게 바라는 것이 뭔지 바라보게 하고 싶다. 그것들을 알아야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생들은 그에게 ‘마임 하면 먹고 살 수 있어요?’라는 질문을 던지곤 한다. 마임이 주는 무한한 상상의 자유를 흠뻑 누리기보다 먼저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는 아이들 앞에서 “이 모든 것이 저희 어른들의 잘못 아니겠어요. 아이들이 꿈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지 못한 것이 미안합니다.”라고 유진규 씨는 말한다.

 

“저는 마임이스트로 살 수 있어 참 행복합니다. 제 몸짓이 상상력을 가득 담아낼 수 있음에 기쁩니다. 물론 그 동안 어려움도 적잖이 있었지요. 하지만 지나 보니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과정에 있어 어려움은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걷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마임이스트로 살아온 시간이 행복하다 말하는 유진규 씨. 그 까닭은 자신이 바라고 소망하는 ‘바로 그 일’을 해 왔기 때문이다.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라고 묻는 유진규 씨의 몸짓은 소통을 향한 나아감을 이끌고, 꿈다운 꿈을 꾸게 만드는 힘을 전하고 있다.

 

글_ 김지혜   사진_ 김병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