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일터 꿈꾸는 보리출판사 조혜원 기획부장

 

돈을 벌려면 일을 해야 한다. 일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들고,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그만큼 시간을 쏟아야 한다. 그러는 사이 개인의 삶은 조금씩 사라지고, ‘노동자’라는 역할만이 남는다. 보리출판사 조혜원 기획부장은 이러한 삶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시간보다 중요한 것은 근로자의 삶의 질 개선과 행복이라는 것이다.

 

 

노동만큼 삶도 중요하다

 

대한민국 직장인들에게 오전 9시 출근, 저녁 6시 퇴근은 지극히 평범한 삶이다. 여기에 ‘야근’은 직장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의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정부에서 주 40시간 노동제를 시행하고 가외 노동은 12시간을 초과할 수 없도록 했어도 우리나라 직장인들에게 장시간 노동은 ‘미덕’이 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가장 일 많이 하는 나라’라고 말하는 상황이니 오죽할까.

최근 이러한 노동환경에 의문을 던진 회사가 있다. 어린이 그림책으로 유명한 보리출판사가 바로 그곳이다. 보리출판사는 지난 3월 1일부터 ‘1일 6시간, 주 30시간 노동제’를 시작했다. 오전 9시에 출근하여 오후 4시에 퇴근한다. 노동시간 감축에 따른 임금 삭감이 없을 뿐 아니라 연장근로가 발생했을 때는 연장근로 시간만큼 적립해서 휴가로 쓰는 ‘시간 적립제’까지 도입했다.

‘주 30시간 노동제’ 진행을 총괄한 조혜원 기획부장은 출판업계에서도 알아주는 ‘일 중독자’였다. 남들보다 일찍 출근해 늦게까지 일하는 건 기본, 주말도 반납한 채 바쁘게 살았다. 그런 그녀의 생각을 변화시킨 건 책 <8시간 VS 6시간-켈로그의 6시간 노동제 1930-1985>. 책은 50여 년 동안 6시간 노동제를 시행한 미국 켈로그를 그리고 있다.

“지난해 5월, 우리 회사 윤구병 대표님의 추천으로 전 직원이 읽게 됐어요. 책 내용은 신선했지만, 개인적으로는 현실적이지 않다고 생각했죠. 일이 많으면 야근하는 게 당연하고, 밤새서 일하는 것이 제 삶의 질을 높이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11월부터 본격적으로 토론회를 진행하며 제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게 됐어요. 노동하는 시간만큼 삶에 투자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거든요.”

 

근무시간이 줄어든 만큼 직원들의 부담도 크다. 하루에 소화해야 하는 일의 양은 정해져 있기 때문. 부서의 특성에 따라 1일 6시간 근무를 해도 지장이 없는 곳이 있는가 하면 늘 업무에 쫓기는 부서도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리출판사는 일의 강도를 조금 낮추기로 했다. 한 해 평균 25~30권의 책을 내왔다면 한두 권 덜 내겠다는 식이다.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영리회사에서 이러한 결정에는 대단한 각오가 필요했다.

“보리출판사는 1988년 설립된 이후 지난 20년 동안 어린이 책, 생물 세밀화 그림책 등 300여 권을 펴냈어요. 비슷한 규모의 출판사에서 한 해 평균 80~100권을 내는 것과 비교했을 때 아주 적은 수죠. 저희는 ‘나무 한 그루 베어낼 가치가 있는 책을 만들자’는 철학을 갖고 있어요. 근무시간이 줄어든 만큼 더욱 가치 있는 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근무시간 줄어드니 삶의 질 달라져

 

시행한 지 만 한 달이 된 지금, 직원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근무시간을 8시간에서 6시간으로 ‘2시간’ 줄였지만, 삶의 질은 이전과 확연히 달라졌다. 가장 크게 체감하는 것은 시간 활용이다. 조혜원 기획부장은 최근 진행한 직원들과의 면담 내용을 공개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기혼 여성들은 가족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나서 좋아해요. 아이의 숙제와 저녁 식사를 느긋하게 챙길 수 있고, 남편과 데이트를 할 시간도 생겼다고 하더군요. 이 외에도 영화 감상 등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의견과 새로운 취미활동을 할 수 있게 됐다는 사람들도 많이 있어요. 저 역시 평소 좋아하던 연극을 자주 볼 수 있어 만족하고 있답니다(웃음).”

주 30시간 노동제의 표면적인 성과는 개인의 삶의 질 개선이지만, 보리출판사의 최종 목표는 사회를 향한다. ‘삶터와 일터가 나뉘지 않고, 사람마다 자기 방식으로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리는 것. 일터에서 일하면서 삶의 방식을 주변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 그리하여 이웃과 더불어 살면서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바로 주 30시간 노동제를 시행하는 보리출판사의 지향점이다.

“근무시간을 2시간 줄인 것은 단순한 복지 차원이 아니에요. 저는 직원들이 이 시간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돌아보고, 공동체와 더불어 사는 데 쓰기를 원해요. 나아가서는 우리 사회에서 노동시간 단축을 공론화하는 씨앗이 되기를 원하죠. 기업들이 8시간 근무제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면 좋겠어요. 특히 기업인과 정책 책임자들에게 이 메시지를 분명히 보내고 싶어요.”

 

글_ 박현희 사진_ 김병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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