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라면 모름지기 연예인이 멋진 음성으로 청취자들의 사연을 읽어주고, 노래를 소개하고, 가끔 공개방송 등으로 청취자들과의 만남을 갖는 것이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방송 시간을, 좋아하는 노래를, 내 사연이 소개되기를 마냥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어느새 옛날 얘기가 되었다. 이제는 듣고 싶은 방송을 내가 듣고 싶을 때 골라 들을 수도 있고, 심지어 나의 이야기로 직접 방송을 만들 수도 있다. 이런 시대, 나도 한 번 해 볼만 하지 않을까?

나만의 방송을 꿈꾸는 스무 명이 모였다. 잉여스럽고 오덕스러운 취미 이야기, 눈물 대신 콧물만 쏙 빼는 연애담, 신문 한 장 안 봐도 떠들 수 있는 시사 이야기 등 하고 싶었던 말을 가득 들고 모였다. 이들을 위해 전문가들도 지원사격에 나섰다. 2014 문화예술교육 명예교사 사업 ‘특별한 하루’ 「팟! 빙수- 팟캐스트 속 시원한 수다 한 판」에서 벌어진 일들을 이 프로그램에 직접 참여한 <김여사 둘> 팀의 이민경 씨가 전한다.

 

팟! 빙수

  

어른,
운명처럼 ‘팟! 빙수’를 만나다

 

영화 <쉘위댄스>(1996)와 <반칙왕>(2000)을 기억하시나요? 두 영화 모두 ‘익명’의 삶을 보내는 평범한 회사원이 ‘댄스 스포츠’와 ‘레슬링’이라는 조금은 남다른 취미를 시작하면서 ‘나’의 삶을 찾는 여정을 담고 있지요. 당시 한국에서 두 영화는 꽤 흥행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집-학교-학원’이라는 쳇바퀴 생활의 십대 시절을 보냈던 제게는 이 두 영화를 보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어른들을 잘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어른은 엄마의 잔소리를 듣지 않고도,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시간이 흘러 제가 그 어른이 되었습니다. 십대 시절과 다를 것 없이, 집-회사를 오가는 생활을 하며 가끔 금요일 밤이나 주말에 친구들을 만나곤 하지요. 이를 제외하곤 반복적인 무료한 생활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런 제가, 영화 <쉘위댄스>와 <반칙왕>의 주인공들이 우연히 ‘댄스 스포츠’와 ‘레슬링’을 만났던 것처럼, ‘팟! 빙수’를 발견하게 됩니다. 8월 한 달 중 주말 5일을 반나절씩 투자하는 것만으로도, 뭔가 재미있고,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얼른 신청했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고
모두 한자리에 모이다

 

8월 10일, 비 오는 일요일 오후에 ‘팟! 빙수’ 참가자들이 한데 모였습니다. 일면식도 없던 22명이 각자 PD, 작가, DJ라는 직함을 달고 4개 조로 옹기종기 모여 앉았지요. 이렇게 무더운 8월 한 달, 가장 빈번하게 연락을 주고 받았던 사람들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팟! 빙수’에 참가한 사람들은 그 하나하나가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처럼 단조로운 일상을 바꿔줄 소소한 재미를 찾아 온 사람은 물론, 이루지 못한 방송에 대한 ‘청운의 꿈’을 놓지 못해 참가를 결정한 사람도 있었죠. 또, 다른 누군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기꺼이 참여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계기는 모두 달랐지만 단 한 가지의 공통점은, 물기 어린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무엇인가를 전달하고 싶다는 열망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모인 열망이 22개의 팟캐스트(Podcast) 주제를 쏟아내고, 그 22개의 주제가 4개로 압축되는 과정이 이어졌습니다. 이 때에 누군가는 다른 조원을 설득하고 누군가는 배려와 양보를 해야 했죠. 한 가지 재미있었던 것은, 의견 조율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마음 상함’과 ‘껄끄러움’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말랑말랑한 문화의 힘이기 때문일까요? 4개 조로 나뉜 22명의 사람들이 완주를 하기 위해 기꺼이 옆 사람과 보폭을 맞추는 모습이 제게는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한 가지 더 인상적인 부분을 보태자면 명예교사로 참여한 생선작가 김동영 작가님입니다. 현업에 종사하고 있는 전문가의 입장에서 어설프고 빈틈이 많은 기획과 대본이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각 조의 장점을 부각시키면서 꾸준한 격려와 코칭을 아끼지 않았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약속된 모임 시간이 훌쩍 넘어 어둑해질 때까지 참가자들에게 조언하는 모습도요. 한 달 정도면 인연이 다할지도 모를 사람들에게 기꺼이 자신의 시간과 인맥을 나누어 주는 생선작가님에게는 ‘팟! 빙수’ 진행 과정 내내 참 고마웠습니다.

 

팟! 빙수
팟! 빙수

  

스피커를 타고 흐르던
‘우리’의 이야기

 

한 편의 팟캐스트 에피소드를 발행하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이 필요할까요? 한 편의 에피소드를 마무리 짓기 위해 저를 포함한 22명의 참가자들은 무더웠던 8월을 가장 바쁘게 보냈습니다. 첫 번째에 만남에서는 팟캐스트의 컨셉트와 주요 소재, 코너 등을 기획하느라, 두 번째 만남에서는 짜임새 있는 에피소드로 녹음하기 위해 대본을 알차게 구성하느라 방안을 모색하느라 많은 시간을 들였죠.

 

그리하여 제가 속한 김여사둘 팀의 “괜찮아, 내 맘이야”를 비롯해 끄덕끄덕 팀의 “조금 서툰 어른이”, 팟티스트 팀의 “우리동네 예술가”, 당신의 물건 팀의 “당신의 물건”이 주제로 확정되었습니다. 특히, 김씨 성의 여성 DJ 두 명이 만담을 펼친다는 뜻의 ‘김여사 둘’은 드라마 등 2030 여성들이 좋아하는 주제를 가지고 나의 솔직한 취향을 가감 없이 당당하게 드러내자는 뜻에서 “괜찮아, 내 맘이야”라는 제목으로 팟캐스트(Podcast) 주제를 정했습니다. 연애에 한창 관심이 많은 2030 여자들인지라, 로맨스 드라마에 솔직 담백하게 얘기해 보는 것으로 에피소드를 구성했지요. 컨셉트는 쉬웠지만, 방송을 위해 대본 작업을 하는 것은 긴 시간과 끊임 없는 대화가 필요한 작업이었습니다. 덕분에 모바일 메신저 단체 채팅방은 늘 붐볐지요.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던가요? 조원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쓴 대본을 녹음했을 때의 희열은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6호선 합정역 인근에 위치한 ‘빨간 책방 카페’ 3층 녹음실에서 직접 쓴 대본을 읽고, 직접 고른 음악을 틀었던 기억, 수많은 단추로 구성된 음향기계를 움직이며 전체 녹음을 진행했던 기억, 그리고 우리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녹음실이 위치한 3층 공간에 흘러나오던 기억은 꼭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싶은 추억입니다. 게다가 사전 녹음한 인터뷰 파일이 음질 문제로 사용 불가하다는 판정을 받고, 기지를 발휘해 현장에서 섭외해 인터뷰를 추가했던 기억도 소소한 무용담으로 남았습니다.

 

세 번째와 네 번째 만남을 통해 녹음을 마친 4개 조는 8월의 마지막 날에 모여 편집과 집단 녹음을 진행했습니다. PD를 꿈꾸던 사람들의 역량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지요. 마지막 날, 각 조 PD들의 어깨에는 부담감이 한껏 들어있는 듯 했습니다. 작가들이 해산하듯 쓴 대본의 가치와 그 대본을 가장 진정성 있게 읽기 위해 목을 가다듬었던 DJ의 숨은 노력을 잘 마무리 지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던 것 같습니다.

 

팟캐스트 들어보기: <김여사 둘> 팀의 ‘김여사 둘이 뽑은 본격 사심 랭크쇼! 괜찮아, 내 맘이야’
 

‘팟! 빙수’가 남긴 것,
그리고 다 하지 못한 말

 

단조로운 일상을 벗어나고 싶다는 단순한 의도에서 시작했던 팟! 빙수. 참 제게는 많은 것을 선물로 준 것 같습니다.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에 금세 친해져 버린 조원들, 그 조원들이 합심하여 만든 녹음 파일, 그리고 ‘함께’라는 가치를 공유했던 참가자들과의 우정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저에는 한 사람의 개인인 내가 생각하고 느낀 것을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있도록 새로운 표현의 도구를 얻었다는 기쁨이 자리하고 있는 듯 합니다.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지만,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꿈과 열망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시간과 재원, 그리고 관심을 기꺼이 나눠 주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특별한 하루 팀에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또한, 생선작가 김동영 님 외 명예교사로 참여해 주신 선생님들과 모든 수고를 짊어지고서도 <특별한 하루> 사업 팀이라고만 언급해 달라고 신신당부하던 <문화예술 놀다> 팀에도 이 지면을 빌어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참 고맙습니다!

 

글_ 이민경 (‘팟! 빙수’ 프로젝트 참가자)

 

‘팟! 빙수- 팟캐스트 속 시원한 수다 한 판’은 일반인 팟캐스트 제작 프로그램으로, 기획부터 선곡, 섭외, 녹음, 업로드까지 직접 참여한 전국민 1인 미디어 프로젝트다. 지난 8월 총 5차례에 걸쳐 진행된 ‘팟! 빙수’는 명예교사 김동영 작가, 아나운서 서현진, 팝 아티스트 김창규, 해금연주가 꽃별, 사운드 엔지니어 김태호 등이 신청자들과 함께했다.

 

 

‘팟! 빙수’ 팟캐스트 들어보기
<끄덕끄덕> 팀의 ‘조금 서툰 어른이’

 

‘특별한 하루’ 「팟! 빙수- 팟캐스트 속 시원한 수다 한 판」 현장 스케치
# 기획 : 당신과 나의 라디오 다이어리 http://arteday.tistory.com/267
# 녹음 : 오늘의 게스트는…? http://arteday.tistory.com/274
# 편집 : 아직 못 다한 이야기 http://arteday.tistory.com/2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