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배운 적 없고 악기를 다루지 못해도 좋은, 음악창작 수업이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주관하는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꼬마작곡가 프로그램이다. 뉴욕 필하모닉과 협력하여 미국에서 직접 진행했던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꼬마작곡가 프로그램은 지난해 처음 도입했으며 올해는 총 9개 지역에서 10~13세의 아동을 대상으로 지난 7월부터 오는 11월까지 총 15주간 진행한다. 특히 최근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겪은 안산 지역은 특별히 가족들이 함께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 가족의 의미를 음악으로 되새기는 시간을 만들어가고 있다. 가족이 함께하는 ‘꼬마작곡가’의 분위기는 어떨까? 아르떼365가 안산을 찾았다.
모든 것이 음악이다!
우리 가족이 만든 음악은 어떤 소리를 낼까?
화창한 날씨, 기온은 제법 높지만 선들 불어오는 바람이 이제 가을이 다가옴을 알려주는 오후. 한적하고 차분한 안산문화예술의전당 앞마당에 가족들이 삼삼오오 손에 손을 잡고 모였다.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꼬마작곡가 프로그램 4주차 수업에 참여한 이 가족들은 5:1에 가까운 높은 경쟁률을 뚫고 선정된 ‘행운의 가족들’이었다.
몸으로 표현하는 리듬
그림으로 표현하는 리듬
“그럼 박수를 같이 치면서 시작해 볼까요? 돌아가면서 자신만의 박수를 치고 다른 사람들이 따라 하는 겁니다. 자, 시작!”
꼬마작곡가 프로그램의 기본 철학은 “모든 것이 음악이다”, “누구나 작곡을 할 수 있다”이라고는 하지만, 음악을 배운 적 없고 악기를 다루지 못하는 사람들이 과연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아직 채 지우지 못한 사이 커다란 박수소리와 함께 수업이 시작되었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리듬으로 시작된 박수치기 놀이가 점차 강도와 속도에 변화를 주며 참가자 모두 자신만의 박수 리듬을 만들었다. 아이들이 이 어려운 박수치기 놀이를 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됐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오히려 아이들이 엄마보다 더 정교하고 창의적인 박수놀이를 즐겼고, 그 박수들이 자연스럽게 리듬을 완성했다.
“그럼 이제 각자 만든 박수 리듬을 그림으로 그려봐 주세요. 대신 다른 사람들이 그 그림을 보고 박수를 칠 수 있어야 합니다.”
10여 분간의 박수 리듬 그리기 시간이 끝나고, 한 가족이 그린 그림을 보고 다른 가족이 박수로 리듬을 재현해 내는 시간이 이어졌다. 내가 의도했던 리듬을 시각적으로 표현했을 때 다른 사람들이 이를 어떻게 해석할지 자연스럽게 인지할 수 있는 수업이었다.
“죄송하지만, 제 박수는 그게 아니에요.”, “이건 좀 쉬워 보여요. 일관성 있네!”. “맞아요, 맞아! 천재네, 천재!”
모두 까르르 웃으며 긴장을 풀어나가는 사이 청각은 물론 촉각과 시각을 통해 리듬을 나타낼 수 있음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다. 그리고 가족들의 박수 리듬에 꿈다락 강사가 화음을 입혀 피아노로 들려준다. 내가 만든 리듬에 멜로디가 더해져 하나의 곡으로 탄생하는 순간을 경험한다니. 더구나 모두 다 같이 이토록 즐거워했으니 효과 만점일 수밖에!
‘꼬마작곡가’의 핵심은
표현 방식에 대한 자유로움
‘길다’, ‘가볍다’, ‘부드럽다’ 등 부사와 형용사 중 한 단어를 정하고, 그 단어를 다양한 형태로 표현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모두의 앞에서 몸짓으로 표현하는 사람도 있었고 벨과 핸드벨, 피아노를 이용하는 사람도 있었다. 청중이 된 참가자들은 그 몸짓이나 소리 등을 통해 그 사람의 단어가 무엇인가 알아 맞혀 나갔다.
이를 표현하고 해석해 나가는 과정에서 내가 느끼는 것을 다른 사람들도 느낄 수 있도록 표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나의 이야기가 어떤 모습이나 소리로 연결될 수 있는지 직접적으로 경험해 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이 시간에는 참가자들도 관객석과 같은 느낌을 줄 수 있도록 배치되었다. 발표라는 형식에 익숙해지도록 하기 위한 배려인 듯 했다.
이처럼 꼬마작곡가 프로그램은 리듬 게임과 악기 인터뷰, 나만의 그림으로 악보 그리기 등의 커리큘럼을 통해 참여 아동 및 가족들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음악으로 만드는 과정을 단계별로 체험할 수 있도록 하였다. 모든 과정은 이론이 아닌 놀이 방식으로 진행되어 작곡에 대해 막연했던 어려움을 해소하고 음악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덕분에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던 아이들도 어느새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수업에 임하게 되었다.
“딸의 속마음을 들을 수 있을까 싶어 신청했습니다. 첫 수업 때는 토요일 오후에 자유시간을 가지지 못하는 걸 못마땅한 듯 굴더니 이제는 누구보다 열심히 참여해요. 집에 있을 때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요. 부담 없이 놀이처럼 즐길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과정의 끝에서는 우리 가족만의 근사한 이야기가 담긴 곡이 나올 걸로 기대하고 있어요.”
6학년 정나림 학생의 어머니는 다소 소극적인 딸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소수정 꿈다락 강사는 이 프로그램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한데요. 표현방식에 대한 완전한 자유로움이죠. 아직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방식이기 때문에 어색함을 녹이고 솔직한 분위기 조성을 위한 강사들의 노력이 필요해요. 과정이 깊어질수록 제 예상보다 훨씬 세련되고 풍부한 표현력이 나오고, 비로소 참가자들이 자신의 마음 속 이야기를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게 되었구나 싶어요.”
‘나를 따라 하다 보면
음악으로 너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줄게’
마음 속 이야기를 당당하게 표현하기 위한 방법에는 제한이 없고, 그 이야기는 악기로서 표현될 수도 있다. 내 이야기가 솔직하고 분명하다면, ‘내가 어떤 도구를 이용해 전달할까?’라는 고민만 남는다. 꼬마작곡가 프로그램의 모든 과정은 이처럼 ‘나를 따라 하다 보면, 음악으로 너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줄게.’라고 말을 건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수업은 아이들의 일상을 바꿔놓고 있었다.
“6년 동안 바이올린을 배웠는데, 꼬마작곡가 수업을 들으면서 습관적으로 다니던 음악학원이 이제는 정말 재미있어졌어요.”
김소정 학생의 말에 옆에 있던 부모님들도 ‘두 딸과 함께 하는 시간이 행복하다’며 소감을 전했다.
“아이들이 매주 이 수업을 얼마나 기다리는지 몰라요. 아이들이 먼저 좋아하니 저희도 마다할 이유가 없죠. 딸들도 우리에게, 우리도 딸들에게 평소 볼 수 없었던 모습을 보고 놀라기도 한답니다.”
우현주 꿈다락 강사는 이러한 수업이 학생들뿐만 아니라 본인들에게도 큰 의미가 있음을 강조했다.
“처음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재미있고 저한테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특히 아이들의 순수한 상상력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이 저로서는 도저히 만들어낼 수 없는 창의적인 것들이어서 제 전공인 작곡 작업을 하는데도 큰 자극이 돼요.”
수업에 참여한 모든 꼬마작곡가와 그 가족들이 같은 목표, 나를 당당하게 표현하는 것을 원하게 될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꼬마작곡가’는 분명한 철학적 목적과 구체적인 교육 커리큘럼이 문화예술을 만나 태어난 매우 실제적인 프로그램이었다.
수려한 연주 기술을 익히거나 깊이 있는 음악 이론을 배우는 것 또한 의미있는 교육의 과정이 될 수 있겠지만 아이들의 음악교육에 그보다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바로 음악을 즐거워하고, 창작의 짜릿함을 느끼는 일일 것이다. 박수소리에서 시작하여 자연스럽게 나만의 곡을 완성해 나가는 음악의 기쁨을 먼저 배운 꼬마작곡가들에게 음악을 즐기는 일만큼은 그 누구보다 한 발 앞서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글, 사진_ 정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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