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임보람(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기획홍보팀)
지난 7월 5일, 주한호주대사관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호주국립박물관의 학교교육 담당자인 데이비드 아놀드(David Arnold)와 교육프로그램 개발자인 스티븐 커팅(Stephen Cutting)을 만났다. 예정이 없던 식사 자리였기에 정식 인터뷰는 여의치 않았다. 다만 이날의 자리가 계기가 되어 호주국립박물관의 교육프로그램에 대해 여러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이 글은 호주국립박물관의 학교교육 연계프로그램 사이트(http://www.nma.gov.au/schools/)의 정보를 토대로 한 것이며 이메일로 이루어진 데이비드 아놀드와의 인터뷰를 통해 세세한 이야기들을 확인하였다.
교육형 박물관을 지향
호주국립박물관은 호주의 수도 캔버라에 위치하고 있으며, 2001년 3월에 개관한 이후로 호주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학습의 장이 되고 있는 곳이다. 애버리진(Aborigine)이라고 불리는 원주민의 문화 위에 영국의 문화, 그리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의 문화가 접목된 호주는 다민족 다문화사회를 지향하는 나라이다. 이를 반영하듯 호주국립박물관의 교육프로그램 역시 다문화국가 호주의 국토, 국가, 국민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호주국립박물관은 세분화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교육형 박물관을 지향하고 있다. 특히 학교교육과 연계되는 지점을 찾아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점이 두드러진다. 호주국립박물관에서 교육프로그램이 갖는 비중은 그 사이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사이트 상단에 ‘SCHOOLS’ 아이콘이 있고, 이를 클릭하면 박물관에서 이루어지는 교육프로그램이 별도의 홈페이지로 운영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호주국립박물관의 대표적인 프로그램 6개 -이동체험학습 프로그램(Race Around Programs), 도약학습 프로그램(Springboard programs), 토론학습 프로그램(Talking Points), 이야기체험학습 프로그램(Storykeeper), 창작학습 프로그램(Touch Draw Explore!), 유아학습 프로그램(Bunyip Tracks) – 중 몇 가지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호주’를 화두로 삼아
이동체험학습 프로그램(Race Around Program)
이 프로그램은 5학년에서 12학년(고등 3학년)까지를 대상으로 하며, 소규모의 그룹으로 나뉘어 2시간 동안 진행된다. 특정 전시실과 연계하여 한 가지 주제가 주어지면, 그 주제와 관련된 것들을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한 후 프린트해서 포스터를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만들어진 포스터는 전시를 하기도 하고 학교수업과 연계하여 사용되기도 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프로그램 진행시 주어지는 주제들이다. 박물관의 정체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학교수업에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도록 한 주제들이 많다. 즉 호주의 역사, 문화, 환경과 관련된 전시물 찾기, 과거와 현재를 담고 있는 전시물 찾기, 유럽인이 이주하기 전 원주민의 문화와 관련된 전시물 찾기 등이 주어진다.
5학년에서 12학년까지를 대상으로 하며, 30분간은 인솔자가 진행하고 그 후 40분간은 각자에게 제공된 활동지(worksheets)를 가지고 전시실을 돌아다니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인 호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오갈 수 있도록 꾸며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가령 ‘1788년 이래로 호주에 이주해 온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이들은 왜 호주로 오게 된 것일까?’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거나, ‘호주에서 텔레비전은 언제부터 볼 수 있었을까?’ 등의 질문들을 퀴즈형식으로 풀어보기도 하고, ‘호주인은 이럴 때 어떻게 감정을 표현할까?‘ 등을 연극으로 직접 표현해보기도 한다.
창작학습 프로그램(Touch Draw Explore!)
3-4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이 프로그램은 주제에 맞는 전시물을 골라서 직접 스케치해보는 것으로 75-90여분 동안 진행된다. 호주원주민이 수천 년 동안 사용해온 도구를 찾아 그리는 프로그램, 호주인에게 의미 있는 도구를 찾아 그리는 프로그램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호주인임을 보여주는 상징물이 어떠한 것이 될 수 있는지(호주인으로서의 정체성 문제)에 대해 토론할 수 있게 된다.
유아학습 프로그램(Bunyip Tracks)
미취학 아동부터 2학년까지를 대상으로 하며, 75-90분 동안 15명 가량의 소규모 그룹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박물관이란 곳을 처음 접하게 될 나이이기에, 박물관이란 곳은 어떤 곳인지, 전시물들은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지 등부터 시작하여, 전시물들을 직접 만져보며 호주 원주민의 문화가 어떠했을지 상상해 보고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토크백 교실(Talkback Classroom)
위의 프로그램들 이외에 데이비드가 강조한 것은 단연 ‘토크백 교실(Talkback Classroom)’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11~12학년 학생들과 대학생들이 현재 세계적으로 이슈화되고 있는 주제에 대해 토론하고 그 장면을 녹화하여 방송을 통해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토론은 한 달에 한번 1시간 30분~2시간 가량 진행되며, 한 명의 게스트와 세 명의 학생 토론자가 참여하게 된다. 게스트로 현재 뉴질랜드 총리인 헬렌 클락(Helen Clark)과 같은 저명인사들이 참여하기도 했다.
이처럼 호주국립박물관 교육프로그램들은 미취학 아동부터 중등학교 학생들까지 다양한 연령층을 소화할 수 있도록 세분화되어 있다. 학교와 연관된 수업을 하되, 박물관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활동들을 접목시키면서 박물관교육과 학교교육이 만나 최대한의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도록 주안점을 두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박물관의 교육프로그램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들은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음은 데이비드 아놀드와의 일문일답이다.
호주국립박물관 사이트를 보니 학교와 연계된 교육이 매우 활발해 보입니다. 호주의 다른 박물관에서도 이렇게 다양한 박물관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나요?
네. 국립박물관 이외에도 재미있고 혁신적인 교육프로그램을 가진 박물관이 많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멜버른의 빅토리아박물관(Museum Victoria)과 시드니의 파워하우스박물관(Powerhouse Museum)의 웹 사이트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또한 호주 국립아카이브(National Archives of Australia)의 교육 사이트에도 흥미로운 이야기 거리가 많습니다.
지향하는 교육의 목표는 어떤 것인지요?
저희 박물관에서 추구하는 목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상호 소통할 수 있어야 하고, 학생 중심이어야 하며 학교 수업에 기초한 프로그램이자 활동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과학기술의 이용에 대한 각별한 강조와 함께 호주의 역사, 문화, 환경에 대해 신선하고도 흥미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려고 합니다.
박물관교육이 이제 막 시작된 한국에서는 전문 교육담당자의 부족으로 외부에서 교육프로그램을 받아서 운영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박물관은 장소를 제공하는 정도의 역할만을 하는 것이죠. 호주의 경우는 어떠한지, 또 호주국립박물관에서의 다양하고 흥미로운 교육프로그램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지 궁금합니다.
호주국립박물관의 경우 저를 비롯한 모든 교육담당자들은 박물관 소속 직원입니다. 호주에 있는 박물관의 대부분은 한 명이나 두 명 정도의 전담 교육담당자가 있으며, 호주 남부의 경우 교육부를 통해 교육담당자를 고용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프로그램 중 가장 호응이 좋은 프로그램은 무엇인가요?
저는 ‘이동체험학습 프로그램(Race Around the Museum programs)’ 이 가장 잘 알려진 프로그램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프로그램은 ‘국가의 정체성’ 같은 주제를 가지고, 디지털 카메라를 이용하여 학생 스스로의 시각에서 본 국가의 정체성과 관련된 전시물들을 사진으로 찍거나 표현하여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왜 학생들이 그러한 전시물을 고르게 되었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토론의 장을 열어줄 수 있지요.
이 프로그램이 잘 알려진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됩니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선생님 중심이 아닌, 학생 중심의 프로그램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 교육담당자들은 정보나 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그들 스스로 대답할 수 있도록 이끌어줍니다. ‘탐구학습(inquiry learning)’이 잘 구현된 예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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