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행복한 문화예술의 경험은 어른이 된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준다. 예술강사와 지도자들은 자신의 어린 시절의 경험을 기억해 내고 전 세계 청소년들에게 그러한 경험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 유엔 아동권리협약에서도 청소년들이 문화•예술 활동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도록 권리를 인정해 주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제31조 여가와 놀이>
당사국은 휴식과 여가를 즐기고, 자신의 나이에 맞는 놀이와 오락활동에 참여하며, 문화생활과 예술활동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청소년의 권리를 인정한다.
이 조항은 모든 청소년이 예술활동에 대해 타고난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아이들은 자연적으로 예술적인 놀이를 한다. 즉 예술교육은 이런 자연적 경향과 능력을 심화시켜 삶 전체를 더 아름답게 만드는 과정인 것이다.
훌륭한 예술교육이 학습성과 향상, 고용기회 및 성과의 증진, 적극적인 참여시민 양성과 등 실용적인 파급 효과를 낳는다는 것이 다양한 연구들을 통해 입증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성인이 된 후에도 문화예술교육을 꾸준히 지속한다면 우리 삶 전체의 방향도 더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지 않을까?
유엔 아동권리협약 제31조 ‘여가와 놀이’라는 태생적 권리는 정치와 경제의 압력으로 정부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기도 한다. 이는 미국에서도 일어나는 현상으로 현재 미국의 정책은 예술교육의 중요성에 거의 관심을 두고 있지 않고 있으며, 예술교육 활동가들은 예술경험의 중요성에 대한 무관심과 냉소적인 반응에 지쳐있다.
예술교육에 종사하는 우리는 다시 충전되어야 한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가 국제적으로 서로 연결될 때 각자의 나라에서 더욱 강해질 수 있다. 우리 스스로가 국제적 유대를 강화하고, 서로에게 배우고, 서로를 지지할 새로운 방법을 찾아 글로벌 예술교육 네트워크에 힘을 실어야 한다.
동사로서의 예술
우리는 ‘예술’을 흔히 ‘명사’로 생각한다. 이때의 예술은 벽에 걸린 그림 또는 콘서트홀의 베토벤 심포니이다. 예술을 명사로 정의할 때, ‘예술교육’은 청소년들로 하여금 예술작품을 만들고 감상할 수 있는 준비를 돕는다. 역사적인 예술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은 예술교육의 목표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는 예술교육의 능력과 잠재력의 일부일 뿐이다. 그러나 이는 예술교육의 능력과 잠재력의 일부일 뿐이다. 그 나머지에 대한 우리의 책임을 잊는다면 예술의 범위는 물론 예술교육의 잠재력을 축소시키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모두가 베토벤을 연주하거나 피카소처럼 대작을 그려낼 필요는 없다. 발리섬의 춤과 리버풀 거리의 벽화는 언뜻 별개인 듯이 보이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동일한 예술의 ‘동사’들이 놓여있다. 예술의 더 위대한 진리, 동사로서의 예술을 생각해보자.
아이가 하루 종일 진흙 만들기를 했다. 이 아이는 예술을 경험한 것일까? 그렇게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이 안의 예술가를 일깨우는 것은 명사, 즉 진흙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사의 가르침을 속에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며 동물처럼 생긴 것을 만들 수는 있겠지만 배움을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예술경험을 위해서는 진흙에 자신을 쏟아 부어서 스스로를 표현하고, 예술의 동사들을 사용하여 자신을 담아내는 하나의 형태를 만들어야 한다. 진흙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마음껏 해보면서 진흙 속에 자신만의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그 행위들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예술의 동사적 의미인 것이다.
가장 중요한 예술교육의 도구, 예술강사
위대한 예술교육의 가장 중요한 도구는 ‘사람’이다. 이것을 나는 ‘80%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우리를 가르치는 것의 80%는 다름 아닌 우리들, 예술강사 자신이다. 커리큘럼, 학습계획, 정보는 20%정도를 차지한다.
이 80%의 법칙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예술의 동사들이 예술강사 안에 항상 살아있어야 한다. 우리는 항상 누군가를 가르치는 사람이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우리가 보살피는 모든 청소년에게 영감을 주기 위해서는 우리 안의 예술가를 다시 살려야 할 필요가 있다.
“현재 또는 앞으로 올 세계의 모습에 대한 감각의 확장”이라는 예술에 대한 정의는 학습정의와 거의 일치한다. 실제 학습의 순간에 우리는 ‘나’와 ‘집중하고 있는 무언가’의 사이에 연결고리를 깨닫게 된다. ‘학습’도 예술처럼 ‘동사’로 만들어져 있다. ‘연결 짓는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창조활동이다. 청소년들이 예술적 창조자가 되도록 힘을 실어주는 것은 동시에 훌륭한 학습자가 되도록 힘을 실어주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예술강사’라는 명칭은 문화권과 나라마다 다르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예술안에서 예술을 통해, 예술에 대한 학습 경험을 전달한다는 예술강사의 기본 정신만은 모두 동일하다. 예술강사는 예술과 교육의 두 세계에 걸쳐 숙련된 직업인을 아우르는 말이다. 우리는 두 개의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에 모두에게 생기를 불어넣어줄 수 있는 매개체인 것이다. 미국에는 약 3만 명의 전문 예술강사들이 학교, 예술기관, 양로원, 감옥, 병원 등과 손잡고 모든 연령대를 위한 예술교육에 힘쓰고 있다. 비단 미국만의 일이 아니다. 예술가에게 교육자의 역량을 부여한 ‘예술강사’는 글로벌 현상이 되었다.
예술강사는 열망을 알게 하는 내재적 동기부여자
나는 예술강사로 살아온 날들을 통해 예술교육을 통해 발전시키려는 가장 중요한 예술의 동사가 하나 있음을 깨달았다. “The Qualities of Quality”라는 제목의 2009년 하버드 프로젝트 제로의 연구 보고서는 무엇이 최고급 예술교육을 만드는가라는 질문을 하고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훌륭한 교수법, 자료, 분위기도 아닌 학습자의 동기였다.
내재적 동기부여가 되어 호기심이 넘치며 학습에 굶주린 학습자는 평범한 가르침을 훌륭한 학습으로 바꾼다. 심지어 내재적 동기는 부적절한 자료와 상황마저도 극복하고 훌륭한 학습 결과를 낳는다.
누군가의 명령에 따라 하는 프로젝트와 내면적 동기로 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할 때의 차이점은 극명하다. 해야만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의 느낌의 차이가 하루하루 생활의 질과 인생의 전반의 질을 결정한다. 내면적 동기는 우리가 삶에서 “해야만 하는 일들”을 “하고 싶은 일들”로 변화시키는 것을 도와주며, 예술을 통해 이러한 능력을 가장 훌륭하게 개발할 수 있다.
동기라는 동사가 갖는 영향력은 아마도 예술 분야에서 가장 클 것이다. 이는 예술이 아동 학교교육의 중심에 속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모든 학습에 생기를 불어넣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을 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는 많은 형태로 표현된다. 휴일의 식사, 손주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성가대의 찬양, 베토벤의 5번 교향곡 그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이 욕구는 바로 열망이다. 열망은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향한 굶주림을 뜻한다. 열망이란 아이들이 바이올린을 배우는 과정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악기를 통해 아름다움을 창조하도록 영감을 주는 것이며, 열망을 가진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 미를 창조하여 자신의 힘을 확장하는 것이다. 친구들과의 깊은 발견의 대화를 할 수 있도록 영감을 주고, 휴일에 집을 아름답게 가꾸고, 배우자와 춤을 더 잘 추게 되며, 저녁식사에 어울리는 양념을 추가하게 만드는 이 모든 것이 바로 열망인 것이다.
예술교육 지도자로서 우리는 열망의 사업을 하고 있다. 우리가 할 일은 그 열망을 외면하는 학교수업과 적대시하는 사회 문화에 맞서서 청소년들의 열망을 일깨우는 것이다.
예술강사는 청소년에게 의미 있는 활동을 향한 열망을 알게 하고 좋아하는 것을 만들어 냈을 때의 행복감, 즉 예술의 동사가 주는 만족과 즐거움을 느끼게 해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그들은 평생 열망을 간직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의 책 〈일상, 그 매혹적인 예술〉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사람들은 무엇에 노출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우리는 만나는 대상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 대상에 따라 변화하기 때문이다. 예술은 열망을 담을 최고의 그릇이다. 그것은 너무도 풍부하고 인간적이며 다양한 방법으로 만족을 준다. 만약 이러한 열망이 예술보다 덜 풍부한 대상에 노출되면 그 열망들은 잠에 빠지거나 죽거나 결국에는 매일 신문을 가득 채우는 의미 없는 탐구 증세로 자기 자신을 낭비하게 된다.”
플라톤은 성공한 사회를 위해 성취해야 할 필수적인 것이 한 가지 있다고 했다. 정부, 법, 군대, 경제와는 전혀 상관 없고, 사회적 번영을 위해 반드시 성취해야 할 그 한 가지는 청년들에게 올바른 것에서 기쁨을 찾도록 가르치라는 것이다.
예술에서 과학, 일상에 이르기까지 가능한 모든 매개물을 사용하여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만들려는 열망의 기쁨, 그리고 자신의 창작물이 지닌 가치와 이를 타인과 공유하려는 용기보다 더 옳은 일은 없다.
공연예술가들이 사랑하는 단어, “브라보”. “브라보”라는 단어가 영미권 공연장에서 처음 불렸을 때, 그것은 오늘날처럼 훌륭한 기교를 인정하는 뜻이 아니었다. 원래 브라보는 위대한 용기를 인정할 때 외치는 말이었다. “용감한(brave)”이라는 단어와 마찬가지였다. 라이브 공연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도전하는 누군가를 보았다면 그 공연이 완벽하지 않았더라도 브라보를 외쳤다.
예술강사는 청소년들에게 더욱 풍성한 예술경험을 전해야 한다. 성과의 압박 속에도 매일 행동으로 보여주는 용기를 갖고, 전심전력으로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 상황과 능력을 떠나 용기 있는 일들을 실천할 때 예술강사가 받게 될 찬사는 하나다.
“브라보!”
글_ 에릭 부스 Eric Booth
‘티칭 아티스트의 아버지’ 불리우는 미국의 예술교육 전문가인 에릭 부스는 줄리어드 음대, 스탠포드 대학, 뉴욕대학, 링컨센터 예술교육연구소 및 케네디센터 등에 출강하는 등 예술교육의 영향력 있는 교육자로 활동 중이다. 미국 엘시스테마 수석고문 등 오케스트라 교육개발에 참여했고 제1회 유네스코 예술교육컨퍼런스 폐막식 연설 (2006)을 맡았다. 이번 〈2014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에서 예술강사의 중요성에 대한 주제로 개막강연을 발표했다.
* 본 기사는 〈2014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 행사 개막강연을 재구성하여 작성되었습니다.
2014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 http://www.artewee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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