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라는 말은 서로 맺은 관계로 정의되는 한편, 사람과 사람의 심리적 또는 물리적 거리를 뜻하기도 한다. 문화예술 놀다의 네 명의 활동가는 사이에 대한 청소년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이렇게 진행된 미디어 아트 프로젝트, 특별한 인터뷰 ‘사이’는 청소년들이 관계를 맺어가는 다양한 방식과 과정에 대해 다루며, 이를 통해 참여 학생 또는 관람객들이 ‘사이’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더 나아가 스스로의 ‘사이’에 대해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데 목표가 있다. 영상 상영회를 며칠 앞둔 어느 날, 또 다른 ‘사이’를 만들어가고 있는 활동가와 학생들을 만나보았다.
관람객들도 ‘사이’에서 바라보다
우리에게는 다소 낯설지만 이미 하나의 문화예술적 장르로 자리잡은 미디어 아트. 미디어는 최근 청소년들에게 익숙하다는 점에서, 또 남녀노소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서울디자인고등학교 강당에 설치된 두 개의 스크린. 관람객들은 그 사이에서 인터뷰를 관람하게 될 것이다. 이런 독특한 방식은, 그 공간 자체를 사람과 사람 사이로 설정하여 물리적인 체험을 가능토록 하기 위한 활동가들의 아이디어였다. 덕분에 프로젝트 ‘사이’는 관람객들이 주체가 되는 프로젝트로 거듭났다.
프로젝트 ‘사이’가 진행되는 동안, 활동가들은 학생들과의 소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낯선 어른들이 묻는 사적인 질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학생들도 더러 있었던 탓이다. 1학년 송지희 학생도 낯을 가리는 성격 때문에 프로젝트 참가를 몹시 걱정했던 학생 중 하나다. 그러나 활동가들의 배려는 닫힌 학생의 마음을 여는 열쇠가 되었다. “인터뷰 전 선생님들의 시선이 부담스럽다고 솔직히 말씀 드렸더니, 한 분만 남으시고 모두 자리를 비켜주셨어요. 그런 배려가 정말 감사했어요.” 이처럼 처음에는 인터뷰를 어렵게 생각했던 학생들도 대부분 성심 성의껏 인터뷰에 임했고, 이는 정신 없이 일하는 활동가들에게도 큰 힘이 되었다.
프로젝트는 학생들의 인터뷰를 촬영, 편집하여 스크린에 상영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활동가들은 학생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학생들에게 그 어떤 사전 정보 또는 사전 질문을 제공하지 않았다. 때문에 학생들은 예상치 못한 질문에 횡설수설하기도 했고, 대답하지 못한 질문도 있다고 했다. 활동가들은 그런 현실적인 인터뷰를 바랐지만, 학생들은 아쉬움이 남는 모양이었다.
연극부 부장으로서 프로젝트에 대한 마음가짐이 남달랐다는 3학년 김치현 학생은 인터뷰 하던 날의 에피소드를 떠올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 날 인터뷰 한다는 것을 잊고 매운 음식을 먹어서 땀을 뻘뻘 흘렸어요. 더 예쁜 모습을 담지 못해 아쉬웠지만, 그래도 재미있었어요. 인터뷰가 아니면 언제 이런 이야기를 해볼까 싶더라고요. 사실 ‘친구 사이’라는 것이 가장 가까우면서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이잖아요. 그런 점에서 의미가 깊었죠.”
생각을 전하는, 그리고 생각하는 프로젝트
조금 의외라 느껴진 것은 참여 학생 대부분이 이 프로젝트가 대단한 변화를 가져오기를 바라지는 않는다는 거였다. 그저 이 영상이 많은 사람들에게 생각의 시간이 되기를 바랐다. 3학년 김희산 학생은 ‘이 영상을 보고 누군가 변화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변화라는 것이 다른 사람에 의해 일어나기 보다는 스스로에게서 시작되는 편이 좋잖아요. 그냥 한 번 생각해주기를 바라는 거죠. 제가 생각하는 ‘사이’와 그 사람이 생각하는 ‘사이’에 대해.”
프로젝트의 목표 또한 청소년들이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볼 계기를 전하는 것에 있다. 윤지원 활동가는 “큰 변화를 이끌어내는 프로젝트가 되기 보다는, 그 변화의 시작점이 될 프로젝트였으면 좋겠다”며 “학생들이 나중에 관련 문제가 발생했을 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반면 프로젝트의 또 다른 참가자인 1학년 유민상 학생은 학생들의 ‘사이’를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저는 이 영상이 어른들이 우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어요. 우리의 사이를 너무 좁게,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조금 불편해요.”
실제로 활동가들 또한 같은 인터뷰에도 느낀 바가 모두 달랐다. 자신의 경험 또는 살아온 환경에 따라 공감되는 대답에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활동가들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학교는 작은 사회’라는 말을 몸소 느꼈다고 한다. 어쩌면 또 다른 어른이 자신의 감춰진 속마음을 어린 학생의 인터뷰에서 발견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번 특별한 인터뷰 ‘사이’는 그 과정부터 활동가들과 학생들의 ‘사이’에 커다란 의미가 된 듯 했다. 대단한 목표도, 거창한 욕심도 없었지만 프로젝트 그 자체는 이미 ‘기회’였다. 청소년들이, 그리고 관람객들이 나와 누군가의 ‘사이’에 대해 돌아볼 기회 말이다.
–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 http://www.arteweek.kr
글. 사진 권다인
영상 캡처 자료 제공_문화예술 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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