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희경 강사의 몸으로 말하는 무용 수업 -서울 신가초등학교

신가초등학교 학생 사진
 

학생들이 단상 앞에 대형을 이루어 반듯이 섰다. 3학년에 불과한 학생들이지만, 자세나 표정에 흐트러진 곳 하나 없었다. 서희경 강사가 외쳤다. “인사!” 학생들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지 않았다. 대신 큰소리로 “안녕하세요!”라고 외치며, 각자 자신의 방식대로 몸을 움직였다. 몸을 대자로 펼치기도 하고, 폴짝 뛰며 양팔을 쳐들기도 했다. 그야말로 24가지 각기 다른 개성의 발로였다.

 
 


서희경 강사의 점점 빠르게 점점 느리게 진행 단계


 

지난 시간에서 배운 나비가 되는 것으로 수업을 시작하였다. 공간은 삐쭉삐쭉한 알, 옆으로 구르는 애벌레, 꾸물거리는 번데기, 지그재그로 질주하는 나비 등 상식에 구애받지 않는 움직임들로 가득 찼다. 알을 찢고 나오는 과정을 묘사하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 실제 애벌레가 알을 찢는 것은 힘겨운 과정이고, 끝내 알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토록 섬세한 감정선을 끌어내는 것이 가르침으로 습득된다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

 
 

신가초등학교 학생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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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마리의 나비들은 차근차근 몸을 풀며, 본 수업을 준비했다. 걷고, 뛰고, 느리게 걷고, 멈추고, 구르고, 기어가고, 쓰러지고, 자기 마음대로 춤을 추었다.

 
 

그다음은 이번 수업의 주제이자 무용의 요소 중 하나인 시간속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느리다’에 관한 것은 나무늘보와 달팽이, 거북이 등을, ‘빠르다’에 관한 것으로는 KTX, 비행기, 우사인 볼트 등을 연상했다.

 
 

머리, 팔, 다리와 같은 큰 부위부터 손가락, 발가락 같은 작은 부위까지 빠르거나 느리게 움직이며 큰 근육과 작은 근육을 고루 사용했다. 특히 신체를 크게 양분해 움직이는 것이 이채로웠다. 상체와 하체, 몸 왼편과 오른편을 나누어 번갈아 빠르거나 느리게 움직였다. 학생들은 분명 내 몸인데도 마음대로 제어할 수 없다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더 잘하려고 했다.

 
 

그러고 나서 좀 전에 연상한 물체들을 바탕으로, 신체를 다양한 속도로 움직여 보았다. 음악에 맞춰 빠르고 느린 춤을 추었다. 느린 음악에 느리게, 빠른 음악에 빠르게 움직이는 것으로 시작해, 음악의 속도를 다르게 해 움직이기도 했다. 빠르게 바뀌는 노래에 맞춰 속도를 조절하며 춤을 추었다. 학생들은 땀에 흠뻑 젖어가면서도 즐거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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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개별 활동에서는 공간을 나눠 춤을 추었다. 구획을 나누어 ‘느린 공간’에서는 느린 춤을 추고, ‘빠른 공간’에서는 빠른 춤을 추었다. 경계면에서는 중간 속도로 춤을 추었다.

 
 

예술 강사 활동 8년째, 신가초등학교에서 무용을 가르친 지 6년 차인 서희경 강사는 소극적이었던 학생들이 무용 과정을 모두 끝내고 적극적으로 바뀌는 것이 가장 보람차다고 한다. 경직된 몸놀림을 보이던 학생들도 상상한 것을 몸으로 표현해낼 수 있게 된다. 자유롭게 움직이며 자신의 몸을 잘 다룰 수 있게 되면, 조별활동을 통해 친구들과 함께하는 법을 깨우치게 한다. 신체 및 정서 발달이 느린 친구들은 빠른 친구들과 적절히 섞어 안배한다. 서로에게서 움직임을 배워 나가며 가장 큰 향상을 보인다고.

 
 

우리는 흔히 빠르기를 120km/h, 초속 6m 하는 식으로 수치화하여 연상한다. 성인들에게 빠르거나 느리게 움직이라고 지시하면 어느 정도로 움직여야 하는지부터 물을지 모른다. 제도화된 세상에서는 그 어떤 것도 계량해야 한다. 행동양식에 있어서도 조그마한 삐침조차 그르거나 일탈인 것으로 규정된다. 물론 단체 활동에 있어, 일탈은 다수를 위험하게 만들 확률이 있다. 많은 학생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질서와 규율을 중시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에 이 수업은 더욱 각별하다.

 
 

신가초등학교 학생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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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빠르게 점점 느리게’ 수업에는 정답이 없다. ‘빠르게, 느리게’라는 상대적인 개념만 있을 뿐, 절대적인 통제는 없다. 다른 사람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언어를 배우기 전, 몸으로만 이야기할 수 있었던 어린 시절처럼 말이다. 사유의 과정을 거치며 나를 억누르게 되는 과정도 잊는다. 내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고, 내 몸짓이 언어가 되던 바로 그때처럼.

 


서희경 강사의 수업 노트


글•사진_ 서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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