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에서 기술까지: 예술적 배움을 확장하는 새로운 실험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서울대학교 문화예술원 사운드아트 세미나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지난 11·12월에 프랑스 이르캄(IRCAM), 네덜란드 뮤직헤바우 사운드랩(Muziekgebouw SoundLAB)과 함께 ‘소리’ 주제의 국제 워크숍을 개최했다. 전문가와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한 이번 워크숍의 기획 배경과 사운드 기반 교육의 시의적 의미를 짚어봤다.
왜 ‘소리’였나: 기술이 변화시키는 경험
사운드에 주목한 이면에는 기술융합 실천에 대한 근본적 고민이 있었다. 2019년부터 약 3년간 진행된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 드림아트랩 4.0’은 이러한 고민의 궤적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초기에는 주로 기술을 창작 도구나 미디어아트 형식으로 접목해왔다면, 현장에서는 점차 ‘기술을 단순한 창작 도구로 활용하는 것만으로 충분한가?’라는 본질적인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여전히 기술 소비에 대한 부분이 아니라, 기술 자체에 대해서 고민하는 기회가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지 않나. 3D 프린터가 가진 가장 중요한 지점은 대량생산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만든다는 게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아이들과 이야기하고 싶었다.”

– 신보슬 큐레이터, [아르떼365]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드림아트랩 4.0 – 토탈미술관 <벙커 465-16> 인터뷰(영상)

이는 단순한 방법론을 넘어, 우리가 기술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기술을 단순히 효율적인 결과 도출을 위한 수단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세상을 감각하고 사고하는 방식 자체를 변화시키는 계기로 삼을 것인가를 묻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과거 인쇄술이나 광학 기술이 인류의 경험과 사고방식을 바꾸었듯, 오늘날의 디지털과 AI 역시 우리 경험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편하고 있다. ‘과정의 경험’에 본질적 가치를 두는 문화예술교육에서 이 질문은 더욱 결정적이다. 흔히 AI 기반 창작이라고 하면 프롬프트 몇 줄로 얻어내는 즉각적인 결과물을 상상하기 쉽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수많은 인간의 경험과 데이터의 축적이 존재한다. 따라서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는 결과가 나오기 이전의 ‘과정’ 속에서 기술과 어떻게 조우할 것인가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가 필요하다. 이러한 사유는 기획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들로 구체화되었으며, 워크숍 현장을 거치며 더욱 선명해졌다. 이 질문들은 교육 프로그램을 설계하는 과정뿐만 아니라, 어린이와 청소년이 현장에서 기술을 마주하며 함께 고민해 볼 수 있는 지점들이기도 하다.
⦁ 감각의 변화: 기술을 통해 비가시적이고 비물질적인 대상을 경험하는 것은 우리의 감각과 사고방식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 재료의 발견: 기술을 매개로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탐구의 대상과 창작의 재료는 무엇인가?
⦁ 사고의 과정: AI는 어떤 데이터를 활용하며, 어떠한 사고 과정을 거쳐 창작물을 생성하는가?
⦁ 자기 인식: AI는 내가 나를 이해하고 바라보는 관점과 감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이 맥락에서 ‘소리’는 흥미로운 탐구 주제가 된다. 본래 시간 속에 사라지는 ‘사건’인 소리가 기술을 통해 흙이나 종이처럼 주무를 수 있는 ‘재료’의 성격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기록과 재생을 넘어 소리를 분해하고 재구성하는 기술은 이전과 다른 창작의 지평을 연다. 결국 기술을 다루는 시도 자체가 새로운 소리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탐구와 창조의 방식을 확장해가는 과정이 되는 셈이다.
사운드랩: 소리를 만지고 직관적으로 탐색하는 100가지 악기
이번 국제 워크숍에서 주목한 핵심은 기술 매체가 비음악적인 소리 작업과 음악적 작업이라는 두 영역을 잇는 접점이 된다는 것이었다. 기술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두 세계를 매개하는 실천이 보다 다채로운 방식으로 구현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운드랩(SoundLAB)은 ‘소리는 언제 음악으로 전환되는가?’라는 질문을 아이들과 함께 핸즈온(hands-on) 방식으로 탐색하는 ‘소리 실험실’이다. 이곳에서 기술은 전면에 드러나기보다 전용 악기를 구현하는 매개로 존재한다. 사운드 엔지니어, 음악가, 디자이너, 교육가 등 전문가들의 협업으로 개발한 자체 악기를 비롯한 100여 종의 악기 컬렉션은 음악적 지식 없이도 소리를 직관적으로 보고 만지며 깊이 있는 경험으로 진입하게 돕는다. 보통 90분간 진행되는 워크숍은 자유로운 악기 탐색과 소그룹 실험을 거쳐 즉흥 합주로 마무리된다. 참여 학교 수요에 따라 6~8주 과정으로 확장되기도 하며, 후속 과정으로 사운드트랙 제작이나 악기 만들기 등 다양한 스핀오프 형태의 워크숍이 운영되기도 한다.
이번 워크숍에 매개자로 참여한 배인숙 작가는 기술적 화려함보다 악기마다 선명한 캐릭터를 부여한 기획의 참신함에 주목했다. 그는 “보통 즉흥 합주는 소리가 복합적이라 조화를 이루기 어려운데, 이곳의 악기들은 지향하는 소리의 특성이 분명하다. 이렇듯 개성이 뚜렷한 개별 악기들이 모여 자연스러운 조화를 만들어낸다는 점이 인상적”이라고 짚어냈다. 어린이 참여자들 역시 같은 센서라도 조작 방식이나 제스처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는 직관적인 탐색 과정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며, 특히 손 온도로 소리를 제어하는 경험에 깊은 호기심을 보였다. 이들은 직접 연주를 거듭하며 악기마다 부여된 고유한 성격을 감각적으로 실감했다는 소감을 남겼다.
  • 사운드랩 청소년 워크숍
    (2025.12.13. 서울 엘루오씨엔씨)
     
     
     
  • 사운드랩에서 자체 개발한 악기
    (왼쪽)손 온도에 반응하는 툰패드(ToonPad)는
    샐러드볼을 개조하여 만들었다.
    (오른쪽)접촉 마이크를 내장하여 악기에 연결한
    나무, 고무줄, 사포 등 다양한 질감의 소리를 증폭시킨다.
이르캄: 기술을 창작의 재료로 주무르는 힘
프랑스 국립음향음악연구소 이르캄은 기술을 단순한 도구가 아닌, 창작의 가능성을 넓히는 연구 그 자체로 다룬다. 이르캄의 문화활동부서장 엠마뉴엘 졸(Emanuelle Zoll)은 예술과 기술의 융합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이르캄에서 예술과 기술의 만남은 단순히 협업이 아니라, 창작의 본질적인 확장이라고 보고 있다. 기술은 예술가에게 새로운 상상력을 열어주는 도구가 되고, 예술은 기술에 방향성과 맥락을 부여한다. 이 융합이 중요한 이유는 새로운 소리와 형식을 만들 수 있게 하고, 기술을 단순히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창작의 재료로 이해하도록 돕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기술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 엠마뉴엘 졸, 이르캄 문화활동부서장

이러한 철학에 따라 이르캄의 교육은 완성된 결과물보다 ‘사고의 과정’을 체득하는 데 주력한다. 소리에 대한 민감한 감각을 깨우는 것에서 나아가, 그 기저의 기술적 원리를 이해하고 다루는 리터러시 역량을 중요하게 다룬다. 스피크(Speak)는 추상적인 소리 경험을 탐색하고 이를 언어화할 수 있게 돕는 소리 리터러시 프로그램이다. 소리의 속성과 음색을 분류하는 어휘 카드를 핵심 도구로 활용한다. 어휘 카드는 ‘일반적 특징’ ‘음색 및 캐릭터’ ‘시간적 특징 및 형태’의 카테고리로 분류되며 관련 영문 교육 자료는 누구나 활용할 수 있도록 오픈소스로 공개되어 있다. 이르캄은 향후 저연령 아동들도 소리를 쉽고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색감과 질감을 어휘의 성격과 연결한 전용 카드를 제작할 계획이다.
  • 스피크 카드
  • 베스티오 로봇 만들기 워크시트
‘베스티오 로봇 만들기’는 AI 알고리즘의 논리를 창의적 사유의 도구로 치환한 워크숍이다. 아이들은 가상 로봇의 정체성을 기획하고, 로봇에게 던질 질문에 대해 세 가지 답변 시나리오를 작성한다. 이때 아이마다 각기 다른 질문이 부여되는데, “노래할 때 감정을 느껴?” “인간과 친구가 될 수 있어?”와 같이 서로 다른 화두를 마주하며 ‘예/아니오’를 넘어선 제3의 답변을 고민하는 과정이 핵심이다. 이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기술적 작동 원리를 넘어 알고리즘적 사고의 구조를 직접 체득한다. 최종적으로 질문과 답변을 무작위로 조합해 하나의 팟캐스트를 완성하며, 각기 다른 질문에서 출발한 데이터들이 어떻게 선택되고 하나의 창작물로 구성되는지를 경험한다. 이는 기술을 단순히 소비하는 단계를 넘어, 창작의 맥락 속에서 기술을 ‘재료’로 주무르는 법을 익히는 과정이다.
사운드랩이 소리를 직관적으로 탐색할 수 있는 매개체로 악기를 제공한다면, 이르캄은 사유의 틀과 질문의 구조를 제안한다. 접근 방식은 다르지만, 두 기관 모두 ‘기술’을 인간을 대체하는 도구가 아닌 창조성을 지원하는 매개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궤를 같이한다. 한쪽은 악기를, 다른 한쪽은 사고의 구조를 빌려 아이들이 주체적으로 소리를 다루게 함으로써 ‘이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창의적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국제 워크숍은 기술이 소리와 음악의 경계에서 어떻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는지를 서로 다른 경로를 통해 보여준 유의미한 사례라 할 수 있다.
  • 이르캄 청소년 워크숍 (2025.11.20. 서보미술문화공간)
협업의 사이클이 만들어내는 가능성
이러한 기술융합적 실천의 배경에는 언제나 다학제적 연구와 실험적인 예술 창작의 기반이 존재한다. 그 위에서 서로 다른 분야의 주체들이 협력하고 상호작용할 때, 인간의 감수성·사유·창조성을 확장하려는 탐구는 구체적인 문화예술교육의 방법론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결국 핵심은 개별 프로그램이 아니라, 연구–창작–교육–협력이 순환하는 구조 자체에 있었다. 이 과정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프랑스 현장에서 강조되었던 문화중재자의 역할이었다. 문화 중재는 예술과 대중을 잇는 역할을 넘어, 예술·과학·기술·교육이라는 서로 다른 언어를 연결하고 조율하는 핵심적인 기능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앞으로 기술과 예술을 잇는 시도가 늘어날수록, 결과물에 대한 상상만큼이나 그것을 구체화할 수 있는 구조와 관계에 대한 고민이 중요해질 것이다. 다학제적 맥락에서 여러 주체가 만나고 협업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될 때 아이디어는 비로소 실천적 힘을 얻기 때문이다. 이번 워크숍은 개별 실천 사례를 넘어 새로운 시도가 지속할 수 있는 토대와 ‘중재자적 기획’의 중요성을 성찰하게 했다는 점에서도 유의미한 시사점을 더했다.
* 이 원고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서울대학교 문화예술원 협력으로 개최한 <소리에서 기술까지: 예술적 배움을 확장하는 새로운 실험들> 국제 사운드아트 문화예술교육 세미나 ‘경계를 넘는 배움의 장’의 발제 내용을 토대로 작성되었다. 세미나의 전체 발제 목록과 상세 자료는 구글시트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권민영
권민영
서울, 시카고, 런던에서 시각예술과 철학을 공부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을 거쳐 독립 연구자로서 문화예술교육 콘텐츠 연구와 국제 프로젝트 기획 및 리서치를 수행해 왔다. 스마일게이트 퓨처랩에서 어린이 창의 환경 조성 및 연구에 참여했으며, MIT 미디어랩과 협력하여 기술융합 창의교육 실천을 위한 교육자 대상 연수 과정을 개발·운영했다. 감수성과 지성이 만나는 지점에 꾸준한 관심을 두고 있으며, 경험을 분석하고 언어화하는 기록자이자 번역가의 정체성으로 활동 중이다.
archive.ek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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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현 2025년 12월 30일 at 10:24 PM

    이 워크숍을 통해 소리는 기술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감각과 사고의 방식을 다시 질문하게 만드는 교육적 ‘과정의 재료’임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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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6년 01월 03일 at 10:17 AM

    소리에서 기술까지: 예술적 배움을 확장하는 새로운 실험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서울대학교 문화예술원 사운드아트 세미나
    기대만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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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6년 01월 03일 at 10:18 AM

    소리에서 기술까지: 예술적 배움을 확장하는 새로운 실험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서울대학교 문화예술원 사운드아트 세미나
    공감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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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만진 2026년 01월 21일 at 8:00 PM

    소리에서 기술까지:예술적 배움을 확장하는 새로운 실험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X 서울대학교 문화예술원 사운드아트 세미나 공감하며 더욱더 많은 분들의 관심과 사랑 받기를 항상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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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현 2025년 12월 30일 at 10:24 PM

    이 워크숍을 통해 소리는 기술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감각과 사고의 방식을 다시 질문하게 만드는 교육적 ‘과정의 재료’임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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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6년 01월 03일 at 10:17 AM

    소리에서 기술까지: 예술적 배움을 확장하는 새로운 실험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서울대학교 문화예술원 사운드아트 세미나
    기대만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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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6년 01월 03일 at 10:18 AM

    소리에서 기술까지: 예술적 배움을 확장하는 새로운 실험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서울대학교 문화예술원 사운드아트 세미나
    공감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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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만진 2026년 01월 21일 at 8:00 PM

    소리에서 기술까지:예술적 배움을 확장하는 새로운 실험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X 서울대학교 문화예술원 사운드아트 세미나 공감하며 더욱더 많은 분들의 관심과 사랑 받기를 항상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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