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일 시 : 2025.8.9.(토) 오후 4시
• 장 소 : 헤이그라운드 성수시작점 회의실
• 참석자
- 김병주 서울교육대학교 교육연극학과 교수‧프락시스 예술/교육감독, 신보슬 토탈미술관 큐레이터, 장은정 춤추는여자들 대표, 서지혜 인컬쳐컨설팅 대표‧본지 편집위원(좌장)
서지혜 예술교육은 왜 굳이 사람을 흔들고 깨우려 애쓰는가. 무대와 전시, 우리가 보고 듣고 행하는 예술적 실천 속에서 일어나는 감각의 파동은 왜 개인의 심장을 뛰게 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사회로 퍼져나가는가. 오늘 좌담은 바로 그 파동에서 이야기를 시작해 보고자 한다.
창의력과 상상력은 흔히 개인의 영역으로만 여겨진다. 그러나 예술이 건네는 상상력은 그 선을 넘어선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교육자인 맥신 그린(Maxine Greene)은 이를 ‘사회적 상상력’이라 불렀다.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는 힘, 다른 사람의 삶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을 촉발하는 예술이 야기하는 상상력의 힘을 말이다. 오늘은 예술적 상상력이 사회적 상상력으로 전환되는 순간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보려 한다.
공연이나 전시 관람 자체가 이미 예술교육의 스펙트럼 안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는 문화예술교육의 새로운 영역을 여는 데 집중하느라 정작 이 부분을 접어두었던 것은 아닌가 돌아보게 된다. 사실 예술 작품의 교육적인 힘은 그 자체로 감각을 일깨우고, 질문을 던지고, 상상력을 확장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 이제 예술 향유 역시 예술교육의 스펙트럼 안에 포함시켜 사회적 상상력이 자극되는 여러 가지 측면들을 얘기할 만하다고 생각된다.
이 자리에 예술에 대한 신념과 매개하고자 하는 열정이 가득한 분들을 모셨다. 각자 소개와 함께 사람들에게 예술 경험을 전하려고 애쓰는 이유로 이야기를 시작해 주시면 좋겠다.
창의력과 상상력은 흔히 개인의 영역으로만 여겨진다. 그러나 예술이 건네는 상상력은 그 선을 넘어선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교육자인 맥신 그린(Maxine Greene)은 이를 ‘사회적 상상력’이라 불렀다.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는 힘, 다른 사람의 삶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을 촉발하는 예술이 야기하는 상상력의 힘을 말이다. 오늘은 예술적 상상력이 사회적 상상력으로 전환되는 순간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보려 한다.
공연이나 전시 관람 자체가 이미 예술교육의 스펙트럼 안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는 문화예술교육의 새로운 영역을 여는 데 집중하느라 정작 이 부분을 접어두었던 것은 아닌가 돌아보게 된다. 사실 예술 작품의 교육적인 힘은 그 자체로 감각을 일깨우고, 질문을 던지고, 상상력을 확장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 이제 예술 향유 역시 예술교육의 스펙트럼 안에 포함시켜 사회적 상상력이 자극되는 여러 가지 측면들을 얘기할 만하다고 생각된다.
이 자리에 예술에 대한 신념과 매개하고자 하는 열정이 가득한 분들을 모셨다. 각자 소개와 함께 사람들에게 예술 경험을 전하려고 애쓰는 이유로 이야기를 시작해 주시면 좋겠다.
장은정 무용계는 예중·예고 진학이 가장 엘리트 코스였는데, 나는 그 과정을 거치지 않고 대학에 들어갔다. 그러다 보니 위축되기도 했지만, 좋은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은 분명했다. 제도권 안에서 선배 작품에 출연하고 내 작업을 하면서도, 관객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무대에서 내려와 사람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멤버를 모으는 데만 5년이 걸렸지만, 결국 무용수·배우·음악가가 함께하는 ‘관객 참여형 커뮤니티 댄스’를 시작하게 됐다. 2011년부터 <당신은 지금 바비레따에 살고 있군요>를 진행하며 전국 각지에서 관객들로부터 치유와 위로, 사랑과 배움을 얻었다. 또한 워크숍 형식의 <춤으로 말 걸기> 교육 프로그램을 병행하고 있다. 그 후로도 제가 부딪히면서 몸으로 체득했던 것들이 연관돼서 쭉 이어졌다. ‘한국여성의전화’에서 가정폭력 생존자 여성들과 5~6년 동안 지금도 문화 프로그램으로 춤을 통해서 같이 하고, 대안학교 학생들이나 시민분들, 즉 아마추어들과 함께했다. 아마추어들은 프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들이지 않나. 그 덕분에 많이 배우고 위로받았다. 특히 전공생들이 아닌 분들과 만날 때, ‘이건 교육이야’ ‘교육하겠어’라고 하는 순간 실패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지 10여 년을 쭉 지켜보면서 보람이 생기는 동시에 나 역시 예술을 하고, 지향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도 한다. 관객 혹은 참여자들은 ‘나’와 ‘나의 작업’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되었고, 다양한 사례를 통해 그들 또한 삶의 방식과 태도가 변화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신보슬 2003년 ‘미디어시티 서울’할 때 처음으로 외국 작가 두 분 연령별로 워크숍을 만드는 게 너무 신기했다. 예를 들어 게임아트라면, 초등학생들은 조립하는 것, 중고등학생은 프로그래밍 기초, 일반인들은 강의 이런 식으로 구성했다.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드렸더니, 우리가 그림을 감상하고 전시를 볼 줄 아는 건 학교에서 찰흙이나 수채화, 유화 같은 것을 다뤄봤기 때문인데, 한 번도 배워본 적 없는 미디어아트에 관해 어떻게 작동하는지 가르쳐주지 않으면 어떻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겠냐고 하더라. 그때 일본 작가님이 청각장애인용 바이브레이션 스피커를 가지고 청각장애 어린이와 비장애 어린이가 함께하는 워크숍을 진행했다. 그림을 그리고 마우스를 갖다 대면 움직이거나 소리 나는 워크숍인데, 초등학교 4학년부터 6학년까지 한 20명의 아이를 모아놓으니까 진행하기 정말 힘들었다. (웃음) 어떤 아이가 꽃, 구름 같은 것을 그리길래 필담으로 “소리 나는 걸 그려보라”라고 조언했는데, 그 친구가 돌에도 소리가 있다고 하더라. 돌이 여름에는 ‘아~’ 겨울에는 ‘아!’ 한다며, 온도와 촉각을 소리로 이해하고 있었다.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감각이라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그 일을 계기로 전시장에 작업을 설치하는 게 다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코로나19 때 기술 융합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하게 되었는데, 여기에는 경제적인 격차나 도서·산간 지역 격차가 너무 컸다. 당시 수요는 많은데 직접 방문하기가 어려워서 예술교육가가 현장에 없어도 메신저를 이용하여 전체를 게임식으로 팀을 이뤄 워크숍이 가능하게 했다. 교사가 아이들이 하는 것을 계속 살펴보지만, 조력자로만 들어간다. 코딩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어떻게 기술사회에 스며들게 할지 고민하는 프로그램을 벙커 시리즈로 4년 정도 진행했다. 마지막에는 여수 금오도에서 배 타고 들어가는 그런 ‘스마트팜’을 온라인으로 만들어서 채소를 키우고 포장도 하고 샐러드 같은 요리를 만드는 것까지 했다.
다른 하나는 인도네시아에서 한 5년 정도 진행한 ‘바틱 스토리’다. 진흥원에서 아예 1년을 지낼 거점을 마련해줘서 공식 프로그램이 없어도 작가가 한 달을 묵는 식으로 진행했다. 그래도 우리가 평생 같이할 수는 없으니까, 처음부터 출구 전략을 짜두었었다. 그분들이 ‘바틱 페스티벌’을 만들고 저희를 초대하는 것까지 마무리했다. 그중에 한 분은 유니클로 인도네시아지사와 같이 협업하기도 하고, 두 분은 그곳에 자기 워크숍 공방을 열었다.
그러다 코로나19 때 기술 융합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하게 되었는데, 여기에는 경제적인 격차나 도서·산간 지역 격차가 너무 컸다. 당시 수요는 많은데 직접 방문하기가 어려워서 예술교육가가 현장에 없어도 메신저를 이용하여 전체를 게임식으로 팀을 이뤄 워크숍이 가능하게 했다. 교사가 아이들이 하는 것을 계속 살펴보지만, 조력자로만 들어간다. 코딩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어떻게 기술사회에 스며들게 할지 고민하는 프로그램을 벙커 시리즈로 4년 정도 진행했다. 마지막에는 여수 금오도에서 배 타고 들어가는 그런 ‘스마트팜’을 온라인으로 만들어서 채소를 키우고 포장도 하고 샐러드 같은 요리를 만드는 것까지 했다.
다른 하나는 인도네시아에서 한 5년 정도 진행한 ‘바틱 스토리’다. 진흥원에서 아예 1년을 지낼 거점을 마련해줘서 공식 프로그램이 없어도 작가가 한 달을 묵는 식으로 진행했다. 그래도 우리가 평생 같이할 수는 없으니까, 처음부터 출구 전략을 짜두었었다. 그분들이 ‘바틱 페스티벌’을 만들고 저희를 초대하는 것까지 마무리했다. 그중에 한 분은 유니클로 인도네시아지사와 같이 협업하기도 하고, 두 분은 그곳에 자기 워크숍 공방을 열었다.
서지혜 우리 사회에서는 보통 전시나 공연 관람을 대체로 ‘향유’의 범주에 두고, 교육적 의미는 충분히 살펴오지 않았다. 그러나 작품을 마주하며 내 눈에 보이는 대로, 감각되는 대로 느끼고 말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역시 정말 중요한 교육인데, 그것을 넘어서는 뭔가를 해야만 하는 예술교육에 편중되어 온 점은 아쉽다. 이제는 감상과 향유 역시 예술교육의 본질적인 축으로 존재해야 하지 않을까.
신보슬 미술은 보는 교육이 중요한 것 같다. 영국에서는 미술관에서 도슨트가 작품에 관한 정보를 주기보다 무엇을 봤는지에 관해 서로 질문하고 대답하는 대화 형식이다. 이건 답이 틀릴 수 없는 질문이다. 내가 여기서 해를 봤다는데, 사각형을 봤다는데, 노란색을 봤다는데, 뭐라고 하겠나. 그런데 우리나라 도슨트 교육은 정보를 주고, 질문을 받으면 ‘틀리면 어떡하지’ ‘이게 작가의 의도가 아니면 어떡하지’ 하면서 긴장하게 된다. 그래서 시각 예술인데 눈으로 보는 것을 잘 못한다.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과 ‘큐레이팅 스쿨’을 한 적이 있었다. 전교생 40명 모두 오케스트라 단원이었고, 교장 선생님께서 아이들과 이것저것 많이 하려고 애쓰는 분이셨다. 학생들 작품으로 전시를 만들어달라고 하시기에 아이들이 직접 큐레이팅을 하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더니, 그럼 멘토를 해달라고 하셨다. (웃음) 5학년 아이들 7명이 팀을 이뤄서 큐레이터를 하면서 아이들이 완전히 달라졌다. 마지막에는 교장 선생님이 사비로 문화예술회관 전시장을 대관하셨다. 아이들이 직접 줄자로 사이즈를 재고, 모크업(mock-up)도 만들고, 도슨트를 했다. 그다음부터 전시를 보면 “선생님, 이건 왜 이렇게 했을까요?”라고 질문하면서 재미있게 보더라. 그때 교장 선생님이 “큐레이팅은 융복합 교육이다.”라고 하셨다. 협업도 해야 하고, 기획도 해야 하고, 글도 쓰고, 발표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니 전시 보는 게 당연히 재미있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부작용도 있었다. 아이들 눈이 점점 높아져서 전시장에 가면 조명이나 바닥을 살펴보고 전시 제목을 스카시(간판용 입체 글자)로 하고 싶다길래, 그냥 전지에다 크레파스로 그리라고 했다. (웃음) 우리가 미술 교육을 할 때, 작품을 보는 것뿐 아니라 전시를 만드는 것까지 진행하면 작품을 더 존중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과 ‘큐레이팅 스쿨’을 한 적이 있었다. 전교생 40명 모두 오케스트라 단원이었고, 교장 선생님께서 아이들과 이것저것 많이 하려고 애쓰는 분이셨다. 학생들 작품으로 전시를 만들어달라고 하시기에 아이들이 직접 큐레이팅을 하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더니, 그럼 멘토를 해달라고 하셨다. (웃음) 5학년 아이들 7명이 팀을 이뤄서 큐레이터를 하면서 아이들이 완전히 달라졌다. 마지막에는 교장 선생님이 사비로 문화예술회관 전시장을 대관하셨다. 아이들이 직접 줄자로 사이즈를 재고, 모크업(mock-up)도 만들고, 도슨트를 했다. 그다음부터 전시를 보면 “선생님, 이건 왜 이렇게 했을까요?”라고 질문하면서 재미있게 보더라. 그때 교장 선생님이 “큐레이팅은 융복합 교육이다.”라고 하셨다. 협업도 해야 하고, 기획도 해야 하고, 글도 쓰고, 발표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니 전시 보는 게 당연히 재미있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부작용도 있었다. 아이들 눈이 점점 높아져서 전시장에 가면 조명이나 바닥을 살펴보고 전시 제목을 스카시(간판용 입체 글자)로 하고 싶다길래, 그냥 전지에다 크레파스로 그리라고 했다. (웃음) 우리가 미술 교육을 할 때, 작품을 보는 것뿐 아니라 전시를 만드는 것까지 진행하면 작품을 더 존중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김병주 미술이든 움직임이든 연극이든 예술은 결국 ‘표현하고 소통하기 위한 것’ ‘누군가와 교감하고 싶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사회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소통하고 매개할 수밖에 없고, 그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나의 상상력이 옆 사람에게 파장을 일으키고, 그 만들어진 파장을 다시 내가 받게 되는 것이다. 제가 하는 교육연극의 ‘드라마(Drama)’는 아이들도, 성인도 하고, 수업에서도, 워크숍에서도 하는데, 무대, 의상, 조명, 대본 아무것도 없어도 된다. 둘 이상의 사람, 같은 공간, 허구를 실행하자는 약속. 이 세 가지만 있으면 된다. 유명한 “I am making it happen, and it’s happening to me(내가 그 상황을 만들어 가고, 그 상황이 나에게 일어나고 있다)”이라는 격언처럼, 내가 무슨 말이나 행동을 해서 맥락이 생기면 그걸로 갑자기 드라마의 이야기가 흘러가면서 그것이 나의 다음 행보에 영향을 주는데, 이걸 같이 만들어 가는 거다. 드라마는 씨어터(theater)처럼 공연을 만들어서 관객에게 보여주는 목표가 아니다 보니, 결국은 소통과 상호작용이 가장 핵심인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사회적 상상력’이란 말은 거창하거나 이슈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상호작용을 통해서 형성된 파장이나 파급력이 다시 나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나를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끌어올리는, 흔히 얘기하는 나선형 성장이나 성숙의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에 경찰청 교수요원 연수를 의뢰받았다. 생전 처음 한 20명의 경찰 간부 앞에 서니 순간 긴장되었다. 그들이야 “경찰관 교육할 때 드라마를 이런 식으로 쓰면 좋습니다.”라는 걸 원했겠지만, 그들이 경험해 본 현장 상황 대처용 시뮬레이션 활동이 아닌, 예술적인 스펙트럼 드라마가 어떻게 하면 좀 더 깊어지고 다양하게 확장할 수 있는지 경험해 보시라는 취지로 진행했다. ‘모션을 액션으로 착각하지 마라(Never mistake motion for action)’라는 헤밍웨이의 말이 있다. 시뮬레이션은 어떤 즉각적 동작과 행동을 하느냐가 중요한 포인트다. 하지만 모든 모션이 반드시 액션은 아니다. 모션은 때론 반사적이기도 하고 대체로 기능적으로 반복되면서 습관화된 ‘동작’이나 ‘행동’을 말한다. 반면, ‘액션’은 나의 의지와 의도가 담겨서 선택한 ‘행위’이다. 그렇다면 그 액션의 주체는 누가 되어야 하는가? 범인이나 피의자를 빨리 체포하고 제압하는 경찰 훈련이 중요하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너무나 많은 돌발적인 상황과 복잡한 맥락이 있는데, 그냥 기계적으로만 반응하면 아무것도 해결이 안 되는 거다. 그래서 해외에서는 이미 경찰 훈련 및 연수에 즉흥 전문 극단들과 연계하여 지역 커뮤니티와의 소통을 위한 훈련,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훈련, 잘 듣는 방법, 언어나 비언어적인 것들을 읽어내고 그것들을 착각하지 않는 방법 등을 지원한다. 그게 소통이다. 소통은 너무 뻔하고 지겹다고 하지 않나. 하지만 본질은 거기에 있다.
얼마 전에 경찰청 교수요원 연수를 의뢰받았다. 생전 처음 한 20명의 경찰 간부 앞에 서니 순간 긴장되었다. 그들이야 “경찰관 교육할 때 드라마를 이런 식으로 쓰면 좋습니다.”라는 걸 원했겠지만, 그들이 경험해 본 현장 상황 대처용 시뮬레이션 활동이 아닌, 예술적인 스펙트럼 드라마가 어떻게 하면 좀 더 깊어지고 다양하게 확장할 수 있는지 경험해 보시라는 취지로 진행했다. ‘모션을 액션으로 착각하지 마라(Never mistake motion for action)’라는 헤밍웨이의 말이 있다. 시뮬레이션은 어떤 즉각적 동작과 행동을 하느냐가 중요한 포인트다. 하지만 모든 모션이 반드시 액션은 아니다. 모션은 때론 반사적이기도 하고 대체로 기능적으로 반복되면서 습관화된 ‘동작’이나 ‘행동’을 말한다. 반면, ‘액션’은 나의 의지와 의도가 담겨서 선택한 ‘행위’이다. 그렇다면 그 액션의 주체는 누가 되어야 하는가? 범인이나 피의자를 빨리 체포하고 제압하는 경찰 훈련이 중요하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너무나 많은 돌발적인 상황과 복잡한 맥락이 있는데, 그냥 기계적으로만 반응하면 아무것도 해결이 안 되는 거다. 그래서 해외에서는 이미 경찰 훈련 및 연수에 즉흥 전문 극단들과 연계하여 지역 커뮤니티와의 소통을 위한 훈련,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훈련, 잘 듣는 방법, 언어나 비언어적인 것들을 읽어내고 그것들을 착각하지 않는 방법 등을 지원한다. 그게 소통이다. 소통은 너무 뻔하고 지겹다고 하지 않나. 하지만 본질은 거기에 있다.
서지혜 맥신 그린이 말하는 사회적 상상력은 거창한 게 아니라 내가 경험하지 못한 여러 사람의 삶이나 많은 것을 상상해 보면서 타인에 관해 생각할 수 있는 힘을 말하면서 함께 사는 사회를 새롭게 그리는 힘과 실천까지도 포괄한다. 상상력의 연습이 쌓이다 보면 어떤 크고 작은 상황들을 마주했을 때 다양한 맥락에서의 가능성을 생각해 보는 힘이 길러진다. 사실 경찰에게 상상력은 어쩌면 위험하지 않냐고 생각할 수 있는데, 어쩌면 누구보다도 다양한 삶의 사람들을 접하는 경찰에게 필요한 연습이겠다. 미술관, 공연장으로 눈을 돌려서 생각해 보면 자신이 그저 감각되는 것에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미술에 비해 음악에서는 더 어려워하는 것 같다.
신보슬 마침, 우리 집 옆에 부천아트센터가 생겨서 연주회에 자주 가게 됐는데, 맨날 객석이 꽉 차서 정말 놀랐다. 미술은 안 그러는데. (웃음) 아침에 해설이 있는 음악회도 하는데, 관람료도 저렴하니까 그냥 가서 듣는다. 클래식 음악에 대해서 장벽을 느끼는 분들도 있지만, 최근에는 미술보다 굉장히 저변이 넓어진 것 같다. 우리나라 문화예술 기반이 이렇게 많이 달라지고 있구나 싶다. 물론 스타 연주가들은 어마어마한 프리미엄에 초고속 매진이 되기도 하지만.
장은정 저는 이 부분에 대해 좀 부정적이다. 휴일에 국립현대미술관에 가 보면 관람객이 정말 많다. 마티네 음악회 같은 것도 예술의전당의 히트작이다. 무용에선 LG아트센터에 피나 바우쉬 같은 작품이 오면 관람료가 10~20만 원이라도 열자마자 매진된다. 근데 우리 공연 시장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문화적 향유를 넘어선 허영심이 아직 크게 자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김병주 저는 예술의 70%는 허세, 허영이라고 생각한다. (웃음) 그렇지만 그게 부정적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그 허영 안에는 스스로 인간의 품위나 품격을 갖추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생각한다. 좀 더 가치 있는 것을 향유하고자 하는 마음을 잘 이용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장은정 그것을 잘 연결하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저는 관객 참여형 프로젝트에 아이들을 꼭 넣는다. 아이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공간 전체의 에너지가 달라진다. 마지막에 관객들이 나와서 춤을 출 때도 어른들은 마음은 있어도 잘 참여하지 못한다. 근데 아이가 나오면 엄마도 함께 나오고, 처음엔 쭈뼛쭈뼛 놀다가 나중에는 춤에 빠져든다. 그러다 보면 너무 좋아서 다음에 또 오고, 그다음에는 친구들을 데려왔다. 그렇게 그 아이의 ‘10년 후’를 보고 싶다는 꿈으로 지속했더니, 어른 관객으로 다시 만나기도 하고, 대학교 제자가 옛날에 엄마랑 같이 공연에 왔었다고 하는 일도 생긴다. 그런 것들이 사회적 상상력을 발현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감각이 열린 순간들
서지혜 우리도 각자 예술을 만나는 과정을 거쳐 왔다. 그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나의 시야와 감각이 새롭게 열리거나 멈춰 선 듯한 순간이 있을까? 물론 하나의 순간이 아니고 여러 경험이 쌓여서 드러난 기억일 수도 있겠다. 그 기억을 이야기해 보면 좋겠다.
장은정 제 아버지가 월남전에 갔다 오면서 릴 테이프 플레이어를 가져오셨다. 일요일 아침, 잠이 덜 깼는데 창호지 사이로 햇빛이 막 들어오는데 그걸로 <언덕 위의 하얀 집>을 틀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때의 햇살, 온도, 향기, 그 소리가 다 기억난다. 초등학교 5학년 정도에는 남산을 산책하다가 아빠가 국립극장을 데리고 들어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리허설 중이었던 것 같다. 문을 연 순간 무대에 블루라이트가 쫙 내려오고 약간 ‘헉’하고 신기했다. 나중에 찾아보니까 국립 무용단 송범 선생님의 <왕자호동> 공연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저는 종군기자가 꿈이라 무용을 전공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우리 학교 무용 선생님이셨던 육완순 선생님이 공연하신다고 해서 갔다. 그런데 그 짧은 순간이 스탕달 신드롬처럼 기억이 안 나고, 정신 차렸을 때는 내가 무용을 하고 있더라. (웃음) 어른이 되고 나서도 상상력을 확장해 준 작품들이 많은데, 기억나는 것 중 하나는 로버트 윌슨이 2010년 국립극장에서 <크라프의 마지막 테이프>라는 공연을 했다. 그때 혼자 무대에서 비가 막 오는 데 저기 하수에서 빛 한 줄기만 있고 빗소리가 몇 분 만에 시작하고 점점 커진다. 정말 내가 비 내리는 광야에 혼자 서 있는 것 같았다. 그때 그 기억이 정말 강하게 남아 있다.
신보슬 제 어머니는 그림을 무척 좋아하셔서 제가 걷기 시작할 때부터 전시장에 데리고 다니셨다. 자라면서 그림은 계속 마음에 있었고 계속 미술반을 하긴 했는데, 그렇게 실력이 뛰어나진 않았는지 중학교 때 선생님께서 큐레이터라는 직업이 있다고 가르쳐 주셨다. 들어보니까 큐레이터는 딱히 나쁘지 않았고, 전시를 계속 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큐레이터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봤던 그림이랑 지금 현대미술은 정말 다른 것 같다. 지금은 사실 거의 비평에 가깝게 보지 않으면 안 되고, 업으로 삼으면서부터는 오히려 감상보다 계속 분석하게 된다. 업으로 삼은 후에도 한 번 크게 놀랐던 적이 있다. 테이트모던에 마크 로스코 방이 있었고, 그 방에 작품이 딱 하나 걸려 있었다. 근데 제가 정신 차리고 나니까 3시간이 지났더라. 나중에 방에서 나와서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그냥 색깔과 사각형이 있을 뿐인데 그 방에 어떻게 3시간을 앉을 수 있었지? 또 한번은, 잭슨 폴록 그림 앞에서 울었던 적이 있다. 광화문에 있는 미술관이었던 것 같은데, 비가 오는 날이었고, 제 개인적인 상황도 있었겠지만, 그게 뭐가 됐든 다른 그림이 아니라 그 ‘엉킨 물감’이었기 때문에 울었을 거라고 생각이 든다. 그게 올바른 작품 감상인지 아닌지와는 별개로 그렇게 작품 앞에서 울어봤던 것과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것이 예술 작품이 줄 수 있는 경험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병주 저도 어렸을 때 혼자 처음으로 뚱땅거리다가 낸 음이 화음이 되는 순간 느꼈던 전율 같은, 특별한 건 아니었지만 크고 작은 경험들이 나중에 보면 다 나라는 사람을 만드는 거였다. 아직도 기억나는 인상적이었던 순간이 있다. 제 어머니가 배우이신데, 결혼하면서 그만두었다가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말쯤에 다시 연극을 시작하셨다. 당시 어머니와 같이 연극 하던 배우님이 필동 주택가 안에 조그마한 소극장을 하나 열어서 오태석 선생님의 모노드라마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오뚜기>를 하고 있었다. 극 중간에 몽환적인 파란 조명이 내려오면서 혼자 플루트를 부는 마임 장면이 있었는데, 음악은 바흐의 폴로네즈였다. 이상하게 그 음악과 조명과 공간에서 배우가 연기하는 게 너무나도 쓸쓸하고 처연했다. 이게 무슨 감정이지? 그 어릴 때 봤던 연극, 영화, 음악 이 모든 것들이 가랑비처럼 알게 모르게 저에게 영향을 주었던 것 같다.
어렸을 땐 왜 예술 체험이 중요한지, 왜 실물로 보는 게 중요한지 몰랐는데, 처음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가서 그 유명한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을 봤을 때 느꼈다. 사실 그 그림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 않나. 딱 그 앞에 섰는데 순간 주변이 텅 빈 진공처럼 느껴졌고, 갑자기 돈 맥클린의 노래 <빈센트(Vincent)>의 가사들이 머릿속에서 연동이 되는 거다. 그 작품을 가까이서 보니까 캔버스에 덧칠한 물감의 거친 질감 같은 것들이 사진으로 봤을 때와는 매우 다른 심상을 준다는 것을 느꼈다. ‘아, 이래서 직접 봐야 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 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연극이나 영화, 음악을 제외하고 가장 인상적인 예술 경험의 하나를 꼽으라면 2012년 설치 미술가 올라퍼 엘리아슨의 전시이다. 그의 수많은 유명한 작품 중에도 <잔상 별(Afterimage star)>은 그리 화려하지는 않은데, 커튼 열고 들어가면 육각형의 빔에서 여러 색의 빛이 하나씩 둘씩 반복적으로 나와서 스크린에 투영된다. 그런데 인간의 눈에는 잔상이 있지 않나. 그래서 빨간빛, 파란빛을 보고 다음에 노란빛이 들어오면 그 노란색이 아니라 잔상과 섞인 다른 색의 별이 보이는 것이다. ‘내가 본 건 보라색인데 과연 보라색이 있었는가?’ 아무리 도록을 보고, 도슨트를 들어도 그 작품은 내가 그날 그 자리에 앉은 순간만 경험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앉음으로 인해서, 즉 관객 혹은 참여자가 현존해서 동시에 체험하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순간이고, 나가고 나면 사라지는 체험이다. 이것이 내가 하는 드라마나 연극 체험의 순간, 관객과의 상호작용 같은 특성을 함축한 느낌이었다. 그 작가의 다른 유명한 작품도 너무 많지만 내가 하는 작업이 어떤 의미이고 어떤 경험인지를 이렇게 시각적, 체험적으로 느끼게 해준 작품이어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어렸을 땐 왜 예술 체험이 중요한지, 왜 실물로 보는 게 중요한지 몰랐는데, 처음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가서 그 유명한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을 봤을 때 느꼈다. 사실 그 그림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 않나. 딱 그 앞에 섰는데 순간 주변이 텅 빈 진공처럼 느껴졌고, 갑자기 돈 맥클린의 노래 <빈센트(Vincent)>의 가사들이 머릿속에서 연동이 되는 거다. 그 작품을 가까이서 보니까 캔버스에 덧칠한 물감의 거친 질감 같은 것들이 사진으로 봤을 때와는 매우 다른 심상을 준다는 것을 느꼈다. ‘아, 이래서 직접 봐야 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 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연극이나 영화, 음악을 제외하고 가장 인상적인 예술 경험의 하나를 꼽으라면 2012년 설치 미술가 올라퍼 엘리아슨의 전시이다. 그의 수많은 유명한 작품 중에도 <잔상 별(Afterimage star)>은 그리 화려하지는 않은데, 커튼 열고 들어가면 육각형의 빔에서 여러 색의 빛이 하나씩 둘씩 반복적으로 나와서 스크린에 투영된다. 그런데 인간의 눈에는 잔상이 있지 않나. 그래서 빨간빛, 파란빛을 보고 다음에 노란빛이 들어오면 그 노란색이 아니라 잔상과 섞인 다른 색의 별이 보이는 것이다. ‘내가 본 건 보라색인데 과연 보라색이 있었는가?’ 아무리 도록을 보고, 도슨트를 들어도 그 작품은 내가 그날 그 자리에 앉은 순간만 경험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앉음으로 인해서, 즉 관객 혹은 참여자가 현존해서 동시에 체험하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순간이고, 나가고 나면 사라지는 체험이다. 이것이 내가 하는 드라마나 연극 체험의 순간, 관객과의 상호작용 같은 특성을 함축한 느낌이었다. 그 작가의 다른 유명한 작품도 너무 많지만 내가 하는 작업이 어떤 의미이고 어떤 경험인지를 이렇게 시각적, 체험적으로 느끼게 해준 작품이어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신보슬 학교에 가 보니 명화를 출력해서 벽에 붙이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르누아르의 <피아노 치는 소녀들> 옆에다 아이들이 쓴 감상평 중에 ‘피아노를 못 쳐서 엄마한테 혼나서 언니가 가르쳐줬다’라는 것도 있고, 칸딘스키 작품에는 ‘진짜 그림을 못 그렸나 보다’라며 발랄한 상상력을 발휘한 쪽지가 붙어 있었다. 그런데 프린트니까 그 물성도 못 보고, 사이즈도 마음대로 출력하지 않나. 그래서 차라리 미대생들의 작품을 갖다 놓으면 좋겠다고 교장 선생님께 조언했다. 그랬더니 이게 교육부 지침이라고 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가. 예술이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계속 주변에 스며 있긴 했는데, 강제로 포스터처럼 출력하고 말도 안 되는 액자에 껴서 복도 신발장 사이에 있는 조그마한 벽에 강제로 끼워 넣는 그런 작업을 어떻게 감상하고 감상평을 쓰냐는 것이다. 오늘 이야기를 좀 더 포괄적으로 예술 체험이나 예술 경험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 작품을 보는 건 정말 다른 것 같다.
서지혜 한편으로는 유명 음악가나 단체의 연주 못지않게 작품 자체를 통해 느껴지는 감각도 있는 것 같다. 제 시절엔 피아노를 배우면 주로 하농과 바흐, 체르니와 쇼팽, 베토벤, 슈베르트의 클래식 계보를 거치는 길을 걸었다. 그런데, 중학교 때 캐나다로 이주해서 만난 선생님이 음악 세계를 넓게 볼 필요가 있다며 한동안 바르톡에서 스콧 조플린에 이르는 악보들을 매주 몇 권씩 안겨준 적이 있다. 그분이 콘서바토리를 병행하라고 하셔서 고등학교 수업이 끝나고 토론토대학 안에 있는 콘서바토리에 가서 음악사와 화성학 등을 배웠다. 음악을 배운 지 9, 10년 만에 음악의 즐거움 속에서 살았다고 해야 할까. 비제의 ‘카르멘’에 묻혀 지낸 어느 한여름과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과 지낸 저녁 시외버스 좌석에서의 시간들이 정말 행복했다. 최근에는 ‘모두뮤직페스타’라는 음악 페스티벌을 기획하면서 선보인 테리 라일리의 <인 씨(In C)>라는 작품이 기억난다. 곡이 53개의 짧은 선율 모듈로만 구성되어 있다. 한 마디, 세 마디 짧은 부분도 있다. 이걸 20여 명의 연주자가 순서대로 연주하는데 언제 시작할지도 그들이 정하는 곡이니, 각자 연주도 하고 다른 연주를 들어야 하고 스스로 상상을 해야 한다. 그러니 누가 앞에서 지휘하지 않아도 같이 연주하면서 집단적 상상도 발휘되고 상상과 실천이 동시에 일어나는 음악이었다. 여러모로 음악의 가능성을 확 열어준 것 같다. 사실 음악은 연주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따로인데 서로 들어야 하고 듣는 사람 역시 이 변화를 계속 따라가는 것이 상호성이 정말 강한 것 같다. 우리가 음악의 민주주의는 쉽게 생각하기 어려운데, 음악 작품도 이럴 수 있구나 하고 감응이 됐던 작품이다.
-
테이트 모던의 마크 로스코 [출처] 유튜브 ‘Tate’
<크라프의 마지막 테이프>-
테리 라일리(Terry Riley) – ‘인 씨(In C)’ [출처] 유튜브 ‘Not-on-Spotify’
예술의 상상력이 가진 힘
서지혜 사회적 상상력, 그리고 예술교육의 존재 이유는 결코 간단히 정의할 수 없는 문제다. 누구나 미처 인식하지 못한 사이에 그 힘을 느꼈던 순간이 있을 것이고, 오늘 이야기를 나누면서 공감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있어서 예술, 예술교육의 상상력이 가진 사회적 힘에 관하여 이야기해 주시면 좋겠다.
장은정 표준화된 가치를 추구하는 우리 사회에서, 도파민에 중독되고 늘 새로운 자극을 찾아가는 일상들은 자연스레 자신만의 허상 혹은 가상 세계를 구축해 가고, 타인과 건강한 관계 맺기는 점점 더 요원해지고 있는 것 같다. ‘온전한 나’를 바라보고 성찰하며 자기돌봄과 자기다움을 발견하면서 더 나은 삶의 질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생각의 디자인을 위한 상상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곧 예술만의 고유 영역이며 예술교육을 통한 상상력만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을 발현하리라 믿는다.
신보슬 예술교육이라고 특정지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혹은 예술교육을 넓은 의미에서의 예술 체험이라고 할 때, 직간접적인 예술교육 덕분에 세상을 보는 눈이 확실히 넓어졌다고 생각한다. 예술교육을 통해 얻은 상상력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도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 거다. 예술 작품 속에서 우리는 많은 인생을 만나고, 상상하게 된다. 다시 말해 예술 작품은 한 개인이 살 수 있는 삶의 범위를 넘어서는 다양한 경험들과 다양한 삶의 군상들을 직간접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그로 인한 경험의 폭이 넓어지고, 그런 상상력이 세상에서 발현될 때, 세상은 좀 더 살기 좋게 변할 수 있을 거다. 너무나 이상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예술을 통해 만들어진 상상력이야말로 AI와 테크놀로지가 급부상하고 있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 좀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만드는 예술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김병주 예술교육은 우리 자신에서 시작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다각적인 상상력을 자극하는 힘이 있다. 예술의 체험과 자극을 통해 내가 더 나아지고 싶고, 소통하고 싶고, 연계하고 싶다는 상상을 자극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삶과 주변 사람들, 일상의 관계를 새롭고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그래서 우리가 더 집중하고, 더 견뎌내고, 문제를 해결하여 어려움을 극복해 내는 힘을 길러준다. 한 마디로, 우리 안에 내재한 ‘예술가’ 혹은 ‘예술성’을 끄집어내어 나의 삶을 주체적으로, 풍성하게 색칠하는 붓을 쥐여주는 것이다. 그렇게 저마다 크기와 모양, 색깔이 다른 수많은 붓이 모이면 어떤 세상이 그려질까?
서지혜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예술이 부차적인 것이거나 사적인 것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실제로 예술은 여러 면에서 공교육 못지않게 사람들이 인식하는 가치보다 훨씬 그 가치와 영향이 크기에 정부의 지원이 존재하는 가치재다. 언젠가부터 예술교육의 가치를 ‘창의력’이라는 단어로 함축하기 시작한 것 같다. 오늘의 대화가 좀 더 폭넓은 의미의 ‘창의력,’ ‘상상력’을 증폭시키기를 바란다.

김병주
서울교육대학교 교육전문대학원 교육연극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어쩌다 보니 여러 직책과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프락시스(PRAXIS) 예술/교육감독으로 불리고 교육연극, 포럼연극, 다양한 대상들과의 시민연극을 작업하고 고민하는 티칭아티스트로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 이론과 실천, 행위와 성찰의 균형을 찾아가는 ‘프락시스’를 삶의 철학으로 생각하며 산다.

신보슬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학과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뒤, 같은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7년부터 큐레이터로 활동을 시작하여 아트센터 나비,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 의정부디지털아트페스티벌, 대안공간 루프 등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특히 청소년과 지역 주민들이 함께 참여한 ‘벙커 465-16’ 프로젝트, 인도네시아 공동체와 예술가들이 바틱과 현대예술을 결합한 ‘바틱 스토리’ 프로젝트 등을 통해 예술교육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했다. 베를린, 런던, 인도 델리 등 해외 무대에서도 예술을 배움의 장으로 확장하는 활동을 이어왔으며, 현재는 중앙대학교 대학원과 토탈미술관에서 예술과 교육을 연결하는 여러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장은정
‘일상의 위대함을 위하여’를 작업 모토로 삼고 시대를 향하여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다양한 몸과 정서의 수용을 주요 가치로 여기며 생긴 대로의, 있는 그대로의 순수한 모습을 나누고자 한다. ‘몸, 춤, 삶’을 연계하여 지속 가능한 춤의 새로운 가치를 고민하고 있으며, 좀 더 자유로운 장소에서 좀 더 자유로운 사람들과 좀 더 자유로운 춤을 나누는 팔도 유람을 꿈꾸고 있다. 현재 장은정무용단 대표, 강애심, 장은정, 최지연, 김혜숙, 조민수로 구성된 프로젝트 그룹 ‘춤추는 여자들’ 대표이다. 2021 창작산실 올해의 레퍼토리로 선정된 <매스?게임!> <친애하는 그대에게> <바비레따, 열 번째 계절> 등 다수의 작품을 안무했다.

서지혜
[아르떼365]가 예술교육 실천가들에게 틈을 내주고 엮어주면서 틈새로 파고드는 매개체가 되기를 바라며 편집위원을 맡았다. 예술과 예술가가 사회와 긴밀히 관계를 맺으며 시민의 삶에 정신적 풍요로움과 변화를 촉매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으며, 예술경영과 예술교육, 문화정책 분야를 넘나들며 연구와 컨설팅, 기획과 매개 활동을 하고 있다. 인컬쳐컨설팅 대표, 사회참여적음악가네트워크 설립자/운영위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연세대, 숙명여대, 이화여대에 출강하고 있다.

- 정리_프로젝트 궁리 양희경, 남은정
- 사진_이재범 라무팜스튜디오 실장 andy45a@naver.com
기사가 좋았다면 눌러주세요!
4 Comments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코너별 기사보기
비밀번호 확인














나도 모르게 물들어가는, 물들여가는
[좌담] 사회적 상상력을 일으키는 미적 체험의 힘
잘 보고 갑니다
나도 모르게 물들어가는, 물들여가는
[좌담] 사회적 상상력을 일으키는 미적 체험의 힘
기대만점입니다
너무 고급진 대담을 들여다 볼 수 있어 참 좋았습니다. 개인적 창의성을 넘어, 집단적 창의성, 사회적 창의성이 강조되는 이 시대에 에술을 통해 사회와 연대할 수 있는 역량, 사회적 상상력의 힘을 믿습니다. 특히 대담자 중의 한분인 김병주 교수님의 행위와 성찰의 균형을 찾아가는 프락시스로서의 예술의 사회적 책임감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어요! 감사!
뮌가 생각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