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2005년 「문화예술교육 지원법」의 제정으로 시작된 한국 문화예술교육의 20주년을 기념하는 해이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기념하는가? 문화예술교육은 누구에 의해 기억되는가? 문화예술교육을 기꺼이 기억하는 그들은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타자화된 그 하나의 역사(his/story)가 아닌 당사자의 목소리로 구술되는. 그리고 그렇게 쌓여가는 집단 기억(collective memory)을 통해 문화예술교육을 새롭게 기록하여야 할 시점이다.
‘어릴 때부터 망토 쓰고 뛰어내리며 하늘을 날고 싶었다’
흥미롭게도 어린이에서 노인에 이르는 참여자, 예술강사, 기획자에게 듣는 문화예술교육의 이야기는 종종 화자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한 회상으로 시작한다. 책 읽기, 과학 실험, 발레와 피아노,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초등학교 3학년의 참여자는 초콜릿, 사탕, 야채를 싫어하는 아이이다. 어릴 적 ‘꼬마 예술가’로 불리던 17세의 참여자는 마음대로 노래를 만들어 부르고 막춤을 추는, 그런 아이였다. 20대에 아이를 낳아 엄마가 된 참여자는 때로는 화를 내는 ‘버럭이’가 되었다가, ‘슬픔이’, ‘까칠이’였다가 이내 ‘기쁨이’가 되는 긍정적인 ‘다중이’이다. 부녀회장이었던 참여자는 재능이 있는 줄도 모르고 촌에서 농사지으면서 살다가 이제는 멜로 연극의 주인공을 하고 싶은 할매연극단의 단장이 되었다.
이들은 단지 문화예술교육의 ‘대상’이 아니다. 20명, 100명의 숫자로 쉽게 치환할 수 없다. 어쩌다 한 번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의 수혜자이었을지 몰라도, 이들은 삶 속에서 때때로 혹은 매일 문화예술교육을 다시 만나고 새롭게 만들어간다.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OST 오케스트라 버전을 듣고 ‘멋있다. 나도 해보고 싶다’라고 생각하던 참여자는 우연히 학교에 찾아온 홍보를 보고 꿈의 오케스트라 사업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이후 고등학교 3학년까지 8년을 지속한 이 참여자에게 오케스트라는 시험 기간이라도 안 하면 이상하게 느껴지는 정도로 일상과 같은 것이 되었다. 중학교 시절 학교문화예술교육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무용 동아리 1기에 참여했던 또 다른 참여자는 15여 년이 지났지만 그때의 경험이 지금까지 자존감의 근간이 되었다고 말한다. 마을에서 문화사랑방에 참여했던 한 중년에게 문화예술교육은 언젠가 노년이 되어도 ‘되새김질’할 수 있는 추억이다. 그렇게 이들은 순간순간, 또 다른 모습으로 문화예술교육을 경험하고, 문화예술교육을 다시 기억(re/collecting)한다.
‘그때 그 시절 내 안의 예술가를 기억한다’
기억되는 문화예술교육은 무엇인가? 교육학적 개념 가운데 영속적 이해(enduring understanding)는 가르치는 이들에게 중요한 관심사이다. 수업이 끝난 후에도 삶의 맥락에서 작동하는 지식, 지혜로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이해하여 내면화하도록 할 것인가는 교육의 목표와 내용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이다. 따라서 ‘문화예술교육이 무엇인가’라는 다소 추상적이고 광범위한 개념은 오랜 시간 후에라도 개개인의 참여자가 어떻게 문화예술교육을 기억하는가를 통해 구체화할 수 있다. 문화예술교육 사업, 정책, 프로그램, 활동, 예술적 지식과 기능, 악기와 기자재, 미술 재료 등 문화예술교육을 구성하는 수많은 크고 작은 조각 가운데 참여자의 기억에 남아 다시 그려지는 그 조각이 아직은 알 수 없는 전체 퍼즐을 맞출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것이다.
예술강사였던 어머니를 20여 년 전부터 지켜보아 왔던 한 초등교사는 현재 학교문화예술교육을 예술가와 함께 기획, 실행하고 있다. 예술교육과 함께 성장하고 살아온 그에게 첫 예술적 경험은 ‘압도적’이었다. 4살 때 연극배우였던 어머니를 따라 올라가 보았던 무대의 공포, 긴장, 그리고 강렬한 희열이 지금도 예술교육을 지속할 힘이 되었다고 말한다. 어느 참여자는 자신의 아이를 위한 자장가를 만드는 프로젝트가 힘든 일들도 버티고 적응하면 할 수 있다고, 스스로 용기를 내게 된 시작점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것이 노래가 주는 ‘단단한 힘’이라고 말한다. 중학교 시절 무용 동아리에서 활동했던 한 참여자가 세월이 흐른 후에 되돌아본 문화예술교육은 삶의 울타리이자 ‘나아갈 힘’이었다. 그에게 예술은 팍팍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틈이자 새로운 기대를 가지고 다시 일상을 만들어 나가는 힘이다. 초등학교 3학년의 참여자 또한 예술 활동을 하면 머리가 맑아지고 ‘다시 공부할 힘’이 생겨서 어른이 될 때까지 예술 활동을 하고 싶다고 한다.
문화예술교육 참여자들이 이렇게 예술의 힘을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예술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안면신경마비 때문에 부끄러워서 연극 수업에 나오는 것조차 힘들었던 이야기. 빨리 모를 심어야 하는 데 연습하러 가야 하거나 교통사고로 다쳐서 아파 죽을 판에 ‘이거 해서 뭐 하나’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연극을 하러 나왔던 이야기. 노년에 랩을 할 때 긴 가사를 외우는 것이 너무 어려웠던 이야기. 할매연극단의 역경 스토리는 계속된다. 예술 활동이 어려운 것은 노년만이 아니다. 장난치고 노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청소년 프로젝트에서 ‘학생 스태프’라는 역할을 맡아 뙤약볕에 땀을 흘리는 것도, 모르는 친구들과 오케스트라에서 함께 호흡을 맞추어야 하는 것도, 연주가 마음대로 안 될 때 터질 것 같은 눈물을 참는 것도 모두 힘든 일이다. 하지만 내 아이, 형 같은 선배, 어색한 친구, 동네 이웃, 그리고 우리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알 만큼 가까워진 예술가 선생님과 함께 무엇인가를 창작하고 성취하는 그 순간, 고난은 한 편의 영화 혹은 동화 속 장면이 된다. 예술 매체 안에서 자신의 한계를 꺼내어 보일 때 갖는 실존의 경험, 내재적인 동기에 이끌려 연습을 거듭하며 타인과 기꺼이 관계를 맺는 예술가의 세상 사는 방식을 그들은 기억하는 것이다.
‘예술은 타인의 세계에 방문하게 하는 힘이 있어요’
꿈의 오케스트라를 맡았던 예술강사의 첫 목표는 하루에 한 번씩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었다고 한다. 예술가는 자신의 시그니처를 새긴 작품을 만든다. 직접 서명하지는 않더라도 작품이 담고 있는 주제, 양식, 정서 등 곳곳에서 작가 고유의 필체를 볼 수 있다. 이처럼 예술 창작에서 이름은 개개인의 고유성을 상기시키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문화예술교육은 집단으로 수업이 진행되지만 개인의 이름이 불리는 공간이다. 예술 작업 안에서 생각과 생각이 교차하고 서로 다른 감정이 공명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타인과 접촉하는 관계망을 만드는 것이 문화예술교육이다. 자연스럽게 자신을 감각하고 표현할 수 있는 자유의 공간인 동시에 사적인 영역을 공적인 세계에 드러내는 공공의 장인 것이다. 이렇게 펼쳐진 예술의 판 안에서 무엇이 가능한지,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계속하여 도전한다. 그리고 이 판에 뛰어들었을 때 슬픔과 기쁨, 두려움과 용기, 좌절과 자신감과 같은 주관적인 감정이 타인과의 대화로 이어지고, 이러한 인연을 통해 공동체를 만드는 힘을 경험하였음을 참여자들은 증언하고 있다.
이제 문화예술교육 참여자의 이름을 다시 부르는 것은 단지 준비된 예술작품을 만드는 꼬마 예술가가 아닌 문화예술교육 의미 만들기의 주체로 이동시키는 전환적 시도이다. 그들을, 아니 우리를, 학습자를 넘어 창작자로 다시 만나야 한다. 문화예술교육이 경제적 효율성과 합리주의에 집중할 때 참여자는 정책 대상 혹은 수혜자로 밀려나 무력감과 소외를 경험하거나 자율성을 상실할 위험에 처한다. 차분하게 참여자의 서사에 귀 기울이고 삶 전체에서 문화예술교육의 경험을 이어갈 수 있도록 기다려야 한다. 정책에서 현장으로 혹은 예술강사에서 학습자로 향하는 단선적이고 위계적인—때로는 위태로운—구조에서 벗어나, 다양한 소(小)서사가 촘촘한 관계망을 형성하며 만들어내는 단단한 지층 위에서 문화예술교육을 함께 기념할 수 있길 기대한다.

- 김선아
- 미술교육, 문화예술교육, 다문화 교육, 예술치료, 미술관 교육, 디지털 미술교육 등 페다고지의 관점에서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연구하고 있다. 또한, 저소득층, 장애청소년, 미술영재 등 문화 다양성을 위한 사회소외 계층 대상 미술교육 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하고 있다. 현재 한양대학교 응용미술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양대학교 미술영재교육원 원장, HEAD Lab 센터장, i보다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본지 편집위원.
sakim22@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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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교육의 집단 기억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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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고 갑니다
문화예술교육의 집단 기억 만들기
[기획 리뷰] 참여자 기-억하기
기대만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