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날이다. 아이들이 별이 된 그날의 아픔을 가슴에 새긴 엄마들이 직접 무대에 오르는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은 2015년 10월 마음치유를 위한 ‘연극 대본 읽기 모임’에서 출발했다. 이어 2016년 3월 공식적으로 극단을 결성하고, 같은 해 10월 <그와 그녀의 옷장>으로 첫 무대를 선보였다. 그 후 10년, 엄마들은 멈춘 시간의 아픔과 기억을 딛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만들어 무대에서 관객을 만나고 있다. 배역에 몰입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면서도 진심 어린 관객의 반응에 힘을 얻는 진정한 배우들이다. 여섯 번째 신작 <노란 빛 사람들>을 연습 중인 김순덕·박유신 배우와 김태현 예술감독이 연극으로 이어온 지난 10년의 여정을 진솔하게 이야기 나눴다.
- 대담개요
-
• 일 시 : 2025.6.11.(수) 오후 1시
• 장 소 : 4.16 꿈숲학교
• 참석자 : 4.16가족극단 노란리본 김순덕(애진맘) 배우, 박유신(예진맘) 배우, 김태현 예술감독
김태현 우린 사실 처음에 예술교육 개념으로 시작한 건 아니지요. 그냥 연극 같은 거 해보자고 모였다가, 노란리본이라는 극단을 통해서 연극 수업도 받고 또 작품도 같이 만들어서 공연도 올렸습니다. 이렇게 10년 동안 노란리본 활동을 하면서 내 삶에 가장 변화된 지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박유신(예진맘) 연극을 시작하기 전에는 진짜 우주를 다 잃어버린 것 같은 삶이었는데, 우리 예진이가 했던 연극을 이어서 한다는 게, 굉장히 마음이 충만하다고 해야 할까, 그런 느낌이 강했어요. 지금도 그런 마음이 없지 않고, 아무튼 제 삶이 계속 미안하고 그렇지만, 그나마 흉내는 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달라진 것 같아요. 연극에서 ‘관객과의 대화’를 하거나 얘기할 때 예진이 엄마로 통하잖아요. 어디 가면 “연극 잘 봤어요” 하는 분들도 많고 처음 뵙는 분들도 연극을 통해서 내적 친밀감을 느낀다는 분들이 많아요. 그럴 때마다 보람을 느끼고 ‘잘하고 있구나, 더 열심히 해야겠구나’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그냥 박유신이 아니라 우리 예진이 하고 연결됐기 때문에, 어쨌든 예진이 이름을 한 번 더 얘기할 수 있잖아요. 그게 참 좋은 것 같아요.
김태현 예진이가 뮤지컬 배우를 꿈꾸며 예대를 지망했었죠. 어머님이 예진이의 꿈을 이어서 연극을 한다는 게 충만한 느낌이고 가장 큰 변화인 것 같습니다. 제가 애진 어머님과는 예전부터 알고 지냈는데, 주변 사람들이 “애진 엄마한테 저런 면이 있었어?”라고 하는 얘기를 듣기도 했어요. 내 안에 이런 끼가 숨겨져 있다는 걸 알았나요?
김순덕(애진맘) 몰랐죠. 중학교 때까지는 땅바닥만 보고 다니는 학생이었어요. 누군가 주목하면 그게 너무 싫었어요. 다른 사람들이 내 목소리를 못 알아들을 정도로 목소리가 작았는데, 노란리본을 하면서 목소리도 커지고 자신감도 느껴지는 것 같아요. 나한테 이런 끼가 감춰져 있었나 싶고. 처음엔 그게 좋았는데, 지금은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에요. 약간 긍정 반, 부정 반이에요. 여기서 에너지를 다 쓰고 나니까 가족에게는 나도 모르게 거르지 않고 직설적인 말이 나올 때가 있었어요. 근데 그런 과정이 필요했던 것 같고, 이제 괜찮아진 것 같아요.
김태현 저도 마음이 피폐해졌단 느낌을 받은 적이 있어요. 상담 선생님 말씀이 재난 참사 피해자들 곁에서 무언가를 하려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말 한마디라도 상처받지 않을 말을 골라내느라고 내 무의식 세계에서 에너지를 다 쓴다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나머지 나의 일상에서 기력이 없어져 버리는 거라고 하더군요. 그렇지만 어머님들이 항상 힘든 일상을 살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너무 잘 알잖아요. 그러니까 내 에너지가 고갈되더라도 어머님들한테 잘해야 한다고 마음먹는 게 있어요. 다시 힘을 내는 거죠.
힘들어도, 연극 하는 이유
김태현 우리는 예술교육 과정으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예술교육을 통해서 하나의 극단을 조직했고, 꾸준히 공연을 올리고 연습하고 만나는 과정에 있다 보니, 단원 간의 갈등도 있고, 관계가 조금 힘들 때도 있었을 거예요.
박유신 근데 그런 얘기가 뒷담화 같아서 못 하겠더라고요. 남편에게만 하소연하듯 얘기했는데, 그래도 그만두라는 소리를 안 하더라고요. 연극을 계속했으면 하는 바람이 이 사람도 있는 거예요. 어쨌든 지금은 굉장히 새로운 작품을 하느라 낯설다 보니 그런 마음이 더해지고. 인간관계가 참 사람을 힘들게 해요.
김순덕 극단에서도 사회에서도 인간관계가 제일 힘든 것 같아요. 차라리 몸이 힘들면 그냥 좀 쉬면 되지만 인간관계는 안 되더라고요. 게다가 연극은 동료와 같은 무대에서 호흡을 맞춰야 되잖아요. 우리가 연극을 하는 이유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고, 뭔가 알리기 위해서니까 꾹 참아요. 그러다 한번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그만둬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연속, 극>(변효진‧류성 작, 김태현 연출, 2024년 초연)에 들어갔죠. 그러면서 처음엔 진짜 다른 생각 없이 애진이 친구 엄마들을 위해 뭔가 하겠다는 마음으로 들어왔었는데, 왜 이렇게 되었나 되새겨봤어요. 게다가 내가 이 극단에서 사라지면 다른 사람들의 얘기, 생존 아이들, 우리와 함께해 줬던 주위 사람들의 얘기가 사라질지 모른다고 감독님이 얘기해줬잖아요.
김태현 그러니까 연극이라는 게 참 환장할 노릇이에요. 포기가 안 되죠. 생존 학생 엄마로서 느꼈던 아픔이나 곤란함이 드러날 수 있는 것도 연극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그만두고 싶은데, 또 나만 생존 학생 엄마가 아니잖아요. 생존 학생 엄마의 이야기가 정면으로 등장하는 작품이라 같이 활동하는 생존 학생 엄마들을 위로하는 무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느껴지니까 이걸 또 안 할 수가 없게 되죠.
김순덕 복잡하죠. 아무튼 지금은 연극을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박유신 항상 그런 마음이 있기도 한데, 인간관계 때문에 더 크고 소중한 걸 잊어버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죠. 그래서 그만둔다는 말을 겉으로 안 하는 거예요. 그러면 현실이 될까 봐 걱정도 돼요.
김태현 대체로 문제의 핵심은 실제 크기가 그렇게 크지 않고 아주 작은 욕심들이었어요. 그 작은 욕심 때문에 작품이 중단될 뻔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중단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인간관계가 큰 고통일 수 있지만, 우리가 작품으로 세상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훨씬 더 큰 의미가 있다는 데 공감하니까 지금껏 버텨온 거죠. 그러다 보니까 툴툴대기도 하고 티격태격하기도 하는데, 어쨌든 무대에 서면 최선을 다해 우리의 연기를 했어요. 관객들과 제대로 된 무대를 하겠다고 약속한 것을 지키려고 일상에서 겪는 갈등은 완전히 사라지고 배역에 몰입하더라고요. 관객들이 제대로 반응해 주면 신나 하고요.
가르치기보다 존중하고 공감하는
김태현 우리가 2020년부터 ‘4·16늘풂학교’를 하면서 안산의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연극 교실을 열고, 직접 연극 강사가 되어 봤어요. 그때 정말 열심히 하셨어요.
김순덕 열심히는 했지만 부족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맞나, 우리가 이렇게 해서 되는 건가? 근데 늘풂학교 학생들이 우리를 바라볼 때, 선생님이라기보다는 엄마나 우리 동네 아줌마라는 느낌으로 보는 것 같아서 참 다행이에요. 아이들이 우리를 진짜 학교 선생님처럼 생각했다면 ‘선생님이 왜 저래?’ (웃음) 그럴 수도 있었을 텐데. 그래서 부족한 점이 있었지만, 아이들하고 함께할 수 있어 편하면서 즐거웠어요. 그러면서 항상 부족하고 좀 더 노력해야겠다 싶기도 해요.
박유신 근데 노력해서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더라고요. 늘풂을 몇 회차 해봤는데, 그 순간 최선을 다하려고 했을 뿐이지 도대체 나아지지 않았어요.
김태현 예진 어머님이 ‘마주 보며 관찰하기’ 진행을 무척 잘했잖아요. 그런데 내가 연극 전문가 수준이 아닌데 가르친다는 게 민망했나 봐요.
박유신 네. 민망하고 남사스러워요. 방학 때 귀중한 시간을 내서 온 아이들한테 조금이라도 도움을 줘야 할 텐데, 나는 하나도 도움이 안 되겠다 싶었어요. 아이들 앞에 서면 그때부터 부담되고 긴장 모드인 거예요. 어떻게 보면 그것도 약간 스트레스였어요. 능력도 없는데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생각하니 자존감이 완전 바닥이 됐어요.
김순덕 저도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그런데 한번은 낭독할 때 아이들이 옷도 입고 가발도 쓰고 엄청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래도 하길 잘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아이들과 함께했던 시간이 좋았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렇지만 연극이라는 주제는 부담스럽고 항상 모자라고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김태현 우리끼리 연습하고 준비할 때는 이걸 어떡하나 했는데, 아이들을 만났을 때는 우리가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보낸다는 애틋함이 있었던 것 같거든요. 아이들이 낭독 공연할 때 되게 즐거워하지 않았어요? 연극 전문가 혹은 전문 강사로서 부족함을 느낄 수 있겠지만, 늘풂학교는 단순히 연극 기술을 가르치는 교육 과정이 아니었잖아요. 세월호에 관해 알리고, 세월호 엄마들이 왜 연극을 하는지 알릴 기회를 만들고, 우리가 직접 창작했던 작품을 가지고 연습하는 과정이었으니까요.
김순덕 그런 측면으로 보면 늘풂학교에 참여한 아이들과의 대화가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솔직히 우리가 전문 연극인이 아니니까 연극을 가르치기에 부족한 건 당연한 것 같아요. 그렇지만 늘풂학교의 주목적은 연극이 아니잖아요.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엄마들이 함께 모여서 많은 활동을 한다는 걸 알리고 우리가 배운 것을 환원한다는 생각으로 한 것인데, 아이들과 소통하는 과정은 진짜 부족했다는 생각이에요.
박유신 첫해엔 처음이라 정말 재미있었어요. 또 고등학생들이 많았잖아요. 거기서 예진이 닮은 애를 찾아보려고도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2회 차, 3회 차, 갈수록 나의 능력 부족을 알겠더라고요. 세월호를 알리기 위해서 시작했지만, 연극을 처음 접하는 아이들이 우리 같은 어설픈 사람들한테 배워서 ‘연극이 이런 거였어?’ 아예 싫어지게 되면 어떡하나 걱정했어요.
김순덕 그런데 우리가 전문 강사가 아니라서 아이들이 더 재미있어했다는 생각도 들어요. 좋은 강사일수록 막 주입하려 할 수도 있는데, 우리는 그냥 다 해보라고 그랬으니까요.
우리 이야기로 우리 아이들을 기억하기
김태현 우리가 연극을 만들 때, 우리의 이야기를 작가한테 들려주고 그 이야기를 직접 만드는 것이 또 하나의 특별한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2016년 첫 작품인 <그와 그녀의 옷장>(오세혁 작, 김태현 연출)은 원래 있던 작품을 그냥 한 것이고 남의 얘기를 한 거잖아요. 2017년 <이웃에 살고 이웃에 죽고>(류성 작, 김태현, 변효진 각색, 김태현 연출) 할 때는 제가 그냥 하지 말고 세월호 가족을 등장시키는 거로 각색하자고 제안했어요. 세 번째 작품부터는 아예 창작해서 우리 얘기를 하는 거로 방향을 잡았어요.
박유신 <이웃에 살고 이웃에 죽고>가 원래 세월호 이야기로 만든 거로 생각한 분들이 꽤 많을 거예요. 세월호 한 집을 딱 집어넣으니까 진짜 거의 세월호 이야기였거든요. 이 작품 섭외가 제일 많이 들어왔던 것 같아요. 엄마들이 연극을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던 점도 있었고. 진짜 우리 얘기, 세월호 엄마들, 가족들 이야기라 공감을 많이 해주었던 것 같아요. 이 작품을 하면서 저희 곁에 있어 준 분들이 저희를 어떤 눈으로 바라봤을까 하는 생각이 완전히 180도 바뀌었죠. 처음엔 고맙긴 해도 그냥 걱정해 주는 척하는 거로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옆에서 가족을 지켜보는 영광이 할아버지 역할을 하면서 그 마음을 알겠더라고요. 무대에 잠깐 올라가서 순애를 보는데, 애처롭고 안됐고. 왜 숨을 수밖에 없나, 왜 유령처럼 다니나, 짠하다, 잘해줘야겠다, 보듬어줘야겠다. 그분들도 이런 생각을 했겠구나, 그때 진짜 완전히 제 마음이 바뀌었어요. 그래서 참 애착이 가요.
김순덕 저는 이 작품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작품 중의 하나예요.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공유도 제일 많이 했었고, 처음으로 세월호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했던 작품이기도 한데, 저는 이 작품에 트라우마가 생겼어요. 옆에 순애가 있고, 영광이 할아버지가 있고, 학생이 있는데, 나는 해서는 안 될 나쁜 말들을 하잖아요. 그 말을 하는 나 자신이 너무 싫은 거예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빠져나오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저만 그런 게 아니라 준영 엄마도 그것 때문에 굉장히 힘들었죠.
박유신 이렇게 다들 한 가지씩 하고 싶지 않은 작품이 있었나 봐요. 저는 <기억여행>(김규남 작, 김태현 연출, 2021년 초연)이 그래요. 엄마들이 너무 우니까 자존심이 상했어요. 우리는 불쌍한 사람들이구나, 동정의 대상이구나, 그런 생각이 많이 들어서 싫었어요.
김태현 우리가 세 번째 작품을 <장기자랑>(변효진 작, 김태현 연출, 2019년 초연)으로 결정하는 데 애진 엄마의 역할이 있었잖아요.
김순덕 애진이 언니도 단원고 5회 졸업생이잖아요. 변효진 작가님과 글짓기를 하는데, 아이들이 장기자랑 간다고 춤 연습을 하고 옷도 사고 신발도 샀던 기억이 나는 거예요.
김태현 변효진 작가가 그 단어를 캐치해서 작품을 만들자고 제안했고, 저도 너무 좋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이 되어서 아이들 역할을 해봅시다!” 그랬을 때, 어땠어요?
김순덕 맨 처음에는 실감이 안 났었죠. 엄마들은 사진 찍고 교복 입을 때 그 느낌이 와닿았다고 했어요.
박유신 언니도 그렇고 다른 엄마들도 되게 힘들었다는데, 저는 힘들었던 기억보다는 설렜었어요. 별종이죠?
김순덕 강한 긍정은 부정일 수 있는데, 설렜다는 말이 저는 ‘아팠다’라고 들려요. ‘아프지만 너무 좋아. 예진이 얘기할 수 있어서.’ 힘든 걸 감추는 거죠. (엄마들이 눈시울을 훔친다.)
박유신 아무튼 저는 되게 좋았어요. 사진 찍을 때도 좋았어요. 그래서 배역 정해지자마자 저는 그날 바로 교복 알아보러 가고 그랬어요.
김태현 저도 그때 모험이었지만, 우리가 연극을 하는 이유가 우리 아이들이 잊히지 않게 하기 위함이고, 이 목표를 가장 정면으로 실현하는 것이 <장기자랑>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최대한 예쁘고 유쾌하고 명랑하고 밝았던 아이들의 모습을 우리가 보여주자, 우리가 도대체 얼마나 소중한 우주를 잃어버리게 됐는지를 무대에서 보여주자고 생각했고, 또 어머님들이 잘 따라주실 거로 생각했어요. 실제로 한 번 등장하면 퇴장을 안 하니까 체력적으로 힘든 건 사실이지만, 지금까지 만든 작품 중에 제일 재미있는 작품이긴 해요. 엄마들이 교복 입고 아이들 연기하는 건 조금 자신 있었어요.
박유신 감독님이 의도하신 그 생각이 맞아떨어진 게, 제가 ‘엄마의 노란 손수건’(세월호 문제 해결을 위한 엄마들의 모임) 하는 동생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니 “언니, 다 애들로 보이지 엄마로 안 보이니까 그런 거 신경 쓰지 마” 그러더라고요. 그러니까 그 의도가 딱 맞은 거죠.
김태현 연기를 잘해줬기 때문이에요. 공연할 때는 정말 아이들로 보여요. 우리 극단의 특징이 커튼콜 때 엄마로 확 돌아가서, 비극이 돼요. <기억여행>은 제가 봐도 슬픔의 강도 조절을 세심하게 하지 못한 작품이에요. 세월호 가족들이 그동안 걸어온 여정을 에피소드로 만든 게 <기억여행>이죠. 그래서 한편으로는 기록이고, 한편으로는 간담회였어요. 그래서 그때 (사)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에서 우리 공연을 보고 ‘진실여행’을 하기로 결정했죠. 그전에는 간담회를 갔는데, 그럴 필요 없이 <기억여행>을 보여주면 된다면서요. 이 작품은 우리 가족들이 이런 마음으로 이렇게 싸워왔다는 것을 얘기하는 정말 중요한 작품인데, 공연하기에는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욕도 먹었고요.
김순덕 엄마들한테 어떻게 <기억여행> 연극을 시키냐고, 정신과 상담도 다 받았어요. 그래서 마지막에 나오는 장면이 꼭 필요해요.
김태현 맞아요. 원래 없었는데, 연극에서 확 깨서 현실로 나오는 장면을 맨 마지막에 뒀어요. 손만 흔들고 끝났으면, 관객들도 엄마들도 나오기 힘들었을 거예요. 연극이 만든 설정과 상황과 그 장면에서 확 벗어날 수 있는 장면을 설정한 거죠.
김순덕 되게 좋았어요.
박유신 또 한 번 천재라고 느꼈어요. (웃음)
김태현 <기억여행> 후에 우리 극단에 번아웃이 옵니다. 그동안 열심히 공연 다니며 진을 뺐던 게 첫 번째 원인이고, 두 번째는 대통령 바뀌고 석 달 후에 시장이 바뀌면서 ‘앞으로 우리 세월호는 어떻게 되는 거지?’ 하면서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어요. 너도나도 연극도 극단도 그만둬야지 그러는데, 이번에 못 잡으면 진짜 끝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때 7명의 엄마가 단 한 명도 그만두지 않게 하려면 7명을 전부 주인공으로 세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웃음) 다큐멘터리 <장기자랑>에서 예진 엄마가 예진 아빠 만났던 에피소드를 연극으로 만들면 재밌겠다 싶었죠. 이런 식으로 각자의 얘기를 7개의 에피소드로 만들면 아무도 못 나가겠지, 생각하면서 <연속, 극>을 기획했어요. 그때 여러 의미 있는 장면이 많이 나왔어요.
박유신 사실 제가 그동안 예진 아빠한테 원망하는 말을 많이 했어요. “자기가 운 없는 사람이야. 그래서 예진이가 그렇게 됐지.” 이런 얘기를 수도 없이 했었거든요. 근데 <연속, 극>에서 우리 만난 얘기를 하면서 ‘이렇게 좋았던 사이가 왜 비극이 됐을까?’ 싶더라고요. 첫 공연 날 예진 아빠가 엄청 울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다 깔깔대고 웃는데, 예진 아빠만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더라고요. 내가 그동안 예진 아빠한테 했었던 모든 독한 말들에 사과하는 의미가 다 들어갔어요. 그래서 애착이 가는 거겠죠. 어떤 사람은 어떻게 결혼하기 전에 아기 낳은 얘길 연극으로 하냐고, 안 창피하냐고 그러더라고요. 나는 괜찮은데 왜 그러지? 난 떳떳하고 좋으니까 그렇게 말한 사람도 밉지가 않았어요. 그리고 예진이 역을 맡은 언니가 “고마워, 종만 씨 그리고 유신 씨.” 그 대사하는 게 너무 좋아요. 언니를 볼 때 우리 예진이 보는 것처럼 보거든요. 저는 예진이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어요. 무대에 오를 때마다 예진이가 하고 싶었던 걸 한다는 게 너무 좋아서, 할 때마다 예진이한테 보여준다는 심정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돼요. 예진이가 엄마 연습 과정을 보고 있다면 잔소리를 많이 할 것 같아요.
김태현 세월호 어머니들이 지금 10년째 연극하는 사람으로 살고 계십니다. 그 과정이 아이들과의 대화를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일상에서 자신감이 생기기도 했죠. 작년에 ‘2024 레드 어워드’에서 노란리본이 ‘주목할 만한 토대’로 상을 받았잖아요. 우리들의 10년 연극을 우리 사회가 참 의미 있게 여겨준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수상 소감도 멋지게 밝히고 노래도 하시고 어머님들도 참 기분 좋은 날이었어요. 앞으로도 우리들의 일상이나 관계에는 변화가 있겠지만, 그래도 어디선가 아픔을 겪는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는 것이 우리 연극의 기본적인 태도여야 한다는 것은 변함이 없을 것 같습니다. 10년간 함께 걸어서 참 고마웠습니다.

김순덕
‘4.16가족극단 노란리본’ 단원으로, 생존 학생의 엄마로서 무대에 섭니다. 어른으로서, 엄마로서 이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기억하고 잊지 않겠다는 약속, 그리고 그날의 진실을 전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연극을 하는 것 같습니다. 또한 다시는 이런 참사가 없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극단 엄마들과 함께 연극을 올립니다.

박유신
2016년 희곡 읽기 모임으로 시작해 다섯 작품에 참여했습니다. 여섯 번째 작품을 준비하면서 우리 예진이를 더 알릴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우리 딸이 그토록 서고 싶었던 무대이니 항상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김태현
2005년 극단 걸판을 창단하여 지역 기반 연극 활동을 만들어왔고, 2013년 극단 동네풍경을 창단하여 지역의 이야기를 연극과 뮤지컬에 담는 활동을 했다. 2014년 세월호 이후 문화와 예술의 힘을 통해 도시에 새로운 활력을 만들기 위한 문화기획을 하고 있다. 문화예술 사회적협동조합 컬처75 이사장, (사)경기민예총 이사장을 맡고 있다.

- 정리_남은정 프로젝트 궁리 기획자 archive0721@gmail.com
-
대담 사진_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공연 사진 제공_4.16가족극단 노란리본
기사가 좋았다면 눌러주세요!
4 Comments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코너별 기사보기
비밀번호 확인


















아이들의 이야기가 잊히지 않게
[대담] 묵묵히 걸어온 4.16가족극단 노란리본 10년
잘 보고 갑니다
아이들의 이야기가 잊히지 않게
[대담] 묵묵히 걸어온 4.16가족극단 노란리본 10년
기대만점입니다
설렜다는 말을 아팠다로 알아주는 그 마음들이 모여 전하는 이야기, 같이 웃으며 울며 기억할 수 있는 소중한 걸음걸음을 응원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이 10년 동안 걸어온 여정과 용기에 깊이 감동했습니다.
각자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고, 그 과정에서 서로의 아픔을 나누며, 또다른 희망을 만들어 나간다는 점..
앞으로도 많은 이들의 가슴에 울림이 되길 바라며, 늘 응원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