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이게 우리한테는 행복인기라”

[대담] 용감하고 즐거운 보람할매연극단의 12년

2013년, 한글 공부로 모인 어르신들은 황인정 선생님의 권유로 대본을 손에 쥐고 연극에 도전했다. 처음엔 낯설고 어렵기만 한 무대였지만, 어느새 연극은 물론 긴 랩도 거침없이 소화하는 ‘무대 체질’로 거듭났다. 보람할매연극단의 활동은 어르신들의 일상에서 가장 신나는 일이 되었고, 마을엔 새로운 활기가 깃들었다. 그렇게 12년간 보람할매연극단은 멈추지 않고 여전히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고 있다. 연극단 막내로 시작하여 이제는 든든한 중심 역할을 하는 최순자·정송자 어르신과 한글 강사로 시작해 연극강사로 거듭난 황인정 강사 그리고 인문학마을을 운영하면서 어르신들과 연을 맺었던 이창원 인디053 대표와 함께 서툴렀지만 용감했고, 고단했지만 즐거웠던 보람할매연극단의 지난 시간을 들어본다.
대담개요
일 시 : 2025.6.23. 오후 1시 30분
장 소 : 어로1리 마을회관
참석자 : 최순자 어르신, 정송자 어르신, 황인정 보람할매연극단 강사, 이창원 인디053 대표
  • (앞) 정송자, 최순자, (뒤) 황인정
이창원 인디053 대표  보람할매연극단을 2013년부터 시작했으니 벌써 10년 넘는 시간이 흘렀네요. 어떻게 연극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황인정 보람할매연극단 강사  칠곡군에서 성인문해교육을 7~8년 하면서 매년 학예발표회를 했는데, 늘 트로트에 맞춰 춤을 췄어요.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어서 고민하다가 수업시간에 어머님들께 읽어드리던 동화책을 각색해서 연극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동화 구연도 배우고 인형극 대본도 써본 경험이 있어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대학 시절에 연극 동아리 활동을 했었는데, 그 꿈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다른 수업은 다 정리하고 연극에 매진했죠.
최순자 어르신  칠곡이 인문학마을로 선정되고 마을에서 한글 수업이 생겼다고 하데요. 당시에 내가 부녀회장이어서 할매들 뒷바라지하러 갔거든. 차도 한 잔씩 주고 하다 보니 거기 앉아서 같이 수업에도 참여하고 연극에도 참여하게 된기라. 내가 재능이 좀 있었던 모양이야. 바로 주연 배우로 발탁됐어요. 재능을 숨기고 촌에서 농사지으면서 살라카다가 이래 연극을 하게 되었으니, 모든 게 재미났지.
정송자 어르신  안면신경마비 때문에 부끄러워서 안 나오려고 했거든. 그런데 다른 할머니가 “가보자. 괜찮다. 마스크 써도 된다”라면서 몇 번씩 데리러 오는 바람에 오게 됐죠. 여기 와서 한글이랑 영어도 배우고 시도 쓰고 하다가 연극을 시작하게 된기라.
이창원  이전에 연극을 본 적 있으신가요?
최순자  없지. 어렸을 때, 동네에 악극단이 오면 어쩌다 한번 봤어요.
정송자  나는 시골에 살았으니까 그런 건 일절 못 봤지. 골짜기 살았거든.
이창원  그런데 선생님이 한글 공부하다가 갑자기 연극을 하자고 했을 때 어떠셨어요?
정송자  아이고. 그걸 우리가 우예 하노. 대사는 누가 외우노? 우린 몬 한다 했지.
최순자  그래도 누가 삐져서 안 하려 하면 붙들어 오고, 집으로 찾아가서 데려오고 한 적도 있어요.
황인정  제가 뭘 준비해 가든 처음에는 “아이, 못한다” 하시죠. 근데 새로운 걸 접하고 하나하나 해보면서 ‘이게 되네, 할 수 있네?’ 느끼면 다들 너무 좋아하세요. 그동안의 지도 경험으로 처음에는 못 한다고 하시지만 결국은 해낸다는 걸 믿으니까 여러 시도를 할 수 있었죠. 우스운 동작도 연습해 보고 공연 의상도 입으면 옆 사람 보고 웃다가 연극에 재미를 붙이신 거죠. 그렇게 4~5개월 연습했어요. 인문학마을축제 때 처음으로 <훨훨 간다>를 각색한 5분짜리 공연을 했어요. 관객들이 손뼉 치고 잘한다고 하니, 어머님들이 그때 무대의 맛을 본 것 같아요. 그 이후부터는 어머님들이 더 적극적으로 이거 해보자, 다음엔 뭐 할까 하면서 발 벗고 나서셨어요.
  • 정송자, 최순자, 황인정
이창원  첫 무대는 어땠는지 기억나세요?
정송자  첫 무대 기억나지. 나는 각설이 역할이라 각설이 분장하고 깡통 두드리면서 다녔어요. 무대에서 관객한테 돈도 받고 그랬지. (웃음) 하기 전에는 긴장이 막 되는 기라. ‘여러 사람 앞에서 내가 저걸 하겠나’ ‘대사가 안 나오면 우야지’ 생각하다가도 무대에 올라가면 연습했던 게 딱 나오는 기라.
최순자  나는 다른 형님들 분장해 주고 소품 챙겨주느라고 첫 무대는 못 올라갔어.
황인정  무대에서 대사를 까먹는 어머님들이 많았어요. 그럼 저는 음향을 틀다가 대사를 외쳐주기도 하고, 등퇴장 하는 사람들이 엉망진창으로 꼬여서 나와라, 들어가라 소리치는 모습을 관객들이 재밌어했어요.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이 더 호응을 이끌었던 것 같아요.
이창원  <훨훨 간다> <흥부네 박 터졌네> 하면서 대박이 났잖아요. 전국을 다니면서 공연하셨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공연도 있으시겠어요.
정송자  강원도 양양에 초청을 받아 간 적이 있었는데, 소형 버스를 타고 갔어요. 그때 눈이 엄청 많이 왔는데, 주먹덩이 같은 눈이 빵빵빵 쏟아져서 살살 가는데도 겁나더라고. 그렇게 공연하고 돌아오니 밤 열두 시도 넘었어요. 나는 그게 기억에 제일 많이 남아요.
황인정  그때가 성인문해교육 우수사례 발표였어요. 강사들이 관객이었죠.
최순자  전부 젊은 사람들이었어요. 감명 깊게 봐줬던 것 같아.
황인정  맞아요. 그때 눈이 많이 와서 고생도 했지만, 공연 마치고 시장에 들렀을 때는 신나게 오징어도 사고 즐거워하셨었잖아요.
정송자, 최순자  그건 맞아. 재밌었어.
이창원  공연에서 잘한 것도 기억에 남지만, 실수가 더 기억이 많이 나잖아요. 어떠세요?
황인정  칠곡 공설운동장에서 한 <흥부네 박 터졌네> 공연이 기억나요. 어머님들이랑 같이 소품이랑 짐을 챙겨서 다녔었는데, 가장 중요한 소품인 톱이 없는 거예요. 이미 그 사실을 알았을 때는 공연을 시작한 후라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주변에 있던 사과 상자를 잘라서 ‘톱’이라고 쓰고 공연했던 기억이 있어요. 지금 생각해도 식은땀이 나요. 이렇게 소품이 없는 경우도 많았죠.
정송자  내가 실수하고 내려오면 선생님께 핀잔을 많이 들었어. 내가 일부러 나한테 많이 뭐라 하라 했지. 그래야 더 신경 쓰고 안 잊어버리거든.
황인정  무대에서 무선 마이크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생긴 실수도 있어요. 무선 마이크를 사용하면 백스테이지에 들어가서도 조용히 계셔야 하는데, 서로 틀린 부분 이야기하다가 싸워서 그게 객석으로 다 송출되기도 했어요. 그래서 공연에 무선 마이크를 안 쓴다고 하면 아쉬워하는 관객들도 있어요. 어머님들도 우스갯소리로 무선 마이크 안 채워주면 공연 안 한다고 하시기도 하고. 근데 희한하게 마이크 쓰면 공연의 질이 굉장히 높아져요. 연습 때보다 훨씬 더 잘 하세요.
이창원  보람할매연극단이 유명해지면서 동네에서 어머님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많이 바뀌었을 것 같아요.
최순자  바뀌죠. “어떻게 그걸 해 내노. 대단하다. 재능있다” 이래 말하면서 자기들도 부러워해요. 실제로 같이하고 싶어서 참여한 사람도 있었지. 근데 대사를 하려 하면 연기가 안 되고, 연기를 하려 하면 대사가 안 되는 기라. 몇 번 나오다가 안 오더라고. 몇 사람 그랬어. 우리도 연습할 때는 대사도 잊어버리고 그러는데, 무대 체질이라 무대 올라가면 신명 나게 잘해. 관객들이 손뼉 치고 환영해주면, 신이 나서 애드리브도 하고 그래.
이창원  가족들은 연극단 활동하는 걸 좋아하셨어요?
정송자  아들딸이 건강에 좋다고 자꾸 가라 해. 연극도 하고, 랩도 하고 TV 나오는 걸 보면 자랑스럽대. 그러면 우리도 기운이 나지. 가족들이 힘을 줘요. 중국에 있는 아들도, 마산에 있는 언니도 연극 보러 와줘요. 전문가에 비하면 우리가 새 발의 피겠지만, 그래도 ‘우리 좀 잘나가지 않나?’ 싶지.
우리 집은 조그마한 슈퍼를 하거든. 막걸리랑 안주도 팔아요. 연습 갈 시간인데 사람들이 막걸리 먹느라 집에 안 가는 거야. 그럼 내가 연극 연습하러 간다고 내쫓지. 그럼 “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 그거 뭐 하러 하냐고 물건 하나 더 팔아야 돈이 들어오지.” 이런 소리도 많이 들었거든. 그래서 선생님이 나 데리러 자주 왔어. 그게 자꾸 싸움이 되니까 안갈까 싶다가도 연습 시간이 되면 빨리 가고 싶고 그래서 안 되겠더라고. 그래서 손님들 다 내쫓았지, 뭐.
이창원  연습하다 보면 힘들고, 하기 싫을 때도 있잖아요.
최순자  오늘은 연습 안 했으면 좋겠다 싶은 날도 있지. 안 가고 싶다가도 이건 혼자 하는 게 아니잖아요. 같이 만드는 거니까 빠지면 안 되니 열 일 제쳐놓고 나가지. 농사고 뭐고 다 적기가 있잖아. 모 심으려고 물 받아놓고, 빨리 모를 심어야 하는데 연습하러 안 올 수도 없고. 교통사고가 나서 다치는 바람에 아파 죽을 판에 ‘내가 이거 해서 뭐 하나’ 싶을 때가 있지. 그래도 내가 그 몸을 이끌고 연극을 하러 왔어요. 전부 자기 배역이 있으니, 한 명이라도 빠지면 안 되잖아. 리허설이면 누가 대타로 해준다지만, 무대에서는 사람 한 명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되니까. 그래서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선생님이 대타로 배역마다 한 번씩은 다 들어왔었지.
이창원  연극단 구성원들 간에 갈등도 있었을 것 같아요. 어떻게 극복하셨어요?
정송자  누구라고 말은 안 하겠다마는…. 방송에서 찍어갔는데 누구만 많이 나온다고 질투하는 사람도 있었어. 짜증 내고 울기도 하고 난리야 난리. 그래도 이게 우리한테는 행복인기라. 여기 오면 다양한 사람들도 만나고, 새로운 것도 할 수 있잖아.
황인정  당시에는 갈등이 심한 것 같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소소한 것이었어요. 어머님들이 다 욕심이 있어서 작은 배역에 대한 불만이나, 대사가 적다고 하시는 분, 방송 촬영은 똑같이 했는데 다 편집되고 몇몇 분들만 나오니까 화가 나셔서 연극 안 한다고 하신 분도 계셨어요. 그럴 때 저는 가정방문을 해서 설득하고 다시 모셔 오고 했어요. 그런 것들이 힘들었다면 힘든 점이었죠.
최순자  친구가 설득하러 오는 것보다 선생님이 와주면 으쓱하면서 기분이 좋아져. 선생님이 왔더라 하면서 못 이기는 척 오지.
이창원  황인정 선생님은 예술경영 전공으로 학업을 이어가고 있다고 들었어요. 보람할매연극단을 처음부터 같이 이끌어오셨는데 연극단이 선생님에게 어떤 의미일지 궁금해요.
황인정  보람할매연극단을 지도하면서 제 삶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국문과를 졸업하고 한글 교육을 했지만, 저의 발전에는 한계가 있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연극은 달랐어요. 어머니들과 같이 작품을 만들고 공연하는 것도 즐거웠지만, 기획, 홍보, 연출 등 다양한 역할을 맡으면서 좀 더 창조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머님들이 기본적인 예술 활동조차 처음 경험하실 정도로 예술적 경험이 적다 보니, 전문 예술가가 아니어도 어머니들과 눈높이를 맞추며 보람차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저도 잘 지도하기 위해서 다양한 것들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결정적으로는 제가 지역의 극단에 들어가서 연극을 배우게 되었고, 시민 극단을 만들어서 10년째 활동 중입니다. 이제는 보람할매연극단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어르신들의 이야기로 연극을 만드는 활동을 하고 있어요. 이 모든 변화의 바탕에는 보람할매연극단이 있었고, 어머님들이 그만하겠다고 하지 않는 이상 계속해서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이창원  랩을 하겠다고 하셨을 때, 오히려 주변에서 놀라워했었는데요. 랩은 어떻게 하게 된 건가요?
황인정  칠곡군이 문화도시를 준비하면서 다양한 실험들을 하게 되었어요. 평소 하고 싶었던 걸 어머님들과 의논해서 다양하게 시도해보았죠. 그중 하나가 랩이었어요. 어머니들과 연극을 하면서 젊은 관객과 소통하기에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어머님들의 이야기로 랩을 하기 시작했던 거고, 그러면서 젊은 친구들과도 이야기가 통하게 된 거죠. 어머님들도 젊은 친구들한테 피드백을 받으니 굉장히 즐거워하시고 같이 “어로리♬ 어로리♬”(칠곡군 북삼읍 보람할매연극단 마을명) 하면서 모두 하나 되는 순간을 느끼셨던 것 같아요. 어머님들의 삶도 풍요롭고 자존감이 높아졌겠지만, 그걸 보는 관객 또한 힘을 얻고 삶이 변화하는 걸 옆에서 바라볼 때 보람차고 기뻤죠.
최순자  랩은 좀 힘들었어. 긴 가사를 다 외워야 하는데, 너무 힘들더라고. 그래도 젊은 사람들이 같이 호응해 주고 좋아하니까 으쌰으쌰 하는 기라.
정송자  처음에 랩 하자 했을 때는 입도 빨리 못 움직이겠고, 따라 하질 못하겠더라고. 다른 사람들은 다 외우는데 나만 못 외울 수 없으니까 더 열심히 하고, 내 차례가 되면 잘하고 싶은 욕심도 생기더라고요. 못 하겠다 했는데 참고 해보니까 또 그것도 재미있데.
황인정  랩의 대부분이 나의 이야기, 우리 마을 이야기라 암기도 더 빨리 되는 것 같아요. 젊은 사람들도 랩은 어렵잖아요. 근데 어머니들이 그걸 외우고 연습해서 비트에 맞게 해내는 걸 보면 정말 감동적이랍니다.
이창원  보람할매연극단과 앞으로 해보고 싶은 게 있나요?
황인정  연극은 종합 예술이라고 하잖아요. 극 안에 판소리, 힙합, 풍물, 트로트 뭐든 넣을 수 있어요. 그러다 보니 저도 지도하려면 배울 것들이 생기고, 어머니들도 새로운 예술 장르를 접하면서 예술적으로 같이 성장하는 거예요. 한글도 모르셨던 분들의 도전에 예술이 함께 한 거죠.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것에 도전해야죠. 또 다른 꿈이 있다면, 어르신들의 문화센터를 만들고 싶어요. 다른 마을 연극팀과도 교류할 수 있는 공간, 예술 활동도 하고 교육 활동도 하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어르신들이 노후를 활력 있게 보내는데 자양분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이창원  예술교육을 위해 지역이나 기관에서 정책적으로 갖춰졌으면 하는 것들이 있나요?
황인정  지원사업의 경우, 정량적인 성과로 증명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그것보다는 어머니들의 서사를 봐주었으면 좋겠어요. 삶의 이야기가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 기다려주고 봐주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지원사업에서 어머니들이 주체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원하지만, 정산과 같은 행정 처리를 할 수 있고, 예술적으로 이끌어줄 수 있는 매개자가 필요해요. 매개자가 단발성으로 관계를 맺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여건도 만들어 줘야 하죠. 보람할매연극단을 오랫동안 해오면서, 침체된 시기에 새로운 선생님이 오면 활력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저를 대신할 분을 찾아보기도 했어요. 그런데 지원이 없으니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정송자  우리는 선생님 바뀌면 안 온다. 선생님이 잘 이끌어주니까 해온 거지. 우리 아들딸도 선생님 대단한 분이라고 하는데, 이만한 사람 찾기가 어디 쉽나.
최순자  선생님 바뀐다고 생각하면 힘이 빠져요.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 만큼 서로 가정사도 알고 모든 걸 다 아는데, 새로운 선생님이랑 다시 적응하고 배운다는 생각만 해도 힘들어요. 새로운 걸 하면 좋긴 하지만, 우린 이제 나이가 있잖아. 우리는 잘 가르치는 사람보다 우리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요.
이창원  연극에서 꼭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을까요?
최순자  멜로. 멜로하자. 역사 이야기 말고.
정송자  뭘 하든지 주인공을 하고 싶어. 나이가 많아도 뭐든지 더 많이 하고 싶고, 더 배우고 싶고 그래요.
최순자  선생님이 맡겨주는 건 다 잘하고 싶어요. 또 어디서 좋은 거 가져오면 우리가 열심히 해서 잘 해내고 싶어요.
정송자
정송자

마을 입구에서 슈퍼를 운영하는 보람할매연극단 맏언니. 막걸리 팔다 말고 도망간다고 손님들의 원성이 자자하지만 연극이 좋아 가게 문을 수시로 닫는다. <훨훨간다-각설이><흥부네 박터졌네-놀부처> <거울 속에 누고-남편> 등 남녀를 불문하고 주인공 역할을 맡아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돼지껍데기> 랩으로 인기몰이 중이다.
최순자
최순자

보람할매연극단 단장. 2013년 부녀회장으로 한글 공부하는 어르신들 간식을 챙겨주다가 연극단에 합류했다. <흥부네 박터졌네-흥부> <도깨비 사람 잡네-돌쇠> <거울 속에 누고-아내> 등 주인공을 도맡을 만큼 연기파 배우. 노래 실력이 좋아 랩도 수준급이다. 고추 농사 콩 농사도 중요하지만 내가 빠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농사는 뒷전이고 연극에 매진하고 있다.
황인정
황인정

극단 늘봄 대표. 보람할매연극단을 10년 넘게 지도하면서 전문 예술인으로 성장했다. 행복북구문화재단 행복연극교실 예술강사로 활동하며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중장년층과 삶의 이야기로 대본을 만들어 공연하는 일을 즐겁게 하고 있다. 구석구석 찾아가는 공연 및 연극 예술교육의 씨앗을 뿌리며 예술이 꽃피는 지역사회를 꿈꾸고 있다. 연출, 극작을 한 작품으로 <청.바.지> <미스코리아> <마지막 소원> <대화가 필요해> 등이 있다.
이창원
이창원

(사)인디053 대표. 10여 년 전, 우연찮게 칠곡군의 한 마을 이장에게 걸려 온 전화 한 통으로 칠곡군과 인연이 됐고, 이후 코가 꿰어 계속 일하게 됐다. 2016년부터 2022년까지 ‘칠곡인문학마을만들기’ 사업을 기획·운영했다. 현재는 ‘칠곡미래교육지원센터장’으로 칠곡군의 미래세대와 즐겁게 놀고 있다.
프로젝트 궁리
정리_프로젝터 궁리 강지영 선임에디터
인터뷰 사진_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사진제공_보람할매연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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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정미 2025년 07월 15일 at 2:31 PM

    “그래도 이게 우리한테는 행복인기라”라는 제목이 주는 친근함처럼, 보람할매연극단이 12년 동안 꾸준히 함께 만들어 온 이야기들은 ‘삶의 행복이 꼭 거창한 것이 아니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첫째, 이 기사에서는 할머니 배우들이 연극을 통해 스스로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동료와 관객에게 웃음을 전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무대 위에서 자신만의 속도로 빛나는 모습에서, ‘행복’이란 결국 ‘지금 이 순간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에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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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5년 07월 17일 at 12:00 PM

    “그래도 이게 우리한테는 행복인기라”
    [대담] 용감하고 즐거운 보람할매연극단의 12년
    공감이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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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5년 07월 17일 at 1:26 PM

    “그래도 이게 우리한테는 행복인기라”
    [대담] 용감하고 즐거운 보람할매연극단의 12년
    기대만점으로 다가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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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윤성 2025년 07월 20일 at 10:34 PM

    뮌가 공감이 드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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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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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정미 2025년 07월 15일 at 2:31 PM

    “그래도 이게 우리한테는 행복인기라”라는 제목이 주는 친근함처럼, 보람할매연극단이 12년 동안 꾸준히 함께 만들어 온 이야기들은 ‘삶의 행복이 꼭 거창한 것이 아니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첫째, 이 기사에서는 할머니 배우들이 연극을 통해 스스로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동료와 관객에게 웃음을 전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무대 위에서 자신만의 속도로 빛나는 모습에서, ‘행복’이란 결국 ‘지금 이 순간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에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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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5년 07월 17일 at 12:00 PM

    “그래도 이게 우리한테는 행복인기라”
    [대담] 용감하고 즐거운 보람할매연극단의 12년
    공감이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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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5년 07월 17일 at 1:26 PM

    “그래도 이게 우리한테는 행복인기라”
    [대담] 용감하고 즐거운 보람할매연극단의 12년
    기대만점으로 다가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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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윤성 2025년 07월 20일 at 10:34 PM

    뮌가 공감이 드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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