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와 경험의 장이자 동네의 기억으로

[대담] 꾸물꾸물문화학교와 함께한 15년 돌아보기

‘어떻게 하면 동네에서 더 재미있게 놀 수 있을까’ 고민하던 강덕원 어린이와 아이들에게 동네의 기억과 경험을 만들어 주고 싶었던 윤종필 꾸물꾸물문화학교 교장이 처음 만난 건 2010년이었다. 아이들이 자신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스태프로 활동한 시간은 20대 청년이 된 강덕원 씨에게 동네에서의 추억으로 수많은 경험으로 쌓였다. 두 사람이 만나 문화예술교육으로 켜켜이 쌓인 지난 시간을 돌아보았다. 이제는 삶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대담개요
일 시 : 2025.6.9.(월) 오후 3시
장 소 : 꾸물꾸물문화학교 (인천)
참석자 : 윤종필 꾸물꾸물문화학교 교장, 강덕원 꾸물꾸물문화학교 참가자
윤종필  우리가 처음 만났던 때가 2010년 ‘홍예문 프로젝트’였어요. 첫 기억은 어땠나요?
강덕원  초등학교 6학년 때 지역아동센터에서였죠. 그때는 사실 제가 원해서 한 건 아니었어요. 센터에서 하니까 참여하게 되었는데 처음에 선생님들이 막 카메라 들고 오고 해서 ‘이건 뭐지’ 싶었어요. 당시 저에게 지역아동센터는 공부방이었는데, 학교 교육 외에 다른 활동적인 프로그램이 생겨서 개인적으로 좋았어요. 워낙 공부를 싫어하기도 했고요. (웃음)
윤종필  홍예문 프로젝트는 매년 주강사가 바뀌었는데, 연극, 사진, 디자인 등 선생님에 따라 동네를 바라보는 방식이 달랐어요. 덕원이가 참여한 첫해는 미술 프로그램을 했죠. 예술을 잘하는 것보다는 아이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자는 데 주안점을 두었어요. 8년 만에 유학에서 돌아와 보니 아이들이 나가서 노는 게 아니라 PC방에서 온라인 게임을 하고 있었죠. 또래끼리 동네에 나가서 상황(context)을 만들면서 놀아야 나중에 동네에 대한 여러 생각이나 경험이 생길 텐데, 그런 기회가 없겠다 싶었죠. 그래서 동네에 대한 기억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다 홍예문 프로젝트가 탄생한 거예요. 콘셉트는 ‘산보’였어요. 그때 매주 나가서 익숙한 동네지만 관찰의 방식으로 계속 동네를 보면서 다양한 경험을 했죠.
강덕원  키워드가 ‘동네를 알아가자’였던 걸로 기억해요. 동네를 돌아다니고 지도를 그리는 중장기 프로그램이었어요. 본격적인 활동 이전에 아이스 브레이킹처럼 감각을 살리는 프로그램에서 친구들 얼굴을 관찰해서 묘사도 하고 재밌었어요. 조금 진부한 표현일 수 있는데, 그냥 좀 다른 놀이였던 것 같아요. 놀이지만 내가 해보지 못한, 다른 친구들이 하지 않았던 경험을 초등학교 때 했던 것 같아요. 사실 그 전엔 공부방에 많이 안 갔는데 홍예문 프로젝트 할 때는 참석률이 높았어요. 그리고 중학생 돼서 참여한 <우리동네고고싱RPG>도 진짜 재밌었어요.
윤종필  꾸물꾸물문화학교(이하 꾸물꾸물)에 청소년 프로젝트가 만들어지면서 덕원이가 들어왔죠. 대부분 송도중학교, 인성여고 학생들이었는데, 그때 함께 정말 많은 걸 했었죠. <우리동네고고싱RPG>가 중고등학생 때라 조금 더 선명할 것 같아요.
강덕원  제 학창 시절 기억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매년 1박 2일로 무의도에 가서 미션 수행한 거랑 프로그램 기획한 게 기억에 많이 남아요. 아무래도 캠프가 꽃이었죠.
윤종필  그때도 역시 가장 중요한 건 ‘동네’였고 지역 기반의 문화예술교육을 표방했었죠. 청소년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인 <우리동네고고싱RPG>은 섬에 가서 하는 <1박 2일>이나 <무한도전> <런닝맨>처럼 쇼 버라이어티 방식으로 진행했는데, 그때 가장 큰 역할을 한 건 ‘학생스태프’였죠. 기획자가 학생들에게 일방적이지 않은 경험의 방식을 택하려니 아이들의 의향이 중요했어요. 그리고 나이 차이, 세대 차이가 나다 보니 요즘 학생들의 감성을 따라가기가 어려웠고요. 방법은 직접 묻는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25명 중 5~6명의 학생스태프를 뽑았는데, 어느덧 프로그램을 나 혼자 준비하는 게 아니라 학생스태프들과 회의하면서 준비하게 되었죠. 학생스태프에게 꽤 많은 결정 권한을 줬던 것 같은데.
강덕원  학생스태프가 꽃이었죠. 참여자를 뽑는 오디션에 저희가 심사위원도 했고요. 중1 때는 참여만 했는데, 2학년부터 학생스태프를 했어요. 제 친구들은 다 일반 참여자였는데.
윤종필  그때 활동을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청소년 프로그램이 일요일 아침 9시부터 12시까지여서 집 밖으로 나오기 쉽지 않았을 텐데. 학생들의 부모님과도 서로 돕는 관계가 되게 좋았던 것 같아요. 깨워서 꾸물꾸물에 가라고 보내주셨거든요. 학생스태프는 친구들을 이끌어갈 수 있는 리더십 교육으로 방향을 잡았었죠. 그래서 선생님보다 학생스태프가 진행하는 수업이 많아지기도 했어요. 직접 기획 회의도 하고 회의록도 쓰고 했는데, 어땠어요?
강덕원  회의도 그냥 놀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아요. 그것 또한 미션 수행이었던 거죠. 사실 그 나이 때 노트북으로 회의록을 작성하고 선생님이랑 같이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게 흔치 않은 경험이잖아요. 권한도 있었지만, 새로운 것을 경험한다는 설렘이 너무 좋아서 계속했던 것 같아요. 당시에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을 못했는데, 그때 정말 많은 경험을 했구나! 커서 알게 됐죠. 사실 저희 부모님은 공부보다는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하고 싶다고 하면 반대하신 적이 많지 않았어요. 집에서 게임을 하는 것 보다 나가서 친구들과 노는 걸 더 좋아하셨죠.
윤종필  학생스태프로서 기획한 것 중에 가장 기억 남는 프로그램은 뭔가요?
강덕원  중학교 1학년 때 연안부두에서 해물라면 만들었던 거요. 왠지 모르겠는데 꾸물꾸물을 생각하면 그게 생각나더라고요.
윤종필  그땐 덕원이가 학생스태프도 아니었고 순수한 중학교 1학년 참여 학생이었는데, 그때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땐 모든 수업을 영상 촬영했었는데, 카메라가 자기를 비추면 갑자기 뭔가를 막 설명하고 그러길래 중학생이 되고 이제 좀 <우리동네고고싱RPG>에 적응하나 보다 싶었죠.
강덕원  그때 친구들이 진행병 걸렸다고 했어요. (웃음)
윤종필  지역의 특징적인 장소에 가는 프로그램이어서 학생스태프들이 어시장으로 유명한 연안부두를 탐방도 하고 요리도 하는 기획을 했죠. 사실 큰 프로젝트였어요. 여러 회차 중 하나였던 <연안부두 어시장>편 수업 하나를 계획하고 실현하기 위해 구의원, 동장, 어시장 조합장 등 여러 어른의 도움과 조언, 가게 주인들의 협조가 있었어요. 지역 청소년들의 문화예술교육을 위해 모두가 한마음으로 도움을 주셨던 거죠. 팀마다 카메라가 한 대씩 붙어서 촬영했더니 아이들이 사회를 보고 진행을 하기도 했지. 해산물을 얻으러 가게에 갔는데 어른들이 즉흥적으로 노래를 시키기도 하고, 그래서 노랫값으로 라면에 넣을 해물을 주시기도 하고, 어시장 조합에서는 우리가 요리할 장소에 텐트도 쳐주시고. 실제 지역사회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강덕원  해보니까 기획한 대부분이 그대로 진행되지 않더라고요. 제재도 많고. 그런데 그때는 지역에 있는 모든 분이 도와주신 거였네요.
윤종필  특히 청소년 프로그램인 <우리동네고고싱RPG>를 하면서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서 진짜 한 마을이 돕는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월미도를 간다> 편에서 했던 미션 기억나나요?
강덕원  바이킹 놀이기구를 타고 암호판 들고 있으면 암호 해독하고, 사진 찍어 오기도 했죠. 그 프로그램도 재밌었어요.
윤종필  그때 탔던 월미도 놀이기구 단체 탑승도 다 협찬받았었죠. 놀이기구 타는 비용은 지원사업 예산을 쓸 수 없기도 했고, 일요일 아침에 누가 단체로 그걸 태워주겠어. 그런 방식으로도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당시 우리가 청소년 활동으로 되게 유명했지. 워낙에 학생들이 활동을 열심히 해서. 학생스태프 회의에서 어느 정도 프로그램에 관한 내용이 결정되면 나는 그걸 실현하기 위해 지역 어른들을 만나 외부에서 해결해야 하는 일을 하면서 함께 만들었기 때문에 기획자인 나도 프로그램에 애착이 컸어요.
강덕원  학생스태프 회의에서 아이디어를 내면 안 되는 게 없었어요. 그땐 우리가 기획했으니 당연히 되는 거로 생각했는데, 돌이켜 보니 회의하면서 선생님이 저희에게 ‘안돼’라는 말씀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윤종필  자꾸 안 된다고 하면 회의를 하는 의미가 없죠. 그렇게 판을 펼치는 이유 중 하나는 어쨌든 그것이 실제로 가능할 수 있음을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거든요. 물론 아이디어를 모을 때 좀 더 실행 가능한 방향으로 이끈 것도 있고 나름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도 고민했죠. 학생스태프끼리 돈독했고 케미가 좋았던 것 같아요. 특히 덕원이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전성기였고. 고등학생 때 어느 날 난데없이 전화해서 사무실을 써도 되냐고 물었던 거 기억나요? 학교 회장 선거 피켓 만든다고.
강덕원  10년 전이네요. 그때 꾸물꾸물에 근무하셨던 차지원 선생님이 미술 전공이셔서 밤 10시까지 도와주시고 저희랑 함께 나갔던 기억이 있어요. 저희 피켓이 제일 멋있었고, 결과적으로 제가 학생회장에 뽑혔어요. 그때 꾸물꾸물은 보물창고 같은 느낌이었어요. 익숙하기도 했고.
윤종필  거의 모든 재료가 다 있었죠. 그렇게 아이들이 꾸물꾸물을 동네 동아리방이나 아지트처럼 편하게 생각하고 쓰기를 바랐어요.
강덕원  사절지 종이는 사 갔죠. 저도 양심이 있으니까. (웃음) 그때 아크릴 물감으로 그렸는데, 비 오는 날에도 우리 피켓만 말짱했어요. 피켓 제작비가 비싸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친구들은 어머니들이 큰 거 몇 개만 만들어 주셨는데, 저희는 18명 모두 다 피켓을 하나씩 들고 선거운동을 했어요.
윤종필  학생스태프 중에서 정우에 이어서 회장 됐다고 해서 기뻤어요. 정우도 그렇고 성지도, 덕원이도 학생스태프 하면서 부쩍 리더십이 많이 생긴 것을 목격했죠. 잘 크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강덕원  형, 누나들이 이끌어가는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특히, 정우 형한테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형이 빠른 연생이라 나이는 같은데, 진짜 형 같았어요.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렇고요.
  • 홍예문 프로젝트
  • 2013년 소소한 운동회 (왼쪽)학생스태프 기획회의, (오른쪽)운동회에서 학생스태프 활동을 하는 강덕원 학생
윤종필  정우가 덕원이를 진짜 동생처럼 챙기고 가장 가까웠지. 우리가 지역 탐방하면서 캠프 형식으로 매년 무의도에 가기도 했지만, 2014년엔 내가 ‘창의예술캠프 우락부락’에 예술가로 참여하면서 덕원이도 ‘돕는이’로 참여할 기회가 생겼죠. 횡성 숲체원에서 열린 시즌8에는 드물게 중학생 돕는이로 참여했고, 인천에서 진행된 우락부락 시즌9와 시즌10을 제가 기획을 할 때는 아예 꾸물꾸물 학생스태프 등 청소년으로 돕는이를 구성했어요. 시즌마다 돕는이로서 맡았던 임무가 있었는데 힘들지는 않았나요?
강덕원  처음 참여한 때가 중3이었어요. 횡성에서 고기 들고 사진 찍었던 거 기억나요. 당시에 선생님이랑 어딘가 가는 것 자체에 다들 흥미가 있었거든요. 부모님이 아닌 다른 어른, 친구들과 놀러 가는 거잖아요. 고기도 사주신다고 하고. (웃음) 그때 힘들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었던 것 같아요.
윤종필  덕원이는 운영본부 소속이어서 이곳저곳 문제 해결해 주고 아티스트 워크숍 팀에 물건 가져다주느라 뙤약볕에 땀을 흘리느라 힘들 텐데도 즐기는 게 보였어요. 장난치고 노는 거 좋아했는데 무언가 열심히 하는 걸 그때 처음 본 것 같아요.
강덕원  적성에 맞았던 것 같아요. 운영본부가 특수성이 있다고 생각했죠. 가자마자 무전기를 주셨는데, 있어 보이잖아요. 대학생 형, 누나들이 인이어 끼고 무전기 쓰는 게 너무 멋있었어요. 무전기에서 오는 뭔가가 있었던 것 같아요. 캠프에 참여한 아이들과 나이 차이도 크지 않아서 노는 것도 재밌었어요.
윤종필  한참 폼 잡을 때니까. (웃음) 별것 아닌 것 같은데 아이들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인 거죠.
강덕원  인천에서 우락부락할 때 다른 친구들은 아티스트 선생님과의 유대 관계가 생겼는데, 전 계속 운영본부 돕는이를 해서 그런 게 없었어요. 돌이켜보니 그때 친구들과 예술가와의 관계가 부럽더라고요. 당시에는 잘 몰랐던 것 같아요.
윤종필  그럴 수 있죠. 욕심이 많아서 그래. 재미있는 것도 하고 싶고 소속감도 느끼고 싶고. 우락부락 캠프한 지 오래되었는데, 지나고 나니 어떤 것 같아요?
강덕원  사실 우락부락 캠프를 꾸물꾸물 프로그램 중 하나라고 생각했어요. 꾸물꾸물에서는 학생스태프들이 친구들에게 미션을 줬는데, 우락부락은 선생님이 저희에게 미션을 주고 2박 3일 동안 해결하는 거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규모만 커진 거죠. 지역 예술가가 많이 오고 아이들도 200명 정도 오니까. 지원 나가고 허드렛일도 당연히 하는 거라 일이라기보다 또 다른 형태의 놀이였어요. 그래서 더 열광했던 것 같아요. 캠프 끝나고 다시 일요일에는 <우리동네고고싱RPG> 프로그램으로 연수구에 가서 목공 수업으로 아지트 만드는 걸 했었죠. 주말 아침에 가서 아지트를 만들 목재를 확보하기 위해 빠루랑 망치 들고 폐나무 팔레트를 분해했었죠.
윤종필  목공 수업 3년 차 때 집처럼 빈 땅에 아지트를 만들었죠. 그때도 적합한 장소를 찾느라 힘들었어요. 연수구의 협조를 얻어 ‘아트플러그’에서 했는데, 아이들이 나무 팔레트 모으고 다 분해해서 아지트를 만들었지.
강덕원  놀이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매해 여름이 그랬지만 특히 중3부터 고2까지 3년 동안 꾸물꾸물이 방학 생활의 전부였어요. 저희가 당시에 했던 게 비현실적이긴 했어요. 선생님은 저희를 지켜주는 아빠와 형 그 사이, 삼촌 같은 역할이었죠. 울타리는 쳐주시는데 과정 안에 들어가면 안 되는 게 없으니까. 아빠 같이 보호해 주시면서도 저희가 고민이 있을 때 조언도 해 주시고, 그러면서 놀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신 분이잖아요. 생각해 보면 웃음 코드도 비슷했어요. 저희가 좋아하는 걸 선생님도 좋아하셨고 선생님이 좋아하시는 걸 저희가 좋아하기도 했고요. 그럴 때는 형 같았어요. 그렇게 지냈는데 대학교에 가고 사회에 내던져지니까 모든 게 너무 새로운 미션이고 어떻게 헤쳐가야 할지도 모르겠고 선생님처럼 울타리를 쳐줄 사람도 없으니 혼란스러웠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선생님을 많이 찾아가서 상담도 받고 캠프 또 하자고 했던 것 같아요.
  • 2015년 목공건축 아지트만들기
윤종필  다른 아이들도 다 캠프 얘기를 하는데, 뭐가 그렇게 매력적이었나요?
강덕원  일종의 보람이 있었던 것 같았어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큰 프로젝트에 스태프로 참여해서 성공적으로 끝냈다는 보람이요. 그때 감정이 너무 좋았었으니까 한 번쯤 다시 하면 좋겠다고 생각도 해요. 대학에서 아동청소년복지를 전공하면서 꾸물꾸물 프로그램 같은 기획을 해서 대학생, 초등학생 대상으로 했었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그때 경험을 토대로 지금 새로운 경험을 하면 또 다른 배움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사실 그런 경험의 기회가 흔치는 않잖아요. 지역의 예술가들과 2박 3일 동안 그 많은 청소년을 보호하고 끌어가는 거요. 그래서 우락부락 캠프가 없어진 게 굉장히 아깝고 아쉬웠어요.
윤종필  청소년들이 실제로 팀을 짜서 어떤 미션을 하고 그 안에서 자기 역할을 성공적으로 하기가 쉽지 않죠. 그런데 꾸물꾸물 친구들은 평소에 지역 작가도 섭외하고 작가의 작업 방식으로 영화도 만들고 사진도 찍으면서 미션 수행하는 경험을 했죠. 캠프가 짜릿하고 기억에 남을 수 있는 건, 힘들지만 각자 역할이 있고 그만큼 뭔가 자기 성취가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압축적으로 사회를 경험할 수 있었던 거죠. 그렇게 만난 동네 작가들을 우락부락에서 다시 만나서 관계가 좋았던 거 같아요. 그런 관계들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흐뭇하기도 했고. 나 혼자였으면 캠프는 못 했을 거예요.
덕원이 부모님이 어렸을 때부터 특히 예술 관련 경험을 많이 시켜주셨는데 제가 진로는 예술보다는 다른 분야를 생각해 보자고 했죠. 덕원이가 순발력이 좋아서 게임 같은 걸 하면 진행을 정말 잘했고, 청소년들과 함께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고 해서 아동청소년복지를 추천했죠.
강덕원  꾸물꾸물 친구들이 사진, 미술, 음악 등 예술 계열로 많이 갔어요. 친구 따라갈까도 생각했었는데 저는 기획자가 되고 싶었어요. 꾸물꾸물에서의 경험 덕분에 꿈을 갖게 된 거죠. 누구를 대상으로 기획할지를 기준으로 생각했는데, 9세부터 24세 청소년들에게 나처럼 좀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제가 지역아동센터에서 처음 홍예문 프로젝트를 경험했던 것처럼요. 그래서 아동청소년복지학과로 특정 지어서 가게 되었었죠.
윤종필  대학교 1학년 때 꾸물꾸물에 보조강사로도 왔었죠. 학교가 다른 지역에 있어서 주말마다 와서 보조강사 활동까지 하느라 힘들었을 것 같아요.
강덕원  그때 평일 주말까지 아르바이트 세 개를 했거든요. 체력적으로 힘들었지만 가장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다문화 아이들과 하는 1년짜리 프로그램이었죠. 사실 참여자로 프로그램을 할 때는 왜 하는지에 대한 고찰이 없었거든요. 보조강사로 어릴 때 했던 거랑 역할은 비슷했지만, 기획자의 삶을 준비하는 사람으로서 사회복지시설 청소년들에게 이런 프로그램이 왜 필요하고, 어떤 경험이 필요할지 전반적인 흐름을 보려고 했던 것 같아요. 주강사 선생님께 많이 물어보기도 하고요. 다문화 친구들이 한국의 정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걸 프로그램으로 어떻게 풀어가는지 배우려고 노력했어요. 보조강사 때는 놀이보다는 배움이 컸던 경험이었어요. 사회에 나가서는 저의 그런 경험이 이력서에 나타나진 않잖아요.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역할을 해야 하는 데 그런 부분에서 딜레마가 있었죠. 20대 초반에 느꼈던 거랑 지금은 또 다르기도 하고 겁이 나는 것도 사실이고요. 꾸물꾸물 때처럼 나다울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윤종필  당시에 아이들에게 더 다양한 경험을 줄 수 있는 게 문화예술교육이지 않을까 고민하면서 생각보다 꽤 많은 시간 함께 했죠. 막내 재성이가 대학을 가면서 2016년에 꾸물꾸물 시즌1이 끝나고 ‘동네 예술대학’으로 시즌2가 시작되었어요. 시즌1 동안 나름대로는 간접적으로 청소년 육아를 경험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도 관계가 이어지고 있어서 좋아요. 이제 그 아이들이 20대 후반, 30대가 되어서 자기 진로를 생각하느라 바쁠 때죠. 덕원이도 자기의 진로를 찾아서 움직이고 있고. 20대 때 열패감을 느끼기도 하는데 그 과정을 거치면서 성장하는 거 아닐까요? 50살이 다 되어도 진로에 대한 고민이 없진 않아요.
강덕원  대학입시 때 느꼈는데, 학교 친구들은 어떤 학과를 가야 할지 몰랐어요. 그런데 저를 포함한 꾸물꾸물 친구들은 다 하고 싶은 게 있었어요. 그에 맞춰서 대학을 갔고, 전공을 살려서 직업을 가진 친구도 있고요. 처음엔 어떻게 하면 동네에서 재미있게 놀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꾸물꾸물에 찾아왔다면, 오늘 이야기를 나누면서 생각해 보니 선생님의 생각과 방향이 담긴 프로그램 덕분에 이렇게 잘 성장한 것 같아요. 지금도 꿈을 찾아가는 과정이지만요. 우락부락은 정말 다시 했으면 좋겠어요. 선생님이 조금이라도 더 젊을 때 함께 하고 싶은 바람이 있습니다. (웃음)
윤종필
윤종필

커뮤니티 아티스트, 문화기획자, 문화예술교육 기획자 겸 매개자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컬렉티브 커뮤니티 스튜디오525 디렉터이자 꾸물꾸물문화학교 교장이다. 2009년 인천에서 꾸물꾸물문화학교를 만들어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다양한 주민들과 예술교육을 매개로 사람과 지역을 연결하는 예술적 실행을 해왔다. 인천 창의예술캠프 우락부락 시즌9 ‘동네 한바퀴’, 시즌10 ‘불가사리한 부족’ 등 다양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중앙대학교, 인하대학교 문화예술교육원에서 강의하고 있다.
페이스북 @ccs525
인스타그램 @jean_pierre_yoon
강덕원
강덕원

초등학교 6학년 때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후 꾸물꾸물문화학교 참여자이자 ‘학생스태프’로 6년간 함께 했다. 어린이청소년에게 많은 경험의 기회를 주고 싶어 대학에서 아동청소년복지를 공부하고, 현재 기획자의 삶을 꿈꾸며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프로젝트 궁리
정리_주소진 프로젝트 궁리 기획팀장
인터뷰 사진_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사진 제공_꾸물꾸물문화학교
4 Comments
  • author avatar
    고윤정 2025년 07월 08일 at 11:44 PM

    윤종필 교장 선생님! 저, 부산 고윤정입니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고고해주십쇼~!

    • author avatar
      윤종필 2025년 07월 10일 at 3:21 AM

      오랜만이에요 고윤정 선생님.. 잘 지내시죠? 억수로 덥습니데이.. 쌤도 건강 잘 챙기셔요.^^

  • author avatar
    김양남 2025년 07월 11일 at 10:51 AM

    놀이와 경험의 장이자 동네의 기억으로
    [대담] 꾸물꾸물문화학교와 함께한 15년 돌아보기
    공감이 갑니다

  • author avatar
    안기현 2025년 07월 11일 at 12:51 PM

    놀이와 경험의 장이자 동네의 기억으로
    [대담] 꾸물꾸물문화학교와 함께한 15년 돌아보기
    기대만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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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Comments
  • author avatar
    고윤정 2025년 07월 08일 at 11:44 PM

    윤종필 교장 선생님! 저, 부산 고윤정입니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고고해주십쇼~!

    • author avatar
      윤종필 2025년 07월 10일 at 3:21 AM

      오랜만이에요 고윤정 선생님.. 잘 지내시죠? 억수로 덥습니데이.. 쌤도 건강 잘 챙기셔요.^^

  • author avatar
    김양남 2025년 07월 11일 at 10:51 AM

    놀이와 경험의 장이자 동네의 기억으로
    [대담] 꾸물꾸물문화학교와 함께한 15년 돌아보기
    공감이 갑니다

  • author avatar
    안기현 2025년 07월 11일 at 12:51 PM

    놀이와 경험의 장이자 동네의 기억으로
    [대담] 꾸물꾸물문화학교와 함께한 15년 돌아보기
    기대만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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