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꿈의 오케스트라 평창에서 비올라를 처음 만나고 음악의 세계에 흠뻑 빠진 유연지 씨는 고등학교 3학년 마지막까지 활동한 졸업 단원이다. 꿈의 오케스트라 평창 장한솔 음악감독은 2016년 처음 평창이라는 낯선 지역에 도착해 단원들과 우여곡절을 겪으며 음악가이자 예술교육가로서 자신의 성장과 변화를 경험했다. 두 사람의 지난 10년간의 추억과 함께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만났다. 여전히 예술을 통해 돈독한 관계를 이어 나가고 있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대담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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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시 : 2025.6.5. 오후 4시
• 장 소 : 블루라움 안암오거리점
• 참석자 : 장한솔 꿈의 오케스트라 평창 음악감독, 유연지 꿈의 오케스트라 평창 참여자
장한솔 오늘은 ‘꿈의 오케스트라 평창’의 10년을 돌아보는 시간이 될 것 같아요. 2016년도에 꿈의 오케스트라 평창과 평창 스노우 오케스트라 두 곳에서 음악감독을 맡으면서 일주일의 절반은 평창에서 지냈어요. 사실 처음엔 평창이 큰 도시인 줄 알았죠. 올림픽이 열린다고 했으니까.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웃음) 연지는 그때 초등학교 5학년이었죠?
유연지 맞아요.
장한솔 평창이 굉장히 넓은데 인구 밀도는 낮고, 대중교통으로 다니기도 만만치가 않죠. 그래서 서로 만날 일이 없는 각 지역의 아이들을 만나게 하는 것이 우리 꿈의 오케스트라의 역할이기도 했어요. 오케스트라에 잘 아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절반 이상은 새로 만났잖아요. 낯선 학교 낯선 아이들과 만났을 때 어땠어요?
유연지 사실 평창에 있으면 동네 사람끼리 쭉 가는 거거든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에요. 그런데 오케스트라 덕분에 만날 수 없는 사람들, 마음에 맞는 사람들을 만나게 돼서 아주 좋은 경험이었어요. 제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걸 좋아한다는 걸 이때 알았어요. 사람들 만나서 친해지는 법도 알게 됐고요. 악기가 아니어도 계속 있고 싶었어요. 합동 공연을 하게 되면 캠프하면서 친해지는 것도 좋아했고요.
장한솔 오케스트라에서 새로 만난 친구 중에 기억에 남는 친구들이 있어요?
유연지 비올라 파트에 하진이랑 윤서, 빈이요. 초등학교 때 우리 반에 저랑 남자애 한 명, 이렇게 두 명밖에 없어서 여자 친구가 필요했거든요. 갈증이 풀린 느낌이었어요. 동생 중에서는 서희, 미령이랑 오케스트라 하면서 친해졌어요. 그리고 지금은 더블베이스를 전공하고 있는 새하늘이랑 가끔 전화하면서 옛날얘기 해요. ‘우리 예전에 진짜 잘했는데, 애들이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 하고.
장한솔 새하늘이가 연지 누나랑 통화했다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활동을 안 하는데도 관계가 이어지고 있다니까 감독으로서 무척 뿌듯했어요. 사실 처음 단원들 만났을 때는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구나, 싶었어요. 40명이나 되는 단원 중에는 정말 논밭을 뛰어다니는 것처럼 자유분방한 친구도 있었고요. 그래서 처음엔 큰소리도 내고 그랬던 것 같아요. 연지는 혼날 일이 없었지만, 무리에 섞여서 같이 혼나기도 했죠.
유연지 내가 왜 혼나고 있어야 하지? 이런 생각 했어요.
장한솔 내가 1년 차 때 너무 화가 많았어요. (웃음) 초반에는 시련이 있었던 것 같아요. 나도 선생님들도 처음이었으니까. 사실 ‘음악을 통해 아이들을 변화시킨다’라는 꿈의 오케스트라 모토가 좋은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온전히 이해했던 건 아니었어요. 이제 막 악기를 시작한 아이들이 내는 날 것의 소리를 매주 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예민해지기도 했고요. 그런데 이걸 받아들이고, 아이들을 대하는 법을 알게 되고, 말썽꾸러기 같던 친구들이 점점 다듬어지는 걸 보니까, 우리가 하는 일이 정말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꿈의 오케스트라에는 어떻게 지원하게 됐어요?
유연지 <캐리비안 해적> OST 오케스트라 버전이 알고리즘에 떠서 보게 됐어요. 그거 보고 ‘이거 진짜 멋있다. 나도 이런 거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얼마 후에 ‘꿈의 오케스트라 평창’이 창단한다고 학교에 홍보하러 오신 거죠. 타이밍이 잘 맞았어요.
장한솔 근데 처음 접한 현악기가 어려웠을 텐데. 턱 괴는 것도 낯설었을 테고 왼손으로 음을 찾아 짚으면서 활로 소리를 내야 하니까. 비올라여서 가온음자리표도 익혀야 하니.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는 없었어요? <캐리비안의 해적> 듣고 시작했는데, 내가 내는 소리가 이게 맞나? 했을 수도 있고. (웃음)
유연지 맞아요! (웃음) 시작하기 전에는 나 좀 잘할지도 모른다고 기대했는데 실상은 ‘끼기긱’ 거리는 소리만 나는 거예요. 처음에는 양손 따로 움직이는 게 안 되니까 더 어려웠어요.
장한솔 현악기의 어려움을 깨달았을 때 악기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유연지 그러기도 했는데 지금까지 노력한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바꾸기가 싫었어요. 그리고 이예림 선생님이 오신 후에는 선생님이랑 계속하고 싶어서 안 바꾼 것도 있어요.
장한솔 관계에서 오는 만족감이 있죠. 이예림 선생님 첫인상 기억나요?
유연지 엄마 같고, 되게 포근하게 느껴졌어요. 언제 한번은 무슨 연주를 하고 있었는데, 그때 되게 힘들었나 봐요. 그래서 막 눈물을 참고 있는데, 선생님이 그냥 따뜻하게 안아주셨어요.
장한솔 다른 표현 없이. 좋네요. 첫해 저의 목표 중 하나가 아이들의 이름을 빨리 외워서 하루에 한 번씩은 꼭 불러주는 거였어요. 매일은 어렵더라도 애는 썼어요. 제가 어렸을 때 학교를 생각해 보니까 선생님이 모든 학생의 이름을 부르진 않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연지도 이름을 불린 기억이 있죠?
유연지 그럼요. 선생님들이 먼저 다가와 주시니까 ‘여기서 난 사랑받는 아이구나’ 싶어서 행복했어요.
장한솔 오케스트라 첫해 마무리 때 제가 편지 써준 거 기억나요? 병에 담아줬잖아요.
유연지 병은 잃어버리고 편지만 있는데, 대학 올 때 서울까지 가져왔어요.
장한솔 그때 꿈오랑 스노우까지 80명 넘는 아이들 모두에게 쓰느라 힘들었던 기억이 나요. 그래도 덕분에 얻은 것들이 있었죠. 우선 나를 포함한 선생님들이 얼마나 관심을 갖고 사랑하는지 아이들이 알았으면 했어요. 그리고 언젠가 간담회에서 어떤 아버지가 “아이가 집에서 감독님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해요” 하시더라고요. 연지처럼 조용하고 말이 많지 않은 친구였는데, 집에서 제 얘기를 많이 한다고 해서 깜짝 놀랐죠. 그때부터 태도에 더 신경을 썼던 것 같아요. 돌이켜 보니 저와 선생님들이 얼마나 애틋하게 아이들을 대하는지 가족한테도 전달됐다는 걸 깨달았죠.
유연지 알펜시아에서 첫 공연했을 때 <작은 별> 했잖아요. 다른 오케스트라들은 멋진 곡 연주하는 거 보고 ‘나도 저런 거 하고 싶은데 아직 실력이 안 되니까 나중에 보여줘야지’ 생각했어요. 그때부터 박수받는 기쁨을 알게 된 것 같아요. 무대에 오르고 박수받는 상황이 처음이잖아요. 짜릿했어요.
장한솔 그때 내가 스노우 공연에서는 지휘봉으로 하고 꿈오 공연은 손으로 지휘했더니, 그걸 그렇게 서운해하더라고요. 저기서는 지휘봉 들고 왜 우리는 손으로 하냐고. 난 별생각 없었는데.
유연지 서운할 만했어요.
장한솔 그때는 평창에 롯데리아가 알펜시아에만 있었잖아요. 그날 간식으로 햄버거를 줬더니 누구는 눈이 휘둥그레지더라고요. 평창 아이들이 문화생활을 누리는 게 제한적이고, 도시에서는 당연한 것들이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이때 처음 깨달았어요. 그래서 꿈의 오케스트라 활동의 존재가 더 소중하다, 참 힘들고 어렵기도 하지만 의미 있다고 생각했죠. 그럼, 강릉에서 했던 첫 합동 공연도 기억나요?
유연지 그때 다른 오케스트라 선생님이랑 어색한 친구들이랑 같이 연주하는 게 진짜 힘들었어요. 너무 어색하니까 말도 잘 못 하고.
장한솔 그래서 작년에 캠프에서 ‘아우름 프로그램’하면서 서로 이름 외우고 알아갈 수 있는 여러 활동을 한 거죠. 합동 공연을 하려고 서로 모였으면 낯선 친구들을 만나는 즐거움도 있어야 하는데, 아무 과정 없이 앉혀 놓고 연습만 하는 게 싫었어요. 2019년에 했던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합동 무대는 어땠어요? 평창문화예술회관에서 바라보는 객석과 세종문화회관에서 바라보는 객석은 엄청나게 다르잖아요.
유연지 제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뮤지컬 했던 곳이거든요. ‘어떻게 우리가 여기에 들어왔지?’라는 생각에 신기했어요. 세종 공연은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 맨날 돌려보거든요. 아, 저희 그거 진짜 잘했어요.
장한솔 맞아요, 잘했지. 그런 뿌듯함이 남아 있군요. 선생님들이 연지를 ‘시험 기간에도 오케스트라 오던 아이’라고 기억하시더라고요. 오케스트라에 애정이 있는 친구들도 시험 기간에는 조금씩 빠졌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오케스트라에 오는 연지한테는 시험공부를 해야 하지 않느냐고 선생님들이 되려 물었죠. (웃음)
유연지 오케스트라가 저에게는 일상 같은 거였어요. 안 하면 이상해서 오히려 ‘시험 기간이 뭔데 내 오케스트라를 방해해?’라는 생각도 하고. 그리고 클래식이잖아요. 클래식 들으면서 공부하면 잘 되겠죠. (웃음)
장한솔 그건 굉장히 합리화한 거 아니에요?
유연지 합리화하면서까지 오고 싶었어요. 열심히 한다는 칭찬도 바랐던 것 같아요. 그리고 한 번 오케스트라 안 가고 공부를 해봤는데 ‘이렇게 놀 거면 차라리 오케스트라에서 생산적인 걸 하지’ 싶었어요.
장한솔 고3 졸업 때까지 활동한 친구는 연지가 처음이었어요. 단원으로서의 마지막 정기연주회 때는 어땠어요?
유연지 시작할 때는 이 상태로 가면 안 울고 잘 끝낼 수 있겠다 싶었는데 편지 읽는 시간이 다가오니까 긴장되더라고요. 편지 읽는데 열심히 활동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어요. 그때 옆에서 서희가 토닥토닥해주면서 안아주니까 눈물이 왈칵하더라고요. 끝나고 나니까 더 하고 싶다, 내일 또 하면 안 되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너무 아쉬웠어요.
장한솔 이유를 묻는 게 이상하긴 한데, 오케스트라를 마무리할 때 느꼈던 아쉬움은 어디서 오는 거였을까요?
유연지 악기를 더 잘해서 멋진 곡 하나 해봤으면 좋겠다, 그게 제일 컸어요. 그리고 이곳의 사람들과 어렵게 친해졌는데 멀어지겠다는 생각에 아쉬웠어요. 제가 먼저 다가가는 성격은 아니라서 먼저 연락하지도 못해요.
장한솔 저도 평창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두 시간 넘는 길에 산길을 40~50분 지나는데, 평소에는 즐거웠다고 생각하면서 가는데 정기연주회 끝날 때는 헛헛해요. 그리고 만약에 평창에서 마지막으로 아이들과 만나고 이 산길을 지날 때는 진짜 마음이 힘들겠다는 생각을 종종 하거든요. 아무튼 그래서 졸업하고 나서도 방학 때 놀러 왔잖아요.
유연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닌 첫해에는 감독님 차를 얻어 타고 자주 갔죠. 그러려고 자체 휴강을 하기도 했고요. (웃음)
장한솔 작년에 정기연주회를 처음으로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 했는데, 그때는 못 왔죠?
유연지 너무 아쉬웠어요. 그때 시험을 전부 온라인으로 봤거든요. 그런데 딱 그날 수업하는 교수님만 대면으로 봐야 한다고 하셔서 못 갔어요.
장한솔 끝나고 서희가 연지 언니가 보냈다며 꽃을 줘서 놀랐어요. 대학교 1학년이 무슨 돈으로 꽃을 보냈나 싶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어요.
유연지 저를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제일 컸어요. 이제 어쩔 수 없이 조금씩 덜 가게 될 거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잊힐 거잖아요.
장한솔 마음은 오케스트라와 함께인데 슬슬 잊힐까 봐 그런 거군요. 그때는 전혀 몰랐네. 그럼 만약 오케스트라 활동을 안 했더라면 어땠을지 생각해 봤어요?
유연지 한 번 생각해 본 적은 있어요. 근데 상상이 잘 안 돼요. 그만큼 엄청나게 큰 부분을 차지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생각조차 안 들 정도로.
장한솔 그러면 8년 동안 활동하면서 꿈의 오케스트라 평창이 연지한테 무엇을 줬을까요?
유연지 일단 좋은 친구들이요. 학교 친구들이랑은 또 다른 느낌이잖아요. 그리고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악기를 할 수 있었다는 것도 컸어요. 언제 이런 악기를 어떻게 이 공간에서 배워볼 수 있겠어요.
장한솔 그럼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유연지 “이런 기회가 진짜로 흔치 않으니까 참여할 수 있을 때 열심히 해.” 지금은 안 와닿겠지만, 진짜 이 말 꼭 해주고 싶어요.

장한솔
음악을 통해 사회와 소통하는 방법을 모색하며 실천 중이다. ‘사회참여적음악가네트워크(SEM네트워크) 대표를 맡고 있으며, ‘꿈의 오케스트라, 평창’ ‘올키즈스트라 상위관악단’ ‘금천우리동네오케스트라’ 등 아동청소년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및 지휘자로 아이들과 음악으로 소통하는 일을 기쁘게 감당하고 있다. 활동 공로를 인정받아 2021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공연 <작곡가 장한솔의 무대음악 ‘소리, 숨’>을 개최했으며, <줄리어스 시저> <프로즌> <함익> <붉은 낙엽> 등 극음악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다.

유연지
꿈의 오케스트라 평창의 창단과 함께 비올라 단원으로 입단해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활동을 지속하고 졸업한 첫 단원이다. 동덕여자대학교 중어중국학과에 재학 중이며, 꿈의 오케스트라에서의 경험을 확장하여 문화예술경영을 복수전공으로 선택하였고 다양한 공연 현장에서 스태프로 참여하며 역량을 쌓아가고 있다.

- 정리_프로젝터 궁리 박희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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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사진_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사진 제공_평창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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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감동입니다 ? 예술을 통해 아이들이 성장한다는, 단순하지만 확실한 가치를 다시 한 번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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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이어지고, 함께하며, 나아가기
[대담] 꿈의 오케스트라 평창 10년을 기억하며
잘 보고 갑니다
음악으로 이어지고, 함께하며, 나아가기
[대담] 꿈의 오케스트라 평창 10년을 기억하며
기대만점입니다
예술교육의 가치는 활동 그 자체 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엮이게 되는 삶의 나눔에서 더욱 큰 빛을 발하는 것 같습니다. 꿈오와 함께 성장한 참여자가 문화예술에 일부 종사하는 어른으로 자라난 것이 엘 시스테마 오케스트라 교육이 지향한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성장의 좋은 사례인 것 같아 보여요 🙂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감동적이기도 하고 읽으면서 즐거운 대담이에요 장한솔 감독님도 대단하시고 졸업단원분도 대단하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