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 불가능할수록 더 뾰족하게, 세상에 균열을 일으키며

[대담] 지능화된 기계와 예술의 공존-공생

대담개요
일시: 2025.4.9. 오후 2시
장소: 과학책방 갈다
참석자: 이명현 과학 커뮤니케이터‧과학책방 갈다 대표, 조은아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조은아  갈릴레이와 다윈의 공간에 오게 되어서 반갑다. 알고리즘의 사전적인 의미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절차, 방법’이라는 뜻이 있더라. 요즘에는 취향을 분석해 주거나 행동을 예측해 주는 개인 맞춤형 검색, 추천 시스템처럼 알고리즘이 일상에 완전히 틈입해서 스며들고 있는 것 같다. 알고리즘이라는 용어가 일반 사람들에게 널리 퍼지게 된 계기나 배경이 있을 것 같은데, 알고리즘에 대해 아직 낯설고 그 뿌리가 궁금한 독자들을 위해서 설명을 부탁드린다.
이명현  말씀하신 것처럼, 알고리즘의 원래 의미는 어떤 걸 만들어 나가는 과정, 절차다. 요즘에는 그냥 ‘우리를 위한 모든 것’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테크놀로지 발달이다. 지금은 세상에 정보가 너무 많고 각자의 인지나 상황에 따라 현명한 판단을 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세상이 되었다. 요즘 알고리즘은 정보의 내비게이션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내비게이션이 어디로 가는 절차나 과정을 알려주기도 하지만, 이 길로 가라고 우리에게 제안하고 강제하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내비게이션이 가능해지려면 데이터가 매우 많아야 한다. 최근에 점점 AI가 발전하는 이유가 데이터가 엄청 많아졌기 때문이다. 모든 게 디지털화되면서 어떤 한 곳에 물질적으로 종속됐던 정보가 누구나 접근 가능하게 복제되어 쫙 퍼졌다. 우리가 구글이나 페이스북에 올린 정보가 쌓이니까 정보가 풍부해져 버렸고, 반면 정보가 너무 많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니까 내비게이션이 필요해졌다. 알고리즘이 그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또한 데이터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컴퓨팅 기술이 발전했다. 하드디스크, 클라우드도 그렇고 그것을 계산할 수 있는 CPU가 엄청 싸졌다. 예전에는 뭘 하려고 해도 데이터가 너무 부족했고, 그것을 가지고 뭘 해봤자 현명하고 경험 많은 사람에 비해서 그다지 뛰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방대한 데이터를 빨리 처리해 줄 수 있으니, 사람들에게 필요한 만족감을 주는 거다. 게다가 요즘에는 ‘핵개인’이라는 말처럼 자신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스스로 선택하려는 욕구는 생겼는데, 나 혼자 모든 걸 판단할 수 없다는 괴리와 간극을 파고든 것 같다. 개인에게 알고리즘 추천을 해주면 만족도가 있고 개인은 또 거기에 충성하게 된다. 내 결정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결정해 주는 것을 따라가는 상황이 발생한 거다. 알고리즘은 그냥 절차가 아니라 정보의 내비게이션이자 등대가 되었고, 결국 이렇게 압도해 버린 것 같다.
  • 조은아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이명현 과학 커뮤니케이터‧과학책방 갈다 대표
알고리즘의 진화
조은아  말씀하신 대로 세상의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고 무엇을 취할지 개인이 방황하는 과정에서 어디로 찾아가라는 내비게이션을 제시해 주는데, 저만해도 생활 전반에 스며든 알고리즘에 길들어 알고리즘을 도구로 쓰는 것이 아니라 노예가 되고 있다. (웃음) 그런데 그 개인화가 사실은 포장일 수 있다는 문제의식도 던져주셨다. 누군가는 주판과 계산기의 진화처럼 머신러닝 이전과 이후도 엄청난 격변이 일어난 거로 얘기하더라. 머신러닝과 알고리즘의 진화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명현  컴퓨터 알고리즘을 훈련시키는 것을 머신러닝이라고 한다. 머신러닝은 거의 1950년대에 나왔다. 뇌과학 같은 것을 통해 사람의 뇌가 작동하는 방식을 어느 정도는 이해했지만, 완전히 다는 아니다. 아기가 엄마 아빠가 하는 말을 듣고 두리번거리다가 말이 튀어나오는데, 그 작동 방식은 몰라도 집어넣으면(인풋) 나온다는(아웃풋) 것은 안다. 저도 1990년대 초반에 쓴 논문에 머신러닝을 통한 은하 분류를 넣으려고 했는데 결국 들어가지 못했다. 왜냐하면 알고리즘과 프로그램은 있는데 그것을 구현시켜 줄 수 있는 기술적인 토대가 없었다. 일단 훈련시킬 데이터가 별로 없고, 저장도 못 하고, 계산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제가 논문 쓸 때는 간단한 계산하는 데 3년이 걸렸는데 지금은 ‘탁’ 치면 그냥 몇 분만 나온다. 지금처럼 머신러닝이 되기 전에는 알고리즘을 기획하는 전문가들의 영향력이 컸고, 세계적인 석학이라든가 특정한 정치적인 목적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 끌려가거나 예측 가능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예측 가능하지 않다. 한두 사람의 전문가가 데이터를 독점하는 게 아니라 누구나 쉽게 알고리즘을 개발할 수가 있게 되면서 몇몇 전문가 집단의 규제라든가 독점이라든가 그들의 영향력이 깨져 버렸다. 특정 세력이 알고리즘을 독점할 수 없는 세상이 된 거다. 독점하려고 노력하지만, 너무 빨리 변하고 너무 많이 나오니까 또 다른 알고리즘으로 덮어버릴 수 있다.
조은아  소위 빅테크 기업들이 데이터를 방대하게 수집하면서 독점적으로 편향되게 이끌까 봐 걱정했는데, 머신러닝 이후에는 오히려 소수의 전문가가 좌지우지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는 말씀이 다행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경제 논리가 우선이 되면 위험해지기도 하겠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와서, 머신러닝 기법 중에서도 딥러닝은 블랙박스처럼 내부의 작동 원리를 인간이 온전히 파악하기가 굉장히 힘들다고 들었다. 블랙박스 이면에 존재하는 머신러닝의 인풋과 아웃풋을 예측할 수 있을까.
이명현  예측 가능하지 않다. 예전 같으면 컴퓨터 프로그램 짤 때 하나하나 예스, 노, 예스, 노 이렇게 순서대로 가니 어느 정도 예측 가능했다. 그런데 이제는 막 집어넣고 컴퓨터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맡겨버리는 것이다. 데이터를 집어넣으면 컴퓨터가 뇌에서 하는 것처럼 작동해서 아웃풋을 내놓는데, 왜 이렇게 했는지는 너무나 많은 경우의 수라서 다 추적할 수가 없다. 내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모르니까 블랙박스라고 하는 것이다. 막 작동해서 튀어나온 답이 엉뚱할 수도 있지만, 결과가 잘 나오니까 쓰는 거다. 신뢰도가 높아졌다. 그전에는 고양이와 개를 구분 못 했는데 지금은 잘한다. 그리고 잘하는 정도가 점점 높아져서 결과를 믿는 것이다. 딥러닝은 레이어를 얼마나 잘 짜주느냐에 따라서 컴퓨터가 생각을 많이 해서 좋은 답을 낼 거란 얘기이다. 특히 요즘에는 알고리즘에서 초깃값이라든가 센서티비티(sensitivity, 감도)를 어떻게 조정하면 결과가 잘 나올까 연구하고, 그냥 잘하면 채택하고 잘 안되면 기각한다.
조은아  원인과 과정을 알 수 없는데 결과를 보고 판단하고 신뢰한다는 게 가능한가? 우리가 그 불투명성을 해소하려고 노력할 수 있을까?
이명현  ‘써보니까 결과가 좋더라’라는 건 경험적으로 확실한 거잖나. 그런데 거기에 정치적 편향이라든가 젠더 감수성 등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러면 인풋한 데이터들을 체크한다. 바닷물에 오염수가 들어가더라도 바다가 너무 넓으면 희석되는 것처럼 세상에 떠돌아다니는 데이터에 편향성이 있는 것 같으면 그것을 조정한다. 그래서 지금은 인공지능을 훈련시키기 위한 좋은 데이터를 생성하는 것이 굉장히 핫이슈다. ‘좋은 데이터를 잘 넣어주면 결과가 잘 나오더라’라는 결론적인 것을 보는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컴퓨터가 어떻게 의사결정을 하는지 알고 싶을 것 아닌가. 블랙박스 일부를 이해하는 방법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실제로 넣어주는 것이고, 하나는 어떻게 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지금은 사후적으로 해석하는 단계라서 모델 설명 가능성이라는 말을 쓴다. 예를 들면 이세돌 9단이 AI를 한번 이겼잖나. 그것을 사후에 어느 지점에서 어떤 판단을 내렸는가를 분석해서 바둑돌을 이렇게 놨을 땐 몇 퍼센트인지 알아보고 다음번에는 어떻게 할지 다시 인풋으로 넣어준다. 사후적으로 해석하고 분석하거나, 좋은 데이터로 결과를 이끄는 작업을 통해 컨트롤해 보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하나 체크하는 것이 훨씬 느리고 다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딜레마다. 데이터를 조작할 수 있다는 윤리적인 문제에 대한 경고도 많이 나온다.
조은아  그러니까 누군가 짜놓은 판에선 아무리 세심히 체크한다 한들 인풋의 자원엔 취향이 들어가겠고, 결과 역시 누군가 유리하게 사후 해석할 위험이 있을 듯하다. 이 블랙박스 이면의 세계가 진짜 모호하다는 생각이 든다. 반면 예술은 옳다, 그르다, 뛰어나다, 어리숙하다 같은 가치 판단에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음악을 제대로 만나고 싶어 하는 분들을 많이 접하는데, 어떤 것부터 감상해야 할지 몰라 선곡하기 어려울 때 알고리즘 추천이 굉장히 도움이 된다고 한다. 반면 낯선 음악보다는 친숙하고 익숙한 선호도에 치중해서 추천해 주니까 오히려 굉장히 단조롭다고 불평하는 친구들도 있다. 다양성을 점차 잃어가는 것 같다. 우리의 취향, 인식, 선택들이 계속 알고리즘으로 포섭되고 구획되는 가운데 알고리즘을 통해 취향의 확장을 의도하는 분들에게 과학자로서 들려주고 싶은 얘기가 있는가?
이명현  알고리즘을 통하면 정말 편하다. 그러다 보면 익숙해지고 너무 익숙하면 자극도 별로 없어지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알고리즘이 익숙해진 쪽으로만 계속 오라는데, 사람의 본성은 견딜 수 있는 한계가 있다. 똑같은 음악을 들으면 조금 지겨워지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딴 걸 찾게 된다. 계속 같은 것을 하다 보면 구매율이 떨어진다. 그러면 새로운 것을 해야 하는데, 아주 낯선 것은 안 된다. 적극적으로 찾지 않더라도 옆에서 ‘이걸 봐’ 하면 솔깃해서 따라갈 수는 있다. 거기서 예술가들은 굉장히 편차를 크게 전방위적으로 치고 나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예술가가 만든 것을 보고 공감하면 그게 또 우리들의 취향이 되고, 그러면 알고리즘은 우리가 그걸 봤다는 이유로 또 비슷한 것을 제공해 주게 된다. 알고리즘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마치 의무 교육을 받아 국가가 필요로 하는 노동력으로서의 시민이 되는 것을 넘어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새로운 취향을 가진 개인화된 사람이 나오는 것과 같다. 예술가들은 버팀목 역할을 한다. 그 대가를 기본소득 등의 방식으로 우리 사회가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은아  사람들이 알고리즘이 주는 편의성에 익숙해지는 것은 인간의 본성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고 생각한다. 안전하고 예측 가능할수록 내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으니까. 한편, 반복되면 지루해하고 뭔가 제한이 있으면 튕겨 나가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성을 짚어주시니까 예술가들이 해야 할 일이 있을 것 같다.
편향과 혐오에서 벗어나
조은아  확증편향, 인공지능의 패권에 계속 갇혀 있다 보니,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취향의 지평을 넓히는 데 오히려 알고리즘이 장벽이 되기도 한다. 특히 비슷한 콘텐츠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다 보면 인지적 편향까지도 일어나서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분노하고 혐오하는 편향도 심각해진다. 이럴 땐 일부러라도 나와 다른 성향의 콘텐츠를 봐야 할지 고민되기도 한다. 스스로 생각하고 가치 판단을 튼튼히 존속하기 위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이명현  알고리즘에 지배당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이론적으로 알고 있다. 그것을 인지하고 자각한 다음, 균형추를 맞추기 위해서 알고리즘이 추천한 것뿐 아니라 다른 것도 보면서 나름의 견해를 가지며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모범 답안 아닌가. 문제는 알고리즘에 빠져 있다는 것을 자각할 수 있느냐다. 보통은 자각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 자각한다. 어느 정도 자기를 볼 수 있는 사람들은 크게 걱정을 안 해도 된다. 이러한 자각과 메타인지가 있는 사람이 볼 때 갇혀 있다고 보이는 사람을 빠져나오게 하는 방법은 전혀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쉬운 방법은 자각한 사람들이 연대해서 서로 얘기하면서 여러 콘텐츠를 비평하고 공유하면 돌파구가 있을 것이다. 문제는 빠져 있는 사람들이다. 최근에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과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법』이라는 책이 나왔다. 일단 전제가 안 맞으니, 대화나 설득이 안 되지 않나. 제일 쉬운 방법은 서로 안 보고 사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단절할 수 있지만, 정치적‧사회적 합의를 할 때는 이 사람들의 몫이 있다.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나? 제 생각에는 일단 과격한 충격 요법이 필요할 것 같다. 제일 좋은 것은 물적 토대를 뺏는 것이다. 시간적‧공간적으로 분리되거나 물적 토대가 없어지거나 하는 변화 같은 것들을 유도하는 것이다. 그런 균열이 생겼을 때, 비로소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조은아  제가 예전에 월정사에 한 달 동안 단기 출가했을 때 그런 물리적 시공간의 충격을 겪었다. 근원으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몇 년 전에 선생님이 핸드폰 문자, 카톡을 안 한다는 얘기를 듣고 그때부터 연습실에 갈 때 핸드폰을 안 들고 가는 시도를 했다. 처음에는 어디서 연락이 올 것 같아 불안했는데 지금은 문명에 오염되지 않는 청정 구역처럼 느껴진다. (웃음) 근래에 SNS에 지브리풍의 프로필 사진이 우후죽순 올라왔는데, 얼굴 데이터를 얻기 위한 샘 알트먼의 음모라는 얘기도 있더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명현  어쨌든 다 동상이몽일 것 같다. 쓰는 사람들은 그냥 재밌으니까, 남들이 하니까 해 보는 것이다. 추억을 아름답게 회상하고 싶은 욕구가 이것을 쫙 퍼뜨렸다. 게다가 완성도도 높았다. 그러니까 뿌리는 사람 입장에서는 데이터 수집 다음에 기술을 테스트해 보는 것이기도 하다. 사용자들은 만족감을 얻는 대신에 자기 데이터를 뺏겼지만,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소수이고 대부분은 재미있어한다. 그다음으로 표절 문제가 있다. 그런데 표절이라든가 저작권 문제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한다. 어떻게 보면 콘텐츠가 재복제되면서 더욱 풍성해지는 면이 있고 그것을 누리는 사람들은 정말 좋지만, 최초 생산자들은 타격을 받는다. 예전에는 복제나 표절은 소수 집단만 하면서 그에 대한 상업적인 이득을 취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지브리풍 이미지를 가지고 상업적인 목적으로 팔고 이득을 취할 수 있을까? 그 정도는 안 되는 것 같다. 재미있긴 하지만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니까 그것을 통해서 상업적이나 예술적인 이득을 취할 수 없다는 것이 조금 다른 면인 것 같다. 그러면 지브리 원저작자들은 어떨까? 이미 나와 있는 것이고 어느 정도 장악한 입장에서 이렇게 퍼지는 것이 이득이 될지 그들도 계산을 튕기고 있을 거로 생각한다. 저작권에 대한 기준이 예전에는 물성이 있는 어떤 것들, 한 사람에 의해서만 생산될 수 있는 것들에 국한되어 있었다면, 지금 상황에서 기준을 바꾸기 위해 타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생산하는 사람들은 점점 가난해지고 공짜로 갖다 쓰는 게 많아지는 시절이 될 것이다. 그것을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그중 하나가 예술가 기본소득 같은 것들로 보장하고 창작물의 일정 부분은 공유하자는 식의 논의들이 되지 않을까? 안 그러면 방법이 없다.
조은아  미래의 인간다운 삶을 어떻게 상상해야 할지 막막하다. 왜냐하면 로봇이나 인공지능이 인간의 영역을 과격하게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가 기본소득 말씀도 하셨지만, 인공지능 로봇이 다 해줄 때, 특히 예술-미적 체험이 중요해질 것 같다. 20년 후 인간다운 삶에 대해서 어떻게 기대하는가.
이명현  인간다운 삶에 대한 기준이나 우리가 인간적이라고 느끼는 것에도 변화가 온 것 같다. 어리숙하고 약간 손해를 보더라도 따지지 않는 것을 인간적이라고 얘기하곤 했다. 과연 그런가? 다른 영장류들도 매우 이타적이고 본능적으로 집단을 위해서 희생하기도 하고 특히 자기 새끼에 대해서는 더 그러하다. 그러면 그것을 호모 사피엔스의 인간성으로 내세울 수 있을까? 그것이 가치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는 다른 인간의 정체성을 따져보아야 한다. 예전에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매우 감성적인 공감을 했다면 이제는 인지적인 공감이 인간다움이라고 새롭게 정립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우리가 고전적으로 생각하는 인간의 감정은 매우 본능적인 것이다. 여전히 혈연이나 집단에 감정적으로 끈끈하게 얽혀 있는 것을 인간다움이라고 얘기해야 하나? 그것이 지금 사회에서 올바른가? 인간다움이라는 건 그런 질문을 할 수 있는 인지적인 요소라고 생각한다. 공감하되 인지적으로 하는 것.
20년 후에 예술적인 미학, 예술은 어떨까? 이미 인지적인 공감으로 변해가고 있다. 예전에는 예술 작품을 보고 직관적으로 “와, 아름다워!” 했다면 현대 예술은 사고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무척 보편화되었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어떻게 될까? 인공지능 로봇이 나오면 뭐가 변할까? 일단 인공지능에 의해서 우리의 노동이 줄어들 거로 생각하는데, 확신할 수는 없다. 세탁기, 건조기 생기면서 노동이 줄어들었을까?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다. 수렵채집 시절에는 평균 4시간만 일하면 됐었는데 지금은 죽도록 일해도 살아가기 힘들다. 지금 상태를 바탕으로 예술 미학을 어떻게 누릴까 생각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인 것 같다.
조은아  개인적으로 예술가들, 특히 창작 과정에 굉장한 위기가 찾아왔다고 생각한다. 지금처럼 예술가들이 자연과 유리되었던 적은 유래가 없었던 것 같다. 진짜 자연에서 접하는 해돋이, 일몰 과정에 느끼는 감동을 오페라나 뮤지컬에서 무대 장치로 재연한다 해도 그럴싸한 모사에 불과한데, 가면 갈수록 그 인공적 재연을 우리 후속세대는 진짜라고 인식할까 두렵다.
이명현  예전에 사진 나왔을 때도 그랬다. 그 돌파구를 찾아서 예술의 영역이 넓어진 것이다. 지금은 대부분이 인공적이다. 자연을 느끼는 것이 무척 희소해진다. 밤에 별도 아무 데서나 못 보고, 차 타고 멀리 가서 봐야 한다. 어떻게 보면 즐길 것이 없어졌다고 볼 수도 있지만, 특정 행위로 체험할 수 있게 된 것이기도 하다. 어쩌면 지구보다 더 넓은 영역으로 달에 가서 느끼는 것으로 확장될 수도 있다. 그것을 돌파하는 선봉에서 예술가들은 항상 다른 것들을 시도해야 하고 그런 역할을 할 거로 생각한다.
제가 보기에 인공지능은 인류와 운명 공동체 같다. 인공지능이 우리를 지배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도 인간이 다 개발해 놓은 것들이 아닌가. 그러니까 운명 공동체, 거의 혈연관계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인공지능이 지배할 것을 걱정할 게 아니라 어떻게 타협할까가 중요한 것 같다. 예를 들어 위험한 일은 인공지능 로봇이 다 할 거고, 그 로봇의 실수를 줄이기 위한 알고리즘을 개발하거나 매니저 역할을 사람이 하게 된다면, 단순노동에서 벗어나서 심심해진 사람은 오히려 거기서 취향이 나눠질 것이며, 기술 기반 예술을 즐기는 예술 미학이 생길 것 같다. 하지만 정반대로 아날로그적인 예술은 더 고도화되고 더 뾰족해지는 식으로 공존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것을 찾는 사람은 소수이더라도 더 깊어질 것이다.
삶의 경이로움 앞에 겸허한 마음으로
조은아  선생님께서는 천문학자이자 과학 커뮤니케이터로서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 통념에 낯선 질문을 던질지 고민하고 뜻깊은 화두를 던져 왔다. 다른 인터뷰에서 보니 삶의 유한성과 우연성을 인지하다 보면 겸허해진다는 말씀도 하셨더라. 과학과 소통했던 예술적인 영감, 예술적인 순간들도 체험하셨을 것 같다.
이명현  과학에는 엄밀하게 따져나가는 방법론이 있다면 예술에서는 직관이 무척 중요하게 작동하지 않나. 그런데 그것이 딱 만나는 지점 중 하나가 경이로움이다. 예술가에게 경이로움이 매우 중요한 요소인 것처럼 과학자에게도 그렇다. 다만 경이로움을 느끼는 방식은 좀 다르다. 과학자들은 과정에서 경이로움을 느낀다. 대부분 결과라고 생각하는데, 과학은 결과가 아니라 어떤 진실을 향해서 나아가는 과정이다. 양자역학이나 상대성 이론을 몰랐던 200년 전 과학은 다 폐기됐다. 지구가 중심이라는 생각이 그 당시에는 합리적이었지만, 지구가 중심이 아니라는 논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과학이다. 진실에 접근해 나가는 과정, 우리가 알던 것들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굉장한 경이로움을 느낀다. 다른 세상이 생기는 것이니까. 과학은 계속해서 폐기하면서 나아가는 과정이다. 그러다 보니까 겸허해질 수밖에 없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100년 후에도 진리일 리 없다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
조은아  실수를 인지하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내가 틀렸다는 걸 인정하는 태도가 놀랍다. 예술가 역시 옳고 그름이 없이 늘 열려 있어야 한다. 틀릴 여지를 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이명현  이 경이로움이라는 지점에서 예술가를 딱 만난다. 방식은 달라도 합치가 되니까. 과학적-기술적인 요소가 이 사람의 작품에 반영되는 것도 무척 중요하지만, 이런 인식의 상황들이 서로 공유된다. 말씀하신 것처럼 옳고 그름이나 정답이 없다든가 그걸 찾아나가는 과정 같은 것들은 예술가와 과학자가 공유하는 부분이다.
조은아  ‘과학도 문화’라고 하신 인터뷰를 읽었다. 일반인의 언어로도 과학을 얘기할 수 있어야 하고 심지어 세속화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과학책방 ‘갈다’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해 오셨고 앞으로도 계획하고 계실 텐데, 이제껏 겪으셨던 시행착오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어떻게 구상하고 계신지 들려주시면 좋겠다.
이명현  과학자에게 물어보면 명확하고 확실한 답이 딱 나온다는 선입견이 있는 것 같다. 18~19세기 뉴턴 역학 시절에는 그랬지만, 양자역학과 상대성 이론이 기반인 현대 과학에서는 모든 것이 매우 불확실하다. 사실 과학자들도 답답하다. (웃음) 예전에는 과학의 대중화라는 말을 쓰면서 굉장히 계몽적으로 뭔가를 던져주고 싶었다면, 사회가 다양화되면서 그런 것들은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그냥 불확실한 세계에서 인간이 찾아낸 가장 합리적인 사고방식이 과학이라는 태도로 세상을 바라보면 훨씬 더 여지가 생기고 조금 더 편안해지지 않을까. 과학을 지식으로 전달하지 말고, 그것이 가진 태도 같은 것들을 생활 속에 스며들게 하자는 식으로 전환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과학책방이 아니라 그냥 책방, 과학 문화가 아니라 그냥 문화가 되는 것이다. 과학이 기본으로 다 깔려 있으면 구태여 과학이라는 말을 쓸 필요가 없지 않나. 사람들이 다 과학적으로 사고하고 예술적으로 표현하면 그것이 그냥 일상이 되는 것이다.
조은아  과학도 예술도 특수한 게 아니라 보편적으로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웹진 [아르떼365]의 주요 독자들은 예술가 혹은 예술교육가, 교육자들이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나 던지고 싶으신 메시지가 있을까?
이명현  평균적으로, 통상적으로, 교육받은 대로, 사회 통념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다수인데, 예술가는 좀 더 뾰족하거나 감수성이 조금 더 예민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예술가들은 예술 활동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는 걸 대신한다. 이러한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이 자리매김해서 그에 합당하게 지불하라고 사회에 당당하게 청구서를 던져야 한다. 과학자들에게는 그런 생각이 굉장히 보편적으로 퍼져 있다. 각자 자기 능력에 따라 성취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지 않나. 그래서 서로 연대해야 한다.
조은아  예술가들이 금권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예술을 하라는 말씀이 든든하다. 그러려면 예술가들 또한 노력을 많이 해야겠다.
이명현
이명현

초등학생 때부터 천문 잡지 애독자였고, 고등학교 때 유리알을 갈아서 직접 망원경을 만들었다. 연세대 천문기상학과를 나와서 네덜란드 흐로닝언 대학교에서 천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네덜란드 캅테인 천문학연구소 연구원,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원, 연세대 천문대 책임연구원 등을 지냈다. 외계 지적 생명체를 탐색하는 세티 코리아 (SETI KOREA) 대표이며 과학책방 ‘갈다’의 대표를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 『이명현의 별 헤는 밤』, 『과학하고 앉아 있네 2』, 『판타스틱 과학 책장』, 『외계생명체 탐사기』 등이 있다.
조은아
조은아

지속 가능한 음악 생태계를 위해 연주뿐만 아니라 강연과 저술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KBS ‘예썰의 전당’, JTBC ‘차이나는 클라스’, tvN ‘벌거벗은 세계사’, MBC ‘사색의 공동체’, SBS Biz ‘세상의 끝에서 읽는 한 권의 책’에 출연했고, 한국일보 ‘조은아의 낮은 음자리표’, 한겨레 ‘문화현장’, 경향신문 ‘세상 속 연습실’ 등의 지면에 칼럼을 연재하며 클래식 음악의 깊이 있는 전파에 힘써왔다. 서울시향 ‘퇴근길 토크 콘서트’, KBS 교향악단 ‘더 프리미어’, KBS 클래식FM ‘라디오 피아노 레슨’, 코리아쿱 오케스트라 ‘칸타타 레볼루션’, 국립 심포니 ‘슬기로운 감상생활’ 등을 기획·해설했고,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예술감독을 역임하며 2018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았다. 현재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에서 젊은 청중의 성장을 북돋고 있다.
프로젝트 궁리
정리_남은정 프로젝트 궁리 기획자
대담 사진_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3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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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순례 2025년 05월 22일 at 9:22 AM

    예술가들이 사회에 당당하게 청구서를 던지라는 말씀, 서로 연대해야한다는 말씀에 밑줄을 긋습니다. 요구하기 전에 사회가 더 적극적으로 변화하면 더 좋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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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5년 05월 25일 at 12:18 PM

    예측 불가능할수록 더 뾰족하게, 세상에 균열을 일으키며
    [대담] 지능화된 기계와 예술의 공존-공생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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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5년 05월 25일 at 2:26 PM

    예측 불가능할수록 더 뾰족하게, 세상에 균열을 일으키며
    [대담] 지능화된 기계와 예술의 공존-공생
    기대만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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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순례 2025년 05월 22일 at 9:22 AM

    예술가들이 사회에 당당하게 청구서를 던지라는 말씀, 서로 연대해야한다는 말씀에 밑줄을 긋습니다. 요구하기 전에 사회가 더 적극적으로 변화하면 더 좋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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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5년 05월 25일 at 12:18 PM

    예측 불가능할수록 더 뾰족하게, 세상에 균열을 일으키며
    [대담] 지능화된 기계와 예술의 공존-공생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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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5년 05월 25일 at 2:26 PM

    예측 불가능할수록 더 뾰족하게, 세상에 균열을 일으키며
    [대담] 지능화된 기계와 예술의 공존-공생
    기대만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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