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여왕을 쫓는 대신 풀 냄새를 느껴라

인공지능 시대 느릿함을 추구해야 할 이유

루이스 캐럴의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는 붉은 여왕과 함께 전속력으로 달린다. 그런데 주변은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나아가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이상하다고 느낀 앨리스에게 여왕은 이렇게 말한다. “여기서는 그냥 달려야 같은 자리, 더 나아가려면 아주 힘껏 달려야 해.” 우리가 사는 지금의 시간이 꼭 그렇다. 열심히 달렸는데 왜 나는 늘 제자리 같지?
AI는 날마다 업데이트되고, 학생들의 향유 감각은 그보다 더 빠르게 변한다. 플랫폼은 트렌드를 팡팡 찍어내고, 기술은 감각보다 앞서간다. 나도 뛰어야 한다. 수업 준비도 해야 하고, 새로운 툴도 익혀야 한다. 그 속에서 무언가를 창작하고 또 가르친다. 그런데 이상하게 감각은 흐릿해진다. 만들고 있기는 한 것인가? 시간이 누적되며 생기는 ‘나’라는 느낌도 희미하다. 이건 단순히 바빠서 힘든 게 아니다. 존재가 닳고 있는 느낌이다.
우리는 지금 ‘존재적 소진(existential exhaustion)’이라는 특이한 시간대를 지나고 있다. 피곤함이 단지 과로 때문이 아니라, 계속해서 ‘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지만 ‘살아 있는 느낌’은 사라진다. AI는 뭔가를 더 잘 그리고 빠르게 찍어내는데 나는 점점 더 느끼지 못하고 있다. 감정은 납작해지고, 지각은 반응 속도에 맞춰 짧아진다. 생각할 틈이 없고, 틈이 없으니 나를 돌아볼 여유도 없다. 스스로가 스크롤 되어 밀려나는 기분이다.
이럴 때 선택지는 두 개뿐이다. 하나는 멈춰서 기다리는 것(wait and see), 언젠가 이 기술의 가속이 안정화되기를. 또 하나는 그냥 따라잡는 것(ride a tide), 매일의 흐름을 포기하지 않고 기술의 물결 위에서 균형을 잡아 서핑하는 것. 그런데 어느 쪽이든 불안은 남는다. 기다리면 뒤처질까 봐 불안하고, 달리면 내가 뭔지 잊을까 봐 불안하다. 결국 우리는 멈추지 못한 채 달리면서도, 속으로는 브레이크를 찾는다. 그런데 중요한 건 이 속도는 앞으로 전혀 줄어들 가망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이거다. ‘우리가 우리를 심심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건 농담이 아니다. 진지한 생존 전략이다. 생각해 보자. 코로나 시기, 모두가 심심해졌을 때, 우리는 비로소 나를 들여다봤다. 카페도, 전시도, 모임도 사라지고, 하루가 텅 비었을 때 우리는 나와 단둘이 있었다. 그 시간은 불안했지만, 동시에 충만했다. ‘심심함’은 느린 시간을 동반했고, 그 느림은 ‘생각’을 가능하게 했다. 소프트웨어의 버전 업그레이드를 하지 말고, 하드웨어도 새로 사지 말고, 인터넷도 약간 느리게 유지한다. 톡에도 천천히 답하고, 걸음도 느릿하게 걷는다.
그 감각을 다시 찾아야 한다. AI는 감정을 흉내 내고, 빠른 리듬을 만들지만, 느릿한 심심함 속에 깃드는 생생한 감각은 가지지 못한다. 예술은 바로 그 느린 감각의 보존소다. 예술은 항상 효율을 거부해왔다. 예술의 가치는 ‘무쓸모’에 있다. 빨리 감동시킬 생각도 없고, 명쾌한 답을 줄 생각도 없다. 예술은 우리가 머뭇거릴 수 있도록 해주는 몇 안 되는 장소다. 그리고 그 머뭇거림 속에서 감각이 다시 깨어난다.
우리는 기술을 따라잡을 수 없다. 그건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따라가지 않는 대신, 느끼는 법을 가르칠 수 있다. 아니, 느끼는 법을 다시 배우고, 그걸 지켜내는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 예술교육은 이제 ‘무엇을 만들 것인가’를 묻는 곳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 있을 것인가’를 묻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그 질문이 불편하고 심심하게 들린다면, 내 글을 잘 이해한 것이다.
탈속도적 가치(post velocity value)는 느림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단지 속도를 늦추자는 게 아니다. 속도라는 전제 자체를 의심하자는 태도다. 중요한 건 얼마나 빨리 가느냐가 아니라,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붉은 여왕을 계속 따라가는 대신, 잠깐 멈춰서 풀숲 냄새라도 맡아보자. ‘내’가 거기 있다는 사실을, 아주 오랜만에 다시 느낄 수도 있다.
이중식
이중식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교수이며, 현재 서울대학교 문화예술원 원장이다. 연세대학교와 미국 예일대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했고 예일대학교에서 가르쳤다. 2000년에 귀국하여 삼성오픈타이드에서 인터넷 컨설팅을 담당했다. 서울대 사용자경험 연구실을 운영 중이며 연구 주제로는 로그 기반의 사용자 모델링, 보이스 인터랙션, 그리고 1인 가구가 있다. 2022년에 서울대학교 교육상을 수상하였다. 저서로는 『창조성의 원천』 『1인가구와 기술』 『인공지능과 경험의 문제』 등이 있다.
joonlee8@gmail.com
이미지 출처: 존 테니얼 삽화, 루이스 캐럴 『거울나라의 앨리스』(1871) 중. 퍼블릭 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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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uck 2025년 05월 21일 at 10:25 AM

    아 개운한 글입니다. 뜨거운 머리가 식혀지는 기분이 들었어요. 요즘 필요한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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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5년 05월 23일 at 11:18 AM

    붉은 여왕을 쫓는 대신 풀 냄새를 느껴라
    인공지능 시대 느릿함을 추구해야 할 이유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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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5년 05월 23일 at 1:06 PM

    붉은 여왕을 쫓는 대신 풀 냄새를 느껴라
    인공지능 시대 느릿함을 추구해야 할 이유
    기대만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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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희 2025년 05월 26일 at 6:05 PM

    숨가쁘게 변화하는 작금의 현실에 느림의 미학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네요 챗바퀴처럼 돌아하는 바쁜 일상에서도 자연의 푸르름, 풀냄새를 강렬하게 느끼는 요즘이기에. 해당 글이 더욱 와 닿았습니다~

  • author avatar
    물음표 2025년 06월 11일 at 10:33 AM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AI기술발전은 신경이 매우 쓰여요. 노력해서 그린 그림을 순식간에 그려버리니깐, 시간을 들여서 그리는 것에 회의감이 들더라구요. 이 기사를 보고 기술발전에 조급함보다 나 자신을 바라보는 여유를 가지고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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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uck 2025년 05월 21일 at 10:25 AM

    아 개운한 글입니다. 뜨거운 머리가 식혀지는 기분이 들었어요. 요즘 필요한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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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5년 05월 23일 at 11:18 AM

    붉은 여왕을 쫓는 대신 풀 냄새를 느껴라
    인공지능 시대 느릿함을 추구해야 할 이유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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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5년 05월 23일 at 1:06 PM

    붉은 여왕을 쫓는 대신 풀 냄새를 느껴라
    인공지능 시대 느릿함을 추구해야 할 이유
    기대만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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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희 2025년 05월 26일 at 6:05 PM

    숨가쁘게 변화하는 작금의 현실에 느림의 미학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네요 챗바퀴처럼 돌아하는 바쁜 일상에서도 자연의 푸르름, 풀냄새를 강렬하게 느끼는 요즘이기에. 해당 글이 더욱 와 닿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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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음표 2025년 06월 11일 at 10:33 AM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AI기술발전은 신경이 매우 쓰여요. 노력해서 그린 그림을 순식간에 그려버리니깐, 시간을 들여서 그리는 것에 회의감이 들더라구요. 이 기사를 보고 기술발전에 조급함보다 나 자신을 바라보는 여유를 가지고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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