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 단순하면서도 본질적인 질문을 품고 우리는 네덜란드로 향했다. 2024년 9월 16일부터 20일까지 5일간 ‘창의적 기술 주간 2024’(Creative Skills Week 2024, 이하 CSW 2024)가 열린 암스테르담은 창의적 기술과 예술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예술가의 실험정신과 정책적 뒷받침이 활발히 교차하는 도시였다. 이번 출장의 중심은 CSW 2024 콘퍼런스였고, 그 외에도 여러 예술교육기관을 만나 예술가의 역할 확장, 문화취약계층을 위한 교육 모델을 직접 경험하고자 했다. 단순한 해외 사례 탐방을 넘어, 한국의 현실에 맞는 대안을 상상해 보기 위한 여정이었다.
현장에서 가장 먼저 다가온 인상은, “예술은 직업 그 이상”이라는 믿음이었다. 암스테르담시 문화국장은 “도시 일자리의 10%가 문화 창의 산업에 속한다”라고 말했다. 숫자 너머에는 예술가가 도시의 구성원으로 존중받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단순히 창작에 그치지 않고, 정책 설계와 커뮤니티 재구성에도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예술가들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출처] CSW 2024 (사진_Mees Borst)
시아노타입스 프로젝트: 예술가의 새로운 역할과 역량 탐구
참여한 세션 중 하나는 ‘시아노타입스(CYANOTYPES, 청사진)’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다섯 가지 역량 클러스터를 탐구하는 워크숍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문화 및 창의 산업 내의 역량 생태계를 재구성하기 위한 범유럽 프로젝트로 유럽연합이 공동으로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문화 및 창의 산업 부문의 진화하는 요구와 기술 격차를 해결하기 위해 디지털, 친환경, 사회적 전환을 탐색하는 데 필요한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기술 프레임워크를 개발하고 공동창작, 강사 양성(Train-the-Trainer), 지역 기술 생태계 육성 등 다양한 프로젝트와 활동을 펼치고 있다.
| 5가지 역량 클러스터 중 ‘공공 영역’ 세부 역량 | |
|---|---|
| [자아] 가치 있는 일 하기 Working with values |
포용적 환경을 만들고, 핵심 가치를 이해하며, 다중 이해 관계자 간 상호 존중과 이해를 바탕으로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 |
| [세계] 경계 확장 Boundary spanning |
다양한 영역에서 창의적인 솔루션을 찾고, 학제 간 협업을 통해 효과적인 소통과 협업을 촉진하여 공유된 해결책을 도출 |
| [구상] 예측적 혁신 Anticipatory innovation |
미래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혁신 이론과 창의적 실천을 통해 혁신을 촉진하며, 위험 감수와 실패를 중요한 과정으로 받아들임 |
| [탐구] 내러티브 디자인 Narrative design |
매력적인 스토리를 만들어 청중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커뮤니케이션을 조정하며, 스토리텔링을 강화함 |
| [참여] 변화 관리 Managing transformation |
변화의 영역을 파악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며, 이해관계자를 참여시켜 혁신적인 시도를 이끌고, 경제 이론을 분석하여 변화를 위한 전략을 효과적으로 전달함 |
그중 ‘공공 영역’(Public Agency)에 속한 역량은 예술가에게 요구되는 새로운 언어처럼 느껴졌다. 워크숍 참가자들은 이 역량을 두고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며, ‘예술가’라는 직업이 점점 더 복합적인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는 점에 공감했다. 특히 ‘가치 있는 일 하기’와 ‘변화 관리’ 역량을 통해 예술가로서 사회적 책임과 파트너십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경계 확장’과 ‘예측적 혁신’은 예술가가 다양한 분야와 협업하며 창의적 문제 해결의 중요한 주체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을 실감하고 있었다. 또한, ‘내러티브 디자인(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예술이 단순한 감정의 표현을 넘어 사람들과 깊은 소통을 통해 사회적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는 점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나아가, 예술가의 역할은 개인적 창작뿐 아니라, 다각적인 시각과 역량을 계발해야 함을 논의하였다.
컬처로켓: 예술가의 자기 탐색과 지속 가능한 경로 찾기
벨기에 플랑드르 지역의 공공고용서비스(VDAB)가 의뢰하고, 문화 분야 기업 지원기관 ‘컬처로켓’(Cultuurloket)이 진행한 비스아트(BISART) 프로그램은 실업 예술가를 위한 4주간의 교육 프로그램이다. ‘비스아트 & 문화적 가치 스캔’ 워크숍에서는 비스아트에 대한 기조연설과 함께 예술가가 자신의 소득 모델을 분석하고 혁신하는 도구인 ‘문화적 가치 스캔(Cultural Value Scan)’에 대한 워크숍을 진행했다. 워크숍 시작부터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나는 어떤 예술가인가?” 예술로 생계를 꾸리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혹은 상업적 예술가가 되는 것이 본질에서 벗어나는 일은 아닌지, 참여자 대부분이 처음에는 불안감과 혼란을 안고 교육을 시작했다. 하지만 비스아트는 예술가에게도 ‘비즈니스 모델’이 필요하다는 것을 부드럽고 현실감 있게 풀어낸다. ‘나는 누구인가’에서 시작해 ‘어떻게 수익을 창출할 것인가’까지, 예술가로서 살아가기 위한 여섯 개의 질문을 함께 고민하며 답을 찾아간다.
· 나는 누구인가
· 내 작업은 어떻게 조직할 수 있을까
· 수입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 누구와 일하고 싶은가
· 나를 어떻게 소개할 것인가
· 예술가로 살아가기 위한 계획은 무엇인가
이 과정은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었다. 참여 예술가들은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진행되는 강도 높은 프로그램 속에서 자신을 정리하고 함께 고민하며 점점 자신감을 찾아갔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문화적 가치 스캔’이라는 도구였다. 예술가 스스로 자신의 수익 모델을 점검하고, 강화할 지점을 찾아보는 워크숍 도구인데, 예술을 수치화하거나 환산하는 시도라기보다 존재를 지속 가능하게 하기 위한 성찰의 도구에 가까웠다. 비스아트 프로그램에서 만난 예술가들은 서로를 깊이 신뢰하고 있었다. 질문을 던지고, 망설임 없이 자신의 약점을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 그것이 비스아트가 가진 가장 큰 힘처럼 느껴졌다.
로테르담예술교육재단: 지역사회와 함께 숨 쉬는 예술
로테르담예술교육재단(Stichting Kunstzinnige Vorming Rotterdam, 이하 SKVR)은 예술가와 지역사회를 잇는 든든한 다리 같은 존재였다. 약 700명의 예술가와 협업하며, 매년 10만 명이 넘는 로테르담 시민이 SKVR을 통해 문화예술을 경험하고 있다. 이 기관이 특별한 이유는, 예술을 단순히 교육이나 체험으로만 접근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예술가 한 명 한 명의 태도, 시간 약속을 지키는지, 참여자와의 호흡은 어떤지 등을 중요하게 살핀다. 예술가를 선발할 때도 화려한 학력이나 경력보다, 공동체와 연결될 수 있는 태도와 감각을 더 중시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SKVR은 예술가와 커뮤니티가 함께 배우는 구조를 지향한다. 새로운 교육 접근법이나 기술이 도입될 때, 예술가들은 서로의 경험을 나누며 실험하는 ‘동료학습’ 시간을 운영하는데, 이는 서로를 성장시키는 기반이 되어준다. 특히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 중 하나는 ‘함께 그림 그릴까?(Schilder je Mee?)’ 였다. 코로나19 기간 중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지역 방송에 광고를 내고, 150명의 노인 참가자에게 물감과 캔버스를 우편으로 보내 온라인 수업을 열었다. 현재는 4번째 시즌까지 이어지며 1,000명이 넘는 지역 주민이 참여했으며, 일부 작품은 박물관 전시로 이어졌다. 단순한 예술 활동을 넘어, 지역의 고립된 이웃과 정서적으로 연결된 사례였다. 또 하나는 로테르담 내 카리브계 이주민 학생들을 위한 브라스 밴드 프로그램이다. 매주 70여 명의 학생이 모여 악기를 연주하는데, 이는 단순한 음악교육을 넘어 커뮤니티의 정체성을 지키는 문화 활동으로 기능하고 있었다.
예술이 사회에 닿는 방식을 고민하며
이번 네덜란드 출장에서 가장 깊이 남는 고민은 ‘예술이 사회에 닿는 방식’에 대한 것이었다. 예술가의 활동 범주와 문화취약계층에 대한 접근은 서로 다른 듯하지만, 결국 하나의 지점으로 이어졌다. 예술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잇는다는 아주 단순한 진실 말이다.
먼저, 예술가의 활동 범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예술은 무대 위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예술가는 창작자이자, 커뮤니티의 일원이며, 때로는 정책을 설계하는 조력자였다. 현장에서 만난 이들은 사회의 다양한 요구에 예술로 응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응답은, 단지 ‘작품’이라는 형태로 끝나지 않았다. 예술가들은 사회적 약자와 협력하고, 새로운 기술을 실험하며, 각기 다른 배경의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해가고 있었다. 그들이 창출하는 ‘가치’는 경제적 수치보다 더 넓은 영역에서 존재했다. 변화를 만들어내는 힘, 소통을 가능케 하는 언어. 그게 바로 예술가의 역량이었다.
문화취약계층에 대한 시선 역시 변화했다. 예술교육은 단순히 무언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함께 살아가는 힘’을 키우는 과정에 가까웠다. 예술을 매개로 자신감을 되찾고,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회복해나가는 참여자들의 모습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예술은 그 자체로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리게 하고, 또 다른 이의 침묵에 귀 기울이게 한다. 때로는 낯선 사람을 연결하고, 단절된 관계를 복원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순간들 속에서 우리는 문화예술교육이 얼마나 강력한 사회적 도구가 될 수 있는지를 체감하게 된다.
결국, 이번 출장은 질문을 더 많이 만들어준 시간이었다. 예술가와 시민은 어떻게 만나야 하는가? 교육은 예술의 감수성을 어떻게 품을 수 있는가?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가? 이 질문들을 한국 현실에 맞게 다시 꿰어보는 것, 그것이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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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사회와 어떻게 만날까
2024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국외출장자 기고① 창의적 기술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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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사회와 어떻게 만날까
2024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국외출장자 기고① 창의적 기술 주간
기대만점이네요
예술이 사회와 만나서 예술가들의 역할이 확장되고 변화하는지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제게는 예술가이면서도 사회의 일원으로써 어떤 방향을 가지고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지침서처럼 느껴졌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