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넝쿨. 이름에서부터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 ‘밝’이란 성이 존재했던가. 실제 성은 ‘박’이다. ‘밝’은 그가 선택한 성. 흥미롭게도 ‘넝쿨’은 그의 할아버지가 내려준 이름이다. 지금도 파격이나 당시로써는 더욱 파격이었을 터. 그래서인가. 단체명도 예사롭지는 않다. ‘오!마이라이프 무브먼트 씨어터’. 보통은 안무가의 성이나 이름을 붙이거나, 혹할만한 추상적 개념어를 사용하곤 하는데, ‘오! 마이 라이프’라니! 오! 마이 갓! 이름의 의미에 대해서는 인터뷰 답변을 확인하시기 바란다. 다만 그의 창작활동이 단체명과 맥을 함께 한다는 사실만 미리 언급하고 싶다. 덧붙여, 그 창작활동이 그의, (안무가) 부부의, 그리고 “(두 자녀와 함께 하는) 가족공동체의 삶”과 유리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거칠게 결론을 당겨 말하자면, ‘춤이 곧 삶이고, 삶이 곧 춤이다’. ‘돌봄의 삶과 춤의 역학관계’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아래 대화에 이어진다.
큰아이 나이가 어떻게 되죠?
열세 살이에요, 아직 초등학생. 둘째는 여섯 살.
예전 인터뷰를 보니, 자녀 교육을 위해 서울 생활을 접고 남양주로 이주하셨더라고요.
시골 동네였어요. 제가 시골 출신이라, 너무 빨리빨리 돌아가는 도시 생활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아이 교육이었는데, 아이에게 좋은 유치원이 있더라고요.
어떤 유치원이었어요?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곳이었어요. 도심에 있는 유치원은 공간적 제약이 많잖아요. 그런데 거기는 뒤에 산도 있고 텃밭도 있고, 공간이 넓은 한옥유치원이었어요. 그런 모든 환경이 아이에게 좋을 것 같았어요.
아무래도 생계를 위한 활동도 하셨어야 할 텐데, 거리나 시간 등에서 오는 고충은 없었나요?
그런 부분은 있죠. 아이 낳기 전에는 주로 밤늦게까지 연습했었는데, 지금은 아침 일찍 9시부터 연습을 시작해요. 그래서 저희와 함께하는 무용수들이 엄청나게 힘들어하죠. 다른 단체들은 보통 점심이나 오후에 연습을 시작하니까요. 그리고 둘째가 아직 6살이라, 유치원 끝나는 시간에 데리러 가야 해서, 보통 단체와 관련된 일은 4시 이전에 끝내려 해요. 남은 작업이나 개인 작업은 저녁에 하는데, 되도록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시간을 엄청 꼼꼼하게 쓰고 있어요.
아내도 안무가라 두 분이 시간을 쪼개서 육아해야 할 텐데요.
육아는 같이해야죠. 안 그러면 요즘 (세상에) 쫓겨나요. 같이 하는 게 여러모로 낫기도 하고요.
오늘 인터뷰 주제가 ‘돌봄’입니다. 그래서 바로 돌봄 이야기를 꺼냈는데요, 돌봄, 육아가 창작활동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창작의 방향성이 달라진 부분은 당연히 있어요. 그러려면 먼저 단체명부터 설명해 드려야 할 것 같아요. 저희가 공식적으로는 2006년에 ‘삶과 춤, 어디든 극장이 될 수 있다’라는 의미로 ‘오!마이라이프 무브먼트 씨어터’를 창단했어요. 둘(밝넝쿨, 인정주 부부)이 삶과 유기적으로 관계 맺고 변화하는, 나름 ‘회귀하는 몸’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몸에 집중한 작업을 했었죠. 그러다 2011년에 아이가 태어났는데, 이전에 해오던 작업방식으로는 부딪히는 지점이 아주 많더라고요.
예를 들어 어떤 점이 부딪히던가요?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진 저희가 맨날 하는 게 연습하고 공연하는 거였어요. 그 10년간 모든 작업의 주제가 다 춤이었어요. 할 줄 아는 게 춤밖에 없었으니까. 춤에 관한 이야기만 나누고, 춤에 대한 춤만 췄어요. 춤을 벗어난 작업을 한 기억은 없어요. 춤추면서 겪었던 삶의 모습들이라거나 춤 안에 있는 이야기들을 주제로 다뤄왔었거든요. 그래서 춤이랑 삶이 분리되어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못했는데, 아이가 태어나니 완전히 다른 거예요. 예전의 작업방식과 부딪히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잠깐 멈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고민의 과정에서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작업이어야 삶이랑 유기적으로 연관될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동심으로 바라보는 세계관’에 대한 작업을 2016년부터 시작하게 되었어요.
‘동심으로 바라보는 세계관’이요.
표현에 오해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데요, 제가 아이를 바라보며 춤 작업을 확장한다는 의미가 아니에요. 제가 아이의 눈을 통해서 보는 방식인 거죠. 그 둘이 완전히 다른 의미거든요. 아이의 눈을 통해서 본다는 건, 진짜로 제가 아이가 된다는 거죠. 아이랑 같이 놀면서 제가 아이의 마음이 되지 않으면 공감하기가 어려운 지점들이 있다는 걸 느꼈어요. 그런 것들을 조금씩 일상에서 깨달으면서, ‘동심으로 바라보는 세계관’이라는 화두를 설정하게 됐어요.
“아이의 눈을 통해서 본다”라는 게 말은 쉽지만 막상 실천하는 게 쉽지는 않을 텐데, 구체적인 방법론이 있으면 소개해 주시겠어요?
일본의 ‘부토’라는 춤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부토의 철학 중에 ‘되다’라는 것이 있어요.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보고 판단하고, 거기에서 영감을 받아서 자신을 변화시키는 게 아니라 스스로 타자화된다는 거예요. 완벽하게 타인이 되어서 그 상태를 신체로 구현해내는 거죠. 아이의 눈을 통해 본다는 건, 아이의 행동을 똑같이 따라 하는 게 아니라, 아이의 상태가 된다는 의미 같아요. 사실 저한테 애 같은 면도 있고요.
아직도 좀 어려워요. 예를 들어 의자를 표현할 때, 의자를 흉내 내는 건 가능한데, 의자가 되는 게 가능한가요?
가장 근본적인 건 태도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대상을 대하는 태도가 변하면, 결과물이 변하는 것 같아요. 대상을 오래 바라보고 감정을 이입하고 사유하다 보면 그 물리적 시간이 다른 결과물을 내는 거죠. 사실 무용계에서 아주 새로운 방법론은 아니지만,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그게 아이들 공연을 만드는 태도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 공연을 만들 때 수준을 낮추는 작업을 할 수도 있잖아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다는 핑계로 자신의 작업을 쉽게 깎아내릴 수 있는 계기를 만나게 되거든요. 그런 걸 경계하고 싶었어요.
맞아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공연에 대해 ‘수준이 낮다’ ‘주제가 구태하다’는 편견이 있죠.
저도 처음에는 그럴 것 같아서 어린이 공연을 하는 작업자들을 경계했어요. 그런데 오랫동안 어린이를 위해서 작업하는 여러 장르의 예술가들을 만나 보니, 정말 진지하게 작업하시는 분이 많더라고요. 말 그대로 자신을 다 던져서 작업하시는 분들이었어요. 감동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그러면서 저 스스로 “정신 차려!”라고 자성한 적도 많아요. “어린이 공연은 수준이 낮다”라고 평하시는 분 중 어린이를 위한 작업을 하지 않는 분들이 많을 거예요. 막상 작업하다 보면 태도가 바뀝니다. 그건 예술가들이 가진 인성 때문이 아니라, 아이들이 가진 힘 때문이에요.
  • 공상물리적 춤
잠시 이야기가 곁으로 샜는데요, ‘동심으로 바라본 세계관’이 <동물극장 춤>이나 대표작인 <공상물리적 춤>에 어떻게 반영되었나요?
두 작품 다 제가 아이랑 함께 놀면서 만든 작품이에요. 처음에는 아이랑 놀아주는 게 힘들더라고요. 30분 이상을 놀아주기가 어려웠어요. 그러다가 제 태도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제가 아이랑 ‘놀아주고’ 있던 걸 깨닫게 되었어요. 아이랑 놀아야 하는데, 놀아주고 있던걸. 아까 부토의 ‘되다’를 이렇게 설명해 드릴 수 있겠네요. 내가 아이가 돼서 아이랑 “같이 놀아야” 하는 거죠. 그렇게 깨닫고 나서는 아이랑 놀 때, 제가 제일 좋아하는 연습복으로 갈아입고 5분 정도 몸을 푼 다음에 “같이 놀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연습도 되더라고요. 그런 시간이 쌓이면서 아이와의 놀이를 작업으로 연장하고 싶은 욕망이 생겼고, 그렇게 탄생한 게 <공상물리적 춤>이랑 <동물극장 춤>이에요.
듣다 보니, 안무에 아이 이름을 넣어주어야 할 것 같은 생각도 드네요. 그런데 아이와 놀며 움직임을 연마할 수는 있을 텐데, 작품에는 주제 같은 게 있잖아요. 그런 건 어떻게 정하셨어요?
미리 주제를 생각하고 작업한 게 아니라, 놀면서 보내는 시간이 작업을 형태를 뭉글뭉글 만든 것 같아요. 그건 일련의 시간이 쌓여서 드러나는 것이지, 생각해서 만들어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연습 시간이 몸에 축적돼서 작품에서 드러난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뭔가 따로 생각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건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첫째랑 둘째랑 나이 차이가 있잖아요. 둘의 정서도 다를 테고. 대부분 작업이 첫째에게 맞춰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데, 둘째를 키우며 예전 작업에 관한 생각이 바뀌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지금 말씀하신 게 너무 맞아요. 처음에 일부러 맞추려고 한 건 아니지만 작품이 첫째 아이의 연령에 맞춰지다 보니, 대상 연령대가 이렇게 계속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긴 했어요. 그리고 지금은 우리 아이를 비롯해서, 아이 친구들이나 그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그 부모로 세계가 확장되는 것 같아요.
  • 2022 꿈의 무용단 <꿈꾸는 몸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작품을 안무할 때와 성인 대상의 작품을 안무하는 과정이 많이 다른가요? 비슷한가요?
어떤 시점에서 보느냐에 따라서는 굉장히 다를 수 있는데, 비슷하기도 해요. 저는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일본 애니메이션 작가인 미야자키 하야오 인터뷰에서 읽었는데, “어른들의 세계에서 최상의 작업이 아이들을 위한 작업이다”라는 인터뷰가 있었어요. 그러니까 아이들을 위한 작품이면 뭔가 아이들만을 위한 작업이 있는 것 같지만, 중요한 건 최상의 작업을 보여주는 거죠.
그래도 3세 미만의 영유아 대상의 작품은 다른 방법론이 있지 않나요?
물론 기술적인 요소가 필요하긴 해요. 하지만 그런 기술이 궁극적인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목적 없이 기술로만 접근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기술적으로는 어떤 게 필요하고, 어떤 연구를 하나요?
사실 어린이, 특히 영유아는 월령 별로 달라서 더 세심하게 들여다보아야 해요. 공부가 굉장히 많이 필요하고 전문가의 도움도 필요한 분야예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부분이 있는데, 예를 들어 음량이나 조도 같은 거죠. 소리가 너무 크면 안 돼요. 조명도요. 그래서 우리는 공연 때 대형 모기장을 사용하는데요, 무대적 요소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빛을 한번 차단하기 위해서 사용해요. 그리고 처음에 아이들과 만날 때 거리도 중요해요. 낯선 사람을 보았을 때, 거리가 최소 5미터는 되어야 심리적 안정감을 느낄 수 있거든요.
어린이 공연이나 청소년 공연은 라포 형성이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아이들과 거리를 좁히는 본인만의 비법이 있을까요?
뭔가 가르쳐주고 뭔가 해주려고 하면 안 돼요. 아이들도 알아요. 아이들과 함께하려고 해야죠. 결국은 태도인 것 같네요.
부토의 ‘되다’가 정답인가요?
마치 제가 부토에 정통한 것처럼 오해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책을 읽다가 한 구절을 발견했을 뿐인데. 그 한 줄에 제가 의미를 엄청 부여한 걸 수도 있지만, 저한테는 상당히 중요한 화두예요.
인터뷰가 거의 끝나가는데, 혹시 돌봄과 창작을 병행하면서 생기는 애로, 애환은 없나요?
쉽지 않죠. 아내와 농담처럼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저랑 아내랑 분신술을 써서, 최소 4명은 되어야 돌봄과 창작이 가능하지 않을까. 둘 다 병행하다 보니 반쪽짜리 작업인 것 같은 느낌도 들고, 반쪽짜리 돌봄 같은 생각도 들고요. 그리고 제가 아이들을 위해서 공연을 만들고 있는데, 아이들이 못 볼 때도 있어요.
권장 연령이 안 돼서요?
그렇기도 하지만, 영유아극을 할 때 둘째가 어렸거든요. 공연을 보러 온 다른 아이들의 관람에 방해가 될 수 있어서. 그런 실질적인 애로사항들이 많아요. 오히려 우리 아이들은 못 보니 서운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권장 연령이라고 하는 게, 모두가 볼 수 있지만, 해당 연령대가 보면 더 적당한 공연이라는 거지, 그 아이들만 보라는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많은 분이 그 연령대만 보는 거로 생각하시는 것 같아서 조금 아쉬워요.
한편으로는 요즘에 매체 환경이 바뀌면서 초등학교 아이들도 영상을 많이 보잖아요. 그런 영상 중에 자극적인 게 많은데.
그렇죠. 아이들 보기에 공연은 슴슴하고 재미없는 된장국 같은 느낌이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자극에 익숙해지기 전에 슴슴한 맛의 그 느낌을 알아야 해요. 영상이 시대의 흐름이라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지만, 다른 맛이 있다는 것도 알면 좋지 않을까요? 다른 예로, 흙을 밟아보는 경험도 중요하잖아요. 아이들 공연은 그것과 비슷할 것 같아요. 발바닥에서 전해져오는 촉감이나 흙의 냄새 같은 걸 경험하는 거죠.
장시간 인터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단 녹음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아,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작년이 어린이날 100주년이었고, 올해가 어린이 선언문 발표 100주년이거든요. 제가 아까 이야기한 것들, 고민한 것들은 100년 전에 방정환 선생님이 다 하셨어요. 그런데 100년의 세월이 지났는데도 현실이 크게 달라지지 않은 건, 생각해 볼 문제 같아요. 이제는 아이들한테 주도권을 줘야 할 시대가 아닐까요? 공연도 부모가 선택하는 게 아니라, 아이를 믿고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는 거죠. 아이들이 주체적으로 할 수 있게 공간을 주는 게 어떨까 싶어요. 그 말을 꼭 남기고 싶네요.
밝넝쿨
밝넝쿨

몸의 가능성을 작업의 끈으로 삼아 국내외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무용수이자 안무가이다. ‘나와 춤과 삶 그리고 극장’이라는 뜻을 가진 단체 ‘오!마이라이프 무브먼트 씨어터’를 이끌며 현대무용의 대중적 접근을 끌어내는 작업으로 여러 계층의 관객을 만나고 있다. 동양철학의 근간이 되는 음양오행을 기반으로 ‘무용하는 생활’을 위한 <저마다의 무용 – 춤 처방>과 <댄스를 부탁해 5>를 기획해 춤의 가능성을 확장했고, 최근 ‘미래를 여는 프로젝트-동심(童心)으로 바라보는 세계관’이라는 화두에 집중하며 아이들과 전 세대를 위한 무용 작업을 진행 중이다. 2016년 발표한 <공상물리적 춤>은 통해 평단으로부터 ‘기존 춤 구성을 완전히 탈피한 새로운 장르 개척자로 인정할 만하다’라는 호평을 받으며, 한국춤평론가협회 올해의 작품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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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송
김일송
공연 칼럼니스트이자 공연 관련 서적을 전문으로 출판하는 책공장 이안재 대표소사이다. 공연문화월간지 [씬플레이빌]과 서울무용센터 웹진 [춤:in], 예술경영지원센터 국제교류 플랫폼 [더아프로] 편집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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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상_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