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관심을 가지고 보살피는 행위, 건강한 생활을 지속하고 몸과 마음의 회복을 돕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사람은 홀로 살아갈 수 없기에 제대로 된 돌봄을 하고, 돌봄을 받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하다. 예술 경험은 자존감을 회복하고 타자의 소중함을 새롭게 인식하게 함으로써 서로 돌봄하는 힘을 더 단단하게 한다. 문화예술 현장에서는 팬데믹 이전부터 돌봄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교육을 시도해 왔다. 그 과정에서 ‘더 나은 돌봄을 위한 문화예술교육의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물음표가 매번 떠올랐다. 이 고민에 대해 깊이 있고 촘촘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람, 누구에게나 안전하고 다정한 사진관 ‘언니와 호랑이’를 운영하는 성평등 교육활동가 혜영 작가를 만났다.
Q.

한 인터뷰에서 “큰 병을 겪고 난 후 더 많은 이들과 관계 맺고 도우면서 나이 들고 싶다”라며 언젠가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싶다고 했는데, 드디어 ‘언니와 호랑이’를 열었다. 어떤 공간인지 소개 부탁드린다.

A.

어떤 이들은 분명 가족공동체를 이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으로 비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가족사진을 찍고 싶어도, 카메라를 쥔 사람의 시선 때문에 불편할 것 같았다. 시선의 윤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여성과 소수자 인권 사진 작업을 하면서 느꼈고 안전한 시선에 대한 필요성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진관 ‘언니와 호랑이’는 카메라를 쥔 사람의 권력이 보이지 않고 누구나 카메라를 안전하게 누리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Q.

작업하면서 나도 모르게 카메라가 무기가 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때마다 두렵고 불편했는데, 작가님의 작업을 보면 카메라가 곁에 있는 존재라는 느낌이 든다.

A.

저도 매번 경계하고 주의하는 점이다. 카메라 앞에 선 대상과 카메라를 쥐고 대상을 보는 사람은 권력이 같을 수가 없고, 같지 않다고 생각해야 내가 그 사람 곁에 다가갈 수 있다. 조심스럽게 항상 동의하는지 묻고 촬영 결과물을 나만 독점하지 않고 같이 나누려고 하면서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를 꼭 공유한다. 촬영 초반에는 좋은 사진이 나오기 힘들다. 대상이 내 카메라를 신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부터 조금 나아지는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 저도 계속해서 신뢰를 줄 수 있도록 태도에 있어 많이 노력한다. 그동안 (사회) 운동으로서의 사진 작업을 해왔다. 현장과 계속 연결돼 있으려고 했고, 어떤 이슈가 있는지, 어떤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는지, 그리고 내가 저 사람 옆에서 지금 같이 목소리를 내는 사람인지에 대한 것을 계속 확인한다. 그러면 그 사람들 곁에 있는 사람으로 느껴지지 않을까.

Q.

누군가의 곁에 있는 사람. 그럼 작가님 곁의 ‘사진’은 어떤 의미가 있나?

A.

사진은 내게 운동이기도 하지만 어떤 놀이 같은 역할도 한다. 무엇보다 엄청나게 소진되어 있을 때 사진이 삶의 전환이 되었다. 예술이 치유의 기능이 있다고 하잖나. 저는 그 말을 믿는다. 나에게 회복과 자기 돌봄, 치유의 역할을 하는 것이 사진이었다.

  • 《몸들의 말하기》
Q.

사진전 《몸들의 말하기》에서 작가님의 자화상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A.

마지막 조직 생활이 비정규 계약직이었는데 너무 많이 소진됐었다. 이대로 ‘나’를 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퇴사하고 사진 치료를 알게 되었고 많은 도움이 되었다. 다른 누군가에게도 자기 돌봄과 회복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에 〈나를 만나는 사진수업〉을 시작했다. 수업 참여자들이 자화상 사진을 촬영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빈 공간에 들어가서 어떤 메시지를 드리면 참여하신 분들이 직접 촬영을 한다. 그 후에 사진을 함께 모니터링하며 자기 모습을 발견하는 거다.
제가 암 수술을 하고 나서 약 5개월 정도 항암 치료를 했었는데 치료 종료를 앞둔 시점에 자화상 사진을 찍었다. 항암제를 가슴에 투약했던 관이 아직 삽입된 상태에서의 몸을 기록해 보자고 생각했다. 항암 치료가 끝나고 다른 몸으로 전환되기 직전에 나를 기록할 필요성을 느꼈던 것 같다. 지금도 그 사진을 잘 보이는 곳에 붙여놨는데 볼 때마다 힘을 받고 있다. 달라진 몸에 대한 자기 대면이라고 생각한다. 질병의 시간을 사진과 함께 통과하며 느낀 것이 많았고 지금은 몸다양성교육단체 프리즘에서 ‘호혜적 돌봄과 시민적 돌봄’에 대한 수업을 하고 있다.

Q.

돌봄과 관련해 기억에 남은 수업 이야기가 있다면 들려달라.

A.

작년에 SH 서울주택도시공사 청신호(청년과 신혼부부를 위한 호~옴)에서 20대 청년 대상으로 자기 회복 돌봄 프로그램을 의뢰했는데, 프리즘에서 대상을 20~30대 청년 여성으로 다시 제안했다. 청년 여성과 남성은 돌봄에 대한 필요와 감각이 매우 다르다. 코로나19 이후 젠더 폭력에 의한 고립감과 두려움이 더 커지기도 했던 터라 서로 연결되어서 회복을 돕고 사회적 구조를 돌아보는 수업을 했다. 그런데 마지막 수업 전날 10.29 참사가 일어났다. 참여자들은 그 전날 또래의 죽음을 목격했고, 자기 속에 있던 울분이 터진 거다. 개인의 잘못, 결핍, 부족함으로 힘든 게 아니라 사회적 제반의 부재와 구조적 문제가 있음을 알아차린 시간이었다. 그때 함께 소리 내 울고, 울분을 토하는 과정에서 연결되는 느낌이 들었다.

Q.

안전한 장소, 안전한 관계가 만들어져야 더 많은 돌봄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촘촘하고 단단한 연결이 필요한데, 예술교육 현장에서 연결, 연대로 이어가기가 쉽지 않다.

A.

계속 현장과 연결되고자 참여하는 게 저의 방식이다. 돌봄 이야기를 할 때도 참여자들에게 계속 제안한다. ‘고립되지 말고 연결되어야 한다. 연결될 때 우리가 원하는 돌봄의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라고. 그렇지만 사실 연결, 너무 힘들잖나. 자본주의 시대는 연결보다는 독자적인 삶이 더 나은 것처럼 보이는 사회라서 연결과 연대를 상상하기에 너무 어려운 것 같다. 그럼에도 저는 연결되고, 연대하는 상상을 같이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그래서 제안을 계속하고 있다.

  • 여성주의 자기회복 워크숍 ‘안녕’
    몸다양성교육단체 프리즘X버터나이프 크루
  • 워크숍 ‘안녕’(청신호 명동)
     
Q.

수업할 때 ‘돌봄 키트’를 활용한다고 했는데, 어떤 건가?

A.

아주 친밀한 관계에서도 ‘돌봄’ 주제를 꺼내면 민폐가 되지 않을까 내적 긴장이 있는데, 보드게임처럼 대화카드를 활용하면 참여자들이 미처 생각지 못했던 돌봄을 알아차릴 수도 있고, 좀 더 편안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 프리즘에서 연구하고 만든 돌봄 키트는 ‘나다움 돌봄 안내서’ ‘돌봄 상상 노트’ 그리고 ‘서로돌봄대화카드’로 구성되어 있다. 서로돌봄대화카드는 질문카드와 대화카드로 이뤄져 있고 이 중 질문카드는 총 14장인데 시작과 마무리 카드를 제외한 12장으로 놀이의 형식처럼 질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며 돌봄 지도(map)를 완성해 나간다. 12장의 카드 안에는 돌봄과 관련된 질문이 담겨 있고, 질문을 중심으로 자신이 나눠가진 대화카드로 이야기를 해나가는 거다. 얼마 전 대구에서 워크숍이 있었는데 참여자들이 ‘돌봄은 귀찮은 것이라 여겼는데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돌봄 받는 연습이 필요하겠다’ ‘돌봄에 대한 막연함으로 불안했는데, 그 불안감을 조금 가시게 했다’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Q.

돌봄 키트가 더 많은 현장에서 활용되면 좋을 것 같다. 마무리 카드에 ‘서로 돌봄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적혀있는데, 이에 대한 작가님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겠다.

A.

아픈 사람이 아픈 몸에 대해 말하는 게 너무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시민사회는 그 이야기를 귀 기울일 수 있어야 한다. 아픈 사람, 취약한 위치의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려 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확산시키는 게 필요하다. 저도 그 역할을 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그래서 각자의 돌봄의 경험을 함께 나누는 자리를 만들고 싶다. 저는 1인 가구 비혼 여성이다. 아플 때 병원에 가면 법적 가족을 찾는다. 하지만 나를 돌봐왔고 내 몸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은 가족이 아닌 지인들이다. 그럼에도 법적 가족 외엔 그 어떤 권한을 주지 않는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법적 가족 외의 관계도 인정하는 제도와 그 관계가 잘 성장할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 점점 늘어나는 1인 가구에 ‘고립되지 말라’고 하면서 정작 당사자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않는다. 그래서 더 목소리를 내는 일이 필요하다.

  • 서로돌봄카드
Q.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아무도 듣지 않는 것 같은 막막함이 들 때가 있다.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가야 할 텐데, 어떻게 가능할까?

A.

제가 가진 관점, 행하는 활동이 사회가 기꺼이 반기거나 주류의 주제가 아니잖나. 돌파는 늘 어렵고, 저항과 반발을 언제 어디서든 나타나고, 그래서 늘 막막하고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늘 막막하지만은 않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하는 사람들, 앞서서 하는 사람들이 있다. 앞에도 옆에도 함께 하는 동료들이 있어서 할 수 있고 또,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중학교 수업하러 가면 성평등 교육을 모두가 반기지는 않는다. 대부분 불편해 보이는데, 그중 한두 학생이 눈을 반짝이며 간절한 마음 담아 수업에 참여하는 걸 본다. 이런 걸 보면 의미 있는 일이다. 이들을 보고 가는 거다. 이들이 제게는 막막한 현실을 막막하지 않게 만들 힘을 주는 존재인 것 같다.

Q.

막막함을 막막하지 않게 만들려면 잘 돌보는 법을 알아야 하겠다. 특히 예술가, 예술교육가에게 서로 돌봄이 참 필요할 것 같다.

A.

누구에게나 자기 돌봄이 필요하지 않을까. 지금처럼 혼란한 시대엔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그러려면 내 위치가 어디인지를 자꾸 확인해야 한다. 성평등 교육할 때 누구도 늘 강자나 약자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내 위치와 환경, 가진 자원에 따라서 그 힘의 상관관계가 달라진다. 그래서 내가 가진 힘을 잘 읽어내고 그 힘을 잘 쓸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누군지, 잘 가고 있는지를 계속 읽어내야 다른 누군가도, 자신도 힘들지 않게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정말 힘들면 멈출 수도 있어야 하고 힘들다고 말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주변에 같이 읽어내 주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Q.

돌봄을 이야기할 때 돌봄 노동에 한정해서 생각하게 된다. 누구나 취약하기에 어떤 돌봄을 받고 싶은지, 어떤 돌봄을 하고 싶은지 질문을 던지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A.

은평구에 있는 여성주의 의료기관인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 조합원의 입장에서 ‘돌봄장’을 제안한 적이 있었다. 죽기 전에, 죽음을 고민하며 쓰는 유언장 대신 살아 있을 때 서로를 잘 돌볼 수 있게끔 생각하며 쓰는 거다. 그러다 어느 날 돌봄장 제작 기획단이 되어 실제로 만들 수 있었다. 돌봄장 첫 부분에 ‘돌봄 체크리스트’가 있는데, ‘친구가 아플 때 집에 가서 청소해 준다. 반려동물을 돌봐준다, 청구서를 해결해 준다, 안부 전화를 한다’ 등 일상적인 돌봄 내용이 적혀있다. 돌봄이라는 크기를 작게 작게 쪼개어, 정말 사소하고 소소하게 일상 속에서 누군가를 위해 할 수 있는 작은 행위나 작은 마음을 먹는 것으로 생각하면 어떨까. 저는 이런 게 돌봄이라고 생각한다. 작고 구체적인 것들이 모여야 실생활에서 실천으로 이어져 나올 수 있다. 돌봄을 하나씩 하나씩 같이 생각해 본다면, 막연하고 거창한 것, 나와 동떨어진 것, 또는 어떤 특정한 사람한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닌 게 된다.

Q.

예술교육 현장에서 막막할 때가 많은데, 이렇게 연결해서 서로의 위치를 되돌아봐 주고, 서로 돌봄을 하며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작가님이 앞으로 걷고 싶은 길과 그 길에 함께 하고픈 사람이 있는지 궁금하다.

A.

워크숍 할 때, 관계 맺기에 관한 나의 경험을 이야기하면 참여자들이 ‘당신은 주변에 그런 친구가 있으니까 가능했고 관계 자원이 충분하니까’라고 한다. 저는 투병 이후 ‘서로 돌봄 릴레이’의 경험으로 다른 돌봄 관계를 상상할 수 있었던 거다. 내가 잘살아 내는 방법, 살아가고 싶은 방식은 이미 맺은 이 관계를 잘 유지하는 거다. 그 관계 안에서 욕구도 잘 드러내고. 돌봄 받기 위한 연습과 내 몸에 대한 인정 그리고 이러한 관계에 대한 자기 위로와 갈등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갈등을 피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잘 갈등하는 것도 필요하다. 갈등하지 않고 안전하기만 한 관계는 사실 되게 이상한 관계다. 어떤 새로운 사람이 나타났을 때, 저 사람이 아주 궁금하고 저 사람과 이런 것들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나와 잘 연결될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탐색 또는 시도를 통해서 돌봄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나를 좀 드러내 보이기도 하고, 나는 왜 이 안에서 이런 모습인지 자기 탐색도 해볼 것을 제안한다. 그러한 관계들과 지금 맺고 있는 관계, 그리고 새롭게 생기게 될 관계에 나 자신을 열어두고 싶다. 그렇게 함께 잘 연결되어 가고 싶다.

혜영
혜영

올해로 20년째 사진작업을 해왔다. 기록작업에 관심이 많아 나고 자란 은평구 일대가 변해가는 모습, 어릴 적 추억의 공간이 파괴, 해체되는 모습을 꾸준히 사진으로 남겼다.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 한국여성민우회 등 여성시민단체 활동을 하면서 페미니스트로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2016년 교육단체 ‘나를 만나는 사진수업’을 설립했고, 2020년에는 다른 활동가와 함께 ‘몸다양성교육단체 프리즘’도 만들었다. ‘건강이 스펙’인 사회에서 ‘아픈 나’를 긍정하려 분투했던 기록을 작품 〈자회상〉(2018)에 담았다. 개인전으로 주목받지 못한 여성의 이야기를 렌즈에 담은 《몸들의 말하기》(2020)가 있다. 서울시성평등활동지원센터,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등 곳곳에서 성평등, 돌봄, 자기 돌봄 등을 주제로 워크숍을 해왔다. 올해 소원하던 사진스튜디오 ‘언니와 호랑이’를 열었다.
· 홈페이지 www.unnietiger.com
· 사진관 언니와 호랑이 @unnie.tiger
유현정
유현정
다정한 일상을 기록하고 나누는 사진(미디어) 수업과 오래된 공간과 사람들의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기억을 기록하는 책방을 준비하면서 평화와 인권이 담긴 문화예술교육을 공부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0506_snail
인터뷰 사진_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프로그램 사진 제공_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