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초고령사회의 도래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한다. 알다시피 이미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노인 비율이 높고 앞으로 국민 1인당 부양해야 하는 노인의 수는 점차 늘어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젊은 문화예술 강사의 수는 점차 적어지고 노인 비율이 늘어나는 만큼 문화예술 참여를 희망하는 노인의 수는 더욱 많아진다고 예상할 수 있다. 너무 성급한 일반화였을까? 하지만 분명한 건 앞으로 문화예술 관련 활동 및 콘텐츠 제작에 있어 노인 세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필연적으로 노인과 예술가의 만남은 이뤄질 것이다. 하지만 노인 세대에 대해 이해도 없이 오롯이 ‘가르친다’는 행위로만 만날 수 있을까?
이야기를 나눈 박영호(77세) 선생님의 일주일은 무척 바쁘다. 유튜버로서 일주일에 한 번 주변 사진을 찍고 생각을 담은 영상 에세이를 만들어 ‘작은돌 박영호’라는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하고 어린이 축구교실 하원차량동행지원도 나가신다. 글 쓰는 것도 좋아하여 간간이 집필 작업도 하시며 그밖에 흥미로운 일들을 계속 찾아보고 제안이 들어오면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시는 ‘어르신’이다.
Q.

전쟁과 혁명 그리고 쿠데타를 모두 목격하셨을 텐데, 그 다사다난 했던 역사를 겪은 선생님 세대가 문화예술을 바라보는 인식은 어떻게 바뀌었나요?

A.

엄청난 차이가 있지요. 차이 정도가 아니라,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바뀌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아요. 아주 옛날은 보릿고개니 뭐니 해서 밥 먹고 사는 것이 문제인 판이라 문화예술은 극히 일부 뜻있는 분들만 한하여 근근이 생산되어 이어져 왔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문화예술뿐만 아니라 여러 문화가 ‘한류’라는 단어로 세계 속에서 통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일도 10년 내외 전후로 불쑥 나타난 것이지요. 제 나이로 빗대어 본다면, 태어나면서부터 30대 중반까지는 우리나라 전체가 경제적으로 형편없는 삶이었고 문화예술 측면에서도 질이나 양이나 보잘것없는 정도였어요. 그 중간 60대 후반까지는 실력을 키우면서 준비하는 단계, 그리고 지금이 양이나 질이나 인식이나 사막 속의 꿈같은, 오아시스같은 단계입니다. 예전에는 예술을 한다면 ‘딴따라’라고 비웃거나, ‘그것 해서 밥 못 먹는다’고 말렸는데, 지금은 많이 달라지지 않았나요?

전후 시대, 문화예술의 보급이 지금에 비해 매우 부족한 환경이었지만 지금 자신이 문화예술 활동에 계속 관심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어린 시절 받았던 당시 새로운 문화의 자극이 지금까지 이어졌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Q.

유튜버 활동 외에도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하시는 까닭에 오늘 인터뷰도 하게 되었는데요. 지금까지 참여하셨던 문화예술 활동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A.

어려서부터 문학과 음악 그리고 사진에 관심이 있었어요. 그 관심이 지금은 스마트폰을 사용한 사진이나 영상 촬영으로 이어지고, 그렇게 만든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는 작업을 하죠. 영상제작을 통해 방금 제가 관심 있다고 한 것들을 전부 녹여낼 수 있어요. 또 송파문화재단에서 하는 ‘송파이야기집’을 올해 4년째 참여하며 젊은 작가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국악과 모던댄스를 접해보고 노래도 불러서 음원도 냈어요. 지금은 연극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참여했던 프로그램 중 영상제작 수업은 노인복지관에서 한 차례 7~8명이 함께 공부했고 이후에는 서울시50플러스 북부캠퍼스에서 비대면으로 수업을 들었어요. 그때 참가자 중 몇 명이 매주 월요일 저녁에 화상회의로 만나 각자가 만든 작품을 발표하고 격려하고 연구하는 모임을 지금도 유지하고 있지요. 개인적으로 배웠던 오카리나는 초급반을 마치고 중급반까지 들어갔었고 노인복지관에서 단체 공연을 한 적이 있어요. 누구나 새로운 걸 습득하고 익히면 발표하고 싶은 게 당연한 욕구 아닐까요? 영상과 오카리나 강사진과는 지금도 스마트폰 메신저로 소통하며 필요할 때마다 도움을 받고 있어요.

  • 가정어린이집 오카리나 공연 (2019)
  • 노인의 삶에 예술로 공감하는 송파이야기집 버스킹(2022)
Q.

저도 문화예술 프로그램의 이끔이(강사, 예술가, 작가)를 해본 적이 종종 있어요. 그런데 프로그램이 끝나고 구성원들과 관계를 지속하는 게 참 어렵더라고요. 선생님께서 지금까지 강사진과 참여자들 모두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소통 방법은 무엇일까요?

A.

가장 중요한 건 진심과 신뢰 그리고 서로의 존중입니다. 강사들은 젊은 편이고 배우는 이들이 노인들이라면 소통에 다소의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봐요. 비록 배우는 입장이지만 인생 선배인 노인들이 강사를 이해하고 배움의 자리에서 리드해 나가면 문제가 많이 완화될 거로 생각합니다. 가르쳐주는 강사 선생님들은 계속해서 다른 이들과의 강의가 이어지고, 어쩌면 하나의 직업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르친 학생을 곧 잊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또 대부분 단기간 만나기 때문에 계속 소통하고 싶을 정도로 정이 깊이 들 수 없는 것도 이해해야지요.
노인의 얘기를 들을 때는 그 노인이 살던 과거의 여러 가지 환경과 시대상을 생각하는 상상력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농경사회였던 때만 하더라도 경험이 많은 사람이 우등생이었어요. 하지만 산업사회를 지나 정보사회가 시작되면서 경험을 바탕으로 체신을 꾸려왔던 노인들은 찬밥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지요. 그런데도 노인들은 자기 얘기, 자기 시대의 얘기, 말하자면 옛날이야기에 익숙합니다. 한편 청년들은 생전 처음 듣는 얘기도 있을 터이고 못마땅한 내용도 있을 수 있어요. 현재의 환경 속에서 듣고 판단하는 거죠. 그렇지만 젊은 강사들이 노인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현재를 기준으로 판단하지 말고, 노인이 살던 시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겠지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모르는 것이 있으면 부끄러워하지 않고 물어보는 노인과 참여자의 이해도에 맞춰 고민하고 답해주는 강사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어린이나 또래 참여자들과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것과는 다른, 나이 듦에 어쩔 수 없는 ‘느림’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노인 참여자와 함께하는 것은 완벽한 계획보다 만나고 소통하는 것에 중점을 두어야 하지 않을까.
Q.

지금까지 다양한 예술(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거나 인상 깊었던 일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A.

작년에 장형석 작가와 음악 작업할 때, 처음에는 그저 내가 살아온 과거를 얘기하고 그 안에서 필요한 부분을 가지고 작사하기로 했어요. 그러다 제가 유튜브에 올린 영상 하나를 그대로 가사로 쓰면 되겠다고 하여 생각지도 않게 작사가가 되었지요. 그렇게 <햇볕 물 공기>가 작곡이 되고 올림픽공원에서 만나 노래 연습도 하고 정식으로 녹음하여 음원 사이트에 등록도 하였습니다. 풍납동 시장에서 버스킹 공연까지 했지요. 정말 예상하지도 못했던 새로운 일에 도전해서 큰 보람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Q.

선생님처럼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즐기시는 분들이 주변에 계실 것 같은데, 자신과 주변 지인분들을 보시기에 노인 참여자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 있을까요?

A.

일반적으로 호칭하는 ‘노인’을 꼰대-늙은이-어른-어르신으로 구분해 보았어요. ‘꼰대’는 변화를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사람들, ‘늙은이’는 새로운 문화 문명에 긍정은 하지만 스스로 헤쳐나가기에는 적극적이지 않은 사람들, ‘어른’은 SNS 활동에 열심히 반응을 보이고 마음에 드는 것은 공유하는 사람이지요. 새로운 문화 문명에 적응하고 있지만 익숙하게 되지 않는 사람이라고나 할까요. 마지막 ‘어르신’은 어른의 단계를 넘어 생산해 내는 사람들입니다. 무엇보다 미래지향적이고 변화를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들이지요.
‘문화예술을 즐기고 참여하는 노인’의 특징이라면 바로 이런 ‘어르신’의 생각과 행동을 하는 분들이에요. 비록 몸은 늙어 가지만 열심을 다 해서 하면 조금씩 성장한다고 믿고 실행해 가는 노인들이 상당수 있어요. 제 주변에만 하더라도 플루트, 색소폰 등 악기를 배워 다룰 줄 아는 노인들도 있고, 나이 칠십 중반 넘어서고 열심히 글 쓰고 출판하는 이들, 그림을 그려 개인전을 여는 노인들도 꽤 있지요. 원래 문화예술 분야 종사자였다면 굳이 말할 것도 없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를 얘기하는 겁니다. 이렇게 진취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어르신’이라면 아마도 젊은이들도 존경하고 좋아할 겁니다.

자신 정도면 어르신이라고 웃으며 말씀을 하시지만, 본인이 정의한 ‘어르신’이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이 있었음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 박영호 어르신이 작사하고 청년작가
    장형석(코알라)이 작곡한 <햇볕 물 공기> 녹음 장면
Q.

오늘 ‘어르신’을 뵙고 이렇게 이야기 나눌 수 있어 너무 좋습니다. 문화예술을 적극적으로 찾고 만나오신 것 같습니다. 문화예술이 노년의 일상에 어떤 의미와 영향을 줄 수 있을까요?

A.

노인이 되면 하던 일을 강제로 멈추게 하는 게 우리 사회의 현실입니다. 은퇴 후의 노년의 삶은 개인이 헤쳐나가야 할 숙제가 되어 있지요. 먹고 살기 위해 가졌던 직업을 떠나서 대략 20년 많게는 30년이라는 긴 시간이 우리 앞에 놓여있습니다. 스포츠 같은 다른 분야는 신체적·경제적 한계로 정년이 있지만 문화예술은 정년이 없지요. 그래서 나이 먹어서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문화예술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뒤늦게 시작하더라도 20~30년 꾸준히 한다면 아주 좋은 결과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도 계속 성취감, 삶의 자신감을 얻게 되고요.
노인의 문화예술 활동을 제 경험에 비추어 생각해 보면 문화예술 활동은 노인에게 자아실현의 기회를 제공하고 자기 만족감과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 것 같아요. 그리고 사회 참여 기회를 제공하지요. 단체 활동이나 공연, 전시 등을 통해 다른 사람과 교류하고 소통하며 사회적인 연결을 유지할 수 있어요. 저 역시 일전에 20~30대 조현병 환자들과 영상을 함께 만들고 조력하는 일을 했습니다. 또한 예술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고 공유하면서 내면의 안정과 평온을 찾을 수 있고, 인지 기능을 유지하고 확장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창의적 사고, 기억력, 집중력 등을 촉진해서 뇌를 활발하게 유지할 수 있지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다양한 세대를 만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요즘 매주 만나는 김 군(필자)도 자식 세대와 손주 세대의 중간 세대인데, 제가 어디서 이 세대를 만날 수 있을까요?

Q.

마지막으로 문화예술 활동을 하고 싶은데 주저하는 노인과 그런 노인을 만나게 될 예술교육가에게 응원의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A.

문화예술을 포함하여 무언가 생산을 하는 것은 쇠의 녹을 닦는 것이라 생각해요. 시간이 흘러 녹이 생기는 걸 그대로 방치하면 단단한 쇠라도 부식되어 부러지고 말죠. 하지만 녹을 잘 닦아서 제거해 준다면 낡긴 했어도 쇠로서 단단함은 유지할 수 있습니다. 저는 문화예술 활동을 통해 녹슬지 않도록 스스로 연마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자신을 돌아보며, 어린 시절 좋아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관심은 있었지만 바쁘다 보니 미뤄놨던 걸 찾아보세요. 그다음은 하겠다는 도전, 하려는 마음만 먹으면 됩니다.
강사들에겐 두 가지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먼저 노인을 가르치려고만 하지 말고 같이 놀아 주세요. 질문을 많이 하시고 답하면 경청해 주세요. 강사에게는 약이 되고 노인에게는 달콤한 꿀이 될 겁니다. 그리고 지속성에 대해 함께 고민해 주세요. 배우면 발표하고 싶은 게 당연한 욕구지요. 더욱이 발표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노인들이 설 수 있는 무대는 부족하지만 그래도 수업을 들었던 사람들과 함께 무대를 경험하고 나면 그다음을 기대하고 발전할 수 있습니다. 꾸준히 할 수 있는 동기와 동료가 생기는 것이지요. 물론 준비가 쉽지 않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고민을 나누고 이야기할 수 있는 노인이 함께 있다는 걸 알아주면 좋겠습니다.

김인규(모글리)
김인규(모글리)
연극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 마을에서 재미난 일을 구상하고 아이들이랑 함께 노는 사람. 정글에서 막 세상에 나온 모글리처럼 도시의 낯선 모순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바라보고 이야기를 만든다.
clown_sick@naver.com
사진_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사진제공_박영호 어르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