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교육 현장에는 자신만의 교육철학과 소신을 가지고 열정을 불태우며 활발하게 활동하는 많은 분들이 있습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문화예술교육의 가치와 힘,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와 삶의 모습을 인터뷰어의 시각에 담았습니다.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다양한 생각과 시선, 움직임이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고스란히 드러나길 바라며, 지금 만나러 갑니다!
뉴욕 브루클린의 작은 담뱃가게 주인인 ‘오기’는 10년째 매일 같은 자리에서 사진을 찍는다. 4천 장이 넘는 그의 사진들은 우뚝 솟은 속된 도시의 프레임과 그 안으로 무표정하게 걸어 들어왔다가는 이내 사라지는 사람들로 한결같다. 오기의 하염없는 사진을 통해 이야기가 흐르고 사람과 사람이 연결된다.
안성시노인복지회관에서 사진 수업을 하고 있는 강은혜 예술강사의 이번 학기 마지막 수업은 웨인 왕(Wayne Wang) 감독의 영화 <스모크(Smoke)>로 마무리되었다. 진지하게 영화를 감상하시던 어르신들이 사진 찍는 담뱃가게 주인 오기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인다. 영화에 이어 강은혜 예술강사는 말한다.
“예술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에요. 담뱃가게 주인이 매일 같은 자리에서 자기 일상을 기록하는 것처럼 우리 일상도 예술로 기억될 수 있어요.”
우리들의 아버지와 어머니
강은혜 예술강사의 학생들은 모두 60세에서 80세까지의 노인이다. 어르신들의 책상 앞에 저마다의 카메라가 놓여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강은혜 예술강사의 수업은 어르신들이 가져오시는 개인 카메라의 사용법을 가르쳐드리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보통은 전원을 켜고 끄는 법도 모르는 분들이 많아서 카메라를 다루는 기초적인 기술을 익히는 데만도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된다. 어르신들보다 기계사용에 익숙한 젊은 층이 대상이라면 수업은 훨씬 수월할 것이다. 하지만 강은혜 예술강사에게 노인들을 위한 사진 수업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보다 분명했다. 바로 아버지였다.
함께 텔레비전을 보다가 한 카드 광고의 재기 넘치는 아이디어에 폭소를 하는 딸을 향해 아버지가 건넨 한 마디는 “저게 웃기니?”였다. 아버지는 그 광고가 전하는 시각 이미지의 기호와 의미를 끝내 이해하지 못했다. 강은혜 예술강사가 도슨트로 일할 때 아무리 쉽게 설명을 해도 무슨 이야기인지 도통 모르겠다던 어르신들의 모습이 아버지와 겹쳐졌다. 그들도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어머니일 터였다.
‘이것이 비단 우리 아버지만의 문제는 아니겠구나.’
이렇게 시작된 노인 대상 사진 수업은 올해로 4년째에 접어들었다. 카메라을 켜고 끄는 법조차 알지 못했던 어르신들도 수업이 진행될수록 찍는 재미에 푹 빠진다. 수업 시간뿐 아니라 집에서도, 여행지에서도 카메라를 놓지 않으신다. 학기 마지막 수업임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찍은 사진을 프린트해 들고 와 선생님께 보여드리는 열혈 학생도 있었다. 강은혜 예술강사는 늘 일상처럼 사진을 찍는 태도 그 자체에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이야기가 있는 사진, 의미를 담은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이끄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 여전히 많은 어르신들이 이른바 ‘접사’ 기술과 사랑에 빠진다며 조금은 허탈해했다. 꽃이 피어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핸드폰 카메라를 들이대는 어머님들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접사와 달력 사진을 넘어 이야기를 구해라!
예쁜 꽃을 섬세하게 찍을 수 있는 접사는 어르신들의 로망이다. 하지만 강은혜 예술강사에게 그것은 넘어야 할 산이다. 예쁜 사진, 고운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수업에 들어오는 어르신들의 마음을 여는 일이 그녀에게는 가장 어렵다. ‘사진 작품’ 하면 ‘달력 사진’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어르신들의 고정관념이 꽤나 견고하기 때문이다. 공주를 구해야 하는 동화 속 왕자들의 운명처럼 접사의 늪을 지나 달력 사진의 철옹성을 뚫고 이야기를 건져 올려야 하는 격이다.
사진을 통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르신들께는 왜 그리도 어려운 것일까. 강은혜 예술강사는 “어르신들이 못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 자신의 이야기를 해본 경험이 없으셨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필자 역시 수년간 작업을 하면서 부모님을 전시에 초대하거나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 본적이 없다. 시도를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나 벽을 보고 이야기 하는 것 같은 답답함 앞에서 지레 포기했었다. 그분들에게 예술은 어차피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 단정했다. 그래서일까. 평생 자신의 이야기를 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라는 강은혜 예술강사의 말이 더욱 날카롭게 느껴진다.
질문 속에 움트는 예술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다방면으로 노력했다. 시각 이미지 안에 의미를 담아낼 수 있음을, 그것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음을 전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고안했다. 픽토그램(pictogram, 사물, 시설, 행동 등을 상징화해 직감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 그림문자)의 의미를 맞춰보는 게임을 해보기도 하고 사진작가들의 작품을 나름대로 해석해보는 수업도 진행한다. 여러 미술관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전시와 교육프로그램도 항시 체크한다. 여건이 되면 어르신들과 함께 미술관으로 직접 현장학습을 나가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그녀는 사진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사진 속에 이야기를 담기 위해 강은혜 예술강사는 지치지 않고 물음표를 던진다.
“사람을 찍고 싶다고 하시면, 남자요? 여자요? 나이가 어린 사람인가요? 어떤 모습의 여자를 찍고 싶으세요? 하며 많은 질문들을 해요. 그러면 주제가 좀 더 정교하게 잡히죠.”
인터뷰 날에도 어르신들은 강은혜 예술강사가 내어준 질문지를 적었다. 그녀는 어르신들에게 무엇을 찍고 싶은지, 그것을 왜 찍고 싶은지, 그리고 수많은 매체 중에서 왜 꼭 사진이어야 하는지를 꼼꼼하게 질문했다. 성실하게 적어낸 종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니 어린 손주들을 찍고 싶다는 어르신들이 유독 많이 눈에 띈다. 예쁜 꽃이나 좋은 풍경을 찍고 싶어 하는 분들도 있었다. 주제는 다양해도 그 이면에는 모두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 흩어져버릴 일상을 잡아두고 싶은 마음이 엿보인다. 어르신들 대부분이 자신의 이야기와 욕구를 표현할 기회를 가지기 힘든 시대를 살아오셨기에 강은혜 예술강사는 더욱더 그들의 사진 속에서 ‘이야기’를 끌어내고자 애쓴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으로 어르신들의 마음속에 예술이 움트는 그 순간을 그녀는 소중하게 기억한다.
“3,4년 전 시범 수업을 할 때 출석은 늘 꼬박꼬박 하시는데 수업에 대한 의사표현이 전혀 없는 분이 계셨어요. 그 분이 수업이 끝날 때 저에게 A4 두 장쯤 되는 장문의 편지를 보내셨죠. 예술작품을 바라보는 시선과 당신의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며, 당신이 사진작가가 되고 싶은 꿈이 생겼다고 하시더라고요. 굉장히 감동적이었어요. 그 분은 지금도 계속 사진을 찍고 있어요. 몇 년 뒤에는 전시회도 열겠다고 하시더라고요.”
평생 예술을 모르고 살아오신 분들이 수업을 통하여 예술을 흥미롭게 생각하고 더 알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이면 가장 뿌듯하다는 강은혜 예술강사는 이런 순간을 만날 때마다 마음으로 환호한다.
“아! 통(通)했다”
삶과 예술 사이의 거리 좁히기
예술은 결코 쉽지 않다. 그렇다고 예술이 멀리 있는 것은 아니다. 예술은 우리의 삶 도처에 존재한다. 삶이 곧 예술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예술은 그것을 발견하고 끌어올릴 수 있는 열린 눈과 마음을 요구한다. 강은혜 예술강사는 이를 “삶과 예술 사이의 거리”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그녀가 예술강사를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거리를 줄이는 데 있다고 밝힌다. “사실 엄청 힘들다”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될 때까지 해보려고 한다.”며 다부지게 말하는 모습에 왠지 모를 고마운 마음이 든다.
강사인 동시에 예술가이기도 한 강은혜 예술강사가 요즘 가장 많이 하고 있는 작업은 작가로서의 나와 예술강사로서의 나를 분리하지 않고 밀착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실험이다. 교육과 작업을 밀착시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는 설명에 그녀가 삶을 대하는 태도와 예술을 대하는 태도 역시 ‘통(通)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강은혜 예술강사는 ‘재미있는 강사’로 기억되고 싶다. 삶과 예술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는 예술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예술이 쉽지 않은 만큼 예술을 재미있게 전달하는 일 역시 만만치가 않다.
“제가 더 많이 공부하고 끊임없이 변해야 하는 것 같아요. 장기적으로 작업을 놓지 않고 계속해서 발전하는 예술강사가 되고 싶어요.”
강은혜 예술강사에게 사진은 단순한 표현의 도구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우리와 부모세대를 연결해주는 다리이기도 하고, 삶과 예술을 이어주는 통로이기도 하다. 그녀는 지금 자신만의 징검돌을 하나하나 이어가고 있다. 때론 물살이 거세어 힘에 부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브루클린의 담뱃가게 주인 오기가 그러했던 것처럼 그녀 역시 사소하지만 묵묵하고, 무뚝뚝하지만 꾸준하게 그 일을 계속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강은혜
성신여자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홍익대학교에서 사진으로 석사과정을 마쳤다. 미술관 도슨트로 활동하며 문화예술교육에 관심을 갖게 되어 2011년 학교예술강사를 시작했다. 아버지와의 대화 중 얻은 깨달음으로 2012년부터 노인 문화예술교육을 시작해 매주 어르신들과 사진을 매개로 만나고 있다. 예술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있으나 쉽게 접하고 표현하기 어려웠던 어르신들과 수업하며 무언가 통했다 느껴질 때 큰 보람을 느낀다. 그 순간을 위해 오늘도 여러 가지 실험을 멈추지 않고 있다.
영상 _ 윤영욱 (미디어 아티스트)
박유미
설치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매체에 관심이 많은 미술작가. 2013년 개인전 《what a wonderful world》 외 다수의 전시에 참여했으며 2014년 아르코 퍼블릭아트 프로젝트 ‘마로니에 다방’을 기획했다. 어린이 예술교육에도 관심이 많다. 여전히 예술로 말하고 예술을 가르치는 작가 겸 강사로 목하 활동 중이다. Gomako1983@hanmail.net
지난 2년을 강선생님께 배웟읍니다 이글을 읽고 선생님과 우리학생들 사이에 있었던 장벽이 약간은 이해가 되는듯 예쁜 꽃이나 풍경만 찎고싶어하는우리들 그걸뛰어넘고 예술을 알려주고 싶으셧던 선생님 허나 선생님 우리에겐 시간이 없답니다 그저 약간의 찎는기술이나 배우려 햇엇읍니다 멀리 다니느라 고생하셧는데 고맙단 말도 제대로 못했읍니다 이제나마 많이 고맙습니다부디 건강 잘챙기시고 좋아하는일하며 즐겁게사세요
강은혜선생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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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마음은 청춘같지 만 오늘도 수업에 착각 속에 빠졌다 가 강사님께 그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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