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이토록 평안함에 닿기를

공혜진 시각예술가

우리는 힘든 시간을 지나오며 흔히 ‘이겨냈다’라고 말한다. 그 말에는 다음 단계로 서둘러 넘어가고 싶은 마음, 고통을 뒤로 밀어두고 싶은 마음이 함께 숨어 있다. 그러나 어떤 시간은 ‘이겨내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불편했던 시간을 내 안으로 들여놓고, 그때의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할 때 비로소 삶의 일부가 된다. 행복을 내 안에 들여놓는다는 것은 어쩌면 더 나아지는 일이 아니라, 지나온 시간을 견디는 방식이 조금 달라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공혜진의 작업은 바로 그 지점—행복을 내 안에 들여놓는 힘—을 작고 미세한 존재들을 통해 조용히 증명한다. 벌레 먹은

삶의 속도를 늦추는 놀이터

예술로 365길㉕ 스튜디오 해봄터

스튜디오 해봄터 인천시 부평구 마장로409번길 4, 3층 운영시간은 별도 문의 ribbonclass@naver.com 홈페이지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게 많은 나의 바람이 꽉 차게 담긴 곳, ‘스튜디오 해봄터’.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이 공간의 정체성에 관해 묻곤 한다. “여긴 뭐 하는 공간이에요?”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많은 리본과 종이, 용도를 가늠하기 어려운 물건들로 꽉 차 스무 평 남짓한 공간이 버거워 보이니 그럴 만도 하다. 마음속에 품은 것을 해보는 공간 원래는 리본과 선물 포장을 배우는 공방으로 어떤 이는 전직을 위해서, 또 어떤 이는 취미로, 또 다른 이는

인생의 사막을 건널 때, 만약 예술이 없다면

예술과 행복의 심리학

버나드 쇼(G. Bernard Shaw)는 “거울로는 얼굴을 보지만, 예술작품으로는 영혼을 본다”라는 멋진 말을 남겼다. 영혼의 상징적 의미를 고려해 볼 때, 예술은 행복한 삶을 위한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예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때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될까? 우선, 예술이 없는 삶에서는 ‘몰입(Flow)’의 경험이 사라지고 시간은 향유하는 것이 아니라 ‘소모’되는 것에 가까워질 것이다. 그 결과, 사람들의 삶은 지루해지는 동시에 심리적인 소진에도 취약해질 것이다. 다음으로, 예술이 없는 사회에서 인간의 삶은 ‘의미’가 빠진 채 오직 ‘성과’로만 평가받게 될 것이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인간관계조차

담쟁이와 함께 존재하기

오늘부터 그린㊷ 존재의 상호 의존성과 충족

나는 매일 아침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준 뒤, 바로 옆 공원에 산책을 간다. 벽과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덩굴 식물을 볼 때면 늘 감탄을 금치 못한다. 덩굴 식물의 덩굴손(Tendril)은 스스로 곧은줄기를 형성하지 못하고 지면을 기어가거나, 다른 물체에 자신의 몸체를 감싸 자기 몸을 지지한다. 마치 영장류의 손처럼 휘감고, 뻗어 나가고, 붙잡고, 햇빛 혹은 어딘가를 향하고 있는 모습은 동물 못지않은 움직임과 생명력이 가득 차 있다. 덩굴손과 담쟁이 ‘덩굴손’이라는 명칭은 그 특징을 참 잘 포착하고 있다. 놀랍게도 덩굴손은 화학적 성분을 내뿜어 자신과 다른 종인 식물을

전쟁 속 예술, 삶을 다시 가능하게 하는 것들

EBS다큐프라임 ‘전쟁과 예술’ 연계 다큐토크

문화예술교육 정책이 시행된 지 20년. 소수가 아닌 모든 이가 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문화예술교육은 접근성을 넓히고 개인의 삶의 의미를 확장하는 실천으로 자리 잡아왔다. 이를 기념해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EBS다큐프라임 팀과 함께 방송 다큐멘터리 <예술하는 인간> 3부작을 공동 제작했고, 2025년 11월 17일부터 12월 1일까지 3주간 EBS 1TV를 통해 방영되며 2년에 걸친 제작 여정을 마무리했다. <예술하는 인간> 1부 ‘전쟁과 예술’ 2부 ‘모두 함께, 지갱깽’ 3부 ‘기술, 예술을 깨우다’ EBS다큐프라임 <예술하는 인간> 1부 ‘전쟁과 예술’ 예고 전쟁 속에서도, 인간은 왜 예술을 멈추지

불확실한 시대에 뜨겁게 던지는 질문들

2025 연말특집③ 새해의 고민과 화두

2025년 문화예술교육 현장은 여전히 변화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불확실한 예산과 제도의 재편, 지역 생태계의 (부)조화와 (불)균형, 기술 환경의 빠른 확장 속에서 예술교육가와 현장의 동료들은 매일의 실천을 통해 균열을 체감하고, 관계를 회복하며, 새로운 방식의 배움을 만들어냈다. 각자의 현장에서 고군분투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2025년을 다시 읽고, 2026년을 준비하기 위한 감각을 깨우고자 한다.   ① 성찰과 배움의 기억 ② 나의 한해를 돌아보기 ③ 새해의 고민과 화두 지난 몇 년간 문화예술교육을 둘러싼 환경은 급격히 변해왔다. 경제적 논리가 강화되며 무형의 가치가 뒤로 밀리고, 정책과 제도의 불안정

가 닿지 못할지라도, 응원하기 위한 질문

책으로 읽는 문화예술교육

요즘 문화예술 현장에서 질문이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될 때가 있다. 급격하게 산업이나 성과 중심으로 바뀌는 정책 환경 속에서 예산도 줄고 현장이 쪼그라들고 있어 더 그렇다. K-컬처나 관광 등 성과 추수에 대한 기대가 큰 산업은 자주 거론되지만 낮고 깊게 만나야 하는 수고로움이 동반되는 ‘지역’이나 ‘예술’, ‘교육’의 현장은 무서울 정도로 조용하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산업이나 경제는 중요해 보이고 기초 예술과 사회적 가치, 공공성의 토대를 만들어 가는 문화와 예술은 그 역할과 쓸모를 다한 것인가 허탈하기까지 하다. AI로 예고되는 급변하는 사회에 대해서도

소리에서 기술까지: 예술적 배움을 확장하는 새로운 실험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서울대학교 문화예술원 사운드아트 세미나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지난 11·12월에 프랑스 이르캄(IRCAM), 네덜란드 뮤직헤바우 사운드랩(Muziekgebouw SoundLAB)과 함께 ‘소리’ 주제의 국제 워크숍을 개최했다. 전문가와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한 이번 워크숍의 기획 배경과 사운드 기반 교육의 시의적 의미를 짚어봤다. 왜 ‘소리’였나: 기술이 변화시키는 경험 사운드에 주목한 이면에는 기술융합 실천에 대한 근본적 고민이 있었다. 2019년부터 약 3년간 진행된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 드림아트랩 4.0’은 이러한 고민의 궤적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초기에는 주로 기술을 창작 도구나 미디어아트 형식으로 접목해왔다면, 현장에서는 점차 ‘기술을 단순한 창작 도구로 활용하는 것만으로 충분한가?’라는 본질적인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여전히

어떻게 닿고, 마주하고, 연결되고, 실천할까

2025 연말특집② 나의 한해를 돌아보기

2025년 문화예술교육 현장은 여전히 변화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불확실한 예산과 제도의 재편, 지역 생태계의 (부)조화와 (불)균형, 기술 환경의 빠른 확장 속에서 예술교육가와 현장의 동료들은 매일의 실천을 통해 균열을 체감하고, 관계를 회복하며, 새로운 방식의 배움을 만들어냈다. 각자의 현장에서 고군분투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2025년을 다시 읽고, 2026년을 준비하기 위한 감각을 깨우고자 한다.   ① 성찰과 배움의 기억 ② 나의 한해를 돌아보기 ③ 새해의 고민과 화두 예술교육의 존재 방식 #예술교육의_본질 #소통의_재발견 #문턱_낮추기 #존재의_언어 #관계의_감각 올해 현장은 서로의 언어와 속도, 감각을 존중하며 다시 ‘만나는 방식’을

어긋난 순간을 다시 읽는 일

강나은 예술교육가

문화예술교육 현장은 예측 불가능의 연속이다. 정교하게 설계했다고 생각한 활동은 느슨하게 흩어지고, 우연히 던진 질문이 경험을 확장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그 순간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고, 어떤 의미를 생성하였는지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강나은 예술교육가는 이런 물음을 성실히 들여다보며 나아가는 사람이다. 자신을 ‘아직 초등학생 같은’ 예술교육가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그래서인지 온몸으로 현장을 경험하며 한 걸음씩 다듬어간다. 결과보다 흔적을 남기는 방법 “저는 예술 고등학교와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는데요. 청소년기부터 입시 위주로 음악을 경험하다보니 음악을 즐기기보다 기술적으로 훈련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졌던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학부 전공 수업에서

선택할 권리, 멈출 자유, 안전한 시간

모두의 예술교육⑥ 각자의 방식을 인정하는 미술 수업

나는 장애인복지관에서 발달장애 아동 및 청년들과 미술 수업을 5년여 진행해 왔다. 나는 이 시간을 ‘가르친다’라고 표현 안 한다. 그러고 싶지 않다. 대신 함께 ‘논다’ ‘작업한다’라고 얘기한다. 수업 시간은 늘 조금 소란스럽고 예측 불가능하다. 누군가는 붓을 잡자마자 종이를 벗어나 바닥까지 물감을 흘리고, 누군가는 한 가지 색만 집요하게 반복한다. 또 누구는 가만히 머물며 다른 세상을 꿈꾸는 듯하다. 나는 이 모든 장면을 ‘지도해야 할 상황’이 아니라 흥이 오르는 순간으로 바라보려 애쓴다. 예술교육이란 결국, 잘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자기 방식으로 존재하도록 허락하는 일이라고 믿기

새삼스레 묻는다, 깨우치듯 배운다

2025 연말특집① 성찰과 배움의 기억

2025년 문화예술교육 현장은 여전히 변화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불확실한 예산과 제도의 재편, 지역 생태계의 (부)조화와 (불)균형, 기술 환경의 빠른 확장 속에서 예술교육가와 현장의 동료들은 매일의 실천을 통해 균열을 체감하고, 관계를 회복하며, 새로운 방식의 배움을 만들어냈다. 각자의 현장에서 고군분투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2025년을 다시 읽고, 2026년을 준비하기 위한 감각을 깨우고자 한다.   ① 성찰과 배움의 기억 ② 나의 한해를 돌아보기 ③ 새해의 고민과 화두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오래 바라본다는 것은, 결국 사람의 변화와 관계의 힘을 목격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문화예술교육에서 퍼져나간 작은 파장은 삶의

인색하지 않기 위한 노력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남기는 기억과 기록

바야흐로 기록의 시대이다. 아날로그적 감성을 놓치기 싫어하는 이들은 디지털 기기에서 ‘다꾸’(다이어리 꾸미기)를 즐기고 자신의 일상을 ‘로깅(logging)’한다. 감사 일기를 쓰고 저널링(journaling)을 즐기는 행위는 어쩌면 자신의 삶에 인색하지 않으려는 노력일지도 모른다.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낸 흔적, ‘하찮다’ 여겼던 사소한 일상도 친절하게 돌아보고 아끼다 보면 삶의 의미로 다가온다. 문화예술교육 현장의 활동가들 역시 자신의 삶을 성찰하듯 현장의 순간들을 기록한다. 프로젝트 기획과 프로그램 설계가 결국 일상의 물음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메모·음성·사진·영상으로 남긴 소소한 기록들은 곧 프로젝트의 출발점이 된다. 서점에서 마주한 책 디자인이 홍보물이나 결과자료집의 이미지가 되고, 취향을

때로 관성에 빠져도 다시 자각하고 다짐하며

동료 상담실⑤ 현장 비평과 성찰

자니스밴드는 예술가와 예술교육실천가들이 현장에서 겪는 다양한 고민과 성찰 지점 등을 자유롭게 나누는 네트워크다. 이번 모임에서는 ‘현장철학 읽어주기’를 주제로 자신의 예술교육 활동에 관한 ‘철학적 해석’과 ‘비평’의 경험, 그 과정에서 생기는 고민을 나누었다. • 상담 일시‧장소 : 2025.11.17.(월) 온라인 • 동료 상담가 : 강진주(무용 예술교육가), 손현정(시각예술가·예술교육가), 유병진(문화기획자), 유은정(연극 예술교육가), 이초영(문화기획자, 별일사무소 대표), 최서연(무용 예술교육가) Q. 돌아가는 길 위에서, 어떤 생각이 드나요? 이초영  돌아가는 길에는 항상 겁이 납니다. 제가 생각했던 내용이 잘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늘 궁금하고 긴장되거든요. 현장에서 제가 의도했거나 나누고 싶었던 주제들이 공유될

경험과 개념의 세계가 끝없이 부딪히는 그곳에서

민병은 지혜로운 봄 대표

문화예술교육은 여러 조건과 감각, 기대와 경험이 겹치며 형성된다. 어떤 움직임은 분명하고 어떤 흐름은 말해지지 않은 채 지나간다. 보는 사람마다 장면이 다르고 어떤 의미는 문서에 남지 않으며 어떤 변화는 경험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다. 하나의 관점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복합적 상황과 현상 앞에서 지금 필요한 것은 이러한 움직임들을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한 감각이다. 민병은 지혜로운 봄 대표가 그간 포착해 온 장면과 생각을 바탕으로 ‘문화예술교육에서 비평이 놓일 수 있는 위치와 역할’을 살펴본다. 현장, 관계의 시간이 남긴 깊은 흔적 Q. 그동안 어떤 활동을 이어오셨는지, 그리고

스며듦으로 시작된 변화

예술로 365길㉔ 영해 청년문화예술발전소

영해 청년문화예술발전소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예주길 76 월~금 10시~17시(시즌에 따라 변경 가능) 인스타그램 @yeonghae_yesulro2025 ‘영해’가 어디에 있는지 아시는가? 대부분 처음 들어보는 지명일 것이다. 영해는 경상북도 영덕군의 북쪽, 울진군보다는 아래쪽에 있는 인구 5천 명이 조금 넘는 알려지지 않은 면 단위 지역이다. 영해면은 이름 ‘평안한(寧) 바다(海)’에서 알 수 있듯이 동해 바닷가에 면해 있으며, 산과 넓은 들, 바다와 강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아름답고 평화로운 시골 마을이다. 특히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는 고양이가 많은 동네이자, 서울에서 버스로 4시간 30분이 걸리는 동쪽 변방 오지이다. 동쪽 변방에서 초대한 청년예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