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담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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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시 : 2024. 6. 7.(금) 오후 3시
장 소 : 무수책방
참석자 : 정석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 김규원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선임연구위원(본지 편집위원)
김규원 요즘 지역이 화두다. 지역 소멸, 인구 소멸 등 지역이 위기라는 얘기가 나오는데, 이제 우리가 생각하는 지역의 의미를 바꿔야 지역이 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지역이란 무엇인가?
정 석 지방, 지역, 로컬이라는 단어가 있다. 처음에는 지방이라는 말을 썼던 것 같다. 서울도 지방이지 않은가. 서울지방경찰청, 서울지방병무청, 서울지방국세청. 그런데 어느 순간 서울, 경기, 인천은 수도권이고, 나머지는 주변, 변방, 서울이 아닌 곳을 지방이라고 부르면서 안 좋은 의미인 것처럼 느껴지고 지방이라는 말을 쓰는 게 불편해진 것이다. 그 대신에 썼던 것이 지역이라는 말이다.
도시 분야에서 지역은 도시보다 조금 더 넓은 지역이다. 그러니까 마을, 도시, 지역, 그다음에 국토가 있다. 그런데 지역이란 말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각각 영어로 로컬(local), 리전(region)이라는 뜻도 있어서 좀 헷갈린다. 그래서 5~10년 사이에 젊은 층에서부터 그냥 영어로 로컬을 쓰기 시작했다. 로컬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데, 가장 중요한 의미는 ‘로컬은 다 로컬’이라는 거다. 그러니까 레벨이 없다. 매우 동등한, 차별이 없는 용어다. 선진국의 큰 도시도 로컬, 우리나라 작은 도시도 로컬, 어디든 다 로컬이다. 또 하나는 ‘고유성’이다. 로컬리티(locality), 그러니까 로컬은 다 다르다. ‘우리는 저마다 달라. 그런데 내가 소중한 것처럼 너도 소중한 거야’라는 의미가 있다. 로컬이라는 말이 가진 아주 긍정적이고 좋은 의미가 고유하다, 저마다 다르다, 그 다른 것들이 서로 연결되고 어우러지면 굉장히 풍성해진다.
로컬이 이렇게 대두된 것은 소위 세계화, 선진화를 뜻하는 글로벌리즘(globalism) 때문인데, 글로벌리즘의 가장 큰 문제는 로컬리티를 죽이는 것이다. 뉴욕, 파리에 있는 것만 좋아하고 지역에 있는 오래된 것들, 고유한 것들을 열등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세계화를 지향하더라도 로컬리티를 죽이면 안 된다는 뜻으로 글로컬(glocal)이란 말이 나왔다.
지금 로컬의 중요한 의미 중 하나는 ‘우리들의 생활 공간’ ‘삶터’다. 행정구역은 편의상 갈라놓은 구역이다. 그런데 지역에 사는 사람은 A시, A군에 속해 있더라도 B시, B군에 오고 간다. 그러니까 행정구역의 경계에 묶이지 않는, 그냥 넘나드는 우리들의 생활 공간이다. 작은 마을도 있고, 조금 더 큰 공간도 있고, 도시, 지역, 국가 이렇게 점점 커지겠지만, 기본적으로 내가 일상을 영유하는 곳, 그곳이 나의 로컬이다. 로컬은 이렇게 시대의 마음이나 정신을 담은 언어, 단어라고 생각이 든다. 지방이라는 차별적인 언어가 아니고, 지역이라는 단어가 갖는 약간의 모호함을 벗어나기 위해 아예 로컬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도시 분야에서 지역은 도시보다 조금 더 넓은 지역이다. 그러니까 마을, 도시, 지역, 그다음에 국토가 있다. 그런데 지역이란 말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각각 영어로 로컬(local), 리전(region)이라는 뜻도 있어서 좀 헷갈린다. 그래서 5~10년 사이에 젊은 층에서부터 그냥 영어로 로컬을 쓰기 시작했다. 로컬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데, 가장 중요한 의미는 ‘로컬은 다 로컬’이라는 거다. 그러니까 레벨이 없다. 매우 동등한, 차별이 없는 용어다. 선진국의 큰 도시도 로컬, 우리나라 작은 도시도 로컬, 어디든 다 로컬이다. 또 하나는 ‘고유성’이다. 로컬리티(locality), 그러니까 로컬은 다 다르다. ‘우리는 저마다 달라. 그런데 내가 소중한 것처럼 너도 소중한 거야’라는 의미가 있다. 로컬이라는 말이 가진 아주 긍정적이고 좋은 의미가 고유하다, 저마다 다르다, 그 다른 것들이 서로 연결되고 어우러지면 굉장히 풍성해진다.
로컬이 이렇게 대두된 것은 소위 세계화, 선진화를 뜻하는 글로벌리즘(globalism) 때문인데, 글로벌리즘의 가장 큰 문제는 로컬리티를 죽이는 것이다. 뉴욕, 파리에 있는 것만 좋아하고 지역에 있는 오래된 것들, 고유한 것들을 열등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세계화를 지향하더라도 로컬리티를 죽이면 안 된다는 뜻으로 글로컬(glocal)이란 말이 나왔다.
지금 로컬의 중요한 의미 중 하나는 ‘우리들의 생활 공간’ ‘삶터’다. 행정구역은 편의상 갈라놓은 구역이다. 그런데 지역에 사는 사람은 A시, A군에 속해 있더라도 B시, B군에 오고 간다. 그러니까 행정구역의 경계에 묶이지 않는, 그냥 넘나드는 우리들의 생활 공간이다. 작은 마을도 있고, 조금 더 큰 공간도 있고, 도시, 지역, 국가 이렇게 점점 커지겠지만, 기본적으로 내가 일상을 영유하는 곳, 그곳이 나의 로컬이다. 로컬은 이렇게 시대의 마음이나 정신을 담은 언어, 단어라고 생각이 든다. 지방이라는 차별적인 언어가 아니고, 지역이라는 단어가 갖는 약간의 모호함을 벗어나기 위해 아예 로컬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김규원 멋있어 보이려고 로컬이라는 단어를 쓴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오히려 더 적절한 말이 없어서라는 말씀이 인상적이다. 게다가 아까 말씀하신 ‘평등하다’ ‘다양하다’ ‘고유하다’라는 부분은 문화의 정의와도 맞닿는 것 같다. 문화도 일본 문화, 중국 문화, 아프리카 문화 등 어디가 더 좋다 나쁘다 하는 게 없고 모두 다양해야 하고 동등한 가치를 갖고 있지 않는가. 문화를 공간 개념으로 넣을 때 오히려 지역과는 좀 다른 로컬에 대한 개념이 확 와닿는 것 같다.
정 석 그런데 저마다의 고유함을 가진 로컬이라고 해서 모든 걸 다 갖고 있지는 않다. 예를 들면 김제에 없는 게 군산에 있고, 군산에 없는 게 익산에 있다. 로컬이 상생하려면 서로 공유하고 나누어야 한다. 문제는 서울과 같은 대도시가 모든 것을 블랙홀처럼 다 빨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작은 로컬들은 소멸 직전까지 가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이나 지방 도시들이나 다 똑같아져서 로컬리티를 상실해 가고 있다. 그게 돈, 자본의 힘이다. 자본이 그냥 싹 쓸어버리는 것이다. 로컬리티를 지키는 게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대한민국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사람도 그렇고 문화도 그렇고, 대한민국 경쟁력의 원천은 로컬에 있다. 로컬이 로컬리티를 잃고 소멸되어 간다는 것은 대한민국이 소멸된다는 얘기다. 그게 지금 제일 걱정이다.
김규원 사실 지역마다 고유한 특성이나 문화가 있는데, 청년층이나 많은 인구가 빠져나가면서 그걸 이을 사람이 없다. 또 반면 도시 은퇴자뿐 아니라 젊은 층이 귀촌하는 현상도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 석 산업화, 도시화, 성장 거점 개발. 대한민국 개발 시대의 핵심 키워드다. 1950년대 한국전쟁 직후에 어떻게 하면 가난에서 벗어나 강국이 되느냐 하는 선택에서 박정희 정부는 산업화, 도시화, 성장 거점 개발론을 택했다. 그런데 이게 가난한 나라가 발전하는 유일한 전략은 아니다. 일본, 대만, 이스라엘 같은 선진국은 농업을 다져서 농업을 탄탄히 하고, 농촌을 부유하게 하고, 그 힘으로 공업화했다. 그런데 우리는 농업은 버리고 공업화 쪽으로 달려갔다. 농촌 인구가 도시로 몰려가서 도시가 어마어마한 속도로 커지고 거기에 개발의 불이 붙는다. 그렇게 단기간에 선진국이 됐지만, 지금 우리가 앓고 있는 문제가 격차와 불균형의 문제 아닌가. 이 악순환은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성장 거점 개발론은 국가를 골고루 키우는 게 아니라 성장의 거점, 말하자면 대도시나 대기업을 집중적으로 키운다는 뜻이다. 경제 발전과 도시화를 이뤄 국가가 부자가 되면 대도시가 중소도시나 농산어촌과 상생하고,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을 먹여 살릴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렇게 됐는가? 성장 거점 개발론의 대전제가 낙수 효과다. 잔을 3층으로 쌓아서 맨 위 잔에 콸콸 부어 흘러넘치면 그다음 잔이 차고, 그러다 맨 아래까지 다 차는 거다. 그런데 실제로는 맨 위 잔이 채워질 만하면 더 큰 잔으로 바꿔버리니까 낙수가 일어나지 않는다.
지방은 있던 사람도 빠져나가니까 소멸되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사람들은 서울‧수도권으로 몰려간다. 서울‧수도권은 인구가 넘쳐서 집값 올라가고 사는 게 힘들어지고 경쟁이 심하니까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안 낳겠다고 한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 출산율이 0.7명, 0.6명 계속 떨어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결국, 단기간에 부자 나라는 됐지만, 불균형과 격차가 심화하며 후유증을 심하게 앓고 있다. 너무 빨리 개발됐기 때문에 아픈 것이다. 그래서 인구가 한쪽에 쏠리지 않고 자발적으로 다시 흩어지게 하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 나는 ‘일백탈수 지역민국’을 꿈꾼다. 1년에 100만 명씩 탈수도권을 해서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지역마다 모여서 우리가 주인인, 우리가 꿈꾸는 나라를 만들자. ‘하동민국’을 만들고, ‘군산민국’을 만들고. 그래야 대한민국이 다시 건강해질 수 있다.
성장 거점 개발론은 국가를 골고루 키우는 게 아니라 성장의 거점, 말하자면 대도시나 대기업을 집중적으로 키운다는 뜻이다. 경제 발전과 도시화를 이뤄 국가가 부자가 되면 대도시가 중소도시나 농산어촌과 상생하고,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을 먹여 살릴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렇게 됐는가? 성장 거점 개발론의 대전제가 낙수 효과다. 잔을 3층으로 쌓아서 맨 위 잔에 콸콸 부어 흘러넘치면 그다음 잔이 차고, 그러다 맨 아래까지 다 차는 거다. 그런데 실제로는 맨 위 잔이 채워질 만하면 더 큰 잔으로 바꿔버리니까 낙수가 일어나지 않는다.
지방은 있던 사람도 빠져나가니까 소멸되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사람들은 서울‧수도권으로 몰려간다. 서울‧수도권은 인구가 넘쳐서 집값 올라가고 사는 게 힘들어지고 경쟁이 심하니까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안 낳겠다고 한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 출산율이 0.7명, 0.6명 계속 떨어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결국, 단기간에 부자 나라는 됐지만, 불균형과 격차가 심화하며 후유증을 심하게 앓고 있다. 너무 빨리 개발됐기 때문에 아픈 것이다. 그래서 인구가 한쪽에 쏠리지 않고 자발적으로 다시 흩어지게 하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 나는 ‘일백탈수 지역민국’을 꿈꾼다. 1년에 100만 명씩 탈수도권을 해서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지역마다 모여서 우리가 주인인, 우리가 꿈꾸는 나라를 만들자. ‘하동민국’을 만들고, ‘군산민국’을 만들고. 그래야 대한민국이 다시 건강해질 수 있다.
김규원 자연스럽게 저서 『행복@로컬』 이야기가 나온다. 이 책에서도 현재와 가능성, 앞으로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거점 중심의 성장을 하면서 지역이 다 뽑혀가는 상황을 말씀하셨는데, 이제는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서 앞으로 지역의 미래가 변화할 것으로 생각하시는가?
정 석 우선 왜 지역이 거의 소멸 직전인가, 어디서부터 잘못됐는가 살펴보면, 아까 말씀드린 성장 거점 개발론 문제도 있지만, 결국 병을 고치겠다면서 병을 키웠다고 할 수 있다. 박정희 정부 때부터 국가가 균형 발전 정책을 고민했고, 지금까지 역대 정부가 다 하긴 했다. 그런데 한 번도 성공을 못 했다. 인구는 계속 수도권으로 가고 지역은 계속 사람을 뺏기고 있다. 서울, 경기, 인천에 있던 국가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옮겼지만, 도시 바깥에 신도시를 만드니까 원도심은 다 텅텅 비는 것이다. 공공기관을 지방의 중소도시 원도심에다 집어넣었다면 어땠을까? 원도심에는 이미 기반시설이 다 있지 않나. 그러면 근무하는 사람들도 불편 없이 살 수 있고 원도심 재생도 되었을 텐데. 게다가 제일 먼저 지어진 것이 공공기관이라 주변에 아무것도 없으니 어떻게 가족들을 내려오게 해서 살겠는가. 그러니 월요일에 내려갔다가 금요일에 버스 타고 서울 오게 된 것이다. 초기에는 기반시설이 없는 불편을 겪었지만, 지금은 혁신도시가 가장 찬란한 도시가 돼버렸고, 이곳을 채우느라 중소도시 원도심과 주변 농산어촌은 더 초토화됐다.
비슷한 시기에 우리나라 비수도권 신도시가 20개 넘게 지어졌다. 신도시를 만들 때 국가가 토지를 수용하고 보상하면 땅 주인들은 갑자기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을 받게 된다. 이 돈이 어디로 갔겠는가. 강남 아파트 사는 데 들어갔을 것이다. 그러니까 강남 아파트값이 폭등한다. 균형 발전을 하겠다고 공공기관을 지방에 옮긴 것은 잘한 일이지만, 인구가 줄어가는데도 신도시를 20개씩이나 만들어서 이 꼴을 냈다. 여기까지 못 보는 이유는 끊임없이 개발을 요구하는 기득권 때문이다.
국가 정책이 계속 지방을 초토화시키는 게 아니라 지방을 살리는 쪽으로 가야 한다. 수도권에 몰려 있는 젊은 청년들 또는 중장년들이 더 행복한 삶터로 비수도권 지역, 로컬을 선택해서 옮겨가도록 지원해 주고, 광역이든, 기초든, 소멸 직전에 있는 지방정부는 인재들을 우리 지역으로 초대하는 데 필요한 준비를 해야 한다. 무엇보다 계속 서울로, 수도권으로, 신도시로 사람을 빼가는, 그래서 모든 사람을 힘들게 하는 이 나쁜 짓부터 당장 중지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도 그린벨트 풀고 군사시설 보호지역 풀어서 공단 만들겠다고 한다. 지금 만들어 놓은 공단도 안 채워졌는데 뭐 하러 또 만드나.
비슷한 시기에 우리나라 비수도권 신도시가 20개 넘게 지어졌다. 신도시를 만들 때 국가가 토지를 수용하고 보상하면 땅 주인들은 갑자기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을 받게 된다. 이 돈이 어디로 갔겠는가. 강남 아파트 사는 데 들어갔을 것이다. 그러니까 강남 아파트값이 폭등한다. 균형 발전을 하겠다고 공공기관을 지방에 옮긴 것은 잘한 일이지만, 인구가 줄어가는데도 신도시를 20개씩이나 만들어서 이 꼴을 냈다. 여기까지 못 보는 이유는 끊임없이 개발을 요구하는 기득권 때문이다.
국가 정책이 계속 지방을 초토화시키는 게 아니라 지방을 살리는 쪽으로 가야 한다. 수도권에 몰려 있는 젊은 청년들 또는 중장년들이 더 행복한 삶터로 비수도권 지역, 로컬을 선택해서 옮겨가도록 지원해 주고, 광역이든, 기초든, 소멸 직전에 있는 지방정부는 인재들을 우리 지역으로 초대하는 데 필요한 준비를 해야 한다. 무엇보다 계속 서울로, 수도권으로, 신도시로 사람을 빼가는, 그래서 모든 사람을 힘들게 하는 이 나쁜 짓부터 당장 중지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도 그린벨트 풀고 군사시설 보호지역 풀어서 공단 만들겠다고 한다. 지금 만들어 놓은 공단도 안 채워졌는데 뭐 하러 또 만드나.
김규원 그런데 교수님의 책에는 그렇게 대다수가 서울‧수도권으로 갈 때 “난 안 가”하고 다시 귀촌해서 행복의 가능성을 보여준 사람들 얘기가 있다.
정 석 모든 사람이 서울‧수도권으로 몰려가는데, 거기에 도달한 사람이 행복하지 않다. 그러면 길이 외길밖에 없나, 아니면 내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또 다른 대안이 있는가 살펴보게 된다. 대안을 선택한다고 해도 한 번에 옮겨갈 수 없으니까 잠깐 가서 문을 한번 두드려보는 실험을 통해서 내가 서울‧수도권이 아닌 로컬에서 더 행복하게 살 수 있겠다는 믿음을 만들고, 원래 있던 서울, 수도권, 대도시보다 더 행복하게 사는 이런 예들이 늘어나면 이 믿음은 대세가 될 수 있다. 일백탈수, 수도권에서 비수도권으로 인구가 옮겨가는 인구 이동. 그러니까 반전이다.
이 흐름을 크게 세 갈래로 보는데, 첫 번째가 청년들의 로컬 창업 또는 취업,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것이다. 취업을 원하는 청년들은 대개 일자리가 많은 서울‧수도권으로 가려고 하는데, 자기 경험도 쌓고 뭔가 꿈을 꿔서 창업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똘똘한 친구들은 서울‧수도권 대도시에서 창업 안 하고 오히려 로컬로 간다. 왜냐하면 로컬에 상대적 강점이 많으니까. 이미 프리랜서 또는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이 로컬로 오는 흐름이 시작됐고, 내 생각에 점점 늘어날 것 같다. 두 번째는 중장년들이다. 은퇴한 중장년들이 계속 서울‧수도권에 남지 않고 고향이나 처가 또는 시댁으로 내려가서 여생을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면 이들도 상당한 흐름을 만들 것이다. 세 번째는 로컬 유학이다. 아직도 이렇게 어려서부터 경쟁시키는 교육을 하는 나라는 없다. 오히려 로컬에서 자연과 친하게 지내고 경쟁을 덜 하는 교육을 꿈꾸는 사람들은 자녀와 함께 로컬로 옮겨올 수도 있다. 크게 보면 이런 세 갈래로 인구가 수도권에서 비수도권으로, 로컬로 옮겨오기를 바란다.
제가 이 책을 쓴 가장 큰 이유는 로컬에 와서 한번 지내보라는 것이다. 체류형 로컬 여행, 그러니까 목적지를 정하고 바쁘게 오가는 게 아니라 한곳에 머물러보는 거다. 할 수 있으면 한 달이 제일 좋고, 어려우면 일주일, 다만 며칠이라도 한 곳에 숙소를 정하고 마치 거기 사람이 된 듯 천천히 살아보면서 그 지역에 스며들어 보는 것이다. 한 곳이 아니라 가능한 많은 곳에서 지내보면 자기와 궁합이 맞는 로컬을 찾게 될 것이다. 로컬에 와서 일단 지내보면 로컬의 매력에 빠지게 돼 있다. 내가 지내보니까 그렇더라. 아무리 거부해도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인 로컬의 매력이 있고 거기에 스며들 수밖에 없다. 스며들면 여기에서 더 행복하게 살 수도 있겠다는 꿈을 꾸게 되고 그 꿈을 이루면 되는 거다.
이 흐름을 크게 세 갈래로 보는데, 첫 번째가 청년들의 로컬 창업 또는 취업,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것이다. 취업을 원하는 청년들은 대개 일자리가 많은 서울‧수도권으로 가려고 하는데, 자기 경험도 쌓고 뭔가 꿈을 꿔서 창업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똘똘한 친구들은 서울‧수도권 대도시에서 창업 안 하고 오히려 로컬로 간다. 왜냐하면 로컬에 상대적 강점이 많으니까. 이미 프리랜서 또는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이 로컬로 오는 흐름이 시작됐고, 내 생각에 점점 늘어날 것 같다. 두 번째는 중장년들이다. 은퇴한 중장년들이 계속 서울‧수도권에 남지 않고 고향이나 처가 또는 시댁으로 내려가서 여생을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면 이들도 상당한 흐름을 만들 것이다. 세 번째는 로컬 유학이다. 아직도 이렇게 어려서부터 경쟁시키는 교육을 하는 나라는 없다. 오히려 로컬에서 자연과 친하게 지내고 경쟁을 덜 하는 교육을 꿈꾸는 사람들은 자녀와 함께 로컬로 옮겨올 수도 있다. 크게 보면 이런 세 갈래로 인구가 수도권에서 비수도권으로, 로컬로 옮겨오기를 바란다.
제가 이 책을 쓴 가장 큰 이유는 로컬에 와서 한번 지내보라는 것이다. 체류형 로컬 여행, 그러니까 목적지를 정하고 바쁘게 오가는 게 아니라 한곳에 머물러보는 거다. 할 수 있으면 한 달이 제일 좋고, 어려우면 일주일, 다만 며칠이라도 한 곳에 숙소를 정하고 마치 거기 사람이 된 듯 천천히 살아보면서 그 지역에 스며들어 보는 것이다. 한 곳이 아니라 가능한 많은 곳에서 지내보면 자기와 궁합이 맞는 로컬을 찾게 될 것이다. 로컬에 와서 일단 지내보면 로컬의 매력에 빠지게 돼 있다. 내가 지내보니까 그렇더라. 아무리 거부해도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인 로컬의 매력이 있고 거기에 스며들 수밖에 없다. 스며들면 여기에서 더 행복하게 살 수도 있겠다는 꿈을 꾸게 되고 그 꿈을 이루면 되는 거다.
김규원 로컬의 치명적 매력을 경험해 본다는 말씀에 공감이 된다. 그냥 어디 딱 정해서 강릉, 제주, 이러는 게 아니라, 강릉도 살아보고 원주도 살아보고 하동도 살아보면 궁합이 맞는 데가 있을 것 같다.
정 석 책에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인용했다. “여행하지 않는 사람은 책의 한 페이지만 읽는 것이다.” 그러니까 대한민국 로컬을 여행하지 않는 것은 사실 너무나 슬픈 일이다. 대한민국이 얼마나 넓고 깊은 나라인데 그 나라의 한 페이지만 딱 보고 책 다 읽었다고 한다면 너무 아쉽지 않은가. 그러니까 많은 로컬을 만나보셨으면 한다.
김규원 교수님 말씀을 듣고 나니 책을 한 번 더 읽어야겠다. 보통 많은 사람이 지역은 문화 불모지다, 지역은 문화가 없다, 뭐 이렇게 얘기하지 않는가. 그런데 사실 이 치명적인 매력이라는 부분이 있다. 분명히 지역에는 수도권과는 다른 굉장한 가능성이나 멋있는 문화가 있는데, 사람들이 이렇게 문화 불모지라고 얘기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
정 석 뭘 모르고 하는 얘기다. 저는 고향이 전주인데 3살부터 6살 때까지 김제에 있는 큰집에서 자랐다. 지금도 기억나는 게 대보름, 설날, 추석 또는 동네잔치가 있으면 항상 동네 어른들이 농악을 했다. 어른들 환갑잔치를 하면 차일을 치고 바닥에 멍석 깔고 친척 누님들이 한복을 입고 쫙 나와서 설장구를 했다. 그렇게 호남 농악이 쭉 이어져 오는데, 좌도 음악과 우도 음악이 다르다. 저는 어릴 때 ‘나도 장가를 가면 우리 아저씨들처럼 저걸 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전주에 와서 초중고를 보내고 서울에 와서 대학 이후를 살다가 50살이 되던 해에 그 생각이 번뜩 들었다. ‘50살이 됐는데 나는 아직도 농악을 배우지도 않았고 할 줄도 모르네.’ 그래서 그때부터 동네 주민센터에 가서 장구를 배웠다. 그러니까 로컬 문화는 그냥 마을에서 동네에서 자연스럽게 전승되는 것이다. 마을마다 다르고 지역마다 다르다. 예를 들어 제사 지내는 것도 다르다. 묘를 쓰는 모습도 다르다. 음악도 다르고 서예도 다르다. 나는 이게 대한민국 문화의 뿌리라고 생각한다. 지금 BTS를 비롯해 세계를 흔드는 대한민국 문화의 힘이 서울에서 나올까? 아니다. 저 로컬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다. 로컬이 사라져 버리고 서울만 남으면 대한민국 문화도 오래 못 간다. 네 맛도 내 맛도 아닌 맛이 될 것이다.
김규원 말씀을 나누다 보니 지역은 문화 불모지가 아니라 문화의 토양이고 씨앗이며 있는 그대로의 진짜 로컬을 다시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옛날에 국립국악원 문화 체험으로 보길도에 굿을 보러 간 적이 있었다. 그때가 설날이라서 마을마다 농악단이 쫙 걸어 내려오는데, 가까운 마을 간에도 옷부터 다 다르더라. 재밌었던 것은 설날이면 광주나 목포에서 초등학생들이 와서 배우고 함께한다고 하더라.
정 석 내 인생의 모토가 ‘인생은 음미체(音美體)’이다. 우리 안에는 문화예술의 재능이 있다.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지 누구나 다 있다. 그런데 구경꾼 또는 관람자로만 소극적으로 즐긴다. 적극적인 문화예술 활동을 하자. 그림을 그려보고 악기를 배워보고 노래를 배워보자. 옛날에는 다 그렇게 마을마다 동네마다 지역마다 문화예술을 해서 이어진 것이다. 하다못해 장례식 때 상여를 만들고 소리하는 게 동네마다 다 다르다. 문화가 별것이 아니라 결국 삶의 몸짓이다. 일하다가 힘드니까 술 한잔하면 흥이 나니까 노래 부르는 거고 춤추는 거고 그러면서 서로 맞추고 섞이는 것이다. 우리가 같은 커뮤니티를 이어가는 그 매개가 문화인 것이다. 그런 로컬의 삶이 그대로 문화로 드러나고 이어져 가는 게 대한민국을 풍성한 문화 강국으로 만드는 거다. 로컬을 다 죽이면 그것은 대한민국의 소멸이다. 그게 제일 속상하고 안타깝다.
김규원 이미 문화예술교육 얘기를 살짝 시작한 것 같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약 20년 동안 문화예술교육을 해왔다. 입시경쟁에 찌든 아이들이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게 하기도 하고, 시민들을 위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도 하고 있다. 지역에서 문화예술교육을 이런 식으로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게 있을까?
정 석 아까 우리가 병을 고치겠다고 하면서 오히려 병을 악화시켰다고 하지 않았나. 도시 설계에서도 하는 것보다 안 하는 게 더 좋을 때가 있다. 우리 조상들은 매우 자연 친화적으로 도시를 설계했다. 자연이 워낙에 좋으니까, 인공적으로 아무리 더해봐도 자연만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엔 자꾸 인공으로 뭘 하려다가 도시를 망가뜨린다. 결국, 도시 설계는 인생 설계와 똑같다. 우리 아이의 인생을 설계할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이 아이가 가진 고유함이 뭔지 아는 것이다. 그러니까 남을 따라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아이들이 가지지 않은 걸 살려야 한다. 그런데 공부하라면서 아이가 싫어하는 것을 자꾸 시키면 어떻게 인생 설계를 잘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까 방법은 간단하다. 문화예술교육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지 말고 아이들이 못 놀게 하는 입시교육, 경쟁 교육을 빨리 깨버려야 한다.
독일이나 프랑스 등 유럽 나라들은 입시가 없다. 특히 독일은 일찍부터 경쟁 교육을 버렸다. 왜냐하면 제2차 세계대전 때 자신들이 우월한 민족이고 국가라는 식의 경쟁 교육 때문에 나라가 망한 걸 알기 때문이다. 지금 전 세계에서 독일 초등학생들이 데모를 제일 많이 한다. 베를린시가 불법 이민자들을 강제 추방하겠다고 하니까 베를린 초등학교 아이들이 ‘세상에 불법 인간이란 없다’라면서 데모했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데모하니까 다음 날 초등학교 교사협회에서 ‘우리는 아이들의 주장에 100% 동의한다’라고 지지 성명을 발표했다. 그다음 날은 베를린시 교육청에서 지지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니까 베를린시가 불법 이민자 추방 계획을 유보했다. 경쟁 교육을 안 하니까 어린이들이 가장 약하고 힘든 사람들 편을 드는 것이다. 그런데 경쟁 교육을 시키는 우리나라는 서울대에 합격해도 의대에 못 가면 루저라고 생각한다. 내가 경쟁에서 이겨서 누리는 이 모든 것은 당연한 거고 경쟁에 진 놈들이 하는 말은 듣지 않는다. 이 경쟁 교육을 빨리 끝내야 한다. 그러고 나면 아이들의 문화예술교육은 저절로 된다. 그러니까 문화예술교육이 문제가 아니라 문화예술을 하고 싶어도 못 하게 하는 이 근본 원인은 입시교육에 있다고 생각한다. 입시 때문에 지방도 더 빨리 소멸되어 간다.
독일이나 프랑스 등 유럽 나라들은 입시가 없다. 특히 독일은 일찍부터 경쟁 교육을 버렸다. 왜냐하면 제2차 세계대전 때 자신들이 우월한 민족이고 국가라는 식의 경쟁 교육 때문에 나라가 망한 걸 알기 때문이다. 지금 전 세계에서 독일 초등학생들이 데모를 제일 많이 한다. 베를린시가 불법 이민자들을 강제 추방하겠다고 하니까 베를린 초등학교 아이들이 ‘세상에 불법 인간이란 없다’라면서 데모했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데모하니까 다음 날 초등학교 교사협회에서 ‘우리는 아이들의 주장에 100% 동의한다’라고 지지 성명을 발표했다. 그다음 날은 베를린시 교육청에서 지지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니까 베를린시가 불법 이민자 추방 계획을 유보했다. 경쟁 교육을 안 하니까 어린이들이 가장 약하고 힘든 사람들 편을 드는 것이다. 그런데 경쟁 교육을 시키는 우리나라는 서울대에 합격해도 의대에 못 가면 루저라고 생각한다. 내가 경쟁에서 이겨서 누리는 이 모든 것은 당연한 거고 경쟁에 진 놈들이 하는 말은 듣지 않는다. 이 경쟁 교육을 빨리 끝내야 한다. 그러고 나면 아이들의 문화예술교육은 저절로 된다. 그러니까 문화예술교육이 문제가 아니라 문화예술을 하고 싶어도 못 하게 하는 이 근본 원인은 입시교육에 있다고 생각한다. 입시 때문에 지방도 더 빨리 소멸되어 간다.
김규원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입시교육을 없앨 수는 없지만, 그걸 탈피할 수 있게 진짜 어렵사리 문화예술교육을 해왔다. 지금까지 20년간 교육에 희망을 주고 아이들 숨통을 틔워줬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공장, 양로원, 요양원, 교도소에서도 했다. 그런데 예산이 많지도 않다. 지역 문화예술교육에 희망을 주는 말씀을 부탁드린다.
정 석 숨이 멎어가는 지역에 문화예술로 숨을 불어넣어 주시고 수명을 연장시켜 달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래서 두 가지 덧붙이고 싶은 얘기가 있다. 기득권과 이기심이다. 옛날에는 공무원들이 자부심을 느꼈고 공공이 민간을 컨트롤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무너지게 된 계기가 IMF인데, 국가가 잘못해서 나라 살림을 거덜 낸 것이다. 바꿔 말하면 공공 영역의 붕괴다. 그러면서 민간의 경영 논리가 국가 경영 논리에 들어오게 된다. 민간의 논리는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공공 영역은 세금을 거둬서 국민을 행복하게 해드리는 것이다. 특히 약한 국민이 차별받지 않게 해야 한다. 공공 영역이 잘못했고 실패했고 실수했다고 해서 이것을 민간 논리로 대체할 수는 없는데, 그렇게 하기 시작했다. 맨먼스(man/month) 따지고, 다면 평가, 목표 수치화 같은 서양적인 것들이 들어왔다. 그러니까 한국적인 것의 붕괴이기도 하다. 우리 본래의 고유성, 그게 문화일 수도 있고 세상살이일 수도 있고 경영일 수도 있는데, 그걸 잃게 된 결정적인 계기다.
두 번째 계기는 ‘부자 되세요’라는 말로 대표되는 이기심이다. 지금 우리는 국가와 공동체의 위기다. 지방 소멸도 인구도 교육도 부동산도 위기다. 그런데 이런 위기가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고 공무원이나 전문가들도 기득권의 앞잡이가 되어버렸다. 가난했던 시절에도 우리 국민은 이기심, 이타심의 균형감을 갖고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동네에서 내치지 않고 품고 살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밑도 끝도 없이 이기적으로 변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이 중병을 앓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가 우리가 옛날부터 가지고 있던 이 균형감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국가나 대통령, 정부, 정권, 정책의 문제도 있지만, 내 자식만 잘되면 상관없고, 우리 동네 집값이 올라가면 상관없다고 여기는 우리들의 이기심, 욕망이다. 기득권들이 그것을 탁 건드리면서 본인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그래서 이 문제가 같이 풀려야 우리가 건강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두 번째 계기는 ‘부자 되세요’라는 말로 대표되는 이기심이다. 지금 우리는 국가와 공동체의 위기다. 지방 소멸도 인구도 교육도 부동산도 위기다. 그런데 이런 위기가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고 공무원이나 전문가들도 기득권의 앞잡이가 되어버렸다. 가난했던 시절에도 우리 국민은 이기심, 이타심의 균형감을 갖고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동네에서 내치지 않고 품고 살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밑도 끝도 없이 이기적으로 변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이 중병을 앓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가 우리가 옛날부터 가지고 있던 이 균형감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국가나 대통령, 정부, 정권, 정책의 문제도 있지만, 내 자식만 잘되면 상관없고, 우리 동네 집값이 올라가면 상관없다고 여기는 우리들의 이기심, 욕망이다. 기득권들이 그것을 탁 건드리면서 본인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그래서 이 문제가 같이 풀려야 우리가 건강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규원 교수님과 인터뷰할 때는 차가 아니라 술이 필요한 것 같다. (웃음) 특히 로컬의 개념과 의미에 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국가가 진짜로 해결해야 할 병이 무엇인지 알고, 자기 자신과 지역의 진짜 행복과 즐거움을 위해 균형 감각을 가져야 할 것으로 본다.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도시 이야기를 쉽게 풀어 쓴 『나는 튀는 도시보다 참한 도시가 좋다』 『도시의 발견: 행복한 삶을 위한 도시 인문학』 『천천히 재생』의 저자. 페이스북과 유튜브 채널 ‘도시의 정석’을 통해 시민과 소통하고 있고, 2021년 연구년을 맞아 하동, 목포, 전주, 강릉 등 지방 중소도시 원도심과 시골 마을에서 지역 한달살이를 하며 로컬에서 더 행복하게 일하며 사는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유튜브로 시민들과 공유하고 있고, 최근 『행복@로컬』을 출간했다. 대한민국 만병의 근원이 수도권 과반 인구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믿고, 1년에 100만 명씩 탈수도권 해서 지역에 우리가 꿈꾸는 나라를 만드는 ‘일백탈수 지역민국’ 운동을 시작했다.
김규원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문화연구본부 문화예술가치확산연구실 선임연구위원. 파리4대학에서 문화지리학 박사를 1999년 취득하고 지리학적 관점에서 지역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였으며 이후 지역축제를 통해 지역문화를 다수 바라보게 되었다. 2001년 한국문화정책개발원 입사 2001년 지역문화의 해 간사로 참여 연구원 초기부터 지역문화 관련 연구와 활동, 전통문화, 문화시설 등의 연구를 수행했다. 향후 남쪽 바다가 보이는 지역에 정착할 욕심으로 연구원 정년을 기다리고 있다.
- 정리_남은정 프로젝트 궁리 기획자
- 인터뷰 사진_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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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로 향하는 행복한 반전이 필요하다
[대담] 지역의 현재와 가능성, 미래를 위하여
공감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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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만점입니다
지역연계, 지역중심, 로컬이라는 용어가 요즘 화두인데 문화예술교육분야에서도 시의적절한 이슈를 다루는 것 같습니다.
로컬과 글로벌이 서로 상생하고 공유할 수 있기는 바란다는 두 대담자의 말을 깊이 새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