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계에는 지역문화 절대주의자가 많다. ‘우리 지역, 우리 역사, 우리 예술, 우리 문화’를 절대 선(善)으로 놓고, 교육하고 기획하고 실행하는 사람들이 지역문화 절대주의자들이다. 이 문맥의 ‘사람들’에는 예술가, 교육자, 매개자, 기획자, 연구자, 행정공무원, 정치가 등이 속한다. 이들에게 ‘우리 공간’은 선(善)이고 다른 공간은 타자일 뿐이다. 이것은 분명한 오류다. ‘우리 지역문화’만 중요한 것이 아니고 민족문화, 다른 지역의 문화, 세계의 보편문화도 중요하다. 대한민국 「지역문화진흥법」 2조 1항이 규정하는 지역문화란 ‘「지방자치법」에 따른 지방자치단체 행정구역 또는 공통의 역사적·문화적 정체성을 이루고 있는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문화유산, 문화예술, 생활문화, 문화산업 및 이와 관련된 유형·무형의 문화적 활동을 말한다.’
이 정의에 의하면 지역은 서울시, 부산시를 비롯한 광역시, 충청북도, 전라남도를 비롯한 광역도, 세종시, 제주도와 같은 예외적 자치단체, 그에 속한 시군 기초자치단체 등의 공간이다. 그러니까 지역문화는 전통을 공유하는 지역의 문화유산, 예술, 생활, 문화산업과 관련된 유무형의 문화적 활동이다. 따라서 국가문화나 중앙문화가 아닌 지역의 고유한 문화가 바로 지역문화다. 문화예술계에서는 경(京)과 향(鄕)을 나누는 전근대적 구분 대신 지역문화, 지역문화예술교육, 지역문화예술진흥과 같은 용어를 쓴다. 지방(地方)이 정치 행정의 개념이라면 지역(地域)은 문화 민주주의 개념이다. 서울문화나 뉴욕문화를 포함한 모든 문화는 지역문화이며, 모든 문화는 동등한 가치를 가지는 유기적 생명체다.
지역문화의 첫 번째 폐단은 지역 절대주의다. 여기서 파생되는 문제는 지역 절대주의에 토대하여 기획하고 교육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 지역 출신의 예술가, 우리 지역의 문화유산, 우리 지역의 전통’ 등을 무조건 절대화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생각이다. 대부분 지역의 기획자와 교육자는 지역의 고유성과 정체성을 실행에 반영한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그런데 ‘우리 지역’에 대한 애정이 과도하여 객관성과 보편성을 상실한 경우가 많다. 가령 지역주의를 앞세워서 한국 문학사나 한국 음악사에서 거의 거론되지 않는 예술가의 기념관을 세워서 과도한 공공 재정을 투입하는 것이 지역 절대주의의 오류다.
지역문화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것은 예술가, 기획자, 행정가의 3주체다. 3주체는 각기 다른 조건과 목표를 가지고 문화예술을 대한다. 이들의 성격을 은유적으로 정의해 보면, 예술가는 감성적이면서 낭만적인 존재이며, 문화예술기획자는 위험하면서 필요한 존재이고, 행정가는 원칙적이면서 성과주의적인 존재다. 자본과 행정에서 독립한 순수예술가를 제외한 예술가, 기획자, 행정가는 하는 일도 다르고 목표도 다르다. 하지만 문화예술적 행복을 위하여 함께 노력하는 문화예술공동체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들이 속한 영역의 조건 때문에 3주체는 모두 제약을 받는다.
사적 영역의 문화예술은 시장이나 종교 등의 원리로 작동하지만, 공적 영역의 문화예술은 국민국가의 국민이나 민주사회의 시민적 보편성으로 작동한다. 공적 문화예술은 국민의 세금, 국회를 거친 법률, 정치가와 관리들의 정책, 국민의 열망 등을 담아 공적으로 실행해야 한다. 문화예술의 3주체는 공적 목표인 투명한 정책과 재정, 그리고 국민의 문화예술적 행복을 위하여 한배를 탄 운명공동체다. 지역 문화정책은 기본적으로 시장실패의 운명에 놓여 있는 문화예술을 살리는 것이 3주체의 책무다. 그런데 예술가는 예술적 목표가 우선이고, 기획자는 적합한 설계가 우선이고, 행정가는 최적의 결과가 우선이다. 그런데 3주체가 정치가, 자치단체장, 언론 등에 지역 절대주의, 지역 우선주의, 지역 우월주의를 선동하면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우리 지역의 문화예술을 절대화하면 객관성을 상실하여 ‘우리 지역의 문화예술’만 훌륭한 것으로 착각하게 되어 있다. 그렇지 않다. 우리 지역의 문화예술이 중요한 만큼 다른 지역의 문화예술도 중요하다. 타자의 문화예술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자기 지역의 문화예술이 인정받고 존중받는 길이다. 무지개나 모자이크처럼 다양한 문화가 아름답게 어울릴 때, 지역의 문화예술도 빛난다. 지역문화의 고유성은 국가문화, 민족문화, 세계문화 안에서 서로 조화하면서 살아나는 무지개와 같다. 문화예술은 인간종(Human species)이 가진 보편성을 벗어날 수는 없다. 따라서 지역문화를 교육하고 기획하고 실행할 때는 지역의 고유성과 함께 보편적인 시각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 김승환
- 문학, 철학, 미학, 역사, 논리학, 예술, 문화 등을 전공하고 가르쳤다. 민예총, 작가회의 소속이며 충북대학교 교수, 민교협 상임의장, 충북문화재단 대표이사 등을 역임했다. 『인문학 개념어 사전』 1, 2, 3권과 『분단문학비평』 등을 출간했고 인문학, 자연과학, 수학을 통합하여 우주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총체적으로 사유하고 있다.
whan64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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