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의 연기를 통해 사법부의 역할을 알아보니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연극으로 수업을 진행한 뒤, 어떤 학생이 내게 했던 말이다. 작은 예술적 경험이 때론 학생들의 꿈을 만들기도 하고, 인생을 살아가며 겪게 되는 다양한 문화생활의 도화선이 되기도 한다. 교사가 되기 전, 국립예술단체에서 공연 홍보와 마케팅을 맡았던 나는 지금 중학교에서 예술이 생소한 학생들에게 예술을 알려주고 있다. 그것도 사회 과목를 가르치면서 기존의 통념과 틀을 깬 활동을 하고 있다. 일반적인 강의 형태를 벗어나 연극과 문화예술, 에듀테크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사회 수업에 연극 더하기
중학교 [사회2] 과목에서는 인권 침해 사례와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 등에 대한 개념을 다룬다. 나는 학생들이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받는 것이 아니라 직접 부딪히고 체험하며, 자신의 언어로 만들어 체화하길 바랐다. 함께 즐기며, 모두가 웃으며 배울 방법을 고민하던 중, 연극이 떠올랐다. 사회 현상과 사법부, 인권 등의 사례가 담긴 영화, 드라마, 연극, 뮤지컬의 대사 몇 개를 일부 각색하여 학생들에게 비계(飛階)로 제공했다. 학생들에게 인물의 대사와 상황, 배경을 읽고 빈칸에 자신의 가치관을 담아서 대사를 작성해보게 하였다. 수업 시간에 배운 키워드를 활용하여 교사가 제시한 방향성에 맞춰 적어야만 했다. 동시에, 이것은 ‘과정 중심 평가’의 일환이 되었다. 학생들은 인권, 참여재판, 대통령, 기후 위기 등 다양한 주제로 장면을 그려낸다.
학생들이 적은 불과 네 줄 남짓 되는 이야기(대사)로, 우리의 수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모둠 또는 짝과 함께 직접 대사를 읊어보고, 감정을 담아보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학생들은 발표한다. 앞에 나와 발표하는 학생들은 그저 자신이 쓴 대사를 읽고 들어가지 않는다. 먼저,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의 상황에 대해 정지 동작으로 표현하고, 각자 준비한 대사로 연기한다. 나는 발표를 끝낸 학생들에게 즉흥적으로 질문을 하거나 어떠한 제3의 인물로 분하여 학생들에게 또 다른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연극·영화교육에서 다루는 ‘전문가의 망토’(학생이 상황과 관련된 전문가 역할을 해보는 교육연극 기법), ‘프로세스 드라마’(학생과 교사가 상상의 극적인 상황에 참여하여 이야기를 이끄는 교육연극 기법), ‘DIE’(Drama In Education, 공연을 전제로 하지 않은 교육적 워크숍), ‘TIE’(Theater In Education, 교육과정에 공연 형태의 연극을 도입하는 프로그램), ‘역할 내 교사’(교사가 아닌 다른 역할이 되어 이끌어가는 교육연극 기법) 등 다양한 기법을 수업에 활용한다. 각자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되거나 대통령, 국무위원으로 분하여 사회적 이슈에 관해 탐구하고 정책을 발의하는 역할극을 하기도 하고, 특정한 사회 현상에 관해 간단한 드라마, 즉흥극을 만든 경험도 있다.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소외되는 학생들이나 무임승차가 없도록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하되, 교사는 끊임없이 소통하고, 필요하다면 드라마투르그나 무대감독이 되어 극을 이끌어간다. 학생들은 이런 활동을 통하여 고차사고력인 문제해결력, 창조적 사고력, 비판적 사고력, 의사결정능력 등을 비롯해 심미적 감성과 공동체 역량을 기르게 된다. 수업에서 배운 지식과 개념을 점검하고, 독창적으로 재구성하여 감정을 입히고 인물에 숨을 불어넣는 작업은 마치 국어과 수업 현장과도 같다. 가치 판단을 통해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고 도덕적 딜레마, 폭력과 정의 등에 배우는 것은 도덕과 수업과 유사하다. 우리는 이런 사회 수업이 다양한 교과와도 연계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수업 내 다양한 연극 활동은 간학문·초학문적 통합을 끌어낸다. 학생들이 역할극 수업을 통해 연극의 재미를 깨닫고, 자신 혹은 친구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기도 한다. 학급 친구들이 판사, 대통령을 연기하면서 교실에 웃음꽃이 피어나고, 노동자, 노인, 국회의원 등을 연기하며 우리 사회를 진지하게 반추하던 날도 있었다. 역할극을 통해 사회학적 지식을 체득한 학생들은 특히 자신이 연기한 인물에 대해서는 절대 잊어버리지 않았다. 학생들로부터 사회 수업을 “살아 숨 쉬는 수업”이라는 피드백을 들었을 때, 누구보다도 뿌듯하고 행복했다. 교사로서의 사명감과 효능감이 높아지던 순간이었다.
  • 수업 내 역할극 활동
동아리에 연극 더하기
연극반 동아리를 맡았던 작년 봄, 연극, 뮤지컬은 물론, 예술 분야가 낯설었던 학생들을 마주하니 다소 막막했다. 처음으로 연극반을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했던 나였지만, 자신이 없었다. 학생들에게 공연예술에 대해 질문했더니 “모른다.” “하기 싫다.” “귀찮다.”라는 답변만 돌아와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학생들과 장면 발표를 하거나 연극을 한 편 올리고 싶다는 꿈은 접어야 했다. 중학교 3학년인데다 예술이 특화된 중학교가 아니라는 점을 잠시 간과했다. 내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작은 연극적 경험이라도 제공해주자’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고, 관찰하는 방법을 알려주자’ ‘연극이 어려운 장르가 아님을 알려주며, 잠재적 관객으로 만들자’.
연구원, 요리사, 작가, PD 등 진로를 발견한 학생들도 있었지만, 상당수는 진로를 찾지 못한 상태였다. 나는 학생들이 연극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싶었다. 먼저, 자신에게 여러 질문을 던져 다양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하였다. 몇 주에 걸쳐 각자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행복, 아쉬움, 속상함, 미안함, 즐거움 등이 담긴 여러 상황을 끌어내고 몇 줄의 대사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연결하였다. ‘피노키오 활동’으로 학생들이 자신이 꿈꾸는 미래 혹은 사랑하는 것들에 관한 동작과 대사를 만들 수 있도록 도우며, 나도 함께 이야기를 펼쳐내고 내가 가진 경험을 소개하곤 했다. 친구들과 함께 특정 상황을 연기하거나 유명 희곡을 읽어보면서 다름을 인정하는 법을 배우고 저마다 다른 표현 방법에 대해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설령 그것이 연극처럼 보이지 않아도, 단어 몇 개만 뱉어내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겨울이 깊어질 무렵, 연극이 낯설고 다른 사람 앞에서 선뜻 나서지 않던 학생들이 눈에 띄게 성장했다. 또한, 배우의 생김새, 노래에만 집중하던 것에서 어느새 무대 장치와 플롯(이야기), 소품, 동선 등 인물의 서사와 연극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스스로 혹은 우리가 하는 대사와 연기에 서로 감탄하며 서로에게 환호를 보내거나 어느 때보다 밝은 웃음을 보였다. 마침내, 연극이 그들을 바꾼 것이다. 동아리 마지막 시간, ‘나에게 연극이란 [      ]이다’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답변을 발견한 나는 눈시울을 붉히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 ‘삶’ ‘인간’ ‘중3’ ‘거울’ 등 다양한 단어가 등장했고, 그렇게 생각한 이유도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그저 어렵게만 느껴졌던 연극이 일 년의 동아리 시간 동안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연극이란 우리와 거리가 멀거나 전혀 다른 무언가가 아니라 우리 삶 그 자체라는 사실을 배운 것이 인상적이었다.
  • 연극반 동아리 활동
교사가 보지 않는 순간에도 중학생들은 끊임없이 성장한다. 교사의 작은 손짓과 말 한마디에 인생이 바뀔 수도 있는 아이들이다. 그들의 심장에 예술의 씨앗을 심어주고, 그것이 꽃을 피우길 기다린다. 수개월이 지난 지금, 올해는 방송부를 맡게 되었지만, 연극과 문화예술이라는 끈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 모 대학과 ‘프로세스 드라마’ 관련 워크숍을 기획하여 예술가와 협업하거나 국립예술단체 협력 학교 교사로도 활동하며 학생들에게 연극적 경험을 선사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교사로서도 매우 재미있고, 유익한 ‘연극’과 ‘드라마’ 그 어딘가 사이에 있다.
교직 생활 중에 학생들과 수업 안팎에서 연극 활동을 하며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교사’다. 모든 활동에는 수업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나도 포함된다. 학생들에게 전적으로 일임하는 것이 아닌 나도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경험을 나누고 함께 연기한다. 교실이라는 무대 위에서 교사-학생이 가지는 위계는 없다. 모두가 배우, 연출, 관객이 되어 바라보고 뛰어든다. 학생들은 마치 도화지와도 같다. 도화지에 색칠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대단한 착각이다. 물에 젖게 만들거나 찢어버리거나 접어서 비행기를 만들 수도 있다. 중학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천편일률적인 교육에서 벗어나 다양한 예술적 활동으로 다른 시선을 가지는 것, 색다른 접근을 통해 협력과 이해, 존중을 얻는 것이 바로 예술교육의 역할이다. 특히, 연극은 다원 예술로써 향후 도입될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다루는 다양성, 메타인지, 창의성 등에도 효과적일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교과, 지역사회, 에듀테크, 시민교육 등 다양한 주제를 예술교육과 접목하여 학생들과 함께하려 한다. 그리고 이것은 사소하지만 위대한 날갯짓이 될 것이 분명하다.
연극으로 내일의 찬란한 꿈을 그려내기 위해,
나는 오늘도 달린다.
김율
김율
대학에서 문화콘텐츠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일반사회교육 석사과정을 마쳤다. 교사가 되기 이전에는 국립예술단체의 마케터였고, 학창 시절 꿈을 좇아 중학교 사회 교사가 되었다. 지금은 연극·영화교육(부전공) 석사과정을 밟는 중이며, 문화예술교육과 에듀테크에 관심이 많다. DSLR 카메라로 학생들의 스냅 사진 찍어주며 함께 성장하는 수업을 꿈꾼다. 교사는 화가이자 조각가이고, 페르소나의 중심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kimyul@korea.kr
인스타그램 @yul.ssam
사진 제공_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