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미술가이신 강술생 작가님을 아시나요? 지난 전시에서는 수확한 씨앗의 수를 일일이 세셨대요.”
여느 때보다 강렬한 초대 전화를 받았다. 마음은 어쩐지 고요해졌다. 수확한 열매의 씨앗을 일일이 헤아리는 건 어떤 마음일까. 감사의 의식일까? 염원의 방식일까? 끝없이 떠오르는 물음이 내심 반가웠다. 검색창에 ‘생태미술’, ‘강술생’을 번갈아 입력하며 만남을 고대했다. 생태적 경험이라곤 베란다에 키우고 있는 깻잎, 호박, 미나리가 전부인 나지만, 그와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면 무언가 달라질 것 같다는 알 수 없는 기대감에 설렜다. 한여름처럼 뜨겁던 5월의 어느 날, 강술생, 김미숙 작가가 함께 발표한 전시 《108 walking drawing》이 열린 전시장을 찾았다. 꾹꾹 눌러 써간 질문지를 손에 꽉 쥐고 그와 마주 앉아 이야기 나누었다.
여느 때보다 강렬한 초대 전화를 받았다. 마음은 어쩐지 고요해졌다. 수확한 열매의 씨앗을 일일이 헤아리는 건 어떤 마음일까. 감사의 의식일까? 염원의 방식일까? 끝없이 떠오르는 물음이 내심 반가웠다. 검색창에 ‘생태미술’, ‘강술생’을 번갈아 입력하며 만남을 고대했다. 생태적 경험이라곤 베란다에 키우고 있는 깻잎, 호박, 미나리가 전부인 나지만, 그와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면 무언가 달라질 것 같다는 알 수 없는 기대감에 설렜다. 한여름처럼 뜨겁던 5월의 어느 날, 강술생, 김미숙 작가가 함께 발표한 전시 《108 walking drawing》이 열린 전시장을 찾았다. 꾹꾹 눌러 써간 질문지를 손에 꽉 쥐고 그와 마주 앉아 이야기 나누었다.
작가님의 이름을 듣자마자 멋진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주로 제주에서 개띠 해에 태어난 아이에게 짓는 이름이라고 하더라.
아주 오래된 이름이다. 우리 할머니 세대에서 쓰이던 이름인데, 옛날 이름을 가졌다고 좋게 봐주시는 분도 많았지만…. 사실 이름이 창피했던 적도 있었다. 학생들에게는 예‘술’ 선‘생’의 줄임말이라고 사기를 좀 친다. 예술을 전하는 일을 사명으로 갖고 태어났다고 멋지게 해석했다.
와, 정말 운명일지도 모른다. 어떤 예술 활동을 하시는지 소개 부탁한다.
자연의 ‘자연스러움’을 닮고 싶어 하는 생태미술가다. 제주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생명의 살아있음에 대해, 자연이 저절로 이루어 내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들과 함께 심고, 기르고, 걷고, 움직이며 다양한 생태미술 프로젝트를 만들어 왔고, 그 과정을 그림이나 영상으로 기록하여 전달하고 있다.
제주도 이야기가 듣고 싶다. 저는 서울 태생이라서 그런지, 제주도는 뭐랄까, ‘환상의 섬’이다.
저도 어렸을 때는 환상에 빠져 있었다. 초등학생 때만 해도 TV가 흔치 않았는데 남의 집에 가서 본 TV 속에서는 온통 제주도 이야기뿐이었다. 그래서 제주도가 굉장히 크고 대단한 섬인 줄 알았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제주방송이라 그랬던 거였다.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섬을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제주 사람이라면 그런 마음을 저절로 품게 된다. 제주에서도 충분히 공부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대학만큼은 서울로 가야 한다는 목표를 세우는 게 일반적인 제주 사람이다. 저 또한 그랬다. 육지 생활은 좋았다. 모든 것이 반듯하고, 거대하고, 발달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한계가 느껴지더라. 스스로 이방인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의 근본, 나의 DNA가 자꾸 제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런 와중에 결혼과 출산을 하고, 더욱 생각이 깊어졌다. 결국 첫째 아이가 4살 때, 둘째 아이를 잉태한 상태에서 남편에게 ‘먼저 내려가 있을 테니 따라오라’고 하고는 제주도로 돌아왔다.
다시 돌아온 제주는 어땠나?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었나?
친정으로 돌아와 서로 따듯하게 보듬으면서 생활하다 보니 제주의 자연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노출된 제주의 이미지는 다소 피상적이잖나. 달력 속 성산일출봉과 유채꽃밭 모습만 떠올리지 제주를 ‘살아있는 섬’ 그 자체로 바라보는 관점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둘째 아이를 출산하자마자 몸소 오름을 오르고 바다를 거닐며 그런 생각에 살을 붙여나갔다. 그즈음 환경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 환경 운동이나 환경 교육이 생기면서 모두 ‘쓰레기를 버리지 말자’고 외쳤다. 저는 쓰레기 이야기가 아니라 살아있는 자연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때부터 ‘생태’라는 단어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고집스럽게 가지고 있는 생각이다.
마침 성산일출봉을 떠올리고 있었는데 뜨끔했다. 제주가 ‘살아있는 섬’이라는 관점을 어떻게 내면화하고 표현하셨는지 궁금하다.
고등학교 때 미술 선생님께서 “아이들이 석양을 보며 감동할 줄 모르는 것이 안타깝다”고 하셨다. 어쩐지 그 말씀이 오래 기억에 남았고 해가 지는 모습을 볼 때마다 깊이 생각했다. 그런데 문득 그 감동을 표현하고 싶어도 방법을 모르겠더라. 서서히 붉어지다 사라지는 그 아름다움을 어떻게 그리나. 오랫동안 그림을 배웠지만 도저히 평면에 고정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 ‘과정’을 담을 수 있는 방식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곳저곳을 다니며 관찰한 것을 기록하기도 하고, 한 장소에다 무언가 심어보기도 했다. 그렇게 땅을 다지고, 씨를 뿌리고, 열매 맺고, 수확하고, 다시 봄이 오면 씨앗을 심고 농사의 긴 호흡을 따라가는 거다. 이 모든 과정을 경험하는 것이 저의 창작이자 교육 활동이기도 하다.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우연의 개입이 많을 것 같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자연을 다루며 창작하시는지 궁금하다.
보여주기 위해 억지로 하는 일은 아닌지 항상 경계한다. ‘이런 인위적인 설치 작업은 다시는 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한 적도 있다. 그런데 자연이 반응을 해준다. 억지스러운 점도 있었지만 다시 자연스러워지는 것을 보며 위안을 얻는다. 이렇게 한 해 한 해 자연과 관계 맺고 살아가는 과정이 쌓이면 생태미술이 완성될 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생태미술은 삶의 미술이라고 말하고 싶다. 한 사람의 삶을 그냥 보여주는.
지금 하고 있는 전시 《108 walking drawing》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전시의 제목을 보자마자 명상적이면서도 무언가 간절히 기원하는 움직임이 떠올랐다. 어떤 마음으로 어두운 새벽마다 빛도 없는 땅으로 한 걸음 떼셨나.
2020년 세계유산축전제주에서 동료 김미숙 작가와 함께 발표했던 〈우후석순(雨後石筍)〉 프로젝트에서 시작되었다. 천연기념물 384호인 당처물동굴 인근 들판에서 어른과 어린이가 한데 모여 퍼포먼스를 하는 과정에서 커다란 모래 더미를 여럿 쌓았다. 사실 금방 바람에 흩어질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모래가 힘이 있더라. 작고 가벼운 모래 알갱이들이 비와 바람을 만나 점점 단단해졌다. 우리 눈에는 한낱 작은 알갱이였는데, 그 안에 물을 품은 흙이 있었고 결국 어디선가 날아온 씨앗을 싹 틔웠다. 경이로웠다. 그다음 해에도 같은 축전에 참여하며 모래 더미에서 자란 야생화로부터 영감을 받은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식물이 햇빛뿐만 아니라 달빛에도 의존하여 성장한다는 걸 알고 있나? 어두운 밤에는 달빛이 식물을 생육한다고 한다. 우리는 움직임으로 달 언저리의 빛을 표현했고 그렇게 프로젝트의 소제목은 〈달무리〉가 되었다. 전시가 끝나고, 그 땅을 원상태로 돌려놓는 과정에서 무심코 호박 한 덩이를 심었다. 마침 수확한 호박이 차에 있었다. 한 달 후에 가봤더니 글쎄 이게 발아가 되었더라. 와, 발아가 됐네. 농사를 짓는 밭도 아니고 모래 속에서. 놀라웠다. 이렇게 호박도 살아 움직이고 있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계속 이곳에서 교감하고 싶어 그렇게 걷기 시작했다. 계획된 전시나 특별한 기획이 없더라도, 누군가 초대해 주지 않더라도, 그저 두 발로 이곳까지 걸어올 수 있음에 충만함을 느꼈다. 백여덟 번의 산책은 2021년 12월에 시작해서 2023년 4월에 마무리되었다. 어두운 새벽을 걷고 또 걸으며 사진 찍고 글 쓰고 드로잉 했던 기록을 가져와 이렇게 펼치게 되었다. 이번 전시는 무언가 보여주기보다는 우리가 함께 여기까지 왔다고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구전 설화 한 편을 들은 기분이다. 그렇다면 총 4년에 걸쳐 한 장소에서 이루어진 예술 활동이라고 볼 수 있겠다.
예술 활동이기보다는 온전한 자연과의 교감이었던 것 같다. 우리가 늘 예술 활동을 통해 사람을 자연의 일부로 바라보는 시각을 갖자고 강조하지만, 사실은 말이 앞서는 경우가 많잖나. 자연에 머무르며 같은 장소를 오랫동안 지켜보다 보니 몸소 알게 된 것들이 있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는데 기꺼이 움직이려고 하는 내면의 동력을 발견했던 것도 중요했다. 지금보다 조금 젊었을 때는 해야 하니까 했다면, 지금은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부분도 있다.
더 자세히 듣고 싶다. 무엇이 달라졌는지, 어떤 발견이 있었는지.
감각이 열리는 경험을 했다. 전에는 보이지 않던 다양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고, 생활공간에서 들은 적 없던 소리에 민감해지기도 했다. 바람의 움직임이나 온도의 변화 또한 섬세하게 느낄 수 있었다. 자연과 교감하는 통로가 늘어날수록 새롭게 알게 되는 자연의 성질도 있었는데 뭐랄까, 자연이 ‘변화’한다는 것 자체가 가장 큰 자극이었다. 멈춰 있지 않고 살아서 계속 변한다는 사실이다. 그 변화가 크게 와 닿은 이유 중의 하나는 아마 같은 장소를 거의 비슷한 시간에 매번 방문했기 때문일 거다. 좁은 공간을 꾸준히 관찰하다 보니 시간의 흐름 또한 다르게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종종 소원하는 성취나 꿈이 멀리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가까이에서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 변화를 포착하지 못하는 것뿐이다.
무언가 반복하는 일, 기다리는 일, 순리를 따르는 일에는 에너지가 상당히 들 것만 같다. 강술생 작가님을 움직이는 동력이 무엇인가?
‘살아있음’인 것 같다. 살아있는 생명체를 보고, 느끼고, 그 ‘살아있음’에 대해 전달하고 싶은 마음. 어쩌면 그것이 예술가의 역할인 것 같다. 새로운 걸 창작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관점을 던져주는 거다. 저는 씨앗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자연의 일부인 우리도 씨앗처럼 태어나고, 자라고, 늙고, 병들고, 죽는 과정을 겪겠지만, 결국 무언가 남길 거라는 희망에 대해서. 씨앗 하나하나가 생명을 품고 있듯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모두 희망이 있다고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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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미술프로젝트〈무당벌레 꽃이 되다〉(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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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의 희망》(2021)
[출처] Artist강술생
씨앗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작가님의 《씨앗의 희망》 전시가 정말 흥미로웠다. 수확한 씨앗을 일일이 헤아리고, 다시 파종하고, 수확하는 과정을 몇 년에 걸쳐 보여주셨다. 씨앗을 헤아리는 행위는 어떤 의미였는지, 작가님께 씨앗은 어떤 의미로 작동하는지 궁금하다.
코로나19 팬데믹 한복판에서 이루어진 전시였다. TV만 틀면 확진자가 몇 명인지 실시간으로 알 수 있었다. 그때 저는 수확한 옥수수와 호박의 씨앗을 손에 쥐고 하나씩 헤아리고 있었다. 아무 의미도 없어 보였던 씨앗 하나가 열매를 맺고, 또다시 생명을 품은 여러 개의 씨앗이 되었잖나. 단순하지만 명쾌한 희망을 느꼈다. 하염없이 늘어나는 확진자 수에 비하면 씨앗의 총합은 작았지만, 모두 절망의 숫자를 상기하며 불안에 떨던 시기에 희망의 숫자를 헤아리는 행위는 큰 의미가 있었다. 숫자를 센다는 단순한 행위로 희망을 이야기했기 때문일까, 어렵지 않게 공감을 살 수 있었던 것 같다.
뿌리가 꺾인 옥수숫대도 전시되었는데 사연을 알게 되니 마음에 울림이 컸다. 옥수숫대가 원래 그런 성질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던 건가?
전혀 몰랐다. 몸소 경험하기 전에는 모른다. 그 세세함을 누가 전달해 주겠는가. 옥수수는 키가 큰 작물인데 성장하다 태풍을 만났으니 뭐, 전부 넘어졌다. 수확량이나 품질을 생각해야 하는 농부라면 어떻게 해서든 일으켜 세웠을 거다. 저는 자연에 맡기고 그대로 뒀다. 게으른 농법이다. 그런데, 빛을 향하려는 식물의 성질은 대단한 것이더라. 옥수숫대가 서서히 방향을 틀더니 스스로 일어섰다. 마디를 꺾으면서. 깜짝 놀랐다. 미처 말하지도, 움직이지도 못하는 옥수수의 씨앗이 성장하면서 열매 한번 맺겠다고 그렇게 의지를 보이는데, 우리 사람이 뭘 못하겠나 싶더라.
옥수수의 입장에서는 자기 몸을 꺾은 것이다. 분명히 고통스러운 과정이었을 텐데.
그것이 본능인 거다. 우리도 모두 본능을 가지고 있다. 학습되지 않는 그런 원초적 본능. 그중에서도 더욱 키워내야 하는 본능이 있는데, 바로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우리는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을 모두 가지고 태어나는데 자라면서 무언가를 이루려고, 성공하려고 애쓰다가 잃어버리고 만다. 저는 예술교육을 통해서, 생태미술을 통해서 그런 본능을 되찾게 하고 싶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
생명을 사랑하는 본능이라…. (비장한 표정으로) 그 본능을 되찾고 싶은 예술(교육)가가 있다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 지금, 이 시점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돌아보고 실천해야 하는지 알고 싶다.
‘살아있음’으로 충분하다고 말하고 싶다. ‘살아있음’ 다음으로는 우리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씨앗은 홀로 성장하지 않는다. 해와 달, 비와 바람이 필요하다. 씨앗에 의지해서 벌레들이 살아가고, 씨앗이 성장해 열매를 맺으면 사람도 그 열매에 의존한다. 열매를 맺으면 끝나는 게 아니라 또다시 땅으로 돌아가 싹을 틔운다. 이렇게 자연이 관계 맺고 순환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를 돌아봤으면 좋겠다. 인간이 독립적이고 우월한 종이 아니라는 걸 말이다. 우리가 자연과 연결되어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득한 표정을 짓는 나를 힐끔 보시고는 다정하게 말을 이으셨다.) 그러니까, 거창한 의미로 연결을 말하는 게 아니다. 4년 동안 프로젝트를 할 수 있었던 것도 혼자가 아니라 동료 예술가와 함께했기 때문이다. 캄캄한 새벽에 자연에 다가가는 것은 사실 두렵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 곳으로 혼자 묵묵히 걷는, 그 왜소함을 극복할 수 있었던 건 동료를 의지했기 때문이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 함께 호흡을 맞추는 사람이 있다는 걸 항상 기억해야 한다. 그렇게 조금씩 타인과 호흡을 맞추다 보면 어느새 자연과의 호흡이 맞는 순간을 만나게 될 거다.
〈108 walking drawing〉강술생, 김미숙(2022)
[출처] Artist강술생
[출처] Artist강술생
강술생 작가와 이야기 나눈 1시간 남짓은 특별한 인상으로 남았다. 새벽길을 나선 작가를 뒤쫓아 걷다가 막 아침을 맞은 기분으로 전시장을 빠져나왔다. 얼굴과 얼굴 사이를 이었던 무지개, 거친 땅을 이기고 빼꼼 삐져나온 호박의 모습, 고요하면서도 강렬한 에너지를 뿜었던 그림들이 잔상처럼 오래오래 어른거렸다. 신기하게도 한동안은 어린 시절을 그리워했다. 거리낌 없이 모래를 만지고 놀던 기억, 투명하던 공기의 냄새, 바스락 밟히던 이름 모를 잎사귀의 모양새를 떠올렸다. 그의 말처럼 나에게도 본능이 남아 있는 걸까? 잊고 살았던 게 아닐까? 어느새 베란다에 심었던 호박씨는 노란 꽃을 피웠다. 그 작은 스티로폼 상자 한 뼘 땅에서 묵묵히 자라 열매 맺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강술생
스스로의 정체성을 생태예술가로 규정하고, 고향인 제주도를 주요 거점으로 삼아 20여 년간 창작활동을 해오고 있다. 생명체의 살아가는 모습, 자연에 의해 저절로 되는 것, 인위적이지만 자연스러워지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다. 다양한 생명의 유기적인 관계망을 회화, 사진, 프로젝트 형식으로 다양하게 작업하고 있다. 〈무당벌레 꽃이 되다〉 〈씨앗의 희망〉(2001) 〈500평 프로젝트〉 〈우후석순(雨後石筍)〉〈108 Walking Drawing〉등 다양한 생태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기획전 대청호환경미술제 《물의 시간》,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또 다시 야생》, 제주비엔날레 《움직이는 달, 다가서는 땅》, 《바다가 보이는 기당정원》, 《생태미술 공존 순환》 등 다수의 전시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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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려진
- 궁금한 게 많은 시각예술 작가, 기획자. 그림 그리고 이것저것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yriojin@gmail.com
인스타그램 @yriojin - 인터뷰 사진_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작품/프로젝트 사진 제공_강술생 생태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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