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로창고극장 2층 스튜디오를 향해 계단을 오르며 어떤 만남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상상했다. 스튜디오 앞에 도착하자 문 너머로 바닥에 엎드려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는 두 사람이 보였다. 저분들일까? 문을 열고 인사하는 날 발견하자 나갈 준비를 하신다. 그때 스튜디오 안쪽에서 송김경화 연출이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한다. 아, 이분들은 배우였구나! 송김경화 연출이 앉아있던 테이블에 놓인 책 『시설사회』와 청소년 인권 관련 서적들을 보며 깨달았다. 연습 중이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어떤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지 물었다.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온’이라는 곳에서 청소년 주거권 의제를 제대로 알려내기 위해서 대본집을 준비 중이에요. 거리 청소년 이야기였던 <오늘도 잘 곳 없음>에서 만났던 활동가분들이 그동안 쌓아온 자료로 대본을 구성해 보면 좋을 것 같다고 연락을 주셔서요. 작업의 중간 단계에서 공연을 통해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온’에서 시도해 보고 싶은 부분, 관객과 만나고 싶은 부분을 파악하고 대본집의 방향을 잡아보려고요.

대본집을 완성하기 위해서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니. 보통은 그 반대가 아닌가. 어떻게 그런 과정을 만들게 되었을까.

<오늘도 잘 곳 없음>이 거리 청소년이 왜 거리에 놓여 있을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작품이라면 <모두에게>는 ‘탈시설’에 대한 작품이에요. 거리 청소년이 원가정에서 탈출해서 갈 수 있는 곳이 시설밖에 없는데 이 시설도 원가정과 다름없이 폭력적이고 인권 침해가 심해요. 그래서 청소년들이 거리에 계속 놓여 있을 수밖에 없죠. 우리나라에 청소년의 주거 대안이 제도적으로 전혀 없는 상황이거든요. 거리 청소년을 문제 청소년으로 삼는 인식을 바꾸고 청소년도 ‘주거권’이 있는 동등한 시민이라는 이야기를 최종 대본집에서 하게 될 거예요. 굵게는 주거 대안 모델을 찾는 작업이 될 것 같아서 그 전에 공연으로 탈시설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내 보는 거예요. 사실 시설화된 삶은 쉼터에 가는 청소년들만 겪는 게 아니거든요. 청소년은 ‘학교’라는 시설 안에서 본인이 원하지 않고 합의되지 않은 규칙으로 살아가잖아요. 그런 삶을 겪고 비청소년이 된 이들이 ‘아동청소년을 향한 보호라는 이름의 폭력’을 당연한 것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어요. 그 당연한 것에 질문을 던지기 위해 연극 <모두에게>를 준비 하고 있습니다.

청소년과 탈시설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나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청소년의 주거권을 말하는 최종 목표를 위해서라면 ‘탈시설’을 이야기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동청소년의 존엄과 인권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저희 집 어린이님이 지금 10살이거든요. 혼자일 때는 몰랐지만 이와 동행하면서 불합리한 지점을 많이 발견했어요. 이와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한순간에 사회적 약자가 되어버린다는 것을 알았어요. <시소와 그네와 긴줄넘기>라는 작품은 저희 어린이님이 취학해야 하는 시기에 경험한 불평등을 이야기하는 작품이에요. 당시 코로나가 한창이었는데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해야 하는 것,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가지 못한 이들이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 등에 대한 고민이 있었고 그 방향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극단 ‘낭만유랑단’ 동료들도 다 어린이님과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함께 공연을 해보자며 작품을 하게 됐죠. 그때 객석에 앉은 비청소년들이 겸허해지고 미안해지고 내가 이 사회 안에서 이들을 잘 만나고 있는지 고민하게 됐어요. 당사자가 자신의 인권을 말할 때 생기는 울림을 발견한 것 같아요. 한때는 우리 모두 아동청소년이었잖아요. 아동청소년의 인권과 비아동청소년의 인권이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 작품이었어요.

  • <시소와 그네와 긴 줄넘기>
  • <2014년 생>

그렇다면 <시소와 그네와 긴줄넘기>라는 작품을 통해 생각의 변화가 생기면서 ‘아동청소년 인권’에 대한 작업을 지속하게 된 것일까.

생각의 변화보다 저희 집 어린이님의 성장과 함께 갔던 것 같아요. 어린이님이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면서 조금 더 자기 생각을 정리해서 말할 수 있게 된 거죠. 자기가 만나는 사회의 부당함에 대해서도요. 4.16극단 노란리본 공연도 같이 보러 가고 그러니까 질문을 하는 거예요. 세월호에 대해서. 깊은 질문들이 계속 이어지면서 세월호를 함께 이야기해볼까 이런 생각이 들었죠. 단원고 생존자와 함께 안산 기억교실도 가고 진도 팽목항에도 가고 목포 신항에 가서 세월호를 봤어요. 이 과정에서 또 여러 질문을 던지고요. 이분(어린이)이 2014년생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다음 세대에게 우리는 세월호를 어떻게 말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가지고 공연 작업을 하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 아동청소년 인권으로 세월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죠. ‘미안합니다’라는 말 대신 ‘내 옆에 있거나 오가며 만나는 아동청소년을 동료시민으로 존중하고 이들의 말을 잘 들어주며 행동으로 실천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로 가기 위한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시소와 그네와 긴줄넘기> <2014년 생>은 아동청소년의 인권과 관련해서 앞으로 우리가 할 수 있거나 해야 하는 실천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청소년 인권 문제에 대한 고민과 생각을 공연으로 풀어가는 과정이 무척 자연스럽다고 느껴졌다. 한편으로 이 사회 그리고 연극계는 이와 같은 움직임에도 미동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년 인권 문제’가 우리 사회와 연극계에서 화두가 될 수 있을까. 소수만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외칠 뿐인가 하는 아쉬움과 답답함이 느껴지지는 않을지 궁금했다.

공연예술계에서 장애인/성소수자 인권를 얘기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잖아요. 그 얘기를 먼저 해준 동료들이 있어서 너무 고마워요. 훌륭한 동료들이 그걸 하고 있으니까 나는 다른 이야기를 잘 발굴해내야지 하는 생각이 더 많이 들어요. 가시화되지 않은 인권 문제는 뭐가 있지? 우리가 아직 다루지 못하고 있는 이야기들을 뭐가 있지? 저는 그걸 잘 발굴하고 잘 실어나르면 된다고 생각해요. 제 작업은 아동청소년과 비아동청소년이 함께 볼 수 있는 작품이었으면 좋겠어요. 그 시간 안에서 감각 할 수 있잖아요.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고 있(었)나. 아동청소년이 이 사회를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잘 실어 나르는 공연을 만들고 싶어요.

공연예술계에서 타자를을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많지만, 그 담론 안에 아동청소년과의 작업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아동청소년 당사자 배우들과 어떤 태도로 작업하는지 물었다.

비아동청소년(어른) 배우들 만나듯이 아동청소년 배우를 만났어요. 그게 한편으로는 그들을 동료 시민으로 생각하는 것 아닐까요? 비아동청소년 배우들이 처음에는 이런 질문 많이 했어요. 대사가 너무 많은데 이들이 할 수 있겠냐고. 그래서 할 수 있을 거다, 우리보다 잘 외울 수 있을 거라고 했어요. 그이들(아동청소년)은 약속을 정말 소중하게 여기고 잘 지켜요. 자신이 해야 하는 걸 최선을 다해 수행하고. 저는 어쩌면 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서 편하게 얘기하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들은 어떤 비아동청소년보다 대사를 빨리 외우고 아무것도 안 하지만 연기가 되어버리고 인물이 되어버리고 그래요. 비아동청소년들이 이들을 동료 시민으로 본다면 생각보다 더 많은 걸 함께 할 수 있을 거예요.

동료시민으로 생각하고 만나면 될 텐데 오히려 어떻게 대해야 할지 걱정하다가 주저하게 된다는 말이었다. <2014년 생>을 보면서 비아동청소년 배우가 아동청소년 배우에게 ‘배우님’이라는 호칭을 하고 아동청소년 배우가 굉장히 자연스럽게 공연을 지휘하는 것이 인상 깊었고, 당시 현장 분위기가 궁금했다.

대본이 늦게 나와서 쪽대본으로 연습을 했어요. 짧은 시간에 대본 외우느라 힘들었을 거예요. 대사와 간단한 동선들, 예를 들어서 여기서 한 바퀴 돌았으면 좋겠다, 춤을 추면 좋겠다, 사람들과 함께 무엇을 읽으면 좋겠다 하는 정도만 제시하고 나머지는 다 그이가 했어요. 관객은 잘 모르지만, 극장 문 열리기 전에 그이가 관객을 만나고 싶어서 얼마나 기대했는지 몰라요. 관객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눈 마주치고 대화하고 하는 걸 되게 행복해했어요. 관객은 아동청소년 배우가 나오기 때문에 뭐든 함께 하려는 마음, 고개를 끄덕여주는 마음으로 공연을 보잖아요. 거기에서 이 배우는 아동청소년이 환대받는다고 생각했어요.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그것에 대한 성취감도 느꼈고요.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당사자가 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잘 전달하는 것이 작업의 핵심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이에 관한 이야기할 때의 조심할 점과 거리두기에 대해서도 고민을 하는 듯 보였다. 한편, 재현과 관련해서 대본에 명시해놓은 것도 인상 깊었다. ‘드라마를 극적으로 연출하여 인물이나 상황이 허구로 휘발되지 않도록 유의한다’라는 문장이었다.

  • <오늘도 잘 곳 없음>

당사자의 목소리가 전면에 실릴 때 저는 완전한 드라마로 대본을 쓰지 않아요. 그런데 <오늘도 잘 곳 없음>은 완전히 드라마로 썼기 때문에 이게 가짜로 들릴까봐 조심스러웠어요. ‘청소년은 이럴 거야’ 하면서 청소년을 판단하여 연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컸고요. 우리가 청소년 연기를 한다고 해서 절대로 청소년이 될 수 없고 이 작품은 이들이 겪고 있는 삶을 재구성해서 실어 나르는 것이니 ‘청소년은 이렇게 행동하고 이렇게 말할 거야’라는 생각들을 다 걷어치우고 그 밑의 진심, 고민, 생각이 잘 들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공연 보신 분 중에 왜 청소년 연기를 하지 않았냐고 하신 분도 없었어요. 오히려 청소년 활동가들은 자신이 아는 어떤 이가 생각났다고 해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참 다행이고 감사했어요.

나는 가끔 우리가 활동가로 나서서 목소리를 직접 높일 수도 있는데 왜 굳이 공연예술을 하는지 고민하곤 한다. 물론 공연예술이 가지고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저도 진짜 그런 생각 많이 해요. 배우들이 ‘우리가 활동가인가요? 예술가인가요?’ 물어보더라고요. 저는 당사자 이야기를 당사자의 목소리로 실어 나를 수 있는 매체가 연극이라고 생각해요. ‘보건의료노조’와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작품을 했는데 ‘누군가 내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이 있구나’ ‘내 옆에 있는 동료가 이런 고민을 갖고 있구나’를 알게 되는 것, 이게 예술의 힘인 것 같다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우리는 소수의 연극 관객만 만나잖아요. 그것이 답답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더 넓게 퍼졌으면 좋겠는데 이 매체를 선택하는 게 맞나 하는 고민도 들 수 있어요. 그런데 저는 현장 활동 단체를 만나고 그분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해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과 위로를 전해주셨고 거기서 확신을 얻게 되었어요.
청소년 주거권 네트워크 작업을 하면서 청소년 활동가들과 만났을 때 그분들이 해주신 얘기가 있어요. 본인들이 자료집을 여러 개 만들고 토론회에서 발제하고 토론하며 청소년 인권 이야기를 하더라도 어려운 지점이 있는데, 연극은 한 번에 이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고요. 누구든 이 연극을 보고 이들의 삶을 이해하고 이게 왜 필요한지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래서 공연 끝나고 많은 힘을 얻었어요. 내가 하고 싶은 건 연극으로 세상을 바꾸는 일이었는데, 내가 지금 세상을 바꾸는 이들 옆에서 동행하고 있구나. 계속 함께 할 수 있구나.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연극을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어요. 연극인들이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현장에서 이야기를 잘 듣고 잘 실어 나르는 스피커가 되어줬으면 좋겠어요. 누군가가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를 잘 발굴하면 우리가 이 사회를 많이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동청소년 인권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송김경화 연출은 누구보다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이야기 중에 “제가 너무 그런 이야기만 하나요?”라며 스스로 제동을 걸기도 하였으나 이내 또 목소리를 높였다. 그 태도는 거짓이 없고 진중한 것이었다. 예술가가 타자들과 만날 때, 그들의 이야기를 전달할 때 가져야 할 태도를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잘 실어 날라주는 사람일 수도 있겠구나. 깊은 생각에 잠겨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던 중에 문자 한 통이 왔다. 송김경화 연출이었다. 이야기를 놓쳤는데 꼭 하고 싶은 말이라며 보낸 것이었다. 이는 모든 예술가를 향한 외침이 아닐까.
당사자가 객석에 앉아있다고 생각하고 작품을 만들자!
송김경화
송김경화

극작가이자 연출가, 때로는 배우. 2009년 배우들이 모여 만든 극단 ‘낭만유랑단’을 창단했다. 희곡 <프라메이드>로 2015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부문을 수상했으며,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6기 동인으로 활동했다. 불평등, 노동, 인권을 중심으로 동시대 문제를 포착하고, 인간 실존에 대한 질문을 던져왔다. 주요작품으로는 <오늘도 잘 곳 없음> <시소와 그네와 긴줄넘기> <신의 입자> 등이 있으며, 간호받지 못하는 간호사의 노동을 다룬 <섹스 인 더 시티>(작/연출)로 2019 레드어워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분 수상, <2014년 생>으로 2023년 1회 이영만 연극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송김경화 인스타그램 @wda.skkh
낭만유랑단 페이스북 @romanticvagabond
허선혜
허선혜
창작살롱 나비꼬리 살롱장. 주로 극작을 하고 가끔 기획 프로그램 진행을 한다. <영지>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 등의 희곡을 썼고 <오문오방: 무릉도O> 등을 연출했다.
qeqe0321@naver.com
인스타그램 @julietta110
인터뷰 사진_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작품사진 출처_프로젝트 타브, 낭만유랑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