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는 나와 상관없어 보였다. 걸리지만 않는다면 그 시기는 금방 끝날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것은 팬데믹을 초래했고 3년간 지속되더니 결국 나와 우리 모두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팬데믹이 수습될 즈음, 챗GPT로 촉발된 인공지능 시대가 빠르게 펼쳐지고 있다. 이 흐름은 관계에 대한 모호함과 인간 존중의 부재를 가속화하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안에서 유연한 관계맺음과 존중의 태도를 키울 수 있도록 예술교육에 필요한 시선과 고민은 무엇일까? 마침 여성주의 현대미술가 이충열 작가를 만나 주제와 밀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충열 작가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통합교과 예술수업 ‘프롬 브론즈’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참여했다. ‘2022 예술로 탐구생활’을 통해 개발한 프롬 브론즈는 백설공주 이야기에서 거울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누구인지 대답하는 이야기를 차용하여 미의 기준에 대해 생각하고, 국어, 미술, 사회, 과학 등 다양한 교과목이 예술을 통해 새롭게 펼쳐지는 통합교육 과정이다.
Q.

교육현장에서 예술가는 학습자에게 다른 시각의 질문을 던지고 문제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프롬 브론즈를 통해 그러한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한 것 같다. 예술가로서 어떤 생각과 배경이 작용했는지 궁금하다.

A.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질문이 많은 아이였다. 운이 좋아서 질문을 많이 해도 혼이 나지 않았고 똑똑하다는 지지를 받으면서 컸다. 그래서인지 질문을 하고 스스로 생각하고 내가 납득되는 게 너무 즐거웠다. 그런데 입시교육에서는 정답이 정해져 있는 문제를 풀고 똑같이 욕망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경쟁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자기한테 집중하지 못하고 자신을 모른다는 문제의식이 많았다. 그래서 이번 프로젝트(프롬 브론즈)에 참여하는 초등 6학년 학생들이 아름다움에 대해 주어진 기준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의심해볼 만하고 그 기준을 내가 만들 수 있다는 경험을 해볼 수 있기를 바랐다.

Q.

학생들이 수업에 활발하게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과정에서 촉진자로서의 역할은 어떻게 수행했나?

A.

프롬 브론즈는 총 20회의 교육과정이었고 나는 그중 9회를 담당했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을 대할 때 말투나 표정 모두 어른들과 똑같이 대했다. 어린이들은 그런 경험이 별로 없어서 좀 낯설어하기도 하고 집중하기도 하는데, 과정이 반복되면서 자신들이 존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알게 된다. 그럴 때 자신감이 생기고 서로 존중해 준다.

Q.

그런 존중의 태도는 수업 과정에서 어떻게 발현되었나?

A.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토론이 원활해지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모둠별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자기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토라지는 친구도 있었다. 그때 모둠에 있던 다른 학생들이 ‘지금 우리는 서로 생각이 다른 거지 틀린 게 아니야. 다른 생각을 나누고 소통하는 게 중요한 거야’ 얘기하면서 내가 썼던 어휘들과 자기가 아는 어휘를 섞어서 꽤 어른스럽게 설득하고 있었다. 이런 과정이 너무 멋있게 느껴졌다.

존중의 태도는 소통이 가능한 관계로 성장하고 예술가와 참여자 혹은 참여자 간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하는 배경이 된다. 여기에 더해 작가는 소통을 위한 ‘표현’에 관해 덧붙였다.
A.

특히 토론 과정에서 표현 소통을 강조했다.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거치면서 연습을 하고 내 의사를 잘 전달할 수 있다. 이 과정은 틀린 건 없고 하면 할수록 잘 한다는 것을 강조했더니 학생들은 잘 받아들였고 열심히 했다. 어떤 찬반이나 결론에 도달하지 않아도 생각을 꺼내 놓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강조하는 것도 필요했다.

Q.

이 프로젝트는 학교에서 진행한 만큼 교사와 협업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해 보인다. 교사는 어떤 역할을 수행했나?

A.

2019년에 『화가들은 왜 비너스를 눕혔을까?』라는 책을 썼는데 서양미술을 통해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문화를 비판적으로 검토한 책이다. 이 책과 관련한 교육과 전시 활동을 이해하고 있던 이신애 교사가 ‘예술로 탐구생활’ 프로젝트를 함께해보자고 제안했다. 기획 과정에서 내 의견을 존중하고 신뢰해 주어 20시수 정도의 규모 있는 통합교육 프로젝트로 구성할 수 있었다. 교육 대상도 6학년 전체 학년을 대상으로 하고 교사들이 교육과정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이신애 교사는 그동안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었지만, 학습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어서 더 다양한 시도를 하기 어려웠는데 예술가와 함께하는 과정에서 시도하지 못했던 것들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 예술로 탐구생활 <프롬 브론즈> 자화상 그리기
이 프로젝트에서 교사는 전체 프로젝트의 기획자이자 교과과정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입장에서 예술가의 교육 콘텐츠가 효과적으로 연계될 수 있도록 매개하며 교육자로서 참여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예술가를 신뢰하고 프로그램의 내용에 제한을 두지 않는 열린 협의를 통해 구성과 내용 면에서 긍정적인 사례를 만들어 냈다.
Q.

작가님의 예술 활동은 전반적으로 교육의 형식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 같다.

A.

어렸을 때 꿈이 선생님이었다. 작업하며, 왜 나는 다른 작가들과는 다른 방식의 작업을 할까, 관객은 왜 특정한 방식에만 익숙할까 고민하다 미술사를 공부하게 되었다. 미술은 역사적으로 교육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고 좀 더 적극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하는 예술을 하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교육과 연결된 것 같다.
곧 전시 《당신은 누구십니까?》(2023.7.3.~9.7, 여담재)를 오픈한다. 전시라고는 하지만, 전시 참여자들에게 질문하고 그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 전시를 관람하는 형태이다. 그리고 중요한 건 몸을 통해 전달되는 감각이다. 나는 철학자가 아니라 예술가이기 때문에 관객(참여자)이 새로운 감각을 접하는 경험을 통해 다양한 생각으로 이어지게 한다. 예를 들면 보통 종이에 적힌 질문을 받거나 태블릿으로 넘기면서 질문을 접할 수도 있지만, 설치 작품을 뚫고 나가거나 몸으로 경험했을 때 내가 머무르고 싶거나 통과하고 싶은 상태를 선택할 수 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전시를 다양하게 경험하며 느껴지는 것도 다를 수도 있다.

  • 《당신은 누구십니까?》 관객참여 <나들의 지도>
  • 《깨어나요 비너스!》 관객참여 <몸드로잉>
Q.

『화가들은 왜 비너스를 눕혔는가』 도서와 연계한 《깨어나요 비너스!》(2019) 전시를 통해 자신의 몸을 주체로서 표현하고 움직이자고 제안했다. 그 과정에서 참여자들의 반응은 어땠나?

A.

전시에서 현대무용가들과 협업하여 벽에 그려진 라인에 신체의 어느 부분이든 맞닿게 하며 통과하도록 유도했다. 그러면 몸의 동작들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그걸 통과한 뒤 작은 병에 담긴 내용물을 입에 털어 넣고 맛, 향, 촉감 등을 드로잉으로 표현하거나, 의자에 앉아서 들리는 소리를 드로잉으로 표현하는 등의 과정을 거친다. 그러고 나서 전시장 한쪽의 방으로 들어가서 10분 동안 휴대폰 없이 혼자 있다가 나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참여자들은 리뷰를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시각 외에 다른 감각들을 깨운 경험을 쓰기도 하고, 10분 동안 가만히 있으면서 앞에서 했던 것들을 다시 떠올리거나 어렸을 때의 추억을 쓰는 등 다양한 경험을 남겨주었다. 전시 시작할 때 비어있던 벽은 점점 드로잉으로 가득 차게 되었고 전시 말미에는 집담회를 통해 자신의 몸에 대한 인식이 매우 다양하다는 것을 확인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20대 초반 여성과 50대 남성이 몸을 주제로 이야기할 기회가 되기도 했다.

  • 《깨어나요 비너스!》 관객참여 드로잉
Q.

최근 ‘멍타임’을 통해 일상적으로 느슨한 관계를 만드는 작업도 흥미로웠다.

A.

작업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중요하다. 이곳 ‘스튜디오 여리’에서 ‘멍타임’을 한 달에 한 번 했다. 멍타임 참여자들은 서로 만나본 적이 없어도 한 시간 멍 때리며 앉아있다가 같이 밥 먹고 이야기를 하게 된다. 일상적으로 느슨한 관계를 맺는 이런 시간 자체가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페미니스트 시각예술가 그룹 노뉴워크 소속으로 참여한 《내일은 우리가 떨어져 걷는다 하더라도》(2023) 전시도 연관 지을 수 있겠다. 보통 MZ세대가 이기적이고 고립되어 있다고 하지만 그 앞 세대의 끈끈함을 견딜 수 없는 것뿐이다. 그래서 좀 더 느슨하게 관계를 맺고자 하는 전시였다. 당시 전시한 작품은 아르코의 기획전시 《일시적 개입》에서 설치했던 <가상의 페미니스트 아티스트 레지던시>의 안전망에 관한 작품이었다. 끈끈한 관계를 지향하던 시기에는 경계 없이 막 침범하고 얽히고 결국은 취약한 사람들은 침해받게 된다. 그래서 좀 더 느슨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함께하기 위한, 안전에 대해 생각하는 작품이었다.

설치작품 <가상의 페미니스트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위한 안전망>은 페미니스트 예술가를 위한 가상의 레지던시를 구성하고 다양한 지역에서 활동하는 여성예술인을 초대하여 작업했다. 각자의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레지던시에서 지켜야 할 약속과 규칙을 만들고 약속문이 새겨진 천으로 둥근 안전망을 구성하여 그 안에 들어온 이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으며 환대한다. ‘흔들리고 접촉하며 함께 서 있을 미래를 상상한다. 서로의 차이를 경험하고 서로에게 배운다’ 등의 약속문은 느슨한 관계 안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Q.

산업재해, 페미니즘, 세월호 등 사회적인 문제들을 주제로 전시와 교육을 밝고 씩씩하게 하시더라. 많은 활동량을 소화하면서 자기중심을 잡고 지속적으로 할 수 있도록 견인하는 동력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A.

나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열심히 살면서 성취감도 느끼며 기쁜 마음을 갖다가도 주변에 불행한 사람이 있으면 나도 마냥 기쁘지 않았다. 외면할 수 없었다. 마음이 가는 곳을 외면하면 힘들고 더 짐이 되는데 마음 가는 곳에 몸을 보내면 힘이 생긴다. 그래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모든 현장을 다 따라 다녀야 했다. 그런데 현장을 간다고 능사는 아니고 나의 언어를 활용하는 작업을 통해 표현하고 알릴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서서히 작업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되었다.
앞서 이야기한 다양한 전시를 통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지만 먼저 자기 자신과 만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전시를 통해 경험하는 자극에 대해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래서 나에 대해서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추다보면 사람들이 자신을 소외시키게 된다. 욕망이 규제되고 욕구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에 내 몸으로 느끼는 것들을 다 외면하게 된다. 왜냐하면 도달해야 하는 그것을 향해서 무조건 노력해야 되니까. 그래서 정말 자기를 갈아 넣게 만들고, 자기를 존중하지 못하니까 다른 사람도 존중하지 못하게 된다.

이충열 작가는 ‘사회적인 문제’와 ‘사람’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작업을 시작하고, 참여형 전시를 통해 그 상황과 사람을 이해하고 문제를 인식할 수 있는 경험의 시간을 제공한다. 정치와 경제가 유발하는 사회 문제를 인식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로하며 보듬는 건 여전히 예술가의 몫이다.
이충열(화사)
이충열(화사)

사회과학을 전공한 후 교육제도 안에서 현대미술을, 제도 밖에서 페미니즘 미술을 공부했다. 예술적 체험을 통해 삶이 풍요로워진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워크숍 프로그램을 만들거나 공부해서 남 주는 것을 통해 입에 풀칠하면서 가난과 불안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부쟈 놀이’를 하고 있다. 사적공간과 공적인 공간의 경계를 허무는 ‘집시리즈’에 참여했고,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외모지상주의 등 개인을 억압하는 지배 이데올로기를 주제로 작업했다. 6회의 개인전과 20회 이상의 단체전에 참여했고, 7개의 전시를 기획하고 설치했다. 『화가들은 왜 비너스를 눕혔을까?』를 썼고, 『네가 좋은 집에 살면 좋겠어』 등을 함께 썼다. 스스로 끊임없이 의심하며 흔들리는 자신을 들여다보는 사람과 관계맺기를 좋아하며, 마음이 가는 대로 몸을 보내며 사는 삶을 지향한다. 여성주의 현대미술가로서 미술창작, 전시기획, 강연, 워크숍 등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21살 ‘개르신’ 깜찌찌의 반려인으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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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artist_hwasa
신미라
신미라
군포문화재단 평생학습본부에서 일한다. 문화예술교육과 관련된 정책과 제도 그리고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을 기울이며 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
baobabatdaum@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