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의 선물
코로나19가 시작되고 인간사회는 공포에 휩싸였지만, 도시에서 함께 살아가던 야생동물의 삶은 평화로웠다. 봄 새들의 노랫소리도 그전 해에 비교해 작아졌다는 연구가 발표되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해를 기점으로 작은 자연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내가 아파트에서 탐조를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대면 심리치료 일을 하던 나는 코로나19로 몇 개월간 상담 일을 못 하게 되면서 갑자기 시간이 많아졌다. 그리고 집 안에 갇히게 되었다. 언제든 나갈 수 있는 바깥 생활에 제한받아본 경험이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답답함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집이라는 감옥에 갇힌 느낌이었다. 하물며 그곳이 아파트였으니 그 답답함은 더했을 것이다. 그렇게 아파트에 갇힌 나는 창밖에 놓아둔 새먹이대로 찾아오는 새를 만나게 되었다. 해바라기씨를 먹으러 오는 멧비둘기, 사과를 먹으러 오는 직박구리, 쌀을 먹으러 오는 참새, 물을 마시러 오는 까치 등 알고 보면 이 아파트 단지의 또 다른 주민이자 야생동물인 새들이었다.
그전에는 새를 만나러 먼 곳으로만 갔기에 내 주변에는 어떤 새들이 살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날부터 집 밖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었다. 아침 해가 뜨기도 전에 직박구리는 아침을 열고 있었고, 잠에서 깨어난 새들이 일제히 노래했다. 마치 멀리 가지 않아도 자연은 바로 옆에 있다고 이야기하는 듯 새소리는 점점 크게 들려왔다.
  • 직박구리
관찰을 넘어 인간과 자연의 공존으로
같은 아파트 단지 2층에 사는 언니에게 새먹이대를 설치해보자고 제안했는데 새먹이를 놓자마자 홍여새, 동박새, 콩새, 되새 등 아파트에서 만날 거로 생각지도 못했던 귀한 새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17층에서는 엄마 맹순씨(새 그림을 그릴 때의 작가명이다. 씨는 호칭이 아닌 고유명사라 붙여 썼다)가 새먹이대를 설치하면서 찾아오는 새를 관찰하고 기록했고, 2층에서는 언니 경희씨가, 그리고 아파트 단지 전체는 내가 탐조하면서 모니터링하기 시작했다. 새들에게 아파트는 무슨 의미일까 궁금해졌다.
그날부터 우리가 만나면 새 이야기가 중심이 되었다. 오늘은 누가 왔고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등을 찍은 사진을 보면서 이야기했다. 그렇게 8개월간 아파트에서 만난 새를 정리해보니 40종이 넘었다. 생각지도 못한 숫자에 우리는 깜짝 놀랐다. 개인의 기록이지만 기록으로 남겨놓고 싶어 아파트 새 지도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아는 분께 이런 걸 지원해주는 단체가 있는지 물으니 재단법인 숲과나눔에서 시민들의 프로젝트를 지원해준다면서 ‘풀씨프로젝트’를 소개해 주었다. 그리고 그해 8월 생애 첫 지원사업에 도전하면서 ‘아파트 탐조단’이라는 프로젝트 이름을 짓게 되었다.
우리는 네이처링에 미션 ‘아파트 탐조단’을 만들어 아파트에서 새를 보고 기록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함께 기록할 수 있는 기록 공간을 개설했고, 전문가를 모시고 아파트 탐조의 의미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파트 새 지도에 들어갈 내용들이 차곡차곡 정리되었고 가장 중요한 그림 작업을 팔순 맹순씨가 맡아주기로 하면서 전국 최초의 ‘아파트 새 지도’가 탄생했다. 수원에서 시작된 아파트 탐조단은 전국의 아파트에서 새를 보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풀씨-풀꽃-초록열매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단지 아파트에서 새를 만나는 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도시 아파트에서 사람과 야생동물인 새의 공존을 위한 프로젝트로 인공새집 달기 등의 다양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 아파트 탐조단
  • 콩새
새를 그리는 팔순 작가
아파트 탐조단 활동에 큰 역할을 한 분이 있었으니 팔순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새 그림 작가 맹순씨다. 맹순씨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자식들을 먹여 살리느라 어떤 취미활동도 갖지 못하고 살아온 평범한 할머니다. 그런 할머니에게 그림은 꿈꿔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불과 2년 전에 그림을 시작한 맹순씨에게 새 그림을 부탁드렸을 때, 놀리는 줄 알고 화를 내셨다. 그래도 한번 그려보라는 제안에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 어느 날 완성된 새 그림을 내놓았는데, 손자들에게 줄 새해 엽서 속에는 삐뚤빼뚤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새가 그려져 있었다. 그것도 네 마리씩이나!
그 후로 한 장씩 그림을 그려 아파트 새 지도에 들어갈 47종의 그림을 모두 그려주었다. 그렇게 아파트 새 지도가 탄생했고, 새 그림 작가 맹순씨도 탄생했다. 맹순씨의 새 그림은 윤호섭 교수님의 눈에 띄어 2020년부터 매년 《녹색여름전》에 함께 참여하고 있으며, 《맹순씨네 아파트에 온 새들》이라는 제목으로 도시에서 살아가는 새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전시회를 지금까지 이어 오고 있다.
  • 맹순씨
  • 그림그리는 맹순씨
도시와 자연을 연결하기
2020년 수원의 한 아파트에서 시작된 아파트 탐조단은 4년째 현재진행형이다. 도시라는 공간을 인간만의 공간이 아닌 자연을 살아가는 야생동물에게도 중요한 공간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도시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태 감수성이 도시를 살아가는 인간과 동물들에게 모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마침 경기문화재단의 문화기획학교인 ‘다사리’에서 문화기획을 배우면서 경기상상캠퍼스라는 공간을 알게 되었고 멤버 중 동네 책방을 하는 분을 만나면서 ‘나는 새를 좋아하니 탐조책방을 하면 되겠네’ 하고 농담처럼 했던 이야기는 2021년 3월 경기상상캠퍼스에 입주하게 되면서 정말 현실이 되었다. 탐조책방은 도심 속 한가운데 있는 100년 된 숲인 이곳에 입주해 ‘도시에서 새를 만나다’라는 주제로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연 속 새를 만날 수 있는 안내자 역할을 하고 있다.
탐조책방은 국내 1호 탐조 전문 책방의 의미도 있지만 야생동물인 ‘새’를 인식하고 새를 만나는 기쁨을 전하는데 더 큰 의미가 있다. 탐조문화기획을 통해 도시를 삭막한 공간이 아닌 생명이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인식할 수 있고, 나 아닌 다른 존재가 함께 살아가는 공간으로써의 도시를 인식하면서 소리로 새를 만나는 ‘새를 듣는 시간’, 도시라는 공간에서 산책하듯 새를 만나는 ‘도시새산책’ 등의 탐조프로그램을 만들어 사람들과 만나기 시작했다. 책방을 열자마자 시작한 ‘수원새산책’은 수원시에 있는 수원화성성곽주변, 일월호수, 경기상상캠퍼스, 광교산 소류지에서 지금까지 2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으며, 4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새산책 프로그램을 통해 탐조에 입문하면서 자연과 연결된 삶을 경험하고 있다. 새는 어쩌면 그 누구보다 자연으로 안내하는 훌륭한 안내자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오늘도 아침 일찍 새들의 노래를 들으며 탐조책방으로 출근했다. 더 많은 사람이 도시 자연 속에서 새와 함께 행복할 수 있도록.
  • <홍여새-겨울철새>
  • <콩새>
박임자
박임자
2020년 아파트에서 새를 만나고 기록하는 <아파트 탐조단>을 시작으로 2021년에는 수원에 위치한 경기상상캠퍼스에 입주해 <탐조책방>을 열고 ‘도시에서 새를 만나다’라는 주제로 탐조서적 판매, 탐조프로그램 진행, 탐조문화기획을 하고 있다.
freebel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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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탐조단(네이처링 미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