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트(NEET :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는 무직 상태이면서 직업 훈련도 받지 않고 학교도 다니고 있지 않은 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15~34세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의미하므로, 경제인구로 진입할 나이임에도 비경제인구로 남아있는 청년들을 겨냥한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청년 백수다. 니트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은 참 한결같다. 늘어진 츄리닝을 입고 방구석에만 처박혀 있는 낙오자, 집안의 골칫거리,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적 존재. 그들은 연민의 대상으로 여겨지거나 조롱과 비난의 대상이 되어 씹히기 일쑤다. 그러나 여기, 누가 뭐래도 니트의 무한한 가능성을 굳게 믿는 단체가 있다. 니트를 발견하고 니트를 불러 모으고 니트를 연결하는 사람들, ‘니트생활자’다.
어디를 둘러봐도 직장인들로 가득한 종로의 한 빌딩, 로비에 빼곡하게 늘어서 있는 회사 명패들 사이에 버젓이 ‘니트생활자’의 패널이 걸려있다. 직장인 천지인 이곳에 청년 백수들의 플랫폼이라니, 그 오묘한 부조화가 더욱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사단법인 ‘니트생활자’의 박은미 대표(쿵짝), 전성신 대표(다지), 임자현 팀장(우장창)을 만나 니트와 만나고 니트와 놀고 니트와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것은 그들이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다.
스스로 살아가는 힘을 기르는 과정
올해로 만 3년 차에 접어드는 ‘니트생활자’는 무업 상태의 청년들을 연결하는 커뮤니티 플랫폼이다. 그들은 무업 상태인 청년들이 직면하게 되는 공통의 어려움을 문제 삼는다. 백수들은 매일 아침, 갈 곳이 없다. 해야 할 일도 마땅찮다. 일과를 수행하기 위한 의무가 흐릿해지면 생활이 불규칙해지고 성취감도 줄어들기 마련이다. 소속이 곧 정체성인 시대이니 소속 없는 백수들은 어디를 가도 위축된다. 그들을 게으른 사람, 무능한 사람으로 보는 사회의 부정적 시선도 한몫한다. 백수들은 자연히 사람 만나는 일이 두려워지고 어려워진다. 니트생활자는 사회적으로 단절되고 고립될 수밖에 없는 니트의 현실에 주목한다. 그들은 니트 청년들의 일상을 공유하고 긍정하고 당당히 드러내는 방식을 통해 그들이 스스로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다.
니트생활자의 대표 프로젝트인 ‘니트컴퍼니’는 백수들의 가상 회사 놀이 서비스다. 한 시즌은 100일 동안 진행되며 무업 상태인 청년 100명이 입사한다. 니트컴퍼니에 입사한 백수 사원들은 온라인 메신저로 소통하며 매일 9 to 6의 루틴을 공유한다. 채팅방을 통해 출퇴근을 체크하는 것은 물론이고 업무 보고와 주간 회의도 진행한다. 업무는 스스로 정한다. 그런데 매일 꾸준히 할 일을 자유롭게 정하는 일이 좀처럼 쉽지 않다. 늘 정해진 일과 속에서 주어진 일만 하다가 모든 것을 스스로 정하려니 낯설기만 하다. 처음에는 영어 공부나 자격증 시험공부를 하며 취업 준비를 하는 사원들이 많았다. 그러나 점차 취업 준비를 하는 사람의 비중은 줄어들고 오롯이 재미있는 일, 해보고 싶었던 일, 그리고 지금 당장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에 몰두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놀이처럼, 취미처럼 시작한 일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경우도 생겼다. 지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개인 업무로 매일 매듭을 만들었던 사원은 동료들의 응원과 지지에 힘입어 제작 워크숍을 열기도 하고 직접 만든 매듭을 판매하기도 했다. 100일 동안 꾸준히 모은 글과 그림으로 책을 내는 사원도 있었고, 자신의 디자인으로 이모티콘을 만든 사원도 있었다. 다양한 사내 동아리들도 생겼다. 모두 원하는 프로그램을 스스로 기획하고 더 많은 사람과 교류하고자 하는 이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 운영한다. 들여다보면 하나같이 독특하고 창의적이다. 주도적으로 일상을 운영하는 힘을 기르며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발견해 나갔다. 그리고 느슨한 관계망 속에서 이를 실험하고 확장했다.
“니트컴퍼니가 결국 언젠가 다니게 될 회사에 잘 적응하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저희는 반대로 회사에 소속되지 않아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재사회화하는 과정이라 생각해요. 우리는 대체로 시키는 대로 사는 데 익숙해요. 초, 중, 고등학교 나와서 대학 졸업하면 취업하고 결혼하고. 일과도 똑같아요.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나 직장에 가고, 정해진 공부와 업무를 정해진 시간만큼 하죠. 그러니 백수가 되면 ‘오늘 하루 뭘 해야 하지?’ 이게 가장 어렵고 힘들어요. 나만 오늘 아무것도 하지 않았구나, 라는 생각에 자괴감도 쌓이고요. 니트컴퍼니는 나와 똑같은 상황의 동료들과 매일매일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연습을 할 수 있는 곳이에요.”
– 박은미(쿵짝)
작고 사소한 가치를 발견해 내는 시선
니트생활자의 첫 프로젝트는 ‘백수들의 한양도성 걷기’ 모임이었다. 이런 요상한 모임에 누가 올까 싶었는데 의외로 열 명 남짓의 백수들이 모였다. 모두 함께 오래 걸었고 파전에 막걸리도 걸쳤다. 이 첫 모임에서 발견한 것은 멋진 사람들이었다. 백수라는 정의에 갇히기에는 너무도 흥미롭고 재능 있는 사람들. 니트생활자와 함께하는 모든 청년 백수들은 저마다 특별하고 매력적이다. 누군가에게 인정받지 못했다고, 가지고 있는 재능이 돈이 되지 않는다고 그들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너무 쉽게 한 사람 한 사람의 개별적 가치들을 단일한 기준 아래 함몰시킨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들 고유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데 자신조차 그걸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 청년들은 자기 자신에게 너무 가혹한 거 같아요. 지금까지 모두 열심히 살아왔고 다들 멋진 재능을 가지고 있는데도 경제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모든 것들을 다 의미 없는 것처럼 치부해 버려요. 자기 자신에게 좀 더 다정했으면 좋겠어요. 다른 사람을 돌보는 것처럼 때론 나를 돌봐야 할 때도 있는 거니까요.”
– 전성신(다지)
개인의 특수성과 다양성을 발견해 내기 위해서 우리는 좀 더 섬세해져야 한다. 그것은 거대한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은 결코 볼 수 없는 것들이다. 그 때문에 가려진 곳을 들춰보고 그늘진 곳을 비춰보아야 한다. 보잘것없는 것에 집중하고 작은 것들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니트생활자는 평범한 일상에서 건져 올린 작은 가치들을 소중히 여긴다. 그들이 주목하는 것은 길고양이에게 매일 밥을 주는 사람의 따뜻한 마음이나 사소한 루틴을 지키려는 사람의 성실한 노력,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의 배려심 같은 것들이다.
“취업이나 사회적 성취같이 이상적이고 거대한 목표에 매달려 있다 보면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중요한지 자기 자신이 얼마나 특별한지 발견할 수 없어요. 당장 내일 탈 니트를 했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잖아요. 내가 단단해지지 않으면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이나 타인의 평가에 너무 쉽게 휘둘리고 말아요. 나의 일상을 소중히 여기고 작은 가치들을 알아볼 힘을 길러야만 거기에 무너지지 않는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거 같아요.”
– 임자현(우장창)
니트컴퍼니에서는 100일간의 활동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그간의 여정을 담은 전시를 개최한다. 이른바 ‘퇴사전’인 셈이다. 숱한 문화예술 프로젝트의 결과 공유회가 당초 목표했던 바에 얼마나 도달했는가, 어떤 성과를 냈는가를 드러내는 방식이라면, 이 전시는 접근 방식부터 다르다. 애초에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나 지향점이 없기 때문이다. 100일 동안 외국어 공부를 하며 썼던 단어 노트를 전시하는 이도 있고 아르바이트하며 틈틈이 적은 글을 엮어내는 이도 있다. 무엇을 했고, 무엇을 성취했는가가 아니라 그저 ‘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퇴사전을 관람하러 온 한 사원의 할머니는 손주의 100일 기록을 보고 기쁜 마음으로 금일봉을 하사했다. 놀고만 있을 줄 알았던 백수 손주가 무언가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기특했던 것이다. 퇴사전은 평범하고 별 볼 일 없는 백수들의 일상을 지지하고, 작고 사소한 가치를 긍정하는 그들만의 방식이다. 미완의 100일이 결국 완성형을 향해 나아가지 못할지라도 그들은 이미 충분히 흥미롭고 근사하다.
느슨한 연결 속에서 관대하고 다정하게
니트컴퍼니를 거쳐 간 역대 사원들을 토대로 진행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이 가상의 회사 놀이가 백수들의 일상 관리에 큰 도움이 된다는 의견이 많다. 출퇴근 관리라고 해봐야 채팅창 인증이 전부인 데다 업무 종류와 양도 제멋대로, 누가 뭐랄 사람도 없는 이 허술한 울타리 안에서 백수들은 자신의 일상을 지켜내는 힘을 기른다. 모두 동료들과 함께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누군가 메신저를 통해 일상 속의 작은 성취나 소소한 변화를 공유하면 동료들은 정성 어린 댓글로 답한다. 좋은 일이 있을 때는 함께 기뻐하며, 아프고 힘든 날에는 서로 걱정하고 위로한다. 누군가 애정 어린 시선으로 나의 하루를 지켜봐 주고 공감해 준다는 사실만으로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아무래도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고 소극적인 친구들한테 더 신경이 쓰여요. 우울감에 시달리거나 마음에 큰 상처를 안고 있는 친구들도 있거든요. 출근이나 업무 인증을 안 할 때도 있고 며칠씩 잠적해 버리는 경우도 있어요. 그러면 기다려주죠. 그리고 개인적으로 대화도 많이 하려고 노력해요. 좀 쉬엄쉬엄해도 괜찮다고, 남들처럼 100을 다 하지 못해도 우리는 너와 함께 완주하고 싶다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같이 갔으면 좋겠다고 얘기를 많이 하죠.”
– 전성신(다지)
니트컴퍼니에서는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서로가 만나고 연결될 기회를 제공한다. 모여서 어렵지 않은 전시를 보러 가기도 하고 재미있는 행사나 공간을 방문하기도 한다. 나무 심기같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을 함께 하기도 한다. 사원들은 스스로 만든 사내 동아리를 통해서도 적극 소통한다. 그 결과 100일의 활동 기간이 끝난 이후에도 ‘애프터 컴퍼니’, ‘낯선 컴퍼니’ 등의 자발적인 커뮤니티가 형성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그들이 서로에게 낯선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무업 상태인 청년’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그들은 모두 각양각색이다. 살아온 배경도, 환경도, 가치관도 다르다. 어느 것 하나 같을 수 없는 다양한 존재들과 함께하는 경험을 통해 그들은 타인은 물론이고, 자신의 삶까지도 새롭게 발견한다.
“원래 백수가 되면 다른 백수들이 뭐하고 어떻게 사는지 제일 궁금하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다양한 백수들이 모여서 일상을 공유하다 보니 그 궁금증이 풀리는 거죠. 다른 사람의 일상을 보며 영감을 얻게 돼요. ‘아, 나도 다음에 저거 해봐야겠다, 저런 것도 재밌겠구나’ 하면서요. 그러면서 삶에 대한 가치관도 열리게 되는 거 같아요. 우리는 굉장히 좁은 세계에서 살잖아요. 동네나 학교, 직장에서의 경험과 관계가 전부니까요. 그러다 보니 무업 상태가 되었을 때, 상대적 박탈감도 더 크게 느끼게 돼요. 그런데 니트컴퍼니에서는 정말 다양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거든요. 모두 재능 있고 멋진 사람들이죠. 그들을 보면서 ‘저렇게도 살 수 있구나, 저런 삶도 있구나’ 하고 깨닫게 되죠.”
– 박은미(쿵짝)
‘뭐라도 되겠지’ 니트컴퍼니의 사훈이다. 이토록 무기력하고 무책임한 태도가 또 있을까 싶다가도 어깨가 무겁고 마음이 쓰린 어느 날엔가는 슬쩍 기대어보고 싶은 말이다. ‘뭐라도 될 테니 걱정하지 마’ ‘뭐라도 될 수 있으니 힘내’ ‘뭐라도 되니까 괜찮아’ ‘뭐라도’ 어미를 제멋대로 변형하고 되는대로 이어 붙여도 말끝이 다정하다. 무심한 듯한 말속에 담긴 믿음 때문이 아닐까. 지금 당장은 뭣도 아니고, 뭣도 되지 못하는 당신이 언젠가는 뭐라도 될 수 있고 결국 뭐라도 될 것임을 믿는 사람의 마음이 말속에 있다.
니트컴퍼니는 현재 시즌 12의 활동을 모두 마치고 시즌 13을 준비하고 있다. 이외에도 고립감을 느끼는 니트 청년들과 사무실을 공유하는 ‘니트 오피스’, 무업 상태의 청년들이 다양한 경로로 일 전환을 실험해 볼 수 있는 ‘니트 인베스트먼트’ 프로젝트를 운영했으며, 서로 언제든 연결될 수 있는 커뮤니티 플랫폼 ‘닛커넥트’를 열었다. 올해의 목표는 ‘닛커넥트’를 더욱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니트생활자가 오랫동안 니트 청년들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들은 꼭 자신들이 없어도 청년들이 스스로 연결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니트생활자가 꿈꾸는 세상은 소속이 있건 없건,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나갈 수 있는 곳이자 자신이 원하는 일을 스스로 찾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곳이다. 무엇이라도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존중받는 곳이며 저마다 다른 삶의 형태들이 공존하고 연결되는 곳이다. 과연 우리들의 지향과 별반 다르지 않다.
구경미 소설가의 단편 「노는 인간」의 화자는 동네 세탁소 앞에 주워다 놓은 검은색 낡은 소파를 보며 생각한다. 아무도 앉으려 하지 않고 있음에도 보이지 않는 소파에 슬그머니 가서 앉아보고 싶다고. 바쁘고 부주의한 세상, 잠시나마 그 길 위의 낡은 소파에서 당신들을 만날 수 있기를, 그곳에서 다가올 봄볕을 함께 맞을 수 있기를. 다만 바랄 뿐이다.
- 박유미
- 설치와 영상을 중심으로 작은 서사에 주목하는 미술작가. 2018년 개인전 《바다에서 만날까》 외 다수의 전시에 참여했으며 2014년 아르코 퍼블릭아트 프로젝트 ‘마로니에 다방’을 기획했다. 글과 영상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다큐멘터리 작업을 병행하고 있으며 2018년 <찔레꽃>을 연출했다. 현재 한국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작은 도서관 ‘효창서담’을 운영 중이다.
gomako1983@gmail.com
사진 제공_니트생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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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고 갑니다
뭣도 아닌 일상에서 뭐라도 되는 일상으로
니트생활자가 추구하는 느슨한 관계망의 힘
기대만점이네요
요즘 우리에게 필요한 관계 형성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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