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커버린 어른에게 청소년은 하나의 문제나 현상으로만 여겨질 때가 많다. 이미 지나온 시기라서 그렇다. 모두가 겪는다고 해서 똑같은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추측이 아닌, 청소년으로부터 발화된 목소리다. ‘청소년극’이라는 분류가 굳이 필요한 이유다. 2011년,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가 개소했다. 청소년을 개별의 독립적인 존재로 인지하고 이들에게 닥친 현실과 감정, 고민을 있는 그대로 연극으로 옮기는 것이 목표다. <소년이 그랬다>를 시작으로 <트랙터>에 이르기까지 20여 편의 청소년극이 다양한 관객을 만났다.
나는 2021년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 개소 10주년을 맞아 ‘웹진’ 기획을 맡았다. 10주년 프로그램으로 이미 이야기판과 전시, 관객 워크숍이 준비된 상태였다. 이야기판과 전시가 작품의 과정과 결과에 주목한 창·제작자 중심의 프로그램이라면, 관객 워크숍은 <소년이 그랬다>를 관람하고 느낀 점을 관객 스스로 발화하는 관객 중심 프로그램이었다. 관객은 소리 내 대사를 읽고, 자신의 내밀한 청소년기를 꺼내고, 서로의 이야기를 함께 들었다. 워크숍을 통해 작품에 적극적으로 개입되고 싶은 관객과 작품의 영향을 확인하고 싶은 창·제작자의 니즈를 발견했다. 관객의 실체를 더 넓고 깊게 확인하고 싶어졌다. ‘웹진’이라는 큰 기획은 <청소년극 하는 관객>이라는 콘텐츠로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연극을 완성하는 관객을 찾아서
<청소년극 하는 관객>에서 주목한 것은 주체성이다. 기록되지 않는 공연예술의 특성상 작품은 시공간을 공유한 이들만의 것이다. 예술의 완성이 수용자에 있다고 얘기하지만, 관객은 여전히 작품으로부터 소외되는 것이 현실이다. 청소년극의 관객은 더욱 모호하다. 청소년극은 청소년기를 통과하는 지금의 청소년을 위한 연극인가, 청소년을 이해하려는 성인 관객을 위한 것인가. 청소년극에 대한 정의가 포괄적인 만큼, 관객의 의미도 넓을 수밖에 없다. <청소년극 하는 관객>이 창작자나 연구자 혹은 평론가의 시선이 아닌, 관객의 관점에 집중한 이유다. 그렇다면, 어떤 관객을 만나야 할까. 최대한 다양하고 많은 관객을 만나기 위해 몇 가지 기준을 세웠다. 2인 이상 그룹을 통해 다채로운 경험과 관계성을 확인할 것, 연구소의 방향성을 잘 보여줄 것, 다양한 성별‧세대‧지역‧역할을 담아낼 것. 5개 그룹, 12명의 관객을 통해 청소년극의 얼굴을 확인하고자 했다.
국립극단 청소년극이 특별한 것은 청소년과의 협업을 통해 작품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청소년 17인’은 공연 연계 예술교육과 창작 워크숍을 함께하는 14~18세 청소년 창작 파트너로, 국립극단 청소년극의 시작이자 중심이다. ‘청소년 17인’으로 활동했던 권지윤과 황웅비는 지난 3년이 자신을 긍정하고 꿈을 확장하는 시기였음을 고백했다. 김민정, 김새솔, 김은빈은 연구소가 새롭게 주목한 ‘열두살 프로젝트’를 통해 만났다. 청소년은 9세부터 24세까지를 지칭하는 단어지만, 다수의 인식 속 청소년은 14~18세에 멈춰 있다. 연구소는 청소년의 분류에서도 자주 이야기되지 않았던 10대 초반의 청소년을 만나 <영지>와 <발가락 육상천재>를 완성했다. 2018년 당시 11살이었던 김민정과 김새솔은 <영지> 자문단으로 활동하며 자신의 일상이 연극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지켜봤고 이때 느낀 설렘과 기쁨을 전해주었다. 협력 교사로 참여한 김은빈과는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어른이자 교사로서의 고민, 성인 관객으로 마주한 청소년극의 매력을 나눴다. 인터뷰 당시 ‘청소년 17인’ 중 한 명이었던 김시준은 아버지 김대곤과 함께 <더 나은 숲>을 보고 정체성, 기준, 전통과 같은 소재로 대화를 나눴다.
세 차례 공연되며 국립극단 청소년극의 스테디셀러가 된 <죽고 싶지 않아>의 관객도 만났다. 김예은, 나수연, 임영규는 가장 전통적인 방식의 관객으로, 예술이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얘기했다. 특히 이 그룹은 온라인 설문을 통해 더 많은 관객의 피드백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장 최초의 관객인 스태프의 목소리도 담았다. 문원섭 무대감독이 기억하는 청소년 관객만의 문화, 임서진 사운드 디자이너가 청소년의 소리를 마주하며 경험한 변화 역시 흥미로웠다.
청소년극 하는 관객 tyaweb.ntck.or.kr
성장의 기록
관객의 경험은 크게 위로와 공감, 자기긍정과 변화, 관계와 소통으로 나뉘었다. 무대에는 많은 것이 모호한 청소년의 혼란이 있었고, 청소년 당사자들은 그 안에서 지금의 나와 앞으로 되고 싶은 나를 만나며 성장했다. 특히 이들에게는 나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어른, 동료와의 작업을 통해 동등한 존재로 인식되는 경험이 깊게 남았다. 11살에 만났던, 중학생이 된 김민정 역시 지금 자신들이 느끼는 행복을 있는 그대로 봐주길 바랐다.
“인물에 공감한다는 건 타인에게 공감하는 것과 다르게 나의 페르소나를 발견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청소년 시기에 3년간 청소년극을 보면서 나의 새로운 면을 계속 발견할 수 있었다. 직접 만난 상대의 말과 행동, 상황에 공감하며 울고 웃는 공연예술만의 감각 덕분에 더 공감할 수 있었다.”
– 권지윤
“우리의 작업이 공연을 만드는 이들과 관객에게도 전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며 자존감이 높아지기도 했다.”
– 황웅비
성인 관객에게 청소년극은 해소되지 못한 자신의 청소년기를 마주하거나, 공통의 감각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또한, 청소년극은 청소년과 성인 사이의 간극을 통역한다. 이 경험을 통해 성인 관객은 더 나은 어른이 되는 법을 고민한다.
“열여덟 살에 했던 고민을 대학생이 되고도 계속했다. 인간은 인생에서 청소년기를 반복한다고 생각한다. 청소년극은 청소년이 보면 가장 좋은 극일 수도 있지만, 삶에서 고민이 반복될 때 방향을 제시해줄 수 있는 연극이기도 하다.”
– 김예은
“공연을 보며 시야가 넓어졌다. 연극 한 편이 삶을 드라마틱하게 만들지는 않지만, 조금씩 틀어진 각도들이 모여 엄청난 관점의 변화와 차이를 만들어낸다. 청소년극을 관람하고 아이들이 참여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많은 순간 공감했고 동시에 어른의 시각에서 판단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것도 알게 됐다.”
– 김은빈
문원섭 무대감독도 이들의 이야기에 동의한다. 임서진 사운드 디자이너는 청소년과의 협업으로 ‘청소년 관객’을 명확하게 인식했고, 서로 다른 세대가 같은 것을 공유하는 순간의 희열을 기억했다. 관객들은 세대‧지역‧인종‧젠더를 벗어난 공통의 연결감을 청소년극에서 만났다.
“연극은 인간이 세계에 던지는 질문이다. 토니 그래함 연출의 <타조소년들>이나 <노란 달> 같은 작품을 볼 때 ‘청소년극’이라는 단어를 빌어서 진지하고 심도 있는 질문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 문원섭 무대감독
“어느 날 딸이 <말괄량이 삐삐>를 보고 “쟤가 영지지?”라고 말했다. 내가 <영지>를 봤을 때의 감각이 어릴 때 <말괄량이 삐삐>를 봤던 느낌이었다. 다른 주인공을 보고도 같은 걸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 임서진 사운드 디자이너
관객의 주체적인 경험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콘텐츠의 표현 방식도 중요했다. 스튜디오 벨크로는 [시사IN(인)]의 재한 조선족 기획기사와 ‘동물해방물결’의 불법 개 도살 현장을 고발한 콘텐츠 등에서 인터렉티브한 구성으로 콘텐츠의 집중도를 높인 작업을 지속해왔다. <청소년극 하는 관객>은 ‘Play If Act’라는 콘셉트로 언어와 음악, 시각이 모두 어우러진 리듬 게임의 형식을 차용했다. 다섯 그룹에 맞는 다섯 개의 게임 스테이지를 구현해 독자가 콘텐츠를 직접 플레이하도록 했다. 서로 다른 인터뷰는 각기 다른 테마의 공간과 인물로 그려졌고, 주어진 질문에 답하는 감각을 독자가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구성을 시도했다. 공연예술은 아날로그와 오프라인의 대명사지만 관객의 상상으로 그 한계를 극복하는 매체다. 무경계의 온라인 콘텐츠를 통해 선택된 관객을 넘어 또 다른 관객과의 연결을 희망했다.
기억과 함께 쌓이는 역사
사실 관객의 이야기는 모두의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청소년극 하는 관객>은 익숙하다고 혹은 알고 있다고 쉽게 외면한 본질을 재확인하는 일에 가까웠다. 일상의 일부를 기꺼이 할애해 모인 이들이 낯선 무대를 그대로 마주한다. 어떤 삶의 궤적이 배우와 관객, 관객과 관객이 함께 호흡하며 구체화된다. 거울과 같은 나를 만나 안도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나와는 정반대의 삶을 보기도 한다. 관객은 물리적‧정서적 거리를 좁힌 공연예술에서 타인의 레이어를 쉽게 읽어내고, 다양한 관객과 과정을 공유하며 다른 세계에 대한 인식을 확장한다. 모두에게는 특별한 각자의 삶이 있다. 다르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삶이 사회로부터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 당연한 진실이 공허한 외침이 아닌 가슴으로까지 전달되는 데는 관객의 주체적인 행동과 사유가 더해져야만 한다.
공연예술의 특성상 필연적으로 관객의 기억은 곧 작품의 역사다. 무대에서 끊임없이 ‘존중’의 가치를 외치면서 시장은 얼마나 관객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나. 흩어진 관객의 목소리가 모여 작품의 세계는 넓어진다. 기록이 창작자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닌 수용자로 연결되어야 하는 이유다. 말 그대로 “관객은 기꺼이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 존재”이니 말이다.
- 장경진
- 공연칼럼니스트. 15년째 공연예술에 대해 쓰고 말하는 일을 하고 있다. 창작자와 관객 사이의 빈 곳을 찾아내 긴밀히 잇는 작업을 선호한다. <클래스101>에서 ‘공연예술 글쓰기’ 강의를 진행했으며, 다양한 매체에서 공연예술을 소개하고 있다.
smallreview.theater@gmail.com
사진·이미지 제공_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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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의 기억에서
작품의 역사로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 10주년 기념 인터뷰
공감이 가네요
관객의 기억에서
작품의 역사로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 10주년 기념 인터뷰
기대만점이네요
창작자와 관객과의 연결이 중요한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