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예술교육의 맥락
올해 6월, 세계 미술품·골동품 경매시장의 양대 산맥 중 한 축인 소더비의 홈페이지에 ‘베트남 미술이 지금 전성기를 맞는 이유, 소더비의 전문가들이 분석하다’라는 기사가 실렸다. 지난봄 홍콩에서 소더비 주최로 열린 모던 이브닝 세일에서 작가 ‘레 포’의 작품 <정원의 인물>이 베트남 미술 작품 역대 두 번째 낙찰가를 기록했던 것이다. 그 외에도 마이 쭝 트, 팜 허우, 레 꾸옥 록 등 베트남 거장 화백들의 작품이 대거 기록적인 낙찰가로 선택되며, 코로나19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국제 미술계에서 인상적인 도약을 이루어냈다는 평을 받았다. 소더비의 동남아시아 현대미술 전문가 미셸 야우는 ‘베트남 현대 미술가에게는 아트 컬렉터들을 이끄는 고전적이면서도 독창적인 무언가가 있다. 베트남 아트 컬렉터들은 지리적으로 넓게 분포되어 있어 건강하고 총체적인 시장을 이루고 있다’라며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
한편, 베트남 언론에서는 재작년부터 지속적으로 공립학교의 미술·음악 교사 부족에 대한 우려를 전하고 있다. 2020-21학년도 기준, 전국 초·중·고등학교 중 약 5,400곳에서 예체능 교사가 부재한 상황으로, 특히 초등학교에서 그 정도가 더 심하다. 이런 학교들에서는 다른 과목 교사가 가외로 미술 및 음악 과목을 가르치고 있는데, 오지 및 낙후된 지역뿐 아니라 대도시에서도 마찬가지인 형편이다.
반면, 대학에서 미술 교사를 양성하는 일부터 많은 어려움에 봉착하고 있다. 국·영·수 대비 예체능을 등한시하는 분위기와 미술·음악 교사의 낮은 연봉 등 몇 가지 이유가 혼재하여 오래 묵어왔던 탓이다. 한편에서는 베트남 미술이 국제시장에서 역대 최고의 순간을 구가하고 있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당장 미술·음악 공교육의 토대가 불안정하다. 베트남의 문화예술교육의 정확한 현주소는 어디이며,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것일까?
베트남 현대미술교육의 출발점은 1925년 하노이에 설립된 인도차이나 미술학교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마이 쭝 트, 레 포, 부 까오 담, 응우옌 판 짜잉, 팜 허우, 레 티 류, 또 응옥 반 및 응우옌 지아 찌 등 베트남 현대 회화 거장들을 비롯한 128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1945년까지 운영되었다가 이후 하노이 미술대학으로 개칭되어 계속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그 외 중요한 전환점을 하나 더 꼽자면 단연 1986년 베트남 정부가 도입한 경제·사회개방정책 ‘도이머이’이다. 도이머이를 거치며 문화적 통제가 완화되어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표현과 전시가 가능해졌다. 공산주의에 작별을 고하고 자본주의 체제로 편입한 이 시기를 기점으로, 베트남의 예술가들은 다채로운 소재를 탐구하고 검열의 압박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2022년 현시점, 정부 차원의 문화예술정책 특히, 공교육 분야에 대한 지원과 리소스에는 아직 상당 부분의 여백이 존재하지만, 민간분야에서는 기업의 후원과 개개인의 실험적 시도 등 다양한 층위에서의 교육적 접근이 활발히 움트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베트남 문화예술교육의 현주소를 아래 세 가지 사례를 통해 스케치해 본다.
  • 띠또아이 아틀리에·유니키 유치원
    [출처]titoay
띠또아이 아틀리에와 유니키 유치원 : 실험적인 미술교육
2013년 하노이에 설립된 띠또아이 아틀리에는 “꿈꾸고 창조한다”라는 의미의 이름답게 ‘베트남 어린이를 위한 보편적인 미술교육’을 지향하는 미술교육·전시기관이다. 특히 직접 디자인한 독창적인 프로그램을 지역사회에 도입하는 내실 있는 기관으로 잘 알려져 있다. 띠또아이의 설립자이자 비주얼 아티스트 응우옌 투이 짱은 최근 몇 년간 세 아이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과정에서 체계적이고 전방위적인 예술교육의 중요성을 숙고하다가 띠또아이와 같은 건물에 유니키 유치원까지 설립하였다.
유니키 유치원은 이탈리아 심리학자 로리스 말라 구찌가 고안한 레지오 에밀리아의 유아교육 철학에 기반해 운영되는 소규모 유치원으로, 베트남에서 최근 주목받고 있는 유치원 교육 모델이다. ‘한 아이는 수백 가지 언어를 가지고 있다’라는 교육 모토를 중심으로, 아이들의 잠재력과 개인 간의 차이를 존중한다. 레지오 에밀리아의 세계에서는 옳고 그름, 혹은 미추 등의 이분법적 판단 없이, 어린이들의 상상력과 창의력만이 존재할 뿐이다.
유니키에서는 지식 습득에 중점을 둔 베트남의 다른 유치원과 달리, 미술, 음악, 연극 등의 다양한 예술 활동을 통한 학습 및 놀이 환경을 조성한다. 그 안에서 아이들은 창의적인 사고를 기르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즐거움을 깨우치게 되며, 궁극적으로는 관찰하고 표현하는 법, 문제 해결 능력과 비판적 사고를 기르게 된다. 또한 또래 친구들과의 관계를 통해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방법을 익히고, 스스로의 감정을 조절하는 법도 깨우치게 된다. 모든 과정에서는 자연과의 친밀감에 중점을 두어 아이들이 나뭇잎, 잎사귀, 조약돌, 열매, 모래 조개껍질 등의 자연물들과 상호작용하며 미술활동에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장려한다. 유니키에서 교사와 부모는 어린이의 탐색과 학습을 지원하는 ‘동반자’로서 적극적인 개입은 지양하도록 안내받는다. 아이들이 자신만의 세계를 서툴더라도 스스로 쌓아 올릴 수 있도록 한 걸음 뒤에서 지켜보는 것이다.
유니키의 미술수업은 현업 예술가이자 국립대학교에 출강하는 강사가, 연극수업은 전문 마임 아티스트가, 감정수업은 심리학 박사인 베트남 국립대학교 강사가 전격 진행하고 있다. 아이들의 자기주도적 예술활동을 최대한 자유분방하면서도 깊이 있는 수준에서 탐구해나갈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해 전문가팀을 꾸린 점이 특히 눈에 띈다.
띠또아이 아틀리에와 유니키 유치원은 비정기 워크숍 및 전시회를 통해, 원생들뿐 아니라 지역사회의 어린이들에게도 통합적 미술교육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미디어의 영향과 소득 수준의 상승으로 문화예술에 대한 인식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고, 부모들의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수요와 열망 역시 늘어나고 있는 이 시기에, 띠또아이와 유니키 유치원은 레지오 에밀리아 기반의 유아 미술교육을 통해 베트남 어린이들에게 보편적으로 가 닿을 수 있는 방향을 지향하고 있다.
  • 유니키 미술수업 모습
    [사진제공] 필자
소외된 어린이들을 위한 미술교육터 ‘떠해’
떠해는 소외된 어린이 및 청소년들에게 예술적 경험과 창의적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2006년 설립된 사회적 기업이다. 장애아동, 자폐아동, 고아 및 도서 벽지 거주 아이들을 위한 세 단계의 프로그램 – 기초미술교실, 심화지도교실, 직업훈련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아이들의 작품으로 만들어진 제품의 판매 수익 중 5%는 제작 아동에게 로열티로 지급한다. 지난 15년 동안 3,000명 이상의 아이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전국 40개 센터 및 학교에서 2,500번 이상 수업이 진행되었으며, 400명 이상의 아동이 제작한 11억여 개 그림에 대한 로열티가 지급되었다.
떠해의 프로그램을 통해 제작·판매되는 제품들에는 하나같이 천진난만하고 자유로운 느낌이 가득하다. 생생한 컬러감, 유기적인 선과 형태, 거칠 것 없는 터치와 표현력이 특히 돋보인다. ‘라파엘처럼 그리는 데 4년이 걸렸지만, 아이처럼 그리는 데는 평생이 걸렸다’는 피카소의 이야기가 떠해의 출발점이자 영감이었다. 이곳에서는 아이들이 스스로의 창작에서 순수한 즐거움을 느낄 뿐 아니라 실질적인 혜택도 받을 수 있도록 ‘창의적인 놀이터’를 제공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예를 들어, 매주 열리는 무료 창작 미술놀이터는 아이들로 하여금 시각예술 활동을 통해 스스로의 상상력을 자유롭게 탐구하고 여러 기법을 실험해보며 집중력과 소근육을 발달시킬 수 있도록 돕는다. 아이들이 그린 그림들은 추후 떠해 소속 디자이너가 주제 및 제작 가능 재료에 따라 분류하고 디지털 이미지로 변환하여 가방, 지갑, 키링, 의류, 인테리어 장식, 장난감 등으로 제작한다.
12~18세 사이의 자폐 청소년을 위한 직업훈련프로그램은 조금 더 특별하다. 자폐인들은 반복적이고 집중도가 높은 활동을 즐기는 경향이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들이 각자 가진 특성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표현할 수 있도록 자수 교육 및 진로 지도를 제공한다. 전문가를 초빙하여 기본에서부터 고급 과정에 이르는 자수 기술을 가르치고, 꾸준한 연습과 피드백을 통해 학생들이 기술을 안정적으로 습득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수십 가지의 자수 패턴, 소재, 실과 천의 색깔 간의 조합을 학생들과 함께 테스트 해 보며 제품의 독창성과 완성도를 높임으로써, 제품의 차별성과 경쟁력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수 기술을 익힌 자폐 청소년들은, 성인이 되었을 때 사회에 자립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 능력과 자신감을 상대적으로 더 단단하게 쌓게 된다.
떠해의 다양한 미술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제작된 디자인 상품들은 웹사이트와 오프라인 매장에서 뿐 아니라, 하노이 곳곳에 위치한 기념품 가게와 갤러리, 카페에서 위탁 판매되고 있다. 특유의 컬러풀하고 상상력 넘치는 이미지로 대표되는 떠해의 제품들은 한 번 보면 기억에 오래 남는다. 브랜드의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알게 되면 더욱 그렇다. 소외계층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포용하는 미술교육, 그리고 교육의 범위를 교실 밖으로까지 확장시켜 경제적 혜택을 실현하도록 돕고 궁극적으로는 사회적인 변화를 도모하는 곳. 한 발 한 발 작지만 또렷한 떠해의 발걸음을 주목해 볼 만 하다.
  • (왼쪽) 떠해 수업 모습, (오른쪽) 떠해 온라인 판매 제품
    [출처] tohe
빈컴센터 현대미술관이 갖는 의미
빈컴센터 현대미술관(Vincom Center for Contemporary Art, 이하 VCCA)은는 2017년 베트남 굴지의 대기업 빈그룹의 투자와 후원으로 설립된 비영리 아트센터이다. 모든 사람이 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높은 퀄리티의 국내외 현대미술 작품을 전시하고, 대중을 대상으로 다양한 교육·문화·예술 활동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갤러리들과 확연히 구별된다. 하노이의 대형 쇼핑몰인 로열시티 빈컴센터에서도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구역에 위치해 누구나 부담 없이 방문할 수 있게 한 점부터 VCCA의 궁극적인 지향점을 알 수 있다. 예산 편성의 주요 목표 중 하나 역시 ‘대중의 미적 기준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예술 지식을 전파하기 위해 높은 수준의 작품과 국내외 예술 트렌드를 소개한다’는 것이다.
  • 빈컴센터 현대미술관
    [사진제공] 필자
설치미술, 미디어아트 등 현대 미술작품을 넉넉하게 수용할 수 있는 미니멀한 전시공간은 베트남 최대 규모로, 전시 내용에 맞추어 유연하게 변경이 가능해 미술뿐 아니라 음악, 무용, 연극 등 다양한 예술 장르를 소개하기에 최적화되어있다. 전시공간 외에도 예술가 및 장인들과의 워크숍과 세미나, 평론회를 진행할 수 있는 스튜디오, 멀티미디어 상영실, 도서관, 카페 등으로 이루어져 통합적인 문화예술교육 공간을 지향한다.
VCCA는 특히 교육기관으로도 역할을 하고자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영국문화원의 후원으로 진행된 현대 무용 워크숍에서는 베트남 국립 오페라 발레단의 수석무용수가 간단한 연습과 기법을 통해 참가자들로 하여금 몸의 움직임과 감정을 탐색하고 자신을 표현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수업을 제공했다. 그 외에도 어린이 대상의 일회용 플라스틱 재사용 모노프린트 워크숍에서는 환경 문제에 대한 대화를 나눠보고 플라스틱 비닐봉지, 물병, 빨대 등의 재료를 활용한 간단한 프린팅 기법으로 독창적인 작품을 만드는 수업을 진행했다. 지난 4월에는 제5회 하노이 아트커넥팅 국제미술전시회·워크숍을 주최해 베트남을 비롯한 전 세계 24개국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였다. 이를 통해 예술가, 평론가, 관객들을 대상으로 한 아트 투어와 워크숍을 매개로 문화교류와 대중 대상 문화예술교육을 다채롭게 제공했다는 평을 받았다. 대기업 자본과 전문인력, 풍부한 국내외 네트워크에 공고히 기반한 VCCA는 하노이의 예술가들과 교육자들이 최근 몇 년간 가장 주목하며 협력하고 있는 기관이다.
  • 빈컴센터 현대미술관 교육프로그램
    [출처] vov.vn
베트남은 향후 2년간 GDP 예상 성장률이 6~7%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국가 중 하나로 예상된다. 최근 국가적으로 소비력이 훌쩍 높아지며 문화예술교육 분야 역시 큰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주로 민간 영역에서 기업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일반인 대상의 예술문화교육 및 전시, 개개인이 실험적으로 시도하는 독창적이고 자유로운 방식의 미술교육, 그리고 사회의 약자들의 창의력 계발을 돕는 미술수업 및 직업훈련 등 그 방향성과 내용은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만큼이나 역동적이고 신선하다. 코로나19 이후의 베트남 문화예술교육에는 또 어떠한 바람이 불게 될지 지켜본다.
* 이 글은 해외 문화예술교육 기획리포트 5호 「다른 앵글로 읽어보는 아시아 지역 문화예술교육」에 게재되었다.
강리나
강리나
영국 브라이튼 대학교에서 소셜디자인 씽킹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캄보디아에서 전통 도자기 장인들과 함께 디자인을 통한 경제적 자립 프로그램을 고안 및 진행했고, 한양대학교와 건국대학교의 시각디자인 전공 학생들에게 브랜드 디자인 및 미술사 수업을 가르쳤다. 현재는 베트남 하노이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베트남의 미술교육 현장 및 공예 작업장을 방문하고 관찰하며, 디자인과 문화가 내포하는 사회적 영향력을 연구하고 있다. 관심 분야는 개발학과 디자인의 만남, 그래픽디자인, 브랜딩, 지역사회프로젝트, 민속 수공예 등이다.
linakang.summer@gmail.com
사진·이미지 제공_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