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끝자락, 강화로 향하는 길은 겨울로 들어서는 길 같았다. 따뜻한 남도에서 겨울이 빨리 오는 곳으로 옮긴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김혜일 선생님을 만나러 갔다. 그는 올해 1월 정든 고향이자 활동지였던 광주를 떠나 강화도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한국형 애프터스콜레(Efterschole) ‘꿈틀리 인생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청소년들과 새로운 삶을 시작해 첫 겨울을 앞두고 있다. ‘옆을 볼 자유가 필요한 청소년들의 전환학교’ 꿈틀리 인생학교에서 농사, 음악, 미술, 체육, 글쓰기를 진행하며 학생들이 자연과 생태에 익숙해지고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한 해를 보냈다. 예술(교육)가에서 꿈틀리 인생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새로운 터전에서 전환의 삶을 시작한 김혜일 선생님에게 삶의 전환, 예술 활동의 전환에 관한 생각을 들어보았다.
50년 동안 살아온 고향을 벗어나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 같다. 그 계기가 궁금하다.
태어나서 한 번도, 군대와 여행을 빼고, 삶의 터전을 광주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다. 나를 둘러싼 모든 인적 물적 네트워크가 광주에 있었던 거다. 고향을 떠나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은 어렸을 때 잠깐 해봤지만, 실질적으로 그 지역을 떠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모든 떠남은 사실 자극이 있어야 떠나게 되는 건데, 나에게도 외부로부터 자극이 왔다. 첫 번째는 몸에 이상 신호가 왔다. 그와 연동되어 정신적으로도 충격이 왔는데, 이 신호를 ‘전환의 삶을 구상할 때’라고 해석했다. 예전에 주변의 동료 기획자들이 쓰러지고 내 곁을 떠나는 일을 겪으면서 충격이 컸고, 우리 기획자들이 정신적인 마음적인 관리를 못 하고 사는 것 같아서 안타까웠는데, 그 신호가 나한테도 오니까 깜짝 놀랐다. ‘이게 남의 일이 아니구나.’ 작년 봄에 운명처럼 몸에 이상 신호를 감지하면서 동시에 강화도로부터 제안을 받았다. 마침 내가 쉼 없이 달려왔고 멈춰야 할 때라고 생각하면서 다르게 사는 게 어떤 것인지 고민하던 때였다. ‘멈춰야 돼’ 인식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멈추고 그다음으로 갈지는 묘연했다. 새로운 곳, 새로운 것이 필요했다. 그 타이밍에 정확하게 ‘이런 걸 새롭게 해보면 어때?’하는 제안이 왔다.
정말 기막힌 타이밍이다. 운명적인 지난봄 이후, 이주를 준비하는 과정은 어땠나?
작년 5월이었는데, 벚꽃이 다 지고 벚나무 나뭇잎이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데, 그 나무 밑에 앉아서 기타를 치며 이들하고 같이 있는 내 모습이 상상되었다. 프로젝트로 ‘섬마을 인생학교’에서 했던 일을 일상으로 구성해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강화든 어디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가을 후반부쯤에는 꿈틀리 인생학교에 결합하기로 했는데 이곳도 상황이 지연되고 있었고 광주에서 내가 하던 사업들을 정리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쉽게 떠날 줄 알았는데, 너무 어렵고 힘들었다. 정리하기가 너무 아쉽고 나와 함께 했던 사람들에게 계속 미안해졌다. 마을 프로젝트를 함께 한 할머니들이 울 때 같이 울고 어린이 뮤지컬단을 지속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깊었다. 단절해 낸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진하게 느끼는 큰 경험을 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가족 모두가 강화로 이주를 했다는 것이다. 가족들, 특히 아내에게 고맙다.
일시정지(pause)를 지속해 온 입장에서 선생님의 멈춤(stop)이 굉장히 큰 에너지라는 생각이 든다. 운명적으로 강화도로 오셨는데, 제안을 받기 전부터 어떤 인연이 있었을 것 같다.
2019년도에 섬마을 인생학교를 설립한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의 제안으로 섬마을 인생학교 교장을 맡게 되었다. 섬마을 인생학교는 덴마크에 있는 ‘성인 대안학교’인 호이스콜레에서 착안하였고 신안군과 협업해서 만든 학교이다. 짧게는 2박 3일부터 길게는 일주일까지 삶에 지친 성인들이 바닷가에서 쉬면서 자기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전환의 기회를 꿈꾼다. 문화예술로 노래하고 춤추고, 또 이야기 나누고 자연과 함께 성인들의 삶을 좀 쉬어갈 수 있도록 디렉팅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가슴이 뛰었다. 그동안 내가 해왔던 문화예술교육도 결국은 살아가는 삶 안에서 자극과 변화의 동기로 삼고 있었는데, 멋진 자연에서 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고 여겨져서 흔쾌히 승낙했다. 2019년부터 3년간 했는데 너무 행복했다. 별로 특별한 건 없고 숙소 앞에 있는 해변에서 밤에 별 보고 한 시간 동안 기타치고 노래를 불렀다. “얼어붙은 달그림자 물결이 차고”. 그다음에는 “엄마가 섬 그늘에”. 조명 없이, 악보 없이, 그냥 목소리만. 그리고 희미한 실루엣. 피쳐링은 파도. 짧은 시간이지만 우리가 살면서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경험하는 프로젝트였다.
쉬는 걸 잘 못하는 한국 사람들에게 그 시간이 진하게 느껴졌을 것 같다. 섬마을 인생학교를 하면서 문화예술교육 사업과 관련하여 주목하게 된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아! 이렇게 많은 사람이 지쳐 있구나. 특히, 오십 플러스. 특히, 남자들. 현대인들에게 이게 너무 필요하고 우리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아주 단순한 프로그램인데, 그 단순함에서 오는 감동들에 주목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프로그램을 복잡하게 하지 않고 자연을 걷게 하고 음악 듣게 했다. 이러한 활동에는 힘이 있다. 자연이 주는 힘이다. 거기에 우리는 수저를 살짝 얹을 뿐이다. 섬마을 인생학교는 2019년부터 2021년까지 박차를 가하다가 잠시 멈췄다. 멈춤에 대한 고민을 한 데에는 결국은 코로나도 영향이 있었다. 모든 게 멈춰 있을 때, 이제까지 해왔던 일이나 내 삶이 새롭게 바뀔 방안에 대해 고민이 있었다. 한편, 기존에 운영해왔던 문화예술교육이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느껴졌다. 여러 네트워크나 시스템에서 쉼 없이 달려왔는데,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많은 것이 복잡해졌다. 현장에서의 도덕적 회의감도 있어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여기고 사업을 과감히 포기하기도 했다. 사업으로서의 일들을 계속 벌여나가다 보니 현장에서 디테일을 놓치는 일들이 생기고 스트레스가 커졌다.
  • 섬마을 인생학교(2021)
  • 할머니와 함께 떠나는 주말예술여행 시즌2(2021)
현재 교장으로 계신 꿈틀리 인생학교와 지난 경험을 연결해본다면, 어떤 통찰이 있을까.
워낙 네트워크에 익숙한 사람이고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일을 했기 때문에 주변에 늘 사람이 많았고, 그 사람들과 연결해서 내 존재감을 확인했다. 근데 여기로 옮기며 그 네트워크가 단절된 것 아닌가. 지금까지는 학교 안에서 학교 일만 했는데, 여기에서도 내가 새로운 네트워크를 형성해야만 잘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우리 학교의 비전이기도 하고 나의 비전이기도 하다. 그 네트워크는 지난 경험의 정도면 될 것 같다. 다만, 지난 아쉬움을 떠올리며 더 나아가보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내가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일을 하는 것 같다. 그리고 문화예술교육도 결국은 누군가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변화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어서 하는 거고, 마을 일도 그렇고, 또 어린이들의 예술 감각을 키워주는 일도 다 그런 일인데, 왠지 모르게 더 못 나간다는 생각이 있었다. 내가 더 보고 싶은 어떤 세계가 있는데, 그것은 디테일이었던 것 같다. 결국, 한 사람을 위한 문화예술교육이라 생각한다. 나는 직접적 관계 속에서 오는 피드백을 좋아하고 아주 적은 인원이라도 그렇게 함께하면서 이 사람과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게 원래 내 생리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현장이 멀어지니 감각도 멀어지고 힘들어지는 것이었다. 2020년 코로나가 시작됐을 때 했던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가족여가 프로그램 <유연한 함께 살기> 사업을 통해서 다시 깨달았다.
예전에 선생님이 누군가의 이름을 붙여 지은 프로그램 제목(순임씨의 무릎학교, 다연이의 손바닥 학교)을 보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개별성과 만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었다. 지금 꿈틀리 인생학교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코로나하고 맞물려서 그 삶의 개별성을 소수이지만 친밀하게 다시 경험해 보는 기회가 주어져서 행복했다. 그 2년의 경험이 오히려 지금 이 단절을 끊고 연결하면서 더 디테일하게 소수 인원이 학교 아이들과 보내보게 되는 일과 연결되어 나한테는 참 의미가 있다. 수없이 많은 사람과 프로젝트를 했고, 또 수없이 많은 일을 만들었는데 여기는 열여섯 명밖에 안 된다. 규모로 보면 적지만, 이 아이들의 디테일, 아이들과의 관계, 그리고 아이들이 가진 삶의 역동성, 이런 것들을 보여주고 또 만들어주고 하는 게 보람이 있다.
작아지고 밀도가 높아지는 경험, 그것이 선생님이 지금 이뤄내신 전환의 내용이고 모습일 수 있겠다. 잃어버린 것을 마침내 찾은 기분일 것 같다.
그렇다. 그리고 내가 삶에서 느끼는 만족도도 훨씬 더 커졌다. 사실은 건강을 잃는다는 건 여러 의미가 있다. 소중한 관계를 잃었다는 것이고, 내 몸과의 단절인 것이고, 정신과의 단절인 것이다. 그 회복은 아주 작은 일상에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고 그것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관계이다. 그래서 아이들하고 날마다 좋다.
  • 꿈틀리 인생학교
꿈틀리 인생학교는 어떤 학교이고 무엇을 배우나?
개교한 지 7년째다. 행복한 한국 사회를 꿈꾸면서 찾았던 모델이 세계 행복지수 1, 2위를 다투는 덴마크 모델이다. 복지, 사회, 문화, 정치, 경제를 부러워만 하지 말고 그중에 진짜 중요하고 소중한 것, 우리가 실천해볼 수 있는 것으로 교육을 꼽아 본 것이다. 교육도 다 다를 텐데 우리하고 접목할 때 1년간 쉬어가는 학교가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고 제안한 것이다. 덴마크는 초·중등 교육과정이 붙어서 9년을 하면 1년을 쉬는 애프터스콜레 제도가 있다. 전환기 학교 혹은 ‘갭이어(gap year) 스쿨’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고등학교 1년을 다니다가 지친 아이들도 오고, 중3에서 고등학교로 넘어갈 때 새로운 걸 경험하고 싶어서 온 아이들이 있다.
우리 다 어쩌다 어른이 됐잖나. 정말 배워야 할 건 인생이더라. 어떻게 사귀는지, 어떻게 사랑하는지, 어떻게 말하는지, 어떻게 관계하는지,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는 배우지 못했다. 그냥 부모로부터 보고 배우거나 아니면 그냥 알아서 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럴 땐 이렇게 말해, 대화를 전달할 때는 이렇게 해야 돼, 관계를 형성할 때 이렇게 해야 돼’라고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다. 삶이란 이런 거야, 먹고 입고 자고 쓰고 움직이고 관계하고 사랑하고, 이게 인생인데, 이 인생을 1년 동안 여기에서 배워보면 어떨까 하는 걸로 커리큘럼이 형성되어있다. 그래서 몸을 움직이면서 문제를 해결해보고, 그다음에 육체노동을 통해서 몸의 소중함을 느껴보고, 어떻게 하면 마음의 근육을 다질 것인지에 대해 집중한다. “이 세상에 너는 너 하나밖에 없고 너처럼 사는 건 너밖에 없다”라고 응원하며 일상에서 날마다 부대껴야 하는 삶의 요소들을 배우는 것을 하고 있다. 그래서 매우 디테일하게 한다.
배움의 디테일에 대해 디테일하게 듣고 싶다.
밥 먹는 것부터 한다. 예를 들면 보통 급식실에서 밥을 먹을 때 들어온 순서대로 밥을 먹고 일어나는데, 우리는 모든 학생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 앉으면 음식을 준비한 선생님이 오늘 어떤 음식을 왜 어떻게 만들었는지 설명한다. 그리고 식사 당번이 스스로 한 활동에 대해 친구들에게 이야기하고 맛있게 먹으라고 인사하면 그때부터 밥을 먹는다. 식사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땅땅땅 종을 치고 다 같이 이야기한다. 오후 수업에 대한 상세한 안내와 이야기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다 같이 움직인다.
우리는 밥을 먹는 공동체이고, 함께 먹는다는 것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고 함께 의미를 부여하는 거라는 것이다. 그래서 밥 먹을 때는 핸드폰을 하지 않고, 대화하면서 밥을 먹는 문화를 만들어나간다. 그리고 음식을 만들어준 분이 주방 이모가 아니라 선생님이고 푸드 아티스트로서 충분히 너희들에게 철학적 의미를 가지고 이걸 만들었음을 배움의 과정으로서 매우 디테일하게 한다.
24시간이 디테일하고 허투루 가르치지 않는다고 여겨진다. 1년 과정의 흐름과 특징은 무엇인가?
통합과정으로 이뤄진다. 6명의 교사가 담당하는 과목은 있지만, 우리는 한 팀이다. 1학기와 2학기가 다르게 진행된다. 민주시민 교육, 인권, 평화, 노동, 성소수자 등을 주제로 인권 감수성에 관한 교육을 하고. 읽고 쓰기, 음악, 미술, 춤 등을 하는데, 현재 2학기 때는 커뮤니티댄스를 새롭게 하고 있다. 뭐니 뭐니 해도 제일 중요한 건 농사다. 농사는 1년 과정으로 한다. 아예 논과 고원 밭, 텃밭이 따로 있다. 체험이 아니라 1년 농사를 지으며 온 과정을 경험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또 중요한 건 배움여행인데, 덴마크도 가고 다른 지역도 가고 하면서 여행 경험을 쌓는다. 이것이 큰 흐름이고 이 학교가 지켜온 전통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큰 특징은 유연함이다. 예를 들면, 오늘 준비된 활동이 있더라도 별을 보러 가기 좋은 날이면 만사 제쳐놓고 별을 보러 간다. 별은 쉽게 못 보니까. 오늘 낙조가 너무 좋으면, 오후 일정을 다 빼고 낙조를 보러 가는 것이다. 낙조를 보러 갔는데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고 몸만 갔는데 막 들어오는 물에서 해수욕하고 싶으면 물에 빠진다. 주저하는 아이들에게는 교사들이 몸소 물에 빠지면서 몸으로 이야기한다. “해봐~ 하고 나면 느껴지는 것이 있어.”
어느 정도 틀은 갖고 있으나 계속해서 사건을 일으키고 역동성을 보면서 배움의 장을 만들어 가고 있다. 꿈틀리 인생학교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행위로 일상에서 중요하게 챙기고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 있는가?
끊임없이 계속해서 유연하게 만들어가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기획자는 예측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불안함이 너무 많다. 사건을 일으키고 맞이하는 유연함을 많이 배우고 있다. 또 1년마다 아이들이 바뀐다는 것이 우리의 장점이다. 전통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이다. 내년의 전통은 내년 기수가 만들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교사들도 완전히 새로워질 수 있다. 리셋이 되어서 다시 한 사람에게 집중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다.
내가 오고 나서 달라진 것은 우리만의 대표적이고 특징적인 문화가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매일 아침은 노래로 시작한다. 매일 아침 9시부터 전교생이 다 같이 두세 곡을 함께 부른다. 그리고 스토리텔링. 어떨 때는 주제를 가지고 쭉 돌아가면서 이야기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특별한 일 있는 친구 이야기를 듣는다. 노래와 스토리텔링이 우리의 의례, 리추얼(ritual)이 되는 것이다. 일 년 동안 진행한다. 매일.
의례가 사라지는 시대에 노래로 시작하는 하루, 그 삶이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서 농사도 농사가 시작되거나 추수할 때도 반드시 의례를 만든다. 의례 참여하면서 아이들이 삶이라는 게 이렇게 해석해내는 거라고 공부하고 경험할 수 있도록 계속 고민한다. 밥 먹는 것도 의례이고 일상 속에서 우리만의 의례를 계속 다르게 경험해 보는 것이다. 아침에 노래를 부르는 것은 덴마크 애프터스콜레의 전통이기도 하다. (책 한 권을 보여주며) 이게 덴마크 애프터스콜레의 노래책인데 700곡 정도가 있다. 덴마크 전통 노래, 팝송, 가곡 등이 선별되어 있다. 노래가 주는 힘이 있다. 함께 주제가 있는 노래를 부를 때 올라오는 에너지가 있다. 덴마크 근대화의 교육의 아버지인 니콜라이 그룬트비(1783–1872, 덴마크의 신학자이자 저술가) 교육에서 중요하게 여겼던 게 노래와 말이었다. 그전까지는 라틴어로 돼 있어서 쓰는 말과 텍스트가 달랐다. 살아있는 그들의 말과 언어를 중요하게 여기면서 스토리텔링이 강화됐고, 그다음에 이걸 하나로 모으기 위한 힘으로서 노래를 작곡하기 시작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민중가요가 있었고, 국민 애창곡이 몇 있지만, 함께 부를 노래가 없다. 우리 아이들은 음악을 많이 듣고 소비하는데, 어떤 아이는 힙합을 좋아하고 어떤 애는 BTS를 좋아하니까 같이 부르려면 어렵다.
전환기 학교로서 꿈틀리 인생학교 과정은 1년이다. 이곳에서 2년을 쉴 수는 없나? 또는 아이들이 그러길 희망하지 않는가?
더 쉬어가고 싶어 하지만,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는다. 1년 쉬는 건 새로운 힘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므로 여기에서 키운 힘을 외부에서 확인하도록 한다. 가서 스스로 확인하고 성취해보도록 응원한다. 인생의 전환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어떤 힘을 잃어버렸는지, 어떻게 그 힘들을 키워낼 것인지 살펴야 한다. 스스로 하는 일, 혹은 싸울 수 있는 일을 해나가도록 그 힘을 축적하고 길러내는 게 멈춰서 전환할 때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그리고 우리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전환기 이후에 무엇을 할지’가 아니라, ‘전환기를 통해 어떤 힘이 생기는지’로. 그 힘만 생기면 어딜 가든 무엇이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질문을 바꿔야 한다. 이곳에 보내는 부모들에게도 제안한다. “이곳을 졸업하면 다음에는 어떻게 하나요?”가 아니라, “이곳을 졸업하면 어떤 힘이 생기나요?”로 바꿔보자고.
네트워크와 협력 관계를 통해서 많은 것들을 느끼고 경험해 오셨다. 이곳에서 진행하고 있는 협력이 있나? 지역-학교 간 협력에 관해서도 궁금하다.
올해는 문화예술교육계에 있다가 교육계로 들어왔다. 근데 난 다르지 않다고 본다. 예술로 만난 교육이었고, 여기는 삶의 전체로 만나는 것이니 그 결은 절대 다르지 않다. 올해 1년은 이 판에 익숙해지는 데 조금 많이 신경을 써야 했다. 아직은 구체적으로 어떤 네트워크와 연결할 것인지 고민은 깊지 않지만, 내 성향상 곧 할 것 같다. 계속 꿈틀거리고 있다. 내년부터는 마을과 어떻게 결합할지, 우리 학교 운동장 내 게이트볼장에 오는 할아버지들과 우리 학생들이 어떻게 결합할지, 주민과 같이 마을 합창단을 해보면 어떨지 생각해본다. 실제로 와서 보니 학교가 지역사회에서 고립돼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강화도에 있는 작가들과 함께 협업해서 레지던시를 해보면 어떨지 상상도 계속하고 있다. 아직은 우리 선생님들이 지역사회와 원활하게 뭔가를 해본 경험이 없어서 서서히 네트워킹을 즐거운 일로 여기도록 해볼 계획이다. 어쨌든 나도 이제 삶의 터전을 바꾼 것이다. 그러니까 이 ‘강화’라는 지역을 더, 몸으로, 알아가야 한다. 그래서 지역성과 사람과 문화와 자원을 계속 공부하고 있다. 학교하고 연결 지점도 있지만, 나라고 하는 개인이 또 문화기획의 DNA를 가지고 이 지역에서 꼭 학교뿐만이 아닌 다른 걸로 어떻게 연결해 볼 수 있을까 탐색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계속 디뎌보고 가보고 그러고 있다.
그런 리서치 과정에 대해 궁금했다. 멈춰 서면 더욱 구체적으로 경험하게 되기에 문화기획자로서 어떤 리서치를 하고 어떤 감각을 길어 올리고 있는지 궁금하다.
솔직히 말하면 매우 조심스럽고 두렵기도 하다. 내가 살아온 문화와 너무 다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무조건 환대하던 문화에서 살다가 여기로 오니, 차갑게 느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이 살아온 삶의 결을 내가 모르니까 조심스럽다. 그래서 서서히 이 문화와 정서에 공감해 가는 것이다. 강화에 먼저 자리 잡은 문화기획자와 인터뷰하면서 그들도 깃들어가는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조급해지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했다. 내가 살았던 문화와 내가 살았던 결이 다르기 때문에 이 사람들의 습성과 이 사람들의 문화와 이들의 커뮤니티를 알아가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하고 또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올 겨울방학 때 일단 학교 외에 내 인맥을 쌓을 수 있는 활동을 해보려고 한다. 학교가 제외된 내 공간과 내 삶에서, 서서히 넓혀가는 관계를 맺어보려고 한다.
꿈틀리 인생학교에서 첫 겨울을 앞두고 있다. 이즈음이면 동면, 보릿고개 같은 단어들이 떠오른다. 지나온 겨울과는 또 다른 겨울이 될 것 같다. 겨울은 어떻게 보낼 계획인가?
내 안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교사가 좋은 것이 방학이더라. 방학이라는 것이 에너지를 한껏 쏟다가 멈추라는 의미 같다. 그래서 교사들이 왜 방학을 기다렸는지 공감이 좀 되었다. 올겨울은 새로운 에너지로 나를 돌아보면서 채우는 시간을 가질 계획이다. 내 안에 있는 에너지를 계속 뿜어내야 하는 직업인데, 그러려면 충전을 해야만 가능하다. 그리고 공부를 좀 많이 해야겠다. 대안교육이나 교육 분야는 처음이고, 여전히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공부가 절실하다. 심리나 관계, 성, 페미니즘 등 더 깊이 공부해야 아이들과 깊은 대화를 할 수 있다. 올겨울에는 그런 공부를 통해서 아이들을 만났을 때 좀 더 다양하게 뭔가를 해줄 수 있는 준비를 하려 한다.
김혜일 선생님과 이야기 나누는 사이사이에는 노랫가락이 흘렀다. 꿈틀리 인생학교에서 아침마다 부르는 노래를 설명하며 직접 불러주신다. 그날의 상황에 따라 노래를 섬세하게 선곡해서 함께 부르고 이야기하는 꿈틀리 인생학교 아침 의례 선곡집을 제작 중이라고 했다. 이 글을 쓰는 중에는 그날의 흥얼거림이 흘러나온다. 꿈틀리 인생학교를 방문하고 인터뷰한 덕분에 나도 잃어버렸던 노래를 찾았다.
“쉰다는 건 멈추는 거잖나. 제가 좋아하는 단어가 있다. 멈춰섬이 경고신호라면, 그다음 단계는 물러섬이다. 그다음에 돌아섬. 나는 이 세 가지가 연결된다고 본다. 잠시 멈춰서 보면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가 보이고, 물러서서 관조해 보고 그걸 생각해보고 부족한 걸 먼저 챙겨보고, 그다음에 돌아섬이 이뤄지면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고향과 단절, 관계와의 단절 그리고 하는 일과의 단절이라고 생각했고 많은 이들이 그렇게 인식했지만, 결국 돌아보니 다 연결되어서 여기까지 온 것이라는 김혜일 선생님의 이야기에 내 마음도 자유로워진다. 형태만 달라지고 또 지역만 달라질 뿐이지 결국은 내가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로 계속 살아나갈 수 있으니, 우리 모두 자신감을 갖자는 이야기에 든든하게 배가 불러온다.
그래, 단절은 없다. 모두 다 연결되어 있다.
겨울 다음에 봄이 오듯이.
김혜일

김혜일

대학과 대학원에서 신학을 전공했다. 신(神)보다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아 사람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문화기획자가 되었다. 아카펠라를 매개로 문화예술교육을 시작했고 지난 11년 동안 어린이, 청소년, 가족 등을 대상으로 문화예술교육을 해 왔다. 신안군 도초라는 섬에서 운영되는 생애전환 삶 프로젝트 ‘섬마을 인생학교’ 교장을 맡은 것이 계기가 되어 따뜻한 남도에서 평생 살다가 최근 강화도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청소년 전환학교 ‘꿈틀리 인생학교’에서 ‘옆을 볼 자유’를 누리는 청소년들과 날마다 기타 치고 노래하며 살고 있다.
페이스북 @heail.kim.1
민경은
민경은
여러가지연구소 대표. 2010년 부천시 원미동에 여러가지연구소를 열고, 지금까지 대표이자 마담을 맡고 있다. 도시 개발에 따른 장소 상실로 새로이 여러가지연구소 공간을 조성하자마자, 코로나19를 맞이했다. 비정형적인 커뮤니티의 실험을 즐기며 질문을 생산하고 실천과 연결하는 소소하고도 밀밀한 만남을 갖는 것을 즐기고 있다. 연결되는 문화예술 현장의 관찰자이자 참견쟁이로 활동하고 있다.
dayodayo798@gmail.com
사진_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프로그램 사진 제공_김혜일, 꿈틀리 인생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