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시스 퐁주라는 사람은 비누를 25년간 관찰하고 책 한 권을 썼다. 조약돌의 일종, 마법의 돌, 하늘빛을 띤 안개의 핵, 황홀의 발레, 매혹적인 연출과 그 뒤로 사라지는 기억, 굳어지고 갈라진 이마, 무기력하지만 민첩하며 수다스럽고 열정적인 돌…. 그는 아마도 매일 아침 단단한 비누를 비비고 주무르고 미끄러운 거품을 느끼고 녹는 것을 보면서 계속해서 부풀어 오르고 사라지는 마음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퐁주처럼 나도 흩어지는 감정과 어지러운 생각 사이에서, 미끄러지지만 잡아야만 하는, ‘그 무언가’를 잡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다. 시시각각 변하는 내 마음을 사물에 담아 표현하거나 행위를 통해 그 마음의 흐름을 표현하기도 했다.
  • <Thousanmd Love>, 학종이, 5x5cm, 2012
  • <용사의 무기 시리즈> 중 일부, 혼합재료, 가변크기, 2021
실연 후에 제작했던 <Thousand Love>라는 작업은 한 장의 학종이를 천 번 접어서 완성했다. 나는 한 번 접고 펴서 다시 접는 것을 반복하면서 계속 변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몸으로 확인하고 다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되돌려 놓는 행위를 했다. 작년에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진행한 비대면 장애인 문화예술 콘텐츠 개발 프로그램 <만날 사람은 만난다>에서는 ‘용사의 무기 시리즈’를 만들었는데 이것은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무기’라는 오브제로 해석한 작업이었다. 이 무기들은 부드럽고 휘청거리며 정해진 사용법이 없기에 참여자들은 자신의 신체에 맞게 낯섦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을 찾아내야만 한다. 이렇듯 나의 작업은 사물과 그것을 다루는 태도, 마음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예술가의 감성템’이라는 주제를 받고 내가 자연스럽게 선택하게 된 것은 모두 사물이었다. 집 안을 둘러보니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었고 그중 하나씩 소개하려고 한다.
부드러워지기 위한 것 – 연필깎이
나는 아이디어 노트 혹은 일기, 편지를 쓸 때 펜보다 연필을 선호한다. 그 이유는 실수해도 지울 수 있어서다. 실수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은 무언가를 시작하는 데 있어 두려움을 줄여준다. 그리고 연필을 깎는다는 행위는 이제 새로 시작한다는 설렘을 준다. 뭉툭해진 연필을 깎는다는 것은 정신을 다시 갈아 세우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깎을 때의 감촉과 소리는 짧은 순간이지만 나에게 어떤 안정감을 준다. 그래서 연필깎이는 나에게 일종의 ‘의식’을 위한 사물이다. 설렘을 위한 의식, 이제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의식. 그렇게 나를 세뇌하고 속이기 위해 나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연필깎이를 모았다. 내가 모은 연필깎이는 기능보다는 재미난 모양에 집중되어 있다. 열쇠 모양, 오리 모양, 집 모양, 지구본 모양, 딸기잼 병 모양, 물뿌리개 모양, 얼굴 모양 등등 약 열 개 정도 있다. 이것들을 항상 쓰지는 않는다. 내가 딱딱해졌다고 느낄 때, 자신이 없어질 때 나는 어린아이처럼 부드러워지기 위해 이 연필깎이들을 늘어놓고 하나를 골라 연필을 깎는다. 깎으면서 보통 나 자신에게 하는 얘기는 ‘실수해도 괜찮아, 그냥 놀아’ 이다.
신비를 간직한 것 – 콤파스(컴퍼스)
나는 동묘 벼룩시장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신기한 물건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고 그것을 파는 상인들의 태도를 보는 것도 흥미롭다. 언젠가는 어떤 물건이 마음에 들어 사고 싶다고 했더니 주인이 하는 말이 이건 원래 파는 것이 아닌데 만약 원한다면 자신과 내기하자고 했다. 이기면 이 물건을 가져가고 지면 내가 호떡을 사주는 것이었다. 아쉽게도 내가 졌고 나는 그에게 호떡을 사줬다. 그런데 나도 달달한 호떡을 하나 먹었고 그래서인지 이기고 진 게 무슨 소용이며 저 물건을 가지지 못한들 그것도 무슨 상관이랴, 그런 마음이 되어버렸다. 이 세상의 논리와는 다른 이상한 태도가 나에게 어떤 해방감을 주기도 했다.
동묘에는 내가 좋아하는 단골집이 있다. 때를 잘 맞춰 가면 비범한 물건을 살 수 있다. 거기서 샀던 물건 중의 하나가 바로 콤파스다. 처음 이 콤파스를 보고 나는 외마디 감탄사를 내질렀는데 요즘 물건들 같지 않게 만듦새가 너무나도 정교해서 황당할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뼈 모양 같기도 했고 어떤 작은 로봇의 팔 같기도 했다. 제각각 크기의 나사와 조임새는 심미적인 요소가 섬세하게 반영되어 있었고 몸체 또한 곡선과 직선이 절도 있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기껏해야 원을 그리는 물건인데? 라고 생각했다가 그 원이 빗방울의 파문부터 행성의 궤도까지, 세상 모든 게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기도 했다. 오래된 물건은 지금 세상의 논리와는 다른 논리를 향하고 있다. 지금은 쓸모없어도 그때는 중요했던 무언가를 향해 디자인되었는데 그 격차 속에서 망각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게 나에게는 신비이고 어떤 가능성이기도 하다.
오다 주운 것 – 도토리
집 한쪽 구석에는 오다 주운 것들을 진열해 놓은 장소가 마련되어 있다. 그것의 시작은 친구였다. 어느 날 친구가 오다 주웠다며 주머니에서 도토리 두 알을 꺼내서 줬는데 그게 참 느낌이 이상했다. 나에게 나누어 줄 마음을 호주머니에 넣고 왔구나 싶어 친구에게 감동하기도 했고 말갛게 반질거리는 도토리를 지금껏 제대로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뒤로는 나도 걸을 때 주위를 살피는 습관이 생겼고 땅에 떨어진 열매라든지 이른 봄 고개를 내민 꽃봉오리를 제일 먼저 발견하는 습관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세상 대부분의 것이 거저 주어진 게 많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가장 흔한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리 바빠도 이리저리 오며 가다가 허리를 숙이고 도토리 몇 알을 주울 여유 정도는 가지고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나도 무언가를 줍는다. 열매 혹은 씨앗, 혹은 돌, 반짝이고 이뻐 보이는 그런 것을 주워 누군가에게 주기도 하고 집에 가져다 놓기도 한다. 그것들은 작업의 재료로 쓰이기도 하고 누군가를 위한 선물 포장의 재료로 요긴하게 활용되기도 한다.
나에게 사물은 나를 다독이기 위해 사용되기도 하고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을 발견하기 위한 영감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마음의 매개체가 된다. 두근거리는 마음, 휘청거리는 마음, 부푸는 마음, 묵직한 마음, 뭉툭해진 마음, 얇아져 투명해진 마음… 무슨 마음으로 가닿고 싶은지 생각한다. 어떻게 흘러 어디에 맺혀 무슨 마음으로 형성될지 기대한다. 형체가 없는 마음은 잠시 형체를 갖는다. 그것을 바라보고 만지고 그것에 대해 느낀다. 그렇게 잠시 연결되기를 바란다.
구은정
구은정
몸과 여러 사물을 통해 마음을 기록하고 표현하는 미술작가.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7년 개인전을 시작으로 다수의 크고 작은 전시에 참여했다. 쉴새 없이 변화하는 다채로운 날씨 같은 작업을 하고 싶고 결국 잘 먹고 잘살아서 호기심 많은 할머니가 되는 것이 꿈이다.
koonjjun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