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시절 생계를 위해 낮에는 문화센터 강사를, 밤에는 작품활동을 하며 알바 아닌 알바 같은 직업을 갖고 있었다. 대학원 마지막 학기에 도전한 학교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은 나에게 한 줄기 빛과 같았다. 이른 아침 출근하고 교과 시간에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과 나를 선생님으로 불러주고 따라주는 아이들이 나에겐 너무나 큰 행복이었다. 대학원에서 만난 친구들에게도 학교 문화예술교육을 추천할 정도로 ‘예술강사’라는 직업을 사랑했고 자부심도 있었다. 하루 이틀이 쌓여 1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학교 예술강사 워크숍 날이었다. “선생님은 전공이 어떻게 되세요?” “그 학교는 어때요?” “저는 이런저런 문제로 어려움이 있었어요” 수업환경에 관한 이야기 또는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그중 전통 예술을 사랑하는 예술강사 셋이 만나 통합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연구하는 ‘안;다미로’(무용 이효진, 공예 백선영, 국악 남지나)가 탄생하게 되었다.
팬데믹 앞에서, 함께 길 찾기
세 명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꾸준히 작품활동과 문화예술교육을 해왔으며, 자신의 분야에 자긍심도 있었다. 자기 분야와 작업 방식이 다르고 타 분야를 이해하지 못해서 팀을 만들기 전보다 못한 사이가 되진 않을까 걱정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넘치도록 가득 아이들에게 예술적 감성을 담아주자’라는 팀 이름처럼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같았다. 자기 분야의 시각으로만은 알려줄 수 없었던 부분, 그동안 현장에서 했던 수업보다 다양한 시각으로 세 분야가 함께 할 수 있는 통합예술 프로그램을 만들자! 우리는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그동안 내 수업에서 아쉬웠던 부분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건 무엇인지, 어떤 주제로 어떻게 만들면 좋을지 구체적인 고민을 시작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지난 13년간 내가 해온 학교 문화예술교육이 존폐 위기에 놓일수도 있겠다는 두려움과 공포가 매우 컸다. 아이들도 책가방을 들고 학교에 가는 대신 컴퓨터 책상에 앉아 혹은 텔레비전 앞에 앉아 교육 방송을 보며 비대면으로 온라인으로 수업을 들었다. 어쩌다 등교하는 날 친구들과 만나도 서로 어울리며 이야기를 나누는 대신 거리두기와 손소독을 하며 마스크를 고쳐쓰기 바빴다. 그럼 이전에는 이런 전염병이 없었나? 아니다. 신라 시대 삼국유사 처용설화에 등장하던 역병! 역병과 닮았다. 처용이란 인물이 춤과 노래로 역신(역병)으로부터 세상을 구하고, 용서와 화해를 가져왔다는 처용 설화를 <미스터 처용! 코로나를 물리처용~>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새롭게 탄생시켜 학교 현장에 적용해보기로 했다.
각자의 분야에서 역량을 발휘하고 하나의 수업을 만들기 위해 우린 더 자주 만나고 소통하며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고 고민을 나눴다. 백선영 예술강사는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현대적으로 처용의 관모와 탈을 시각화하고, 남지나 예술강사는 부르기 어려운 처용의 창사(춤추다가 부르는 노래)를 변형하여 모둠별로 코로나를 물리치는 방법에 관한 별달거리 사설로 만들어 부르고 컵타(컵으로 하는 난타)로 장단을 치며 캠페인 영상을 만들었다. 지금부터는 나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국가무형문화재 제39호 처용무를 전승하고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기존의 처용무에서 무엇을 버리고 처용무의 어떤 모습을 가르쳐야 할지, 원형의 변화를 어디까지 수용해야 하는지, 며칠 밤낮을 고민했다. 나의 고민은 의외로 한 날 쉽게 풀렸다. 김경언 퍼실리테이터(강령탈춤전승회)의 멘토링을 받은 후였다. 이건 처용무를 원형을 가르쳐야 하는 수업도 아니고, 처용이 주는 의미와 가치만 훼손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는 거 아니냐는 말씀이었다. 처용으로 아이들에게 주려고 했던 메시지, 처음 이 프로젝트의 목표였던 “함께 만들어가는 전통, 일상에 스며드는 전통” 그 말에 나의 고민이 설득되었고 일단 아이들과 부딪쳐보기로 했다.
길 위에서 만난 협력자
<미스터 처용! 코로나를 물리처용~>은 ‘주제 중심 학교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예술로 탐구생활)’으로 프로젝트 공동개발 과정을 지원받아 진행했다. 그동안은 여러 무용 예술강사가 나름의 노하우로 만든 교안에서 발췌한 내용을 내 수업에 적용해왔다면, <미스터 처용! 코로나를 물리처용~>은 기획 의도부터 구성, 수업계획, 수업 실행 등 모든 게 처음이라 우리가 잘해야 이 사업이 지속될 수 있다는 막중한 책임감이 느껴졌다. 다양한 시각으로 세 명의 예술가와 한 명의 교사가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새로운 수업을 만들어 시도해본다는 설렘과 긴장감이 함께 했다.
하지만 사업공모가 학사 일정이 이미 수립되어있는 여름방학에 나왔기 때문에 프로그램을 진행할 학교를 섭외하는 데 어려움도 있었다. 다행히 대전 유성중학교 김주현 교사가 이 사업의 취지와 우리 프로그램의 목표를 듣고 흔쾌히 참여해주었다. 김주현 교사는 중등 음악과 교육과정에 소개된 처용무(수제천)를 바탕으로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소개할 수 있도록 안내해 주었고, 우리의 의견을 귀 기울이며 현장에서 바로 적용될 수 있게 다듬어주었다. 한편, 온라인으로 진행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여러 대처법(줌을 활용한 수업 방법, e학습터 활용 등)도 제시해주었으며, 매 차시 수업을 이끄는 주강사를 도와 보조강사의 역할을 해주었다. 우리는 우리가 만든 수업을 아이들과 함께 즐겼다. 아이들 사이에서 함께 처용을 만들고 처용을 부르며 코로나 팬데믹을 절망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슬기롭게 이 상황을 이겨내는 방법을 함께 찾아갔다. 교과서에서 보던 처용을 아이들이 제대로 알게 된 것, 전통문화를 한 번 더 돌아보고 생각하게 만들어 준 것이 우리 수업에 가장 큰 수확인 것 같다.
“문화는 바람개비 효과를 가져옵니다. 바람이 바람개비를 돌게 하듯이 문화예술인 여러분은 바람이 되어야 합니다.” 얼마 전 타계하신 고 이어령 선생님의 말씀처럼 우리의 전통문화, 궁중무용을 바람처럼 전달하여 아이들이 만든 새로운 처용무, 새로운 문화와 예술을 경험하게 하고 우리도 다시 한번 문화예술교육의 의미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 팀은 ‘예술로 탐구생활’에 또다시 도전할 예정이다.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열린 시각으로 전통문화를 재창조해준 아이들과 다시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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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진
이효진
2007년부터 무용 분야 학교 예술강사로 활동 중이다.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 처용무를 공부하고, 전통과 현대를 잇는 통합예술교육 프로그램팀 ‘안;다미로’와 지역의 소외계층을 위해 한국춤을 추고 봉사하는 ‘춤연무용단’의 대표를 맡고 있다.
danse524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