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고 닦고 조이고 보듬고 – 유기사물구조대 출동!

오늘부터 그린⑥버려진 물건을 구조하기

2020년 늦가을, 피스오브피스 멤버 일곱 명은 각종 청소 도구와 연장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일명 ‘서울아까워센타 : 유기사물구조대’(이하 서울아까워센타)! 이름 그대로 길거리에 버려진 멀쩡한 물건들이 아까워서 시작한 프로젝트다. 거리를 수색하다가 ‘유기사물’이 발견되면 병을 진단하고 처방을 내려 그 자리에서 뚝딱뚝딱 고친 뒤 매무새를 잡아주곤 유유히 떠나는 게 콘셉트다. 삼만리 뒤에서도 눈에 띌 듯한 소방관 복장을 하고 일곱 명이 우르르 몰려가, 아무도 눈길 주지 않았던 것에 힘을 쏟는 광경을 시민에게 보여주는 것이 미션이었다. 길거리는 무대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관람객이 되는 일종의 퍼포먼스. 무심히 일하는 우리가 도대체 뭘 하는지 궁금해하길 바랐다.
  • 서울아까워센타 : 유기사물구조대
  • 메이커스 연-장 도서관
자투리부터 유기사물까지
서울아까워센타는 지금까지 피스오브피스가 해왔던 활동과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뭉쳐 탄생한 프로젝트다. 예술을 기반으로 자투리, 반려 사물 등에 관심을 가져온 피스오브피스는 주변 작가들이 쓰고 남은 골칫거리 자투리 재료들을 기부받아 소분하여 저렴하게 판매하는 ‘자투리 잡화점’ 프로젝트로 시작했다. 페인트나 목재 같은 재료들은 적은 양을 구입하기 어려워 늘 남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꼈던 것이 발단이었다. 멀쩡한 재료를 버리지 말고, 필요한 사람에게 나눌 수 있는 허브가 있다면 쓰레기 생산을 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메이커스 연-장 도서관’은 자투리 잡화점을 통해 만난 사람들에게서 느낀 에너지와 그들의 니즈를 파악하여 이듬해 시작한 프로젝트다. 자투리로 물건을 만들거나 고쳐 쓰고 싶어도, 전문 도구를 갖추기 어려워 시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연장을 빌려줬다. 장벽의 문을 낮추기 위해 공구 특강도 곁들였다. 공구 사용 능력이 생기면, 물건을 새로 사는 일도 줄고 자투리를 사용하는 횟수도 늘어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었다. 업사이클링, 재활용, 분리수거도 좋지만, 정말 필요한 건 물건을 한 번 사면 오래 쓰는 것이라는 생각이 반영된 시도였다.
자투리와 반려 사물을 이야기하는 활동은 또 다른 자극으로 이어졌다. 길거리에 버려진 물건들이 점점 더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이다. “아… 이것만 고치면 쓸 수 있을 텐데” “이렇게 멀쩡한 것을 왜 버렸지?” “아니, 이렇게 많이 버려졌었나?”라며 탄식하는 일이 잦아졌고, 지금까지는 사람들을 우리 공간으로 초대했다면 이젠 나서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번엔 본업으로 돌아와 우리의 생각에 예술을 입히고, 예술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영향을 끼치고 싶었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캠페인보다는 피스오브피스의 유쾌한 색을 담은 활동을 보여주고, 행위에 대한 해석은 관람객의 몫으로 남겨두고자 했다.
“고스트 버스터즈처럼 직접 출동하여 구출하는 퍼포먼스를 해보면 어떨까? 이름은 우리가 입에 달고 사는 ‘아까워’를 넣어서 아까워센타로 하자! 쓸고-닦고-조이고-보듬고~ 이 구호 어때!”
즐겁게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더하고 나니 ‘서울아까워센타 : 유기사물구조대’가 탄생했다. 첫 출동을 하던 날은 모두 쭈뼛쭈뼛, 정말 길거리에서 바로 물건을 고칠 순 있는 건지 의문을 가진 채 시작했다. 아무도 해본 적이 없는 것이니 레퍼런스도 없었다. 그냥 느낌대로 출발하여 영등포 어딘가에 주차하고 무작정 도구 카트를 꺼내 걸었다.
눈에 띄게, 관심 갖게
유기사물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고치려고 하니 웬만한 도구는 다 있지만 정작 필요한 건 없었다. 고칠 순 없었지만 대신 마구잡이로 쌓여 있던 것들을 닦아주고 예쁘게 배치해주었다. 쇼룸 가구처럼 보이면 한 사람이라도 더 눈길을 주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민망할 때는 다 같이 “쓸고 닦고 조이고 보듬고”를 외치며 걸어보기도 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자주 버려지는 장소’를 묻기도 하고 쓰레기 감시 활동을 하시는 어르신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구출은 실패지만 경험이 생겼다. 작업실로 돌아온 뒤엔 무엇이 보완되어야 할지에 대해 열띤 토론을 했다. 가장 먼저 바꿔야 하는 건 출동 방법! 무작정 나가는 것보다 수색대가 미리 구조할 사물을 찾고 어떤 재료와 도구가 필요할지 파악한 뒤 출동하는 것이 나아 보였다.
출동복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더해졌다. 우리 활동은 실제 사물을 구출하는 것보다는 이 행위가 사람들 눈에 띄어 물건을 쉽게 버리는 행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형광 주황의 소방관 복장이 채택되었다. 당근마켓에 좌표를 찍어주자는 의견도 나왔다. 구출한 물건을 우리가 계속 추적할 순 없고, 고쳐놓은 사실을 알리면 조금이라도 구출될 확률이 높아질 터였다. 그렇게 첫 실패를 통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다음 출동을 준비했다.
두 번째 출동부터는 재밌는 해프닝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지나가다가 관심을 가진 할머니께 고친 수납장을 배달해 드리기도 하고, 장한 청년들이라며 커피를 선물 받기도 했다. 인테리어를 업으로 하고 계신 시민분이 구경하시다가 고치는 걸 도와주신 일도 기억에 남는다. 활동 세 번 만에 뉴스에서 취재하러 나오기도 했다. 우리 생각에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 사실에 힘이 났다. 늦가을에 시작해 겨우내 총 일곱 번의 출동을 했고, 얼굴과 손은 꽁꽁 얼었지만 “세상이 아직 살만한 이유는 여러분이 있기 때문입니다.”와 같은 감동적인 메시지를 보내오신 분들 덕분에 마음과 열정은 뜨끈해졌다.
행동한 경험이 주는 마음가짐
‘사람들 마음속에 작은 씨앗 하나를 심고 싶다’는 바람이 전해진 걸까? 2021년에는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순환랩 프로젝트에 참여 제안을 받았다. 안 그래도 우리 활동이 더 많은 사람을 통해 다양한 곳에서 펼쳐지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그런데 구조 활동을 어떻게 교육화하지? 우리는 다시 머리를 맞대었다. 우선, 구조하려면 도구를 다룰 줄 알아야 하니 공구 수업을 하기로 했다. 재료에 대한 이해도 필요할 것 같았다. ‘유기사물의 이해’라는 제목을 붙여 노하우를 전수해주는 시간도 갖기로 했다. 함께 출동해보는 것은 필수! 하지만 하루 안에 이 모든 걸 하기엔 시간이 부족해 보였다. 그러다 생각 난 콘셉트는 구조대원을 양성하는 ‘캠프’였다. 교회 수련회처럼 같이 밥도 해 먹고 율동도 하면서 교육부터 출동까지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탄생한 <서울아까워캠프> 프로그램은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은 11월 한 달간 총 4번의 무박 2일 캠프를 통해 25명의 유기사물 구조대원을 양성했다. 캠프 참여자 연령 제한은 두지 않았다. 유기사물 구조는 누구나,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활동의 재미를 위해 ‘쓸고 닦고 조이고 보듬고’ 구호를 노래로 만들어 율동도 제작했다. 캠프에서 빠질 수 없는 캠프파이어와 참여자용 주황 복장도 잊지 않았다.
<서울아까워캠프>는 공동체 활동이 뿜을 수 있는 긍정 에너지를 확인하며 성공적으로 끝났다. 어떤 사람들이 올지, 결과물은 어떨지 예상할 수 없어 긴장했던 것이 무색했다. 사람들은 잠깐 배운 기술을 가지고도 거뜬히 구조해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함께 고민하고 행동한 경험이 주는 마음가짐이었다. 사물을 대하는 태도는 결국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도 연결됨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우리는 구조대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생각의 씨앗을 흩뿌려주길 바랄 뿐이다. 조금씩 퍼져나간 생각들이 세상에 좋은 변화를 가져다주길 기대하면서 말이다.
이연우
이연우
환경과 동물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며 사는 예술노동자. 원래는 시각예술·독립출판 창작자인데, 어쩌다 보니 글도 쓰고 디자인도 하고 문화기획자로도 활동 중이다. ‘피스오브피스’의 멤버이자 인쇄 매체 기반 예술가그룹 ‘해방해방’의 대표를 맡고 있다.
이연우 @yeonurhee
피스오브피스 @pofp_studio
4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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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체스 2022년 04월 12일 at 10:17 AM

    외면하고 있는 시선을 돌려 세우는 관찰의 태도, 버림과 치움의 상황을 사건으로 만드는 퍼포먼스, 쓸모없음에 대한 판단 중지 그리고 사물의 권리장전을 향한 따뜻한 외침!

  • author avatar
    안해영 2022년 04월 13일 at 3:24 AM

    좋은 일입니다.
    우리는 버리는 것에 너무 익숙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조금 손 보면 고칠 수 있는 것도 그냥 버립니다.
    물론 제품을 만들어 상업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은 새로운 고객이 늘어나야 겠지만,
    지구를 생각해 보면, 제품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며 고쳐가는 것은
    사람이 몸에 병이 나서 아플 때 약을 먹거나, 병원을 찾는 것과 일맥 상통한다고 생각됩니다.
    좋은 일 하는 분들께 고마움을 느끼며 살겟습니다.

  • author avatar
    김양남 2022년 06월 18일 at 11:57 AM

    쓸고 닦고 조이고 보듬고 – 유기사물구조대 출동!
    오늘부터 그린⑥버려진 물건을 구조하기
    정말 너무나도 공감이 갑니다

  • author avatar
    안기현 2023년 03월 13일 at 3:33 PM

    쓸고 닦고 조이고 보듬고 – 유기사물구조대 출동!
    오늘부터 그린⑥버려진 물건을 구조하기
    기대만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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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체스 2022년 04월 12일 at 10:17 AM

    외면하고 있는 시선을 돌려 세우는 관찰의 태도, 버림과 치움의 상황을 사건으로 만드는 퍼포먼스, 쓸모없음에 대한 판단 중지 그리고 사물의 권리장전을 향한 따뜻한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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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해영 2022년 04월 13일 at 3:24 AM

    좋은 일입니다.
    우리는 버리는 것에 너무 익숙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조금 손 보면 고칠 수 있는 것도 그냥 버립니다.
    물론 제품을 만들어 상업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은 새로운 고객이 늘어나야 겠지만,
    지구를 생각해 보면, 제품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며 고쳐가는 것은
    사람이 몸에 병이 나서 아플 때 약을 먹거나, 병원을 찾는 것과 일맥 상통한다고 생각됩니다.
    좋은 일 하는 분들께 고마움을 느끼며 살겟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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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2년 06월 18일 at 11:57 AM

    쓸고 닦고 조이고 보듬고 – 유기사물구조대 출동!
    오늘부터 그린⑥버려진 물건을 구조하기
    정말 너무나도 공감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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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3년 03월 13일 at 3:33 PM

    쓸고 닦고 조이고 보듬고 – 유기사물구조대 출동!
    오늘부터 그린⑥버려진 물건을 구조하기
    기대만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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