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영화 속에는 익숙한 장면들이 있다. 평화로운 일상에서 재난의 징후들이 조금씩 나타나지만 대다수의 외면 속에서 방치되다가, 결국 재난이 일어나고 일상은 끝내 무너져 내린다. 그리고 자녀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내어놓고 고군분투하는 부모가 나온다. 이 가족들은 대부분 평화로운 일상 속에서 나름의 문제를 안고 있었으나, 재난 속에서 가족애를 재확인하고 위기상황들을 헤쳐나간다. 영화에서 수없이 익숙하게 반복된 서사적 클리셰다. 특히 거대 자본이 투입된 재난 영화들에서는 아이들과 동물의 구조는 반드시 이루어지고, 그들의 희생에 관한 직접적인 묘사는 터부가 되는 경향이 있다. 재난 영화에서 담기지 않는 또 다른 서사의 터부는 재난의 일상이 얼마나 지난하고 꾸준히 이어지는 시간인가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다. 이러한 상황들이 금기시되는 이유는 현실 안에서 너무 빈번히 끊임없이 일어나는 비극이기 때문은 아닐까? 만물작업소(강혜란, 이승준)의 <유연하고, 단단한 발자국>은 재난 속에서 서사적 클리셰와 터부를 가족과 연결 짓는다.
재난 속의 가족
만물작업소는 재난을 키워드로 한 가족 대상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제안받고, 현재 진행 중인 재난과 예술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에 대한 깊은 고민의 시간을 보냈다. 많은 문화예술교육 현장이 지난한 재난의 시간 속에서 생겨난 코로나 블루에 주목했던 것과 달리, 만물작업소가 선택한 것은 현재 진행 중인 재난 그 자체를 직시하는 것이었다.
“재난은 굉장히 현실적인 키워드이고 예술과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국민재난안전포털에도 들어가서 꼼꼼히 살펴보았는데 재난의 범위가 막연히 생각했던 것보다 넓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자연 재난도 있고 사회적인 재난, 왕따나 가정폭력도 재난에 포함될 수 있어요. 재난전문가나 심리치료사가 아닌 문화예술교육자 입장에서 재난을 어떻게 바라보고 헤쳐나갈 수 있는지 참여자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이승준 만물작업소 작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화예술교육의 도구들을 재난과 연결 지어 생각해보다가 구체적인 상황을 가족이 함께 마주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재난의 상황 속에서 가족이 어떻게 대화하고 어떤 결정을 만들며 상황을 해결할지에 대해 연습할 기회를 만드는 거죠. ”
– 강혜란 만물작업소 작가
가족을 통해 재난을 바라본 <유연하고, 단단한 발자국>의 과정들을 들여다보면서 가족에 관한 생각을 다시금 해보게 된다. 가족의 의미와 형태는 나날이 새롭게 변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가족은 근대 국가 시절에 정형화되었던 의미와 형태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아 보인다. 산업화와 맞물려 만들어진, 부모와 미혼자녀로 구성된 핵가족의 형태이다. 분명하게 성역할을 구분하는 핵가족의 형태는 오랜 가부장제의 관행과 결합해 가족구성원에게 일정한 역할을 지닐 것을 당연한 듯 강제하기도 했다. 1인 가족이나, 자녀가 없는 가족, 비혼부·비혼모 가족 등 우리 주변에는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생겨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가족이라는 단어에서 떠올리는 모습은 여전히 핵가족의 형태에 머물러 있다.
실재하는 가족의 모습과 의식 안에 머물러 있는 가족의 모습이 만들어낸 괴리는 가족을 가장 친숙한 동시에 가장 어려운 대상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팬데믹의 상황은 각자의 공간에 흩어져있던 가족들을 한 장소에 더 오랜 시간을 머물도록 만들었다.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던 행복했던 바람들은 이내 서로에 대한 고민과 갈등으로 변화하기도 했다. 가정폭력이나 학대와 같은 심각한 상황은 아니더라도 가족은 서로에게 애정을 주는 동시에 상처를 줄 수 있는 존재로, 가족 간에 발생하는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고 관리하는가는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유연하고, 단단한 발자국>에서 발견한 가족은 전통적인 의미에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가족의 의미를 넘어 ‘가족되기’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으로 다가왔다. 가족이 되는 데는 연습이 필요하다. 재난 속에서 가족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각자가 쌓아 올린 시간의 축적
2년 전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참 지속되고 있을 때, 만물작업소는 이웃 간의 안부를 깃발에 담는 프로젝트 <에브리바디 스마일>을 진행했다. 국가적인 기념일 이외에는 사용될 일 없던 깃봉에 자신에 대한 그리고 이웃에 대한 안부의 염원을 담은 깃발을 게양한 것이다.
“사람들을 안 만난지 너무 오래되고 다들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던 차에, 전기 같은 것마저도 끊기면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어떻게 물을 수 있을까 생각하다 깃발을 떠올렸습니다.”
– 강혜란
“아파트에 걸려있는 깃봉을 태극기 꽂는 용도 말고도 사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깃발이 메시지 전달의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 이승준
<유연하고, 단단한 발자국>에서 깃발은 조금 다른 의미로 재현되었다. 깃발 안에는 가족 간에 서로의 상태를 드러낼 수 있는 감정 신호들이 참여자들의 손으로 담겼다. 감정 신호 픽토그램을 만드는 과정은 가족 구성원 간의 사소한 습관과 행동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를 다시금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때로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던 행동을 다른 가족이 일깨워주기도 하고, 그러한 행동이 다른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을 깨닫기도 했을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의도되지 않은 말과 행동에 영향을 받기도 한다. 이러한 말과 행동의 주체가 완전한 타인일 때, 그 흔적은 오래 남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수많은 시간의 축적 속에서 마주하는 가족이 이러한 말과 행동의 주체라면 어떨까? 때로 가족은 선의로써 상처를 건네기도 한다. 가족 안에서 생겨나는 문제들에는 사소한 일에서 생겨나 방치된 채 축적되어 오다가 폭발하는 경우도 있다. 가족 간에 만들어진 상처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족 수신호 만들기’는 지금까지 쌓여온 시간 속에서 서로에 대한 새로운 발견과 앞으로 다가올 시간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깃발만으로 완전한 소통체계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가족 구성원 안에서 서로에 대한 배려를 가능토록 하는 여지를 만드는 상징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작은 징후들에 대해 즉각적인 대처로써 작은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을 그만큼 낮출 수 있는 것이다. 가족이 그들만의 신호를 만들고 그 신호의 의미를 담은 깃발을 만드는 작업 속에는 각자가 쌓아온 시간과 앞으로 쌓아나갈 시간의 모습이 담겨있다.
가족이 되는 연습, 대화
“프로그램 포스터에 재난이라는 단어들이 있으니까 참여자들이 ‘생존기술’ 같은 걸 상상하고 오셨더라고요. (재난 프로그램인데) 왜 자꾸 앉아서 얘기해라, 규칙을 만들어라, 그러느냐며 처음에는 다들 의아해하셨던 것 같아요.”
– 강혜란
“(가족 간에) 친한 가족들은 많은데, 진지한 가족은 없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소통의 방식이라든지 기다림이라든지. 친하다고 해서 속 이야기를 쉽게 하지는 못하잖아요. 친하니까 오히려 내 속도에 맞추도록 하는 경우도 있고요. 이런 것들을 끄집어낼 수 있게 만들어보려 했습니다.”
– 이승준
프로그램에 참여한 가족들은 ‘잘 지내는 가족’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와 ‘잘 지낸다’는 것은 보이는 모습과 다를 때도 있다. 특히 가족 안에서 자녀들의 경우 자기 의사를 밝히거나 존중받는 것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고 서투르기도 하다. 하지만 이는 부모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가족 안에서 언쟁을 피하고자 자기 생각을 그대로 말하지 않거나 갈등의 요소들로부터 눈을 돌리는 경우는 빈번하다. 자기 의사를 밝히고 언쟁이 아닌 대화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적잖은 노력이 필요하고 그만큼의 연습이 필요하다. 가족이 되기 위해서도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만물작업소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가족들에게 재난 영화 속의 장면들을 보여주고 질문을 던진다.
‘위기의 상황 속 길 위에서 만난 할아버지에게 우리 가족의 음식을 나눠주어야 할까요?’
‘금방이라도 쓰나미가 다시 올 것 같은데 어디선가 들리는 울음소리를 따라가 아이의 행방을 찾아야 할까요?’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이러한 질문을 마주하게 되면 어떤 결정이 올바른 선택인가 고민하게 될 수 있다. 하물며 재난의 와중에 가족과 함께 하는 순간이라면 그 선택은 더 어려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화 속이 아니라 현실의 재난과 함께하는 순간이기에 더욱 망설여질 수밖에 없다. 만물작업소는 정답을 제시하는 우를 범하는 대신 선택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집중한다. 가족 안에서 충분한 대화의 시간을 갖도록 독려하며 각자의 생각을 글로 적어보거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도록 OX 팻말을 활용하기도 했다. 팻말은 단지 찬반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이에 대한 자신의 기준이나 의견들을 전달하고 표현하기 위한 장치다. 또한 가족 구성원 하나하나가 독립된 존재로서의 개인임을 드러내고 상호 존중을 가능토록 만드는 장치이기도 하다. 이 과정 안에서 막연하게 그리고 어쩌면 당연하게 동의하리라 추측하던 가족 구성원 각자가 지닌 생각의 차이가 드러나기도 했다. 생각의 차이는 대화를 통해 설득하거나 절충되어 재난에 대비한 가족만의 기준이 되고 규칙으로 만들어진다. 여기에 더해 만물작업소는 가족들이 작성한 규칙들을 바탕으로 4가지 딜레마가 담긴 질문을 가족 안에 던져 넣는다.
‘내부고발에 대해서, 가족과의 약속에 대해서, 나보다 약한 존재에 대해서, 대의를 위한 희생에 대해서’
언뜻 어떤 선택이 올바른가에 대해서 쉽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앞선 2개의 질문만큼이나 선택도 행동으로 옮기기도 쉽지 않은 질문들이다. 수월하게 결정에 다다른 가족들이 있는 반면에 첨예하게 의견이 갈려 쉽게 결론에 다다르지 못하는 가족들도 있었다고 한다. 가족들이 모두 동의할 수 있는 결정을 만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새삼 느끼게 되는 과정이다. <유연하고, 단단한 발자국>의 매 순간들은 재난 속에서 생존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가족이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잘 지내는 가족’이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함을 다시금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꾸준히 이어지는 대화는 그 자체만으로 가족을 이루고 있는 개인 존재들이 지닌 차이를 발견하고 존중하기 위한 연습이 된다.
재난 속 새로운 가족의 탄생
2년 넘게 이어져 오는 팬데믹 상황은 우리의 일상에서 많은 것들을 바꾸어 왔다. 재난으로 인해 생겨난 불가피한 변화이지만 그 안에서 긍정적인 가능성이 발견되는 순간들도 있었다. 수년간 이어져 오던 기후 위기에 대한 호소에 귀를 기울이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지기도 하였고, 당연시되던 사회적 통념과 관습에 대한 변화의 조짐도 생겨났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생태 회복의 가능성이 발견되기도 했다. 빠르게 움직이는 일상이 멈춰서면서 생겨난 변화들이다. 반대로 우리 사회가 담고 있던 부정적인 일면들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속도에 중독되었던 사회는 멈출 수밖에 없는 시간에 대한 분노로써 줄곧 품어온 혐오와 차별이라는 독을 뿜어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멈춰진 시간 속에서도 그동안 가려졌던 그림자 노동의 시간은 멈추지 않고 때로는 더욱 강요되고 외면받는 것도 사실이다. 일상의 회복이라는 말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드는 지금, 회복되어야 하는 일상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대부분의 재난 영화들은 닥쳐오는 위험을 극복하는 과정을 압축된 서사로 보여준다. 화재 현장에서 불을 끄는 소방수들의 활약을 담은 5분짜리 최초의 재난 영화 <Fire!>(1901)에서부터 지금까지 100년 넘게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 서사의 구조적 클리셰다. 우리는 지난 2년 동안 재난의 일상은 영화처럼 압축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느끼고 있다. <유연하고, 단단한 발자국>은 압축되지 않고 생략되지 않은 일상을 꾸준히 살아가는 가족에 대한 서사이며, 회복되어야 하는 일상에 대한 답을 찾는 새로운 가족이 서 있는 여정의 출발점으로 다가온다. 만물작업소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큰 위협으로 다가오는 지금의 재난에서 우리가 절대적으로 지켜나가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일깨운다.
윤영욱
윤영욱
프로젝트그룹 번지의 기획자. 문화예술교육자와 시각예술작가라는 정체성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일상에서의 예술에 대한 무모한 상상과 게으른 시도들을 최대한 느린 속도로 진행하려 노력 중. 책 속에 파묻혀 빈둥거릴 수 있는 몽상가에 대한 원대한 꿈을 키워가는 중이다.
mojono2@nate.com
사진제공_만물작업소 manmulwork.imweb.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