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항심이요.”
겸연쩍게 웃으며 대답하는 ‘프로젝트 곳곳’(이하 ‘곳곳’) 윤가연 대표의 눈이 순간 반짝 빛났다. 무엇도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당장 누구를 만날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수업을 이끌어온 용기는 대체 어디서 났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반항심이라. 나는 마치 기다렸던 답을 들은 사람처럼 신이 나서 마스크 속으로 몰래 씨익 웃었다. 궁금하다 곳곳, 넌 어떤 돌아이(경외심을 담은 의미다)냐. 더 알고 싶다.
곳곳은 무용수 세 명이 모여 만든 프로젝트팀으로, 2019년부터 성남시 수정구 신흥동, 수진동 일대의 놀이터와 골목길을 누비며 우연히 만난 동네 아이들과 춤을 추고 댄스 비디오를 만들어 왔다. 잠깐, 이렇게 한 문장으로 곳곳을 설명해 버리면 뭔가 벌써 전설적인 이야기처럼, 혹은 그저 낭만적인 사례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곳곳은 그렇게 납작하지 않다. 서둘러 썰을 풀어 보자.

몸이 설 곳이 사라졌다
코로나19 따위 세상에 없고 유독 마을 단위 교육이니, 축제니, 예술이 흘러넘쳐 조용할 날이 없던 2019년, 곳곳은 성남시 신흥동과 수진동을 가로지르는 언덕배기 마을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반드시 이 마을이어야만 한다거나 뭘 꼭 이루겠다거나 그런 건 없었고, 윤가연 대표가 15년째 살아온 이 동네로 자연스레 춤추는 친구들을 불러 모은 것이 계기가 됐다. 곳곳을 결성한 첫해 만들어낸 교육 프로그램은 여느 무용 수업과 다를 바 없었다. 수업 내용을 짜고, 어렵게 장소를 빌리고, 애써 모집한 동네 아이들에게 춤을 알려줬다. 그래도 욕심을 내서 야외로 나가 춤을 추기도 했고 비디오를 찍어 남겨보기도 했다. 물론 말처럼 쉬운 건 없었다. 복지관에 찾아가 아이들 밥 먹는 앞에서 ‘사업설명회’까지 했는데도 참여자 모집이 안 됐고, 공식 문서 없이는 흔쾌히 장소를 빌려주는 공간도 없었다. 동네 차원에서(?) 예술교육에 관심이 없는 것 같아 좌절도 했다. 예술에 대한, 교육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진 곳곳의 팀원들과 합을 맞추는 것도 도전이었다. ‘욕심’과 ‘열심’이 엎치락뒤치락하며 괜한 힘이 들어가다가도 순간 힘이 탁 풀리던 한 해가 지나가고 2020년, 코로나19가 왔다.
윤가연 대표는 코로나19 직후 상황을 “(전에 하던) 그마저도 못하게 됐다”고 회상한다. ‘만나다’ ‘만지다’ ‘닿다’ ‘움직이다’ ‘느끼다’와 같이 으레 무용 수업을 설명하던 단어들이 하루아침에 금기어가 됐다. 함께 춤추자는 말조차 꺼내기 눈치 보였다. 간신히 빌려온 수업 공간도 완전히 문을 닫았다. ‘몸’이 설 곳이 사라졌다. 곧 ‘온라인(zoom) 수업’이 창궐했다.
“할 자신이 없었어요. 아니다, 할 수야 있겠지만 하기 싫었어요. 과연 온라인으로 1년 동안 아이들과 재미있게 춤출 수 있을까? 무엇보다 당장에 우리(곳곳)가 재미있을까 하는 질문이 들었어요. 근데 되게 신기하게요, 묘한 반항심으로 상황에 맞추려고 안 하고 우리가 하고 싶은 거 하자고 마음먹었더니 일이 풀리더라고요. 결국 스스로 뭘 하고 싶은지 아는 게 더 중요했어요.”
– 윤가연 프로젝트 곳곳 대표
전처럼 아이들을 만날 수 없더라도 어쨌든 나가서 춤추자, 같이 춤을 못 추면 우리가 추는 걸 보고 있게라도 하자는 결심이 서자마자 곳곳은 길거리로 뛰쳐나갔다. 코로나19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살길을 찾아 몸을 샤샤샥 빠르게 움직이는 기분이 들었다. 알 수 없는 해방감과 함께 재미가 따라왔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 덕에 하루가 널널해진 아이들은 제법 길가에 나와 있었고, 재미있어 보이는 곳을 귀신같이 알아봤다. 한두 명씩 아이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었지만 모든 것이 자연스레 맞아떨어졌다.
곳곳에서 곳곳이 노는 방식
“‘여기가 우리 집이고요. 저기가 쟤네 집이에요. 여기는 어떤 할머니가 사는 덴데요, 맨날 우리한테 뭐라 그래요.’ 이렇게 아이들이 소개해 주는 길을 따라 걷다 보니 동네가 다시 보이더라고요. 전에도 마을 아이들과 함께 춤을 추긴 했지만, 그땐 마을의 어느 부분만 뜰채로 딱 떠서 수업하는 기분이었는데 지금은 그저 마을 속으로 쑥 흡수되어버린 기분이 들어요.”
마을에서 보고 싶은 부분만 보고 의도한 만큼만 움직였던 때가 분명 있었지만, 그 시절은 마치 전생처럼 아득해진 지금의 곳곳은 어느새 동네 한복판에 푹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물론 곳곳이 동네에 흡수되는 시간만큼 동네도 곳곳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했다(동네에서 ‘예술’ 좀 시도해본 뭇 창작자들은 알 거다. 여상(如常)해 보이는 우리네 동네는 생각보다 야생이다). 다짜고짜 뭐 하는 짓이냐고 소리 지르는 아저씨도 있었고,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아이들을 몰고 다니며 춤추는 수상한 어른들로부터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감시의 눈초리도 있었다. 시간은 철저히 흘러 바야흐로 이제는 곳곳이 등장하면 동네 주민이 자처해서 차를 빼 주차 자리를 내어주신다고.
곳곳이 아이들과 함께 추는 춤을 무용 방법론으로 따져보자면, ‘접촉 즉흥’, 그리고 ‘바디 아이솔레이션’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곳곳의 수업에서는 어떤 동작이나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지시 없이 아이들에게 ‘느끼고 표현해 보자’는 제안만이 던져진다. 당장 오늘 수업일지라도 누가 출석할지, 어떤 조합일지, 아이들의 마음이나 생각이나 상태는 어떨지, 날씨나 장소에 변수는 없을지, 끝내 춤이 될지 안 될지 무엇도 예측할 수 없다. 춤의 형식만큼이나마 수업을 이루는 모든 요소가 사실상 ‘즉흥’이나 다름없다. 곳곳의 방식은 어릴 적 놀이터 시스템을 떠올리게 한다. 방과 후 놀이터에 막 도착해 책가방을 벗어 던지며 아는 친구는 없는지, 무슨 놀이가 한창인지, 적당히 낄 수 있는지 없는지 빠르게 스캔하던 그때 그 방식 그대로다. 노는 방법을 모르는 친구가 등장하면 알려주고, 누군가 새로운 놀이를 제안하면 자연스레 받아드리거나 제친다. 재미있는 것에서 더 재미있는 것으로, 재미를 먼저 안 사람이 몰랐던 사람에게 알리고, 나누고, 같이 누린다. 윤가연 대표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한다.
“한 5년 전에 아프리카 콩고에 간 적이 있거든요. 그곳 아이들은 핸드폰도 없고, 장난감도 없고 놀거리가 딱히 없어 보였어요. 어느 날 보니까 아이들이 길에서 춤을 추고 있더라고요. 자기들끼리 몸을 막 흔들고 두드리면서. 그게 되게 신기했어요. 저런 움직임을 어디서 배웠을까? 아프리카 아이들이라 본능적으로 추는 걸까? 막연히 생각했는데, 우리 신흥동 애들도 본능적으로 춤추더라고요. 아이들은 말랑말랑해요. 가르쳐주지 않아도 다 알고 있어요. 저는 그걸 지켜주고 싶어요.”
이쯤 되면,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고 모든 것이 즉흥이라 하니 누군가는 곳곳의 역할 또한 느슨할 거라 넘겨짚을 수도 있겠다. 정반대다. 곳곳 멤버들은 이번 주를 지난주보다 더 좋은 시간으로 만들기 위해 매 수업에 앞서 치열한 이견 조율(=다툼) 시간을 갖는다. 춤에 대해, 전달 방식에 대해, 수업에 대해 서로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 다르기 때문에 틈만 나면 열심히 싸우지만, 듣다 보면 내 말도 맞고 네 말도 맞고 제 말도 맞아 ‘합의’는 포기하게 됐다. 대신 같은 주제의 수업을 각자의 방식대로 하루씩 이끌어보는 방법을 고안했다. 나머지 멤버는 보조강사가 아니라 참여자로 들어간다. 아이들의 입장이 되어 수업을 경험해 보면, 강사를 맡은 동료가 무엇을 주장했던 것인지 머리가 아닌 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 모든 실험과 모험 끝엔 아이들에게 어떤 수업이 더 재미있었는지 묻는 삼엄한 평가의 시간도 갖는다.
예측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코로나19 상황을 비롯해 부딪쳐온 사건과 만나게 된 인연들까지, 곳곳의 계획이나 예측은 보기 좋게 비껴갔지만, 앞으로도 ‘보기 좋게’ 비껴갈 것이란 확신이 든다. 향후 계획을 묻자 “예측하지 못하고 흘러온 만큼 앞으로도 예측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재미있게 흘러가길, 사람과 상황이 닥쳐오길 바란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깊은 내공이 느껴졌다. 예술교육자, 예술강사 역할 이전에 무용수 윤가연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지금은 길거리에서 결과를 알 수 없는 춤을 추고 있지만, 이전엔 무용단에 소속되어 10년 가까이 춤췄어요. 주로 실내에서 잘 짜인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반복적으로 연습하는 일을 했죠. 지금 곳곳에서 예술 강사로 느끼는 해방감은 무용수로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예술가로서 생계와 창작의 균형 싸움은 역시 숙명 같은 것일까. 이어서 생계와 관련된 수다가 시작되자 애환과 탄식이 섞인 공감의 장이 펼쳐졌다. 입시 무용강사로 오래 일하면서 무용 교육에 대해 들었던 회의감이라던가, 안정적인 수입원을 박차고 나왔음에도 금전적 위기가 올 때마다 약해지는 마음이라던가, 윤가연 대표의 솔직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럼에도 “아직은 돈 없이 조금은 더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말에 “저도요”하고 작은 목소리지만 고집 있게 화답했다. 창작에 대한 갈증도 느껴졌다. 시간과 체력의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무대를 완전히 떠난 건 아닌데, 난 신흥동 지박령이 아닌데’ 하면서 채찍질하게 된다고. 그 활로를 찾아 곳곳은 작년부터 마을에서의 교육 활동을 공연으로 확장하는 시도를 또한 이어 나가고 있다.
마지막 질문은 뻔하고 고리타분한 것으로 골랐다. 어느덧 코로나19 3년 차, 곳곳은 예술가로서 그리고 교육자로서 어떤 시기를 통과하고 있는지, 궁극적으로 ‘춤’을 통해 아이들에게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지 물었다.
“글쎄요, 우리가 ‘교육자’인지는 여전히 모르겠어요. 그냥 동네에서 잘 노는 형, 누나 같은 느낌인데요. 그래도 알려주고 싶은 게 있다면 꼭 정해진 춤을 추지 않아도 된다는 거, 예쁘게 아이돌 춤 안 춰도 된다는 거요. 이런 것도 춤이야!”
이려진
이려진
궁금한 게 많은 시각예술 작가, 기획자. 그림 그리고 이것저것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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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_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사진제공_프로젝트 곳곳 @project_gotg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