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전에 서울의 작은 극장에서 경상도 지역 보존회의 농요 공연을 본 적이 있었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그때 ‘모심기’라는 것을 처음 봤고, 하얀 삼베 옷을 입고 머릿수건을 두르고 모심기 소리를 부르는 모습이 한 편의 연극처럼 느껴졌다. 보유자 선생님의 작고 단단한 몸에서 나오는 구성진 소리는 극장 밖을 넘어가는데, 무대 바닥에 놓인 가짜 모는 묘하게 어색한 광경이었다. 아마도 그분들의 삶의 이야기, 노동의 이야기, 파란 하늘과 황금빛 논의 드넓음을 담기에는 네모난 극장이 너무나 작았던 게 아닐까. 20년이 지난 지금도 전통예술을 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무대화할 것이냐, 어떻게 현대화할 것이냐, 어떻게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만날 것이냐’ 하는 고민은 계속되고 있다. 전통예술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그것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아름다움과 본질보다도 ‘오래된’ ‘지나간’ ‘옛’ 것이라는 편견 속에서 또 다른 안간힘을 써야 하는 상황이 늘 야속하게 느껴진다.
예천통명농요전수관으로 향하는 고속도로 위에서 문득 ‘농요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봤다. 기계식 농법으로 ‘농경 문화’라는 것이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농촌에서 농요의 존재 이유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그야말로 ‘농사짓던 옛날에나 부르던 노래’라는 편견을 넘어서기에는 너무 힘들어 보였다. 그런데 인터뷰 사전 자료로 받은 짧은 유튜브 동영상을 보고 나는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70세를 훌쩍 넘은 어르신들이 힙한 스타일로 라임을 맞춰서 랩인 듯 민요인 듯 자신들의 삶을 지방말로 노래하는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한 예술교육자가 전통을 계승, 보전하기 위해 만들어진 ‘보존회’의 전승교육사라니 궁금증은 더해갔다. 예천IC에서 나와 쭉 길을 따라가니 드넓은 논 사이에 자리 잡은 예천통명농요전수교육관이 보였다. 그곳에서 2021 경북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노세 노세 캥마쿵쿵 노세>의 주강사인 안성배 선생과 함께 예천통명농요의 미래를 만날 수 있었다.
2021년 상월리 토속민요의 탄생
예천통명농요는 경상북도 예천군 통명리에서 논농사를 하면서 불렀던 노래이다. 전수관 한쪽에 길게 걸려있는 남자 어르신들의 사진이 통명농요의 역사를 대신 말해주는 듯했다. 안성배 선생 역시 사진 속에 있었는데, 이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아버지와 작은아버지를 따라 보존회에 들어온 지 30년 가까이 되었다고 했다. 나는 그가 통명농요과 함께 한 시간이 상당히 길어서 놀랐고, 통명농요는 원래 남자들이 부르는 노래라는 말에 한 번 더 놀랐다. 왜냐하면 2021년 상월리의 어르신들과 함께 만든 노래는 더는 남자들만 부르는 일노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남녀가 평등하지 못한 세상에서 “난 아이라고 봐!”라고 시크하게 외치는 할머니가 등장하고, 너무나 일상적인 가사는 너무나 보편적이어서 농촌에 사는 여성이 아니어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삶의 이야기였다. 게다가 이 모든 가사는 상월리에 사는 할머니들의 말에서 나왔고, 할머니들의 목소리로 불렸다.
  들에 가 일하고 집에 왔더만 밥 차리라카네 / 난 아이라고 봐
  밥 먹고 나이 내한테 설거지까지 하라고카네 / 난 아이라고 봐
  논밭 일은 같이하면서 밥은 맨날 내만하네 / 난 아이라카이
  여자 목소리가 담장 넘으면 안된다카네 / 난 아이라고 봐
  암닭이 울면 계란 낳아 잘 산다던데 / 그케 그케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이라고 / 난 아이라 그께네
  요즘은 하늘보다 땅값이 더 비싼데 / 그케 그케
– <난 아이라고 봐> 중
<난 아이라고 봐> 노래 뒤엔 <되고 마고지>라는 할아버지들의 노래가 이어져 있다. 농사일과 집안일에 여자 남자 따로 있냐며 할머니 편을 들어주는 듯싶더니 이내 ‘같은 쌀로 밥을 해도 이키 다르다’면서 ‘내가 하면 모든 것이 어설프다’고 너스레를 떨며 같이 잘살아 보자고 한다. 이렇게 유머러스하게 현실 속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두 노래의 가사는 어떻게 썼을까? 안성배 선생은 어르신들과 수업 3시간 중 절반은 수다를 떨며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고 했다. 그리고 어르신들의 이야기 속에 담긴 삶의 다양한 방식과 무늬를 발견하면서 하나도 놓치지 않고 녹음하고 기록했다. 결국 어르신들의 말이 노래가 되면서 2021년 상월리의 새로운 토속민요가 탄생하게 되었다.
기술을 빼고 삶의 무늬를 더하기
“수업하면서 전통 가창이 갖고 있는 시김새와 창법을 다 뺐고요. 둘째는 기대치를 뺐어요.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기술적으로 이 정도까지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을 아예 빼버렸어요. 참여자 분들은 항상 내가 가지고 있는 기대치를 초월해서 얘기하시기 때문에,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잘 드러나게 하는가가 훨씬 더 중요하거든요. 그리고 그분들의 일상의 말을 가지고 오고 민요의 주고받는 구조를 가지고 와서 본인들의 어법과 지방말로 이야기하면서 주고받는 화답의 형태로 노래를 만들었어요.”
– 안성배 예술교육가, 경북예천통명농요보존회 사무국장
기능적인 테크닉은 다 빼고, 어르신들이 가장 익숙하고 잘하는 방법으로 어르신들의 삶의 무늬를 살리는 방법을 더한 것이다. 전문 작곡가와 협업을 통해 어르신들의 색깔과 향기가 잘 드러나게 작업을 하고, 녹음실에 가서 음반을 제작하는 경험도 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 어르신은 죽을 때 관에다 이 음반을 꼭 넣어달라고 부탁하셨단다. 어르신들이 그냥 툭 던지는 말 한마디, 스쳐 지나가는 말도 허투루 지나치지 않고 녹음된 것을 다시 들어보면서 삶의 철학과 진짜 예술을 발견했다는 안성배 선생의 말을 들으니, 참여자를 마주하는 예술교육가의 태도가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다. 그러한 태도가 아무것도 아닌 일상 속에서 예술을 발견하는 혜안을 가져다주었음이 분명했다. 이는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작은 볍씨도 허투루 생각지 않는 농요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전통예술 중에서도 농요는 대중이 좋아하는 사물놀이나 민요와는 달리 무대 위에서 화려함이나 기량을 자랑하기보다 민중의 삶 속에서 살아 숨 쉬며 흘러왔다. 땅에다 벼를 심고 가꾸고 추수하는 한 해의 삶이 담겨 있고, 논에서 집까지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농요가 퍼져나가던 드넓은 공간이 있고, 농사를 위해 마을 사람이 함께하는 공동체 정신과 풍년이 되길 기원하는 마음까지 농요의 그릇을 단순히 토속민요라고 말하기에는 그 범위가 참으로 넓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안성배 선생은 농요의 범위를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 새로운 농요를 담을 수 있는 판으로 문화예술교육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통, 변해야 살아난다
안성배 선생이 말하는 전통은 변해야 살아난다. 변하지 않고 예전과 똑같은 전통은 죽어 있는 것이다. 그는 예천통명농요가 좁은 의미의 전승을 넘어서 다양한 지역민을 만나서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형태로 전승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15년 넘게 예술강사로 활동했다. 나에게 설거지하면서 듣는 노래, 하우스에서 토마토 키울 때, 소 키울 때 트는 음악이 노동요인지 아닌지 물으면서 기존에 가지고 있는 국악이나 전통예술의 틀을 한 꺼풀만 싹 벗겨내면 훨씬 다양한 형태로 변형 가능하다고 이야기했다. 생각의 전환으로 통명농요의 새로운 가능성을 꿈꾸고 있는 그의 중심에 문화예술교육의 경험들이 있었다.
“국가무형문화재라고 하면 원형을 그대로 이어가는 것만을 생각하는 분들도 있어요. 거기에 조금만 변화를 줘도 본질이 훼손된다는 거죠.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전통에는 두 가지 줄기가 있어요. 하나는 ‘이어진다’ 또 하나는 ‘변한다’ 예요. 저는 그 두 가지의 줄기가 함께 꼬아져야 전통이 성립된다고 생각해요. 원형 전승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시대와도 다이내믹하게 섞일 수 있어야 해요. 요즘에 맞게 코로나 얘기든 먹고 사는 얘기든 다양한 방식의 이야기 뿌리가 있어야죠. 저는 그중 하나를 문화예술교육이라고 보고 있어요. 말랑말랑해지고 유연해져야 담아낼 그릇이 커지는 거죠.”
부딪히면서 깨닫는 것들
“제가 제일 무서워하는 건 아무것도 안 하는 거예요. 그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잖아요.”
보존회의 곱지 않은 시선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는 이유는 묻자 그가 대답한 말이다. 뭐라도 하면 반응이 나오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런 반응을 가지고 앞으로 더 나갈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문화예술교육이 그에게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이유는 이런 부딪힘으로 얻게 되는 깨달음이다. 맨 처음 문화예술교육을 시작했을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기능 위주의 수업에 정량화된 성과만 쫓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수업을 하면서 그의 작업 역시 점점 유연해지고 있다.
“힘을 들이는 것보다 힘을 빼는 게 더 힘들어요. 예술가들은 보통 힘을 빼는 순간 내가 잡고 있는 것을 놓쳐버렸다는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작년에 마을에 가서 풍물 수업을 하는데 한 학기 동안 ‘덩덩 쿵따쿵’만 쳤어요. 그걸로 6개월 동안 놀거리가 되더라고요. 그때 장단 하나를 1년 동안 풀 수도 있어야 하고, 모든 장단을 한 시간 안에 얘기할 수도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죠. 내가 배웠던 방식으로만 그대로 답습해서 재현하면 좀 힘들죠. 장구 열심히 치고 사물놀이 가르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노는 게 아니더라고요. 그걸 딱 내려놓는 순간 놀잇감들이 막 생겨요. 그래야 어르신들과도 소통이 가능하지 않겠어요?”
예술교육가로서 그는 전통예술을 가지고 일상과 결합하여 삶의 이야기들을 풀어내며 일상의 소중함과 그분들의 삶의 가치를 다시 환원시켜주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보존회 전승교육사로서 예천통명농요전수관이 지역의 사랑방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전수관이 지역 사람 누구나 아무 일 없어도 드나들 수 있는 생활 속의 공간이 된다면, 통명농요 역시 삶을 이야기하는 노래로 자연스레 남아있게 되지 않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예천통명농요 <아부레이수나>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한 톨 종자 싹이 나서 만 곱 종자 열매 맺는 / 신기로운 이 농사는 하늘 땅에 조화로데이”
그 옛날에는 하나의 씨앗이 만 곱의 열매를 맺는 신기한 자연의 원리가 땅에서 이루어졌다면, 이제는 예천통명농요보존회의 문화예술교육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새로운 토양에 뿌리는 문화예술교육의 씨앗이 지역에 있는 많은 사람의 삶에서 열매 맺기를 바란다.
김소리
김소리
배우, 예술교육가. 소싯적에 가야금과 탈춤을 배우며 잘 놀았다. 지금은 ‘창작놀이터 사이에서’와 ‘극단 북새통’에서 연극을 하며, 전통과 현대, 삶과 예술, 도시와 지역, 세대와 세대를 넘나드는 공연 창작과 예술교육에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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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_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