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교육에서 문화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활동의 바탕으로 삼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오랜 시간 쌓여 온 삶의 무늬의 한 실체인 전통문화를 박제된 형식으로서가 아니라, 생생한 현재로서 이어가는 것은 소홀히 할 수 없는 과제다. 1970년대 민속문화 학습을 시작으로 50여 년 동안 오롯이 전통문화의 본질과 삶의 관계에 기반한 예술 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봉준 작가를 만나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문화예술의 속성과 가치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작가로서 자신의 여정을 민속문화 학습기-저항적 민중문화 시대-생태주의 시대-재신화화 시대로 구분한 글을 본 적이 있다. 그간 주력해 오신 일을 소개 부탁드린다.
1970년대라는 시대가 하도 다른 걸 못하게 하다 보니 대학 서클로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은 게 전통공부였다. 아마 전통문화예술 공부를 우리 세대가 가장 열심히 했을 거다. 대학에서 탈춤부흥운동이 일어나던 시대다. 탈춤이나 풍물을 배운다고 현장을 다니다가 논밭두렁에서 놀라운 경험을 많이 했다. 농사짓다 말고 흙투성이 발에 막걸리 한 잔 마시고 ‘아 좋네’ 그러면서 춤 한판 딱 춰주는데 그게 바로 예술이었다. 그때 우리 전통에 대해서 크게 배운 거는 ‘삶으로서의 예술이 이런 거구나’ 였다. 임실 필봉마을의 양순용 선생은 그 사람도 농부인데, 큰 대동굿을 하거나 지신밟기를 할 때 보면 진짜 천하를 들썩거리게 하는 신명의 담지자가 되었다. 예술로서 놀이로서 집회로서의 기능을 다 가지고 있는 조선의 마당굿 문화에 매료됐던 경험을 80년대에는 민중문화 운동으로 이어갔다. 노농민주화현장에서 지친 나는 1993년도에 여기 원주 산속으로 들어오면서 생태주의 책을 많이 읽게 되었다. 『오래된 미래』도 읽다가 우리한테도 다 있는 건데 싶더라. 그래서 전통을 다시 공부하자고 마음먹었고, 본격적으로 신화를 연구하게 됐다. 나의 예술은 줄곧 지역, 농민, 생명, 평화의 가치를 추구해 왔고 2008년부터 ‘오랜미래신화미술관’을 설립·운영하면서 작업하고 있다.
민속문화, 신화 등 오랜 시간에 걸쳐 쌓이며 형성되는 문화에 큰 관심을 기울여 오셨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문화는 양식이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은 시대마다 다르게 나타나기도 하지만 변하지 않는 원형문화는 있는 법이다. 전자를 표층 문화, 후자를 심층 문화라고 말할 수 있다. 표층 문화와 심층 문화의 관계성은 시대의 변화와 안정을 가늠하는 일종의 문화좌표 같은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표층 문화가 주류문화를 이루고 심층 문화는 비주류로 밀려나 있어서 주객이 전도되었다. 심층 문화가 중심을 잡지 못하니 사회는 가볍고 늘 위기에 직면하는 것이다. 자기 문화를 잃고 부박하게 떠돌고 소외된 삶으로 나도 길을 잃어갔으니 수양 삼아서라도 근원적 예술을 해야 했다.
지금 운영하고 계신 ‘오랜미래신화미술관’이라는 이름에도 그런 소신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오래된 미래』는 라다크의 생태적 지혜를 담은 책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다면 ‘오랜 미래’는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희망은 과거의 삶의 방식에 있다는 성찰을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한 성찰과 신화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나.
‘신화’라는 것을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으로 봐야 한다. 미래학자들은 지식 정보화 시대 다음은 영성의 시대라고들 얘기한다. 그걸 신화학 관점에서 보면 ‘재신화화 시대’라 할 수 있다. 다시 신화로 가는 시대. 신화학자 조셉 캠벨에 의하면 신화는 신성한 힘이다. 영성의 시대에는 신성한 힘에 의해 문화가 돌아간다. 영성은 아주 높은 데 있고 위대한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보잘것없는 미물이고 쪼그라든 개인이라고 여겨온 이들에게도 존재한다. 영성이라는 것은 세속적 일상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어떤 큰 위기의 순간에 그걸 극복하는 초월적 힘이 나온다든가, 도대체 지금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무엇을 이뤄낸다든가 하는 식으로 확인된다. ‘K-방역’, ‘한강의 기적’, ‘한류’ 같은 것도 일종의 현대 신화다. 그간 자꾸 배척해서 잃어버린 일상의 신성함, 개인의 신성을 되살리는 것이 재신화화이다. 현재의 신화 창조를 통해서 지구위기 기후위기 인류의 위기에 대한 희망을 품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신화는 그것을 공유하는 마을공동체 안에서 생활문화의 구심점 역할을 했을 텐데, 세계화 정보화 시대의 우리는 재신화화에 어떤 기대를 해야 하나.
신화를 통해 세상과 관계 맺는 법을 배운다. 세계화, 정보화 시대라고 불리는 지금 시대는 신화와 아무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인류가 이룩한 문명의 틀이 되는 정보와 종교가 신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면 신화가 우리 삶과 동떨어진 게 아님을 알게 된다. 신화는 오랫동안 인류의 수많은 작은 공동체와 개인을 유지하고 진화하는 힘으로 작동했다. 신화와 공동체, 신화와 나를 창조적으로 결합하는 시도를 ‘재신화화’라고 할 수 있다. 내 안에 신화를 재발견하는 것이다. 예술가는 창작과 소통으로 기뻐하며 신화를 창조한다.
『오래된 미래』 서문에서 달라이라마는 “전통적인 농촌사회가 아무리 매력적으로 보인다고 하더라도 그 사회의 사람들에게 근대적 개발의 혜택을 누릴 기회가 부정될 수는 없다. 개발과 배움이 오직 한 가지 방향으로만 일어나서는 안 된다.”라고 했다. 과거의 문화를 수용하는 데 있어서 고민의 지점을 잘 지적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에 대한 견해는 어떠한가?
단순하게 의견을 말하자면 나 또한 백낙청 선생이 말씀하신 근대 자본주의의 적응과 극복이라는 ‘이중과제론’의 기조에 동의한다. 어떻게 근대(자본주의)를 살면서 근대를 온전히 살아날 수 있겠나. 인간의 욕망과 이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서 질서를 유지하게 만드는 근대 민주주의 시스템이라든가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된다. 민주주의는 인간 존엄성을 중시했다. 나도 모더니즘 미술을 대학에서 배웠으니까 서양예술이 가진 휴머니즘적 측면 의 장점도 안다. 인간 존엄성을 위해 국가가 존재한다는 근대국가 내에서 문화예술에서도 근대를 감당하면서 극복해야 한다. 나도 그런 이중과제를 예술로써 실천하려 노력해 왔다. 그러다 보니 내 미술에 전통만 있는 게 아니라 인권 민주가치, 일종의 휴머니즘 형식 그런 것들이 생성해 있다. 그러나 근대주의에서 탈근대로 또 지나오고 있다. 인류문명의 중심가치가 기후위기를 맞아 인권에서 생명권으로 문명전환시대를 맞고 있다.
2013년 군포와 목포에서의 개인전 제목을 《마을 아리랑》《내 안에 계신 마을》이라고 붙이셨다. 작가님께서 말씀하시는 ‘마을’은 현재 우리 삶에서 어떤 조건을 갖춘 곳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전통마을뿐만 아니라 도시의 작은 공동체, 어떤 테마 공동체도 좋고 사이버 공동체도 좋고 각자 나름의 이웃, 친구들끼리의 모임도 다 마을이 될 수 있다. 무리 지어서 어울려 살고 더불어 사는 삶의 힘을 느끼는 곳이 마을이다. 평소에는 마냥 보잘것없고 세속적이기만 하고 부질없어 보이는 일상이라도 가끔 ‘아, 내가 이렇게 땅을 딛고 살아 있는 게 얼마나 소중한가’ 라고 깨달을 때가 있지 않나. 이렇게 사는 게 엄청 복된 거고 내가 선택받은 DNA구나, 그래서 살아 있는 동안 내 앞에 사람에게도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지금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과 함께 지금 사는 이곳을 신성하게 보는 것, 바로 이러한 것이 마을 문화의 부흥이다. 내 안에 마을이 있다. 자아, 너, 우리, 이웃 등의 관계성이 마을이다. 이 마을에서 신성한 힘을 만들어내는 의지나 희망을 되살리는 게 중요하다. 감성 이성 영성을 내 안에 다 품은 신성한 관계가 마을이다.
신화적 감각, 혹은 신비로운 힘을 우리의 평범한 일상 의식으로 전환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씀으로 이해된다. 그런 역할을 무엇이 할 수 있다고 보시는지?
예술이다. 내가 말하는 예술은 포괄적인 의미로서의 예술을 뜻한다. 그래서 예술이라는 말보다 ‘예도(藝道)’라는 게 더 적절하다. 왜냐하면 예술은 삶의 도를 구현하는 방편으로 이성과 영성과 감성을 가지고 놀고 다스리기 때문이다. ‘예술의 어머니는 신화 의례다’라는 명제가 있다. 모든 예술은 인류 초기 신화의 의례로부터 비롯됐다는 것인데, 그렇기에 예술은 태생적으로 치유의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샤먼(shaman)이 치유자로 있는 부족이 있다. 가무악 시서화의 예에서 볼 수 있듯 예술은 삶 전체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고, 삶 전체에 관여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예술가는 현대의 신화 창조자들이다. 예술이 지닌 치유성이 앞으로 미래 사회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 본다. 조셉 캠벨도 미래사회에는 종교보다 예술에서 신화창조의 희망을 걸었다.
목판화, 걸개그림, 붓그림, 흙조각 등 작가께서 해오신 작업을 보면 형식이나 재료 면에서도 전통의 속성을 이어가려는 고집 같은 게 느껴진다. 표현형식에 관한 견해를 듣고 싶다.
모든 예술은 다 기왕의 양식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이미 있었던 양식에서 뭔가 배우고 학습해서 그걸 또 한 발 내보내면서 창작을 해왔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예술 양식은 없다. 인권이라든가 민주화, 생태주의, 공동체적 삶도 예술은 중시 여겨 왔다. 내 평생 양식으로 고민한 걸 한 가지 든다면, 신명을 시각적으로 더욱 더 양식화한다면 뭘까 하는 것이었다. 그 신명의 미를 표현한다는 것에 대한 고민이 굉장히 깊었다. 초기에는 참 힘들었지만 목판화, 겨레 붓그림, 유화, 흙조각, 서예까지 5가지로 다양하게 시도하면서 마침내 하나로 합류되던 과정들이 있었다. 그때가 참 기뻤다. 신명은 생명 에너지의 확대된 자아다. 신명의 미를 시각화하는 것을 내 평생 과업 중에 하나로 생각하며 작업하고 있다.
과거와 미래의 삶을 문화예술로 이어가는 선배작가로서 문화예술교육계 후배들에게 조언 한 말씀 부탁드린다.
예술교육에 인문학을 많이 끌어들이고 있는 거로 안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안된다. 장인학이 필요하다. 장인학은 몸으로 밀고 가는 예술이다. 대학 때 인간문화재 단청장 만봉스님으로부터 불화를 배운 적이 있는데 3가지 먹 그림(시왕, 보살, 부처)을 3천 장씩 9천 장을 따라 그리는 것이 그의 교습법이었다. 바닥에 오체투지를 하듯이 납작 엎드려서 3천 장을 그리는 것인데 그 정도는 다 못 그렸다. 그러나 한 3년쯤 지나니까 어느 순간 붓이 갑자기 곧추 서는 걸 느꼈다. 그걸 기감(氣感)이라고 한다. 그때부터 붓의 탄력과 선의 힘이 비로소 달라졌다. 이처럼 장인성은 몸의 반복적 사용에서 몸으로 깨닫는 초월에 이를 때 획득된다. 예술은 온몸으로 초월하여 터득하는 영혼의 교육이다.
마지막으로 계획하고 계신 일을 말씀해 달라.
글로컬리즘적으로 세계와 교류하는 일을 하려고 한다. 신화 예술을 교류하면서 인류족들의 신화적 보편성을 찾아서 신화 벨트를 살려내고 싶다. 예산확보도 어렵고 해서 얼마나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올해는 될 수 있으면 아시아 쪽부터 신화예술 전시를 시작해보려 한다. 그리고 여기 원주 온 지 내년이 30년이라서 귀향 30주년 기념전을 계획하고 있다. 그리하여 정주 40주년에는 시민에게 나의 예술 50년을 지역문예 자원으로 헌정하고 싶다. 세월이 바뀌어서 민중미술이 재벌한테 팔려나가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결국 역사의 기록들이 시장의 상품으로만 끝나나 하는 자괴감이 있었다. 평생 꿋꿋이 이어온 비타협적인 예술의 길이 늙어서 꺾일 순 없지 않은가. 내 작품들이 지역 문화로 자원화된다면, 아시아의 현대신화 밸트의 하나로 자리 잡는 다면 좋겠다. 나의 말년 꿈이 이루어지게 유라시아 신화예술 길을 확인하며 다닐 거 같다. 오리엔탈리즘, 신비주의와 미신으로 갈라치며 매도해온 아시아의 영혼 예술을 제대로 알리고 싶다. 아시아 예술정신은 물아동포(物我同胞)다.
김봉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했다. 재학시절 탈춤반을 만들어 풍물 운동을 주도했으며 만봉스님으로부터 3년간 불화 민화를 사습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걸개그림 <만상천화>(1981)를 창작했고, 미술동인 두렁, 애오개문화마당 운영위원, 민중문화운동협의회, 민족굿회, 흙손공방 등 민중문화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했다.《유월의 노래》《마을 아리랑》《잃어버린 신화를 찾아서》 등 전시와 창작 활동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 한국 최초로 신화를 주제로 한 ‘오랜미래신화미술관’을 열고 여신신화축전, 신화캠프, 워크숍 등을 통해 인류의 오랜 신화를 통해 현재를 성찰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붓으로 그린 산그리메 물소리』『숲에서 찾은 오래된 미래』(2001),『신화순례』(2012) 등이 있으며, 교보생명환경문화상(2009), 강원민족미술인상(2012)을 수상했다.
- 정원철
- 홍익대학교와 독일 카셀종합대학교에서 조형예술을 전공했다. 추계예술대학교 판화과에 재직하며 미술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교육을 해왔다. 문화연대 시각문화교육 대안교과서 연구에 참여하면서 교육 활동이 예술가의 중요한 창작영역으로 다뤄져야 한다는 소신을 갖게 되었다. [아르떼365] 편집위원을 역임했으며, 문화예술교육지원위원회 위원장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경기도 양평 고향마을에서 ‘마을예술공방 칼산’ 운영을 준비하고 있다.
wachjung@gmail.com
사진_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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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신화 그 자체군요. 김봉준화백이 살아온 과정을 채록하면 그 자체가 예술사가 되겠습니다
잃어버린 일상의 신성함을 찾는
신화 창조자
김봉준 작가·오랜미래신화미술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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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일상의 신성함을 찾는
신화 창조자
김봉준 작가·오랜미래신화미술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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