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진자의 이동 경로를 표시해 알려준 ‘코로나 알리미’, 주변 편의점의 마스크 재고를 알려주는 ‘마스크 알리미’, 이 두 사이트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지리정보시스템(Geographic Information System, GIS)을 이용하여 시민이 주도적으로 만든 사이트라는 점이다. ‘구글 교육자그룹’에 참여한 교사들은 시민이 직접 방문한 곳의 마스크 재고 현황을 입력할 수 있는 ‘마스크 지도’를 제작하기도 했다. 시민의 참여로 축적된 데이터는 때로 정부나 지자체가 갖기 어려운 새로운 시각과 관점을 보여준다. 시민이 직접 나서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참여형 지도’를 소개한다.
집단지성으로 위기 해결하기
‘참여형 지도 제작’은 커뮤니티 매핑(Community Mapping)이라고도 하며, 집단지성에 기반한 지도 제작 개념이다. 지역 구성원이 사회문화나 지역의 이슈, 안전 등과 같은 특정 주제에 관한 정보를 직접 수집하여 지도로 제작하고, 이를 공유하는 등 시민이 주도적으로 문제 해결에 참여한다. 참여형 지도 제작은 모든 사람이 쉽게 열람할 수 있어 하나의 공공 데이터로서도 큰 효용을 지닌다.
2012년 미국에서는 허리케인 샌디(Hurricane Sandy)가 뉴욕과 뉴저지 일대를 휩쓸고 지나갔다. 강풍으로 인해 정전이 발생하여 교통신호 체계가 마비되고 많은 도로가 기능을 상실했다. 주유소마다 기름이 부족하거나 정전으로 펌프가 작동되지 않아 난방과 운전에 필요한 연료를 구하지 못하는 사람이 늘면서 기름 대란이 일어났다. 평소 지속해서 참여형 지도를 제작하던 뉴저지의 고등학생 그룹 아임소시오(IMSOCIO)와 시민은 태풍 피해로 인한 불편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1,000개가 넘는 주유소의 위치와 영업 상황, 기름 잔량 등의 정보를 수집해 웹사이트를 통해 미국 전역에 제공하는 활동을 펼쳤다.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이 ‘주유소 지도’는 당시 백악관과 미국 연방재난관리청(FEMA), 에너지부(DOE), 구글 크라이시스 맵(Google Crisis Map) 등에서도 실시간으로 적용해 사용했을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유행 당시 우리나라 정부가 메르스 확진자가 거쳐 갔거나 생겨난 병원 정보를 공개하지 않자 한 IT업계 종사자의 아이디어로 집단지성을 이용해 직접 ‘메르스 확산 지도’(이하 ‘메르스 맵’)를 제작했다. 메르스 맵은 언론이 공개한 메르스 확진 환자 사망 병원과 시민이 제보한 감염 환자가 다녀간 병원 정보를 기반으로 위치 정보를 공유했다. 직접 정보를 등록하는 참여형 지도와는 제작 방식이 조금 다르지만 시민이 힘을 합쳐 주도적으로 공공의 문제를 풀어갔다는 점이 동일하다.
세상의 불편함을 바꾸는 시민의 움직임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2018년 장애인편의시설 실태 전수조사’에 따르면 장애인 주차구역과 승강기 등 장애인의 접근성을 높이는 ‘편의시설’ 설치율이 80.2%, 장애인 화장실의 남녀 구분, 접근 통로, 점형블록 등의 ‘위생시설 일반사항’ 설치율이 55%를 차지한다. 하지만 무심코 지나친 보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장애인 블록이 많이 훼손되거나 시각장애인 음향 신호기 등 안전장치가 설치되지 않은 곳도 적지 않다.
2013년 비영리기관인 커뮤니티매핑센터를 설립한 임완수 센터장은 교통약자에 주목하여 한국근육장애인협회, 가온자립생활센터, 은평장애인생활자립센터 등의 장애인단체와 함께 장애인의 이동권 증진을 목표로 배리어프리(barrier-free) 정보를 제공하는 ‘장벽 없는 은평 지도’를 제작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만든 이 지도의 확장 버전인 ‘장벽 없는 세상 지도 만들기’는 2016년 구글 임팩트 챌린지에서 우승을 차지해 어플 제작 지원을 받기도 했다. 지도에는 서울, 인천, 대구, 대전, 울산, 부산 지역의 보건의료시설, 문화체육시설, 복지시설, 교통시설, 상가시설 등의 휠체어 접근 가능 여부, 장애인 화장실 유무, 장애인 엘리베이터 유무, 출입문 종류와 경사로 정보 등을 직접 입력할 수 있다. 2021년 7월에 지도 서비스를 중지하였지만, 100여 개의 협력 기관과 8,844명의 자원봉사자의 참여로 총 36,978건의 정보를 수집했다.
장애인 이동권 콘텐츠를 제작하는 협동조합 ‘무의’는 ‘서울지하철 교통약자 환승지도’(이하 ‘환승지도’)를 만들었다. 홍윤희 무의 이사장은 휠체어 탄 딸이 지하철 타기를 좋아하여 함께 다니던 중 휠체어와 유모차로는 지하철을 갈아타기가 쉽지 않고, 갈아탈 수 있다고 해도 환승 정보를 찾기가 어렵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6년부터 교통약자 환승지도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무의가 만든 환승지도를 이용하면 어느 칸에 타야 엘리베이터와 가장 가까운지, 환승을 위해 다음 승강장까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 환승 소요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환승 구간에 휠체어 리프트나 경사로가 있는지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단체와 자원봉사자는 직접 휠체어를 타고 리서치 활동을 하기도 하고, 시민 워크숍도 하면서 총 53개 역 256개 구간의 지도를 만들었다.
2017년 국민대학교 학생 400여 명이 참여해 만든 장애인 접근성 정보 지도도 있다. 이 모바일 지도는 서울 성북구와 강북구, 종로구 일대를 중심으로 장애인이 접근할 수 있는 음식점, 보건 의료시설, 휴게·숙박 시설, 문화 체육시설 등을 기록하고 공유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실천하는 국민* 프로젝트 장애인 접근시설 커뮤니티매핑’ 모바일 지도는 한국근육장애인협회에 전달되기도 했다.
자연과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지도
서울시의 ‘스마트서울맵’에는 시민이 직접 주제어를 정해 정보를 수집하여 공개할 수 있는 시민참여지도 기능이 있다. 주제어를 살펴보면 구로구 문화예술 지도, 강서구 장애친화 놀이터 지도, 강북구 폐형광등·폐건전지 수거함 지도, 지역사회 법률구조기관 지도, 대학로 배리어프리 지도 등 다양하다. 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지도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의 실천과 활동을 확인할 수 있는 지도도 있다. ‘노원구 아름다운이웃’ 지도는 노원구에 저소득 주민을 위해 착한 나눔을 실천하는 아름다운 이웃 업체를 보여준다. ‘사운드스케이프 생물계절 지도’는 참여자의 거주지 인근 녹지 및 수변 공간에서 주기적인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 소리로 만들어지는 풍경) 모니터링을 통한 생물계절을 관측하며 우리 일상 속 자연과 환경의 변화를 관찰하고 있다.
참여형 지도 제작은 궁극적으로 좀 더 나은,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고 불편을 느껴 지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게 있다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협업하여 문제 해결을 위한 한 걸음을 내디뎌보는 건 어떨까.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라는 속담도 있지 않나. 혼자서는 세상을 바꾸기 어렵지만 함께 하면 가능한 변화를 만들 수 있다.
“참여, 소통, 공감, 배려는 개인의 삶에 작은 파장을 일으킨다. 이 과정이 여러 번, 많은 곳에서 반복되면 사회적 배려가 일어날 수 있다. 이러한 시도들이 정책이 되어 도시 환경을 바꿀 수 있으며,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이 참여하고 더 많이 소통하고 공감하면서 사회 구성원 다수가 서로를 배려하는 문화로 나아갈 수 있다.”
– 임완수, 『세상과 나를 바꾸는 지도, 커뮤니티 매핑』 중
성효선
성효선_프로젝트 궁리 에디터
hyosundream@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