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냄새를 따라서
나는 2019년부터 취미로 버섯을 찾고 있다. 태풍이 지나가고 무더위가 한풀 꺾이는 9월이 오면 바람을 타고 스쳐 가는 흙냄새를 따라서 숲과 들판에서 시간을 보낸다. 야생 버섯 중에는 크기가 작거나, 색이 화려하지 않거나, 풀과 낙엽 사이에 있거나, 돌멩이처럼 생겨서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것이 많다. 하지만 이들이 가지는 독특한 향기를 통해 그 존재를 알아차릴 수 있다. 밀가루 반죽이나 삶은 무, 해산물 냄새, 혹은 죽은 생물이 부패할 때 풍기는 향처럼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냄새를 연상케 하는 것도 있다. 셀 수 없이 많은 이 휘발성 화합물들의 성분은 알지 못하지만, 한 번 냄새를 알아채기 시작하자 반드시 버섯을 보게 되었고 때로는 그 형태나 생태 유형을 알아맞히게도 되었다. 내가 이렇게 만들어가는 머릿속의 버섯 지도는 전적으로 주관적이다.
버섯 찾기를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하지 않는 일이 있다. 첫째, 이름이나 분류를 찾아보지 않는다. 둘째, 식용인지 독성인지 알아보지 않으며, 섭취하지 않는다. 셋째, 환금 목적으로 채취하지 않는다. 나는 평소 작품을 통해 생물을 다루면서 인간이 만들어놓은 수백 년 전통의 자원생물학, 분류학의 관점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래서 3년 전 버섯에 처음 관심가지게 되었을 때, 이 생물군만큼은 남이 발견한 지식을 공부하기 전에 몸에 와닿는 감각을 먼저 따라가기로 했다. 미지의 생물에 대한 감각을 깨우치고 연마하고 싶었다. 그전까지 나는 식용 품종 외의 다른 버섯을 거의 만난 적이 없다. 이 한정된 지식 중 어떤 것은 버섯 찾기에 도움이 되었고, 또 어떤 것은 완전히 다르게 뒤집혔다.
많은 사람이 ‘버섯’ 하면 기둥 위에 둥근 갓을 얹은 형태를 떠올린다. 식용하는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어린 시절 보았던 만화영화 〈개구쟁이 스머프〉 속 지붕으로, 혹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풍경으로 등장하는 하얀 점이 박힌 빨간 갓을 연상하고,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으면 죽는 것으로 나누어 생각한다. 버섯이 식물계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이 있다.
균사-공생-포자-분해
버섯은 현대 과학에서 곰팡이, 효모와 함께 균계(菌界, Fungi)로 부르는 진핵생물 중 하나이며, 동·식물, 세균과 구별되는 독특한 생물이다. 지금까지 국내에 보고된 산림버섯은 2천여 종으로 알려져 있고, 분류학적 재검토와 자료 보완을 계속하면서 그 수가 변할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보고된 버섯은 6만 종 이상이라고 하고, 우리나라에도 아직 아무도 보지 못했거나 이름을 붙이지 않은 버섯이 많을 것이다.
버섯 찾기를 시작한 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독특한 형태와 생태를 가진 생물들을 만나게 되었다. 초기에는 길을 나설 때마다 매번 다른 버섯을 볼 정도로 종류가 다양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정확하고 아름답게 촬영된 우리나라 산림버섯 사진은 다양한 도감과 온라인 출처를 통해 쉽게 볼 수 있으므로 이 글과 함께 싣지 않는다. 대신 내가 직접 보았던 버섯 생애주기의 장면 몇 가지를 소개한다.
  • 균사
‘균사’는 공원에 깔아 놓은 나무덱을 타고 퍼져 나가는 커다란 균사의 군체(群體, colony)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둥근 갓과 기둥은 버섯 중 자실체(子實體, fruiting body)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식물이 종자를 퍼뜨리기 위해 꽃대를 올리고 꽃을 피우는 것과 비슷하게, 버섯이 포자를 생산하기 위해 만드는 생식 기관이다. 그밖에 버섯의 삶 대부분은 흙 속에서 이루어진다. 버섯은 균사(菌絲, mycelium)라는 실 모양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사진에서처럼, 이 세포들은 일정한 모양으로 서로 합쳐지거나 갈라지며 방사형으로 퍼져 나간다. 버섯은 다른 생물의 신체를 분해하여 양분을 얻기 때문에 생태계에서 죽은 생물을 흙으로 돌려보내는 분해자의 역할을 맡는다. 군집을 이루며 양분을 찾아 흙 속에서 퍼져 나가던 균사체가 그 땅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하거나 확장하고 싶을 때 자실체를 내보내 포자를 만든다. 포자가 발아하면 새로운 균사가 나온다. 포자는 자실체 바로 아래 떨어지기도 하지만 바람을 타고, 혹은 다른 생물에 붙어 멀리 옮겨간 후 다른 곳에서 새로운 군체를 시작할 수도 있다.
  • 공생
‘공생’은 버섯이 혼자가 아닌 주변의 다른 생물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음을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나무, 달팽이, 쥐며느리, 점균, 이끼, 곰팡이를 비롯하여 육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생물이 버섯과 함께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서로가 먹이와 쉼터를 제공하거나 청소를 담당하기도 하며, 때로는 유전 물질을 공유하기도 하고, 함께 흙으로 돌아간다. 버섯은 죽거나 살아 있는 기주체(寄主體, host)에 붙어서 양분을 얻는다. 송이(松耳, Tricholoma matsutake)처럼 살아 있는 소나무속(Pinus sp.) 식물의 뿌리에서만 자라는 것도 있고, 느타리속(Pleurotus sp.)의 여러 버섯처럼 죽은 나무에서만 자라는 것도 있다. 이러한 특징을 파악하여 우리가 식용으로 육종할 수 있게 된 버섯도 있지만, 대다수의 버섯은 그들이 속한 생태에서 억지로 분리하면 살지 못한다.
  • 포자
‘포자’는 버섯의 포자가 땅에 떨어진 여러 물체를 덮은 모습이다. 우리가 잘 아는 양송이는 흰 갓을 가졌지만 뒤집어 보면 주름이 검은색인데, 그 이유는 양송이의 포자가 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사진 속의 버섯은 갓이 노란 자실체와 주황색 포자를 가졌다. 포자를 퍼뜨릴 때 바람이 불지 않아 수직으로 떨어지면서, 갓 주변의 사물에 곱게 내려앉았다. 식물 꼬투리의 털, 풀잎과 줄기의 맥, 돌과 흙의 입자가 잘 보인다. 이 포자 중 일부는 적당한 기주체를 찾아서 균사체를 내고, 새로운 군집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갓 안쪽에 주름이 있는 버섯을 가장 많이 보았겠지만, 주름이 없고 스펀지처럼 구멍이 난 것, 갓 위쪽 중앙에 포자를 뿜어내는 입구가 있는 것, 점액질에 포자가 섞여 있어 곤충이나 동물에 붙어 이동하는 것 등 여러 형식이 있다.
  • 분해
‘분해’는 역할을 마친 버섯의 자실체가 땅으로 돌아가는 장면이다. 앞서 버섯이 다른 생물을 분해한다고 설명했는데, 버섯의 몸도 수많은 곤충과 미생물의 먹이가 된다. 다양한 색과 크기와 형태를 뽐내며, 혹은 돌 틈과 낙엽 속에 가만히 숨어 제 역할을 마친 자실체는 끈끈하게 녹아내리며 땅으로 돌아간다. 어떤 버섯의 자실체는 새카만 먹물처럼 녹아서 뚝뚝 떨어지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핏물처럼 새빨간 즙을 방울방울 맺는 기이한 모습으로 분해하기도 한다. 그곳에 다른 곰팡이나 버섯의 균사체가 피거나, 날고 기는 곤충들이 잔뜩 모여 빨아먹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
다양한 삶을 헤아리기
버섯 찾기는 나에게 상상을 넘어서는 다양한 형태를 지니는 생물의 세계를 열어주고, 이들을 만나기 위해 가장 좋은 장소와 날씨를 파악하는 감각을 키워주었다. 또 인간의 일정과 편의가 아닌 다른 생물의 사정에 맞추어 다가가는 마음가짐을 알려주었다. 다른 생물이 나에게 이득이 되는지 해가 되는지 혹은 나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 따지기 전에, 나의 신체와 정신과 감각을 일깨우고 단련하며 이들 본연의 삶을 헤아릴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소유하지 않고 가만히 다가가는 방법을 알려주고, 예측할 수 없이 순식간에 숨거나 변하는 그 모습을 사랑하게 한다. 또 이름을 찾지 않아도 어떤 삶들이 있는지 스스로 발견하게 해준다. 버섯과 함께 세 번의 가을을 보낸 지금, 책에 기록된 다른 사람의 경험과 지식을 접할 때 더 많이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남은 삶에서 몇 번의 가을을 더 볼 수 있을지 모르나, 너무 늦지 않게 버섯을 만난 것이 큰 행운이라 생각한다. 버섯의 계절이 저물어가는 시월의 끝 무렵, 올해 엿보았던 다양한 삶을 하나씩 떠올리며 글을 마친다.
이소요
이소요
이소요는 서울에서 활동하는 미술작가이다. 생명과학과 박물학 속 생물 이미지에 관심을 가지며, 주로 근대화 과정의 생물 도해·표본·모형의 시각문화사를 다룬다. 국립현대미술관, 호주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백남준아트센터, 뮈터의학박물관, 전곡선사박물관 등 미술관과 자연사박물관 기획전에 출품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를 졸업하고, 미국 렌슬리어공과대학에서 예술과 생물학의 학제 간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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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_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