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천 명이 넘는 낯선 이들의 얼굴을 그리며 ‘니얼굴 작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정은혜 씨. 발달장애인인 그녀의 삶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완전히 달라졌다. 전시회를 통한 왕성한 작품 발표는 물론이고, 코로나19로 리버마켓이 문을 닫자 ‘랜선 니얼굴’ 프로젝트로 전환하여 외국 사람들을 온라인에서 만나 캐리커처를 그리는 활동으로 이어 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작업실에 출근해서 열심히 자기 그림 그리고 월급을 받는, 예술노동자의 삶을 살고 있기도 하다. 정은혜 작가의 곁에는 가족이면서 예술 활동 매개자이자 매일매일의 충실한 기록자로서 전문적 역할을 하는 장차현실 작가, 서동일 감독이 있다. 그간 겪은 경험과 함께 장애와 예술 활동, 그리고 장애인 예술교육의 지향점 등에 관해 얘기를 나누고자 세 사람을 만났다.
우선 은혜 씨가 그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2013년 2월 23일, 그날 은혜가 그린 그림이 계기가 됐다. 당시 은혜가 몸이 안 좋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니 발달장애인 성인이 갈 데가 없었다. 집에 있으니 모든 것이 퇴행하기 시작했다. 틱이 생기고, 시선 강박증이 생기고. 조현병 증상도 보이고…. 나도 몸이 안 좋고 같이 무너지더라. 둘째가 초등학교에 다녔는데 학교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보고 싶었다. 그래서 학교 앞에 화실을 차렸다. 통유리가 있는 공간이 마음에 들었다. 은혜에게 화실 청소 일을 맡겼는데 다른 아이들이 그리는 걸 보고 그림을 그리더라. 사람 얼굴을 그리는 걸 보고 얼핏 가능성이 보여서 잡지 모델 사진을 보고 그리라고 찢어줬다. 그전에도 그림을 그린 적이 있었지만 2월 23일 그림은 내가 발견한 은혜의 첫 그림이다. 갱지에 그린 그 그림을 액자에 넣어서 잘 가지고 있다.
엄마가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만화가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던 미술전문가여서 당연히 어릴 적부터 그림을 그리게 해줬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게 의아하다.
은혜의 그림을 본 순간 깨달은 게 있다. 나에게 은혜는 장애인 딸이었다는 것이다. 내게 그런 편견이 있었던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 그간 장애아를 잘 키우는 완벽한 엄마라고 생각했는데 순 엉터리였다. 목표를 장애가 없는 정상적 범위로 정해 놓고 그것을 위해 온갖 교육을 했다. 은혜가 가지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지 않고, 치료받고 특수 교육을 받아야 하는 대상. 그런 관점으로만 은혜를 키워온 것이다. 기본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은혜’라는 독립적인 존재를 보지 못했다. 은혜의 상황이 바닥을 치고서야 그림 그리기가 다시 보였다. 장애인 아이를 키워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잘 할 수 있는 게 있다고 생각지 못했다. 은혜가 그림을 시작했을 때 그제야 내가 누구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다니는 동안에는 교육과정에 포함된 당연한 활동으로 지나갔던 것을 성인 은혜 씨가 자발적으로 그리게 되면서 표현행위의 효과와 가능성을 다시 보게 된 것 같다.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후 어떤 변화가 가장 크게 느껴지는가.
틱과 조현병 증상이 없어진 건 물론이고, 무엇보다 예술적 활동이 매개가 되어 사회 속 존재로 살아가게 됐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다. 은혜가 지금은 그림을 매개체로 삼아 자신의 의지로 사회적 관계를 확장하고 있는데, 이전에는 부모의 의지로 사회에 통합시키려고 했다. 사회에서 소외되고 배제당하지 않도록 하는 게 목표였는데,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자꾸 은혜를 교정시키려 애썼다. 막상 성인이 되었는데 이 사회 어디에도 속할 곳이 없는 난감한 상황을 맞닥뜨렸다. 그때 은혜가 23, 24살. 자기 방에 들어가서 문을 잠갔다. 문을 열고 엿보면 허공을 향해 소리를 지르더라. 그때 마음이 툭 내려앉았다. 세상을 향해 “그만할래!” 하고 울부짖는 것 같았다. 니얼굴 작가가 되면서 은혜 자신도 가족 모두도 그토록 원하던, 이 세상에 확실한 자기 자리가 생겼다.
그림 그리기에 몰두하고 자기표현을 눈으로 볼 수 있는 결과물로 만들어 내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었겠지만, 문호리 리버마켓에 셀러로 참여하게 된 것이 큰 전환점이 되었을 것이다. 리버마켓 셀러로서의 경험은 어떠했나.
문호리 리버마켓은 2016년에 시작됐다. 2016년 8월 23일부터 2019년 초까지 매달 마켓에 나갔다. 마켓에서 그리기 시작하고 1년이 지나니 1천 명의 니얼굴 그림이 모였다. 그래서 강가에서 1천 명의 전시를 했다. 지금은 3천 명 정도 된다.
현장에서 사람들을 직접 만나면서 작업하는 만큼 실내 공간에서 화면만 마주하고 그리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창작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라이브방송과 녹화방송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준비도 치밀해야 하고 긴장감도 달랐을 텐데, 너무 힘들지는 않았나.
마켓에 나가는 게 겉보기에는 멋진데 현실은 가혹하다. 여름엔 미친 듯이 덥고 겨울엔 손이 다 터진다. 8월에 시작할 때 사람들이 말렸다. 너무 견디기 힘드니까 9월에 하라고. 그래도 제일 힘들 때 시작해야 다음에 잘 견딜 것 같아서 그냥 했다.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만 봐도 어지러웠는데, 앉아서 은혜 뒤통수를 보면서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다. 벗어날 수 없는 자연의 힘을 혹독하게 겪으면서 신기하게도 몸이 좋아졌다. 엄마 아빠가 힘들다고 안 나갈까 봐 마켓 열리는 날이면 오히려 은혜가 눈치 보면서 준비를 하기도 했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야생의 조건에 견디면서 몸의 건강이 좋아진 측면이 분명히 있겠고, 다른 한편에서 마음의 변화가 이끌어낸 몸의 변화도 상당히 컸으리라 생각된다. 3천 명을 그렸다는 것은 3천 명을 만났다는 것인데, 엄청난 수의 사람과의 만남, 대화가 은혜 씨에겐 어떤 영향을 끼쳤나.
그림을 그려간 사람들의 눈빛 덕분에 은혜가 좋아졌다. 이전에 은혜를 바라봤던 시선은 장애인, 뭔가 해줘야 하는 사람. 그런데 작가로서 은혜를 만났던 사람들의 눈빛은 동등한 눈높이에서 같은 존재로 바라봐 주었다. 은혜 스스로가 자기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확인하는 시간이 3천 번 쌓인 것이다. 3천 명의 사람과 그 사람들과 만난 시간을 생각하면 저절로 머리가 조아려진다. 은혜를 살린 건 결국 사회적 관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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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호리 리버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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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선 니얼굴
[영상출처] 니얼굴 은혜씨 유튜브
‘니얼굴 작가’라는 호칭에서 이미 사회적 존재로서 은혜 씨 만의 고유한 역할이 드러나 있다.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써가며 노력해도 확보하기 어려웠던 은혜 씨의 ‘자리’는 바로 그런 의미일 거라 생각된다. 표현적인 면에서 은혜 씨 만의 특성은 어떤 점을 들 수 있을까.
살다 보면 감각도 사회화된다. 장애인의 경우 덜 사회화될 수밖에 없는데, 그래서 감각의 훼손도 덜 하고 직관적인 표현을 잘하는 것 같다. 은혜의 경우, 대화하면서 입과 눈을 집중해서 보다 보니 얼굴을 그리면 그 부분이 강조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캐리커처는 예쁘게 그려주는데 은혜는 절대 예쁘게 그려주지 않는다. 자기 눈에 포착된 그대로 정직하게 그린다. 재미난 것이 처음엔 광대가 나오면 더 튀어나오게 그리고, 입에서 이빨이 쏟아지도록 그리더니, 어느 때부터 팔자주름도 안 그리기 시작했다. 2018년 무렵 그림들은 거의 팔자주름이 없다. 사람들이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나서 서비스 정신이 생긴 것이다.
그런 게 은혜 씨가 이해한 세상의 상징적 표현이 아닐까. 자신이 이해한 것이 캐리커처로 드러나니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된다. ‘니얼굴 작가’라는 닉네임이 참 재미있고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탄생했나.
리버마켓 부스에 이름이 필요했다. 은혜 사촌 언니가 초등학교 선생님이라 애들이 좋아할 만한 게 뭐가 있을까 하고 물었더니 “니얼굴?” 하는데 너무 좋았다. 청소년 아이들은 부스에 붙은 걸 보고 지나가면서 히죽히죽 웃더라. 자기들끼리 장난칠 때 흔히 쓰는 말이니까.
‘니얼굴’은 친구들끼리 외모 얘기를 하다가 ‘그게 바로 너야’, ‘너도 똑같아’라는 의미로 받아치면서 놀릴 때 쓰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니얼굴’이라는 말은 내 생각과 판단, 시선을 비춰보게 하는 거울과도 같은 뜻인 셈이다. ‘니얼굴’은 은혜 씨가 그린 캐리커처를 지칭하면서 동시에 우리의 편견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강력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장애인의 예술 활동에 대해 일반적인 편견이 있다고 느낀 적이 있었나.
발달장애인 미술에 대해 나 또한 무지했다. 다른 미술교육을 하듯이 가르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겪어보니 그들에게 가르친다는 건 별 의미가 없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걸 그대로 드러내고 지속적으로 하게 하는 것, 작업의 기쁨과 슬픔을 본인이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장애인 예술을 범주화하지 않고 각 개인의 존재를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고유한 표현행위로서 보려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 어떤 활동으로 이어가면 좋겠다는 제안이나, 작업 결과물을 여러 사람과 만날 수 있는 매개물로 활용할 계획을 세우는 일이 장애인 예술 활동을 이끄는 사람들에게 중요하다.
장애인 예술을 범주화해선 안 된다는 의견은 장애인이라서가 아니라 누구의 그림도 같을 수 없는 예술 행위 본연의 특성에 충실하게 개별적 가치를 읽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예술 행위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그 사람만의 것이다. 세상에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만큼 자기 존재를 강하게 느끼는 경우가 또 있을까 싶다. 이 점이 은혜 씨가 창작활동을 통해서 거두고 있는 놀라운 변화의 근원이라고 생각된다. 은혜 씨처럼 예술 활동으로 행복해지는 장애인이 많아지길 바라는 욕심이 생겼을 것 같다.
은혜 혼자 그림 그리면서 잘 사는 건 한계가 있다. 화실에 장애인 작가들이 와서 같이 그림을 그리는데 비장애인과 있을 때와 너무 달랐다. 그들끼리 즐거움을 나누는 소통의 주파수가 다르고 활력과 시너지가 다르다. 그래서 부모운동과 결합해보자, 운동성을 가져야 힘을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궁극적으로 발달장애인 예술 활동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좀 더 명확하려면 조직화가 필요할 것 같아 양평에 부모단체를 만들었다. 최근엔 ‘경기도 권리 중심 맞춤형 공공일자리 사업’에 참여하여 5명의 작가가 출퇴근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장애인의 권리를 생산하는 활동을 하는 장애인에게 최저 임금을 지급하는 사업이다. 우리는 장애인의 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일을 하겠다고 했다. 자기표현의 권리를 그림 그리기로 주장하는 예술노동자들이 된 것이다.
억지스럽게 할 일을 만들어 배치하는 복지형 일자리하고는 차원이 다른 접근이라고 생각된다. 무엇보다 자기표현의 권리를 주장하는 일을 공공영역에서 노동으로 인정한다는 게 놀랍다. 장애 예술인 지원을 넘어 예술가의 노동에 대해 큰 질문을 던지셨다. 은혜 씨와 동료 작가들의 예술 노동이 오래도록 지속하기를 기대한다.
장애인의 예술을 예술적 완성도의 측면에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장애인의 예술 활동은 더 절실하고 치열한 자기표현이다. 이들의 예술 행위는 말로 충분히 표현하지 못하는 자기 존재를 대신할 또 다른 나를 세우는 일이다. 이 존재들이 사회 안에서 잘 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견고한 제도적 틀과 촘촘한 사회적 관계이다.
정은혜 작가는 24살부터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다. 친구, 가족, 지인의 얼굴을 그려주는 것을 시작으로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약 3천 명의 낯선 사람들을 캐리커처로 그렸다. 서울문화재단 잠실창작스튜디오 10기, 11기 입주작가로 활동했으며, ‘같이 잇는 가치’ 기획전시, 양평폐공장전시 《spring》, 국회 아트갤러리 4월 초대전 등 다수의 전시에 참여했다. 장차현실 작가는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에 <색녀열전>을 연재하면서 활동을 시작해 다양한 매체에 만화를 꾸준히 연재해 왔다. 연재만화 <개똥이네 집>, 『또리네 집2』 등 여성과 장애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에 맞선 경험들을 만화, 글과 그림으로 담고 있다. 서동일 감독은 <두물머리> <명령불복종 교사> 등 다수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연출했으며, 서울독립영화제, 서울환경영회제 등 다수 영화제에서 수상했다. 2005년 장애인의 성을 이야기한 <핑크 팰리스>를 시작으로 자신의 가족을 소재로 한 다큐를 제작해왔다. 2020년 은혜 씨의 예술 활동과 일상을 담은 영화 <니얼굴>로 제18회 서울환경영화제 한국환경영화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니얼굴 은혜씨’ 유튜브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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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원철
- 홍익대학교와 독일 카셀종합대학교에서 조형예술을 전공했다. 추계예술대학교 판화과에 재직하며 미술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교육을 해왔다. 문화연대 시각문화교육 대안교과서 연구에 참여하면서 교육 활동이 예술가의 중요한 창작영역으로 다뤄져야 한다는 소신을 갖게 되었다. [아르떼365] 편집위원, 문화예술교육지원위원회 위원장 역할을 하고 있다.
사진_이재범 POV스튜디오 andy45a@naver.com
프로그램 사진 제공_서동일
프로그램 사진 제공_서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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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힘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던 기사였습니다! 순수한 마음에서 출발한 예술은 너무나 찬란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은혜작가님~응원합니다. 저는 음악을 전공하고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간혹 장애우 친구들을 대하며 소통이 가장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의 경험이 살아가면서 제게도 많은 도움이 되지는 않았나 반문해봅니다. 그들의 시각으로 ‘있는 그대로의 표현으로 내 얼굴을 비추는’ 정은혜작가를 응원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 로 인정해주고 바라봐주고 하는 게 너무 안되더라구요
항상 내려 놓고 그모습 그대로를 봐주는 노력을 계속 해야 겠어요
저도 마켓에 나가 작가님에게 캐리커쳐를 받고 싶어요. ^^ 호칭, 호명, 자리의 중요성을 다시금 생각합니다. 건강하고 오래오래 작품활동 해주세요. ~!
이번 드라마를 통해 알게된 작가님.
작품속에 너무나도 마음이 전해졌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만나고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