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미술교육 활동을 시작하면서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강사이길 바랐다. 수업이 신나고, 재미있고, 새로운 차별화된 수업이 되게 하려고 수많은 시간을 생각하고 고민하며 노력했다. 여력이 되는 한 다양한 상황에 도전하였고, 2018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하 진흥원) 글로벌 문화예술교육 탐방 프로젝트 ‘A-round’에 선발되어 일본의 장애인 미술교육 현장을 탐방하면서 더 큰 생각의 전환을 맞이하게 되었다. 하지만, 다시 나의 자리로 돌아왔을 때, 어떤 변화를 해야 하는지 어렵기만 했다.
장애인들과 즐겁고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던 나는 가까이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시간에 쫓겨 흔들려 버린 모습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장애인 미술교육 활동을 하는 동안 근시와 난시를 동시에 갖고 있었는지 모른다. 넘치는 열정과 미숙함으로 생긴 고질병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확실하게 알게 된 점은 장애인과 나의 시간 흐름이 다르다는 것과 내가 보는 것이 그들에게는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지점들에 대해 되새김하기 시작했고, 그 마무리에 ‘오래 보아야 예쁘다’는 말을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장애물 없는 수업에 도전하기
시각과 시간의 다름을 이해하고 난 후 비로소 참여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오래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참여자와 친밀감을 가지기 위해 크고 작은 노력을 했지만,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자책감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참여자들을 오래 바라보며 공감, 친밀감 같은 것을 형성하기 이전에 참여자가 불편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해보게 되었다. 장애 종류, 장애 정도, 성별, 나이…. 같은 점보다 다른 점이 많은 참여자는 하나의 미술 활동에서도 서로 다른 문제로 불편을 겪고 있었다. 너무나 당연한 그것을 너무 늦게 알아챘다.
배리어프리(Barrier-free, 고령자나 장애인도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물리적·제도적 장벽을 없애는 것)가 이제는 익숙한 단어가 되었지만, 우리의 수업에서는 실제로 많은 장애물이 존재하고 있었다. 장애인 문화예술교육을 시작한 다음 해, 뇌성마비 주간보호센터에 배치되어 12명의 뇌성마비 참여자를 만났다. 몇 차례 프로그램을 진행한 후 망망대해에 작은 배를 타고 표류하는 기분이었다. 그 와중 진흥원의 컨설팅 프로그램을 통해 김인규 선생님(서천발달장애인미술창작협동조합 대표)을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다. 김인규 선생님을 통해 ‘장애물 제거’라는 개념을 얻게 되었으니까. 장애물을 제거한 ‘배리어프리 수업’에는 장애·비장애 참여자의 구분이 없다. 이것은 장애물 제거라는 개념을 얻은 후부터 지금까지 수업을 계획할 때 가장 고심하는 부분이다.
장애물 제거는 너무나도 간단하다. 참여자 중심으로 수업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팔과 손에 강직이 심한 참여자는 드로잉은 물론이고 붓을 잡는 것도 힘들 때가 있다. 그런 상황이면 그림을 그리기 위해 들었던 붓을 내려놓고 손을 사용하면 되는 것이었다.
트렌디한 페인팅에 도전해보았다. 예쁜 색상의 물감 팔레트와 도화지만 있으면 되는 활동이다. 강직으로 손이 구부러져 있는 참여자는 물감을 닦아내기 힘들어 손가락에 골무를 끼고 활동했다. 물감의 농도를 조절하거나 물감의 촉감을 느끼는 것을 방해할 수 있는 요소지만, 그보다 먼저 참여자의 상황을 고려하였다. 한 참여자는 물감을 손에 묻히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도화지 위에 가면 손가락을 풀로 붙여놓은 것처럼 움직이질 않았다. 봉사자가 손을 잡고 같이 찍어주면 즐거워하였다. 참여자 대부분이 준비한 8절 도화지를 다 채워 찍기가 힘들었다. 집중력 있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종이의 크기를 조절하거나 화지의 일부분에만 손가락으로 물감을 찍고 남은 부분에는 자유롭게 끄적이게 해도 좋을 것 같았다. 너무나 간단하지만,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면 해보지 못하고 해보지 못하면 그 이상의 생각과 방법을 찾을 수 없게 된다. 변화는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하고 있었다.
“붓을 사용하지 않으면 어때요?” 김인규 선생님의 말씀이 여전히 귓가에 생생하게 울린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손을 함부로(?) 사용했다가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참여자의 심리, 기관의 대응 등에 신경을 써야 하고, 수업을 위한 사전 작업이 생각보다 매우 복잡하다. 참여자가 주간 보살핌에 있는지 평생 교육프로그램에 참여 중인지에 따라서도 수업이 크게 변화하기도 한다. 그래도 이런 마음가짐을 가진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큰 차이가 있다고 믿는다. 수업하는 날 모두의 의견이 조율되면 즉흥적으로 물감을 뿌리고 놀 수도 있고, 도화지 한 장을 들고 밖에 나가 놀 수도 있다. 드로잉은 낙서가 되고 낙서는 드로잉이 된다. 수업은 어른들의 놀이터가 되어 간다.
자주 쉼표를 찍어볼까?
장애인 문화예술교육에서는 참여자와 참여 인력 구성이 간단하지 않다. 장애 정도가 심할수록 활동을 지원하는 사람도 많아지는데, 강사는 참여자 당사자뿐 아니라 모든 구성원을 고려해야 해서 심리적으로 매우 분주한 게 현실이다. 이럴 때 천천히 흐르는 참여자의 시간을 모든 구성원에게 적용해보면 훨씬 부담감을 줄일 수 있다.
배리어프리 수업에 도전하고 장애물을 제거하다 보니 신기하게도 수업에서 여유가 생겼다. 쉼표하나 찍고 참여자를 더 돌아볼 기회를 얻었다. 이 기분을 처음 느낄 즈음에는 참여자를 바라보고 있는 나를 발견해서 좋았다. 몇 년이 흐른 지금은 가끔 나 자신도 돌아보는 여유도 생겼다. 내 삶의 전체에서 쉼표를 찍을 수 있는 호사는 아직 얻지 못했지만, 미술 활동하는 시간만큼은 쫓기지 않는다면 그 또한 큰 행복이다.
삶을 조형하는 예술가로 남기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특히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은 참여자를 위해 난이도를 조절하다 보면 자칫 유아 프로그램(?)처럼 변하는 경우가 있다. 내가 공예가여서 그럴 수도 있지만, 나는 예술에서 ‘공들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어떤 예술이든 간에 고민하고, 사색하고, 수많은 밑 작업 과정을 거쳐야만 내공 있는 무엇이 탄생한다. 이 내공으로 수업을 하면 십중팔구는 참여자를 만족시키고, 그것은 나의 만족이 된다.
전업 예술가는 아니지만, 창작의 끈을 놓지 않고 천천히 흘러가기를 바라고 있다. 새로운 창작에 대한 고민이 꽤 괜찮은 자극으로 스스로 느슨해지지 않게 도와준다. 예술가로 남는 것이 좋은 강사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과 함께…. 그러던 중 2018년 심혈을 기울여 첫 개인전을 개최했는데, 이상하게도 어떤 의미를 찾지 못했다. 전시 마무리에 ‘다음 기회가 있다면 내가 아닌 장애인 작가를 위한 전시를 해야지’ 다짐했었고, 지난해에 용기를 내어 새로운 접근을 시도했다. 공예작가와 아르브뤼 작가가 모여 전시하는 프로젝트다.
공예는 원래 완벽한 마무리가 중요하다. 공예품은 그 자체가 예술이고 생활이기 때문에,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작품을 만드는 것으로 생각해왔는데, 과감하게 그 개념을 버렸다. 공예가와는 정반대 편에 서 있는 아르브뤼(Art brut,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미술) 작가와 만나는 것이었다. 전시의 성공이나 실패를 말하기 전에 즐거움이 있었고 장애인 작가들이 좋아하는 모습에 에너지를 얻었다. 관람객도 예상보다 훨씬 많았기 때문에 내심 흥분되기도 했다.
예술강사는 문화예술교육 활동이나 수업이라는 말에는 다 담지 못할 여러 가지를 한다. 장애인 참여자는 예술강사가 만들어가는 교육 내용에 관심 가지기 전에, 먼저 예술강사를 바라보고 익숙해지려고 할지 모른다. 우리가 그들의 삶의 조각이라는 생각을 해보며 교육가, 활동가이기 전에 예술가로서 장애인 참여자의 삶을 아름답게 조형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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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상화(서하徐河:천천히 흐르는 강)
- 상명대학교 공예학과 목칠공예를 전공하고 세한대학교 미술학과 한지조형 석사학위를 받았다. 공예분야 사회·학교 예술강사로 활동 중이며, 예술융합창작소 재주나비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나무와 한지를 주된 재료로 활용하여 우리 전통문화를 현대적 감성에 어울리도록 디자인하고 알릴 수 있는 작품으로 2018 대한민국미술대전 공예 부분 특선 외 다수의 수상과 전시를 하였다.
lumber0612@naver.com
사진_필자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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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마무리를 버렸다는 말은 공예 작품을 바라보는 기존의 저의 생각을 버리게 되네요. 매끄럽고 숙련되어 보이지 않아도 작업 과정의 즐거움과 고민과 투입된 시간들을 얼마든지 작품을 통해서 볼 수 있을거에요. 그런 시각을 키우는 것도 기회가 있어야 가능하고 또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로 고립된 분들이 많이 있지만 신체적 제약으로 외출이 더더욱 어려운분들에게만큼은 다양한 방법으로 예술활동이 멈추지 않고 시도되고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장애인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선생님의 열정과 고민이 느껴지네요. 나지 않은 길을 개척하는 탐험가처럼 스스로 고민하고 스스로 길을 내가는 선생님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너무나 간단하지만,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면 해보지 못하고 해보지 못하면 그 이상의 생각과 방법을 찾을 수 없게 된다. 변화는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하고 있었다.
정답에 닿은 선생님의 도전을 응원합니다. 언제나 모든 일의 출발점은 실행이고 도착점도 실행입니다. 그 열정 고이 간직하시고 보다 멋진 장애인 문화예술교육의 길라잡이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비대면 수업이 늘어나는 요즘에 장애인을 위한 예술적 감각 기르기에 열정이 있으신 선생님의 노고에 갈채를 보냅니다. 본교에서도 일반인 대상으로 대면 혹은 비대면의 창의음악을 진행하고 있어요. 학생들에게는 매우 소중한 기회가 됩니다. 심미적 감성을 기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기사에 실린 선생님의 열정에 고개숙여 존경의 마음을 보내드립니다.
장애인미술교육에 대한 작가님의 고민과 애정이 느껴지는 글이에요^^
활동에 참여한 장애인도 배리어프리 적용으로 잠시나마 장애를 잊어버리고 표현에 자유로울 수 있었을거 같아요.
공예작가로의 틀을 깨고 아르뷔르 작가와의 만남도 즐거웠다 말하는 작가님의 모습도 멋지구요!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미술교육을 통해 성장하고 즐거워하는 과정이 흥미롭고 관심이 많이 가는 기사에요
작은 시도로 장벽은 허물어진다
어쩌다 예술쌤③ 장애물 제거하기
기대만점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