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것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쓰레기를 남긴다> 속 만남과 연결

‘팬데믹과 기후위기 그리고 쓰레기 문제’라는 대전제를 전 세계가 공유하고 있는 이때, 2021년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행사에서 이와 같은 주제로 문화예술교육을 염두에 둔 워크숍 기획을 제안받고 나서 사실은 무거운 책임감과 동시에 무력감이 들었다. 그동안 보았던 환경교육은 대부분 경각심을 일으키는 콘텐츠를 나열하고, 그래서 “너 때문에 북극곰이 곧 멸종될 지경”이라는 죄책감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면서, 버려진 것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보는 것으로 죄책감을 조금은 덜어내는 듯 마무리되는 사례를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사실 그러한 콘텐츠와 방식을 제외하고 우리가 ‘교육’이라는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한 이상 디자이너로서 기획자로서 뭔가 다른 방식 다른 형태의 기획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이번 작업에서 실험해보고자 했다.
반려 물건의 죽음, 쓰레기의 서사
‘죽음’은 생을 살면서 누구나 알고는 있지만 경험을 나누지는 못하는 영역이다. 그런데 팬데믹은 지구상의 모든 연령층이 “죽음이 나에게도 곧 일어날 수 있다”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만든 엄청난 사건을 일으켰다. 하루에도 몇백 명씩 죽는다는 다른 나라의 소식을 덤덤히 읽고 넘기게 될 만큼 무뎌진 지금에 개인의 생애와 서사에 집중해보면 어떨까 생각하게 되었고, 우리가 하는 작업과 져스트프로젝트의 슬로건 ‘It is trash, but treasure to me.’(쓰레기지만, 내게는 보물)을 연결 짓는 기획을 시작했다.
커다란 키워드는 세 가지였다. ‘죽음, 쓰레기, 상호관계’ 져스트프로젝트는 ‘쓰레기’라고 불리는 버려진 것들을 일반적이고 매력적인 소재로 소개하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가 소개해왔던 쓰레기들은 대부분 ‘소재’로서의 가치가 있는지 판단하는 과정이 중요하지만, 개인이 가지고 있는 ‘물건’들은 소재로서의 가치보다는 ‘서사’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여겨졌다.
‘우리가 만약 죽는다면’이라는 가정이 특별하지 않은 지금, 넘쳐나는 물건들과 광고, 소비, 폐기의 시대에 나를 둘러싼 물건은 무엇이며, 그 물건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내가 죽는다면 내 곁에 남아있는 물건들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남에게는 쓸모없는 쓰레기이지만 나에게 보물 같은 소중한 물건이 있을까. 이러한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고, 개인의 삶을 구성하는 물건들을 통해 오늘과 삶을 재해석해보고자 했다. 이렇게 기획의 얼개와 방향을 결정짓고, 워크숍 방식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죽음’이라는 전제 자체가 무거운 마음이 들 수 있기에 어떤 순서로 워크숍을 만들고 어떤 장치를 마련해야 온전히 그 시간에 몰입하게 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우리는 워크숍 내용이나 어떤 시간을 보내게 될지에 대한 정보를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몇 가지의 사전질문을 받았다. ‘최근에 가장 자주 듣는 음악, 가장 최근에 검색한 것, 지금 가장 가고 싶은 장소, 유년 시절 가장 즐거웠던 장면, 최근 자주 하는 말’과 같이 일상적인 것들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보물 같지만, 남에게는 쓰레기 같은 물건 한 가지와 사용하고 있는 휴대폰의 바탕화면 이미지를 워크숍 전에 미리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우리는 참가자들이 보내온 질문에 대한 답변과 물건을 가지고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이후 워크숍 현장에서 만난 참가자들에게 우리를 ‘반려 물건 장례지도사’로 소개하고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각자 재구성된 자기 이야기와 물건을 오늘 처음 만난 다른 참가자에게 건네면서 장례식에서 낭독할 가상 추도문을 쓰는 것이다.
멈춤과 회고
팬데믹으로 인해 예기치 않은 긴 시간 동안 ‘거리를 두고 잠시 멈추는’ 행위가 요구되는 지금, 워크숍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물건을 소비하고 만들어내는 것 역시 잠시 ‘멈추고’ 나의 삶을 둘러싼 물건을 나로부터 ‘거리 두고’ 물건과 나 사이에 어떤 이야기가 존재하는지 돌아보고자 했다. 각자 앞에 놓인 익명의 물건이 나의 오랜 친구가 남긴 유품이라는 가상의 시나리오 안에서 몇 가지 물건과 이야기만을 단서로 물건의 주인이 생전에 무엇을 꿈꿨으며, 무엇을 아쉬워했고, 어떤 사람이었을지 유추하며 이야기 주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물건과 그사이의 이야기를 지어냈다. 지어낸 추도문을 읽으며 삶을 회고하는 동안 우스운 오해와 다정한 착각이 일어나는 것에 우리 모두 울고 웃었다.
워크숍을 마무리하며 참가 소감을 이야기할 때 공통으로 나온 이야기는 ‘기분이 이상하다’였다. 처음 보는 사람이 몇 가지 이야기와 물건만으로 나의 삶을 추도하였는데, 마치 정말 오랜 친구가 나를 추억하며 쓴 것 같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몇 가지 장치만 해두었을 뿐, 모인 사람들 저마다의 이야기로 채워진 워크숍이었기 때문에 회차마다 분위기가 달랐지만, 워크숍을 마치고 돌아가는 참가자들이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몇몇 참가자는 만들기 워크숍으로 오해하거나 단순한 환경교육이겠거니 기대하고 왔다는 분도 있었지만, 자신의 이야기가 워크숍의 소재가 되고, 자신의 일상과 주변을 돌아보는 시간에 집중하는 모습에서 우리에게도 많은 질문과 생각거리를 남긴 작업이었다. 단 한 번 만나서 서로의 이야기와 물건이 소재로 활용되고 헤어지는 일회적인 관계였지만, 그것이 아쉽거나 더 궁금하지 않고, 개인의 일상을 돌아보게 하는 매개로서의 만남이었다는 점 또한 인상 깊었다. 아마도 가상의 상황이라는 장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관계를 맺는다는 것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물건과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죽음’이라는 매개로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타인을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타인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무엇을 통해서인가. 몇 가지 문장과 몇 가지 물건으로 한 사람을, 한 사람의 생애를 유추해보는 것이 유추 당한 사람을 울고 웃게 했고, 그 사람을 마치 안다고 착각했다면 우리는 어쩌면 너무나 단순한 것들로 연결된 것일지 모른다. 불행과 불안이라고 여겨지는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일상은 계속되고 있다. 먹고, 자고, 소비하고 생산하는 행위를 끊임없이 영위한다. 그 안에서 잠시라도 이 워크숍을 통해 사람과의 관계와 물건과의 관계를 소중히 생각하고 살피는 계기가 되었으면 했다. 과잉으로부터 시작된 지금의 문제들 속에서 무력감과 책임감, 죄책감을 강요받기 쉽지만, 그 안에서 다시금 사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알아차리고 살피고 표현하게 되길 바란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는 속담을 차용한 이번 워크숍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을 죽어서 쓰레기를 남긴다>는 ‘쓰레기’를 보물로 생각하는 져스트프로젝트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 ‘사람은 쓰레기를 남기는 해로운 존재다’라고 물질적인 측면으로 접근하기보다 결국 사람은 ‘이야기를 남긴다’ ‘서사를 남긴다’라고 해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워크숍 기획 및 진행 : 이영연(져스트프로젝트), 김원영(일용할 양식)
이영연
이영연
JUST PROJECT 대표, 매거진 [쓰레기] 발행인.
2017 광주디자인비엔날레 《FUTURES》 전시
2019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두 번의 똑같은 밤은 없다》 전시
2021 대림미술관 《기묘한 통의만물상》 전시
www.just-project.com
www.instagram.com/justproject_korea
4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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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애영 2021년 07월 07일 at 11:23 AM

    어려서 배웠던 속담이 성장해서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하지만 요즘 코로나로 조심하고 백신을 맞고해도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나 역시도 환경에 많은 관심을 갖고 쓰레기를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 했건만 이제는 실천이 안되고 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는데 사람은 죽어서 쓰레기를 남긴다는 말이 너무 와 닿는다 어떻게 하는것이 인간으로서 이 세상에 보템을 주고 갈 수 있을지 많은 생각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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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ezine 2021년 07월 07일 at 6:03 PM

      안녕하세요 독자님, 이거 제 마음의 소리인줄 알았어요. (놀람)
      매일 제가 남긴 쓰레기를 보며 종종 놀라는데요, 말씀해주신대로 이 세상에 어떤 보탬을 줄 수 있을지 생각하면서 퇴근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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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2년 06월 12일 at 1:51 PM

    남겨진 것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
    속 만남과 연결
    정말 너무나도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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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2년 06월 20일 at 1:12 PM

    남겨진 것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
    속 만남과 연결
    정말 너무나도 공감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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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애영 2021년 07월 07일 at 11:23 AM

    어려서 배웠던 속담이 성장해서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하지만 요즘 코로나로 조심하고 백신을 맞고해도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나 역시도 환경에 많은 관심을 갖고 쓰레기를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 했건만 이제는 실천이 안되고 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는데 사람은 죽어서 쓰레기를 남긴다는 말이 너무 와 닿는다 어떻게 하는것이 인간으로서 이 세상에 보템을 주고 갈 수 있을지 많은 생각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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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ezine 2021년 07월 07일 at 6:03 PM

      안녕하세요 독자님, 이거 제 마음의 소리인줄 알았어요. (놀람)
      매일 제가 남긴 쓰레기를 보며 종종 놀라는데요, 말씀해주신대로 이 세상에 어떤 보탬을 줄 수 있을지 생각하면서 퇴근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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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2년 06월 12일 at 1:51 PM

    남겨진 것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
    속 만남과 연결
    정말 너무나도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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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2년 06월 20일 at 1:12 PM

    남겨진 것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
    속 만남과 연결
    정말 너무나도 공감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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