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기 위해 국수집을 찾았다. “고기 안 들어간 음식이 있나요? 계란, 생선도 안 먹어요.” 식당을 찾은 사람은 기후위기 행동 모임 1.5℃(일점오도)에서 활동하는 민김이다. 민김이는 비건(Vegan)이다. 비건은 육류, 생선, 알류를 먹지 않는다. 이것저것 음식에 무엇이 들어가는지 확인하고 마침내 비빔국수를 주문했다. 그런데 양념에 고기가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닌가! 사장님께 물어보니 당황해하며 말을 얼버무렸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난감해하던 민김이는 고민 끝에 비빔국수를 먹지 않고 다른 걸로 끼니를 채웠다. 음식물쓰레기를 만든 건 아닌지, 분명 물어보고 주문했는데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복잡한 심정으로 식당을 나오게 됐다.
  • 일점오도 모임
  • 보자기장 기후위기 퀴즈쇼
지구 온도를 낮추기 위한 청소년의 행동
비건을 선택한 이들은 이런 상황을 자주 맞닥뜨린다. 1.5℃ 구성원 중 꽤 많은 이가 비건 또는 비건 지향의 삶을 산다. 왜 이들은 비건을 선택했을까? 그것이 기후위기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그들은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지구를 살리는 일 중 하나라고 말한다. 고기가 식탁에 올라오기까지 다량의 온실가스를 배출하기 때문인데, 2018년 유엔식량농업기구(FAO) 보고서에도 가축이 내뿜는 메탄가스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5%를 차지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또 공장식 축산업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교통부문보다도 높다고 한다. 어쩌면 비건의 삶을 지향하고 실천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일상이 되어야 마땅한 미래일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생명은 멸종되어가고 있습니다. 15분에 한 종씩 멸종되고, 하루에 100종의 생물이 멸종되고 있습니다. 지구온난화에 대해 책임지지 않아도 될 많은 생물이 멸종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전문가들은 향후 10년이 마지막 기회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를 위해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이고 2050년에는 탄소배출을 제로 상태로 만들어야 합니다.”
– [1.5도 모임] ‘기후위기, 우리가 공부한 것들’ 중에서
기후위기로 고통받는 다양한 생물의 슬픈 목소리와 우리가 사는 모든 터전이 심각하게 파괴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곳곳에서 들려오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건 나와 관련 없다고,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북극의 일이라고 말한다. 반면에 기후위기는 우리 모두의 일이라고, 나의 생존과 관련된 문제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1.5℃ 청소년들이다. 모임 이름이 익숙하면서도 신선하다. 왜 1.5℃일까? 지구 기온이 1.5℃를 초과하게 되면 세계 인구의 절반이 생존의 위협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걸까. 수많은 생물이 멸종 위기에 처할지도 모른다는 의미에서 착안한 것일까. 그래, 맞다. 지구 평균 온도가 1.5℃를 넘지 않기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있다. 기후위기는 이미 시작됐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생명이 고통받고 위기에 처해있는데, 1.5℃ 모임 청소년은 늘 그것을 생각하며 0℃가 될 때까지 행동하겠다는 의미로 활동 중이다.
기후위기 시대 행동하기 1.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일단 공부부터 시작해 보자”
1.5℃ 청소년들은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를 주제로 열린 기후위기 특강에서 처음 만났다. 광주광역시 청소년삶디자인센터 열린책방지기로 일했던 또바기가 기획한 이 특강에는 생각보다 많은 청소년과 어른이 참여했다. 이 특강을 계기로 청소년들이 모여 2019년 9월부터 기후위기 행동 모임 1.5℃가 시작됐다. 모이긴 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다가 시작한 것이 책 읽기다. 기후위기 개념을 알고 사람들에게 문제의식을 정확하게 알리기 위해 일단 공부를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탄소발자국은 무엇이고 기후변화 임계치는 무슨 뜻이야?” “기후위기는 언제부터 시작됐지?” “어떻게 하면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어?”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데 우리가 무얼 할 수 있을까?” 수많은 질문을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파란하늘 빨간지구』 『1.5 그레타 툰베리와 함께』 『2050 거주불능 지구』 『향모를 땋으며』를 함께 읽었는데, 앞으로도 읽고 싶은 책이 많다. 책을 통해 기초지식을 쌓고 서로 다른 관점을 확인하며 생각의 폭을 키워나갔다. 또 개인의 삶 속에서 생태적 가치관을 지켜내기 위한 노력, 그 속에서 겪었던 불편함과 난감함에 대해 서로 공감하고 위로하기도 했다.
몰랐던 것을 알아간다는 건 단순히 지식을 쌓는 행위를 넘어선다. 그것은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진 나를 발견하는 일이다. 또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함이 아닌 내가 즐거워서 하는 공부는 더 큰 배움과 성장을 도모한다. 무엇보다도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을 멤버들과 함께 했기에 공부가 더욱더 즐거웠으리라. 서로의 대화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토론은 자신과 세상을 연결해주었다. 이는 삶의 실천으로, 기후위기를 해결해나가는 행동력의 원천으로 이어진 배경이 되었다.
기후위기 시대 행동하기 2.
“즐겁고 재밌는 놀이처럼 하자!”
1.5℃는 환경에 무차별적으로 가해지는 구조적 폭력을 멈추기 위해 금요일마다 거리로 나갔다. ‘환경 불평등 석탄발전’ ‘매일매일이 지구의 날’ ‘지구야 그만 변해. 이제 우리가 변할게’ ‘왜 비건? 왜 비건이 아닌가요?’ ‘인간이 멸종 위기랑께’, 각자 준비해온 종이박스에 적힌 메시지가 예사롭지 않다. 시민을 향해 손을 흔들며 함께 구호도 외친다. 지금 우리는 멸종 위기에 처해있다고, 그것은 그리 먼 일이 아니라고, 지금 당장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함께하자고.
2020년 9월 25일, ‘세계 기후정의 행동의 날’(Global climate justice action day)을 맞아 1.5℃ 청소년들은 재미난 기획을 했다. 광주광역시에 바라는 기후위기 대응 1마디와 자신의 다짐을 적은 0.5마디를 SNS에 올리는 ‘1.5마디 온라인 피케팅’을 기획했다. ‘기후정의를 위한 한마디를 남겨주세요’라는 말보다 ‘광주광역시를 향한 1.5마디를 남겨주세요’라는 말에 더 호기심이 간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이들이 많았는지 총 165개의 메시지가 인스타그램에 모였다. 1.5℃는 온라인 피케팅에서 그치지 않고 이 메시지를 활용해서 ‘지구력’ 달력을 만드는 과정으로 이어갔다. ‘지구력’에는 매월 참여자의 피켓 메시지와 간략한 환경 지식, 그리고 실천 체크리스트가 들어있다. 무엇보다 100% 친환경 종이와 콩기름 인쇄를 하는 등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히 신경 써 환경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한 노력이 돋보였다.
‘1.5℃’라는 이름에서 언어의 운율을 살려 또 다른 이름이 만들어졌다. 바로 ‘1.5도 화음’이다. 1.5도 화음은 기후위기를 주제로 노래를 만드는 프로젝트다. 1년 동안 진행한 이 프로젝트로 ‘어떤 일도 이겨내지’ ‘나는 너야’ ‘어떤’ 3곡을 담은 앨범 《어떤 일도 이겨내지》 음원을 발표했다. 멜론, 지니 등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찾아 들을 수 있다.
1.5℃ 멤버들은 기후위기와 관련한 단편희곡도 4편이나 썼다. 대본 분량은 적어보였지만 내용의 깊이는 상당했다. 인간과 비인간 사이에서 마지막 남은 배를 누가 탈 것인가 논쟁하는 <누가 배에 탈까?>에서는 자연과의 공존을 배제한 개발 중심적 사고와 인간의 이기심을 볼 수 있다. <뭐 환생할 지구가 없다고?!>는 제목에서 느껴지듯 염라대왕을 만난 인간이 더 이상 지구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는 이야기다. <알라코 뉴스룸>은 박쥐가 서식지를 잃고 인간사회에 침투하게 되는 이야기인데, 코로나19가 바로 떠올라 현실인지 희곡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직접 난민이 되어 그 심정을 느껴볼 수 있도록 구성한 <난민과의 대화>는 제주 예멘 난민 상황을 떠오르게 했다. 이들은 희곡을 무대에 올린 적은 없지만 광주 청소년삶디자인센터에서 보자기장이 열릴 때마다 ‘기후위기 희곡읽기’ 부스를 마련해 사람들과 교감하는 자리를 가졌다. 대본에서 맡게 된 역할을 통해 나 아닌 다른 사람, 비인간 종의 마음을 경험하며 다른 생명체의 삶에 대해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다.
1.5℃의 기후위기 행동을 보니 재미난 상상력과 유쾌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책 읽기로 시작해 피케팅, 노래 만들기, 희곡 쓰기, 달력 제작하기, 시민과 함께하는 부스 운영 등 폭넓은 활동을 했다. 기후위기라는 큰 주제가 생태, 사회문제, 음악, 극작, 디자인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된 것이다. 만약 지도하는 사람이 나타나 방향을 제시하고 가르쳤다면 그렇게 흥이 나진 않았을 것이다. 주제 선정도, 활동 계획도, 이끄는 것도 모두 멤버들이 중심이 되어 설계했기에 즐겁게 재미나게 놀이처럼 활동하는 것이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기후위기 시대 행동하기 3.
서로 신뢰하고 존중하는 문화 만들기
“제가 모임을 처음 만들 때 중요하게 생각했던 게 서로의 조력자가 되어주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마음이 시켜서 하는 일이기에 누구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도 있고요. 예를 들어 누군가 기후행동 행사를 하겠다고 하면 그때 마음 낸 사람이 기여하는 거예요. 누군가는 준비과정을 돕고, 또 다른 누군가는 당일 무대 세팅을 하는 거죠. 의무감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내는 만큼만 기여하기로요. 그리고 누구든지 솔직하게 의사 표현 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고 있어요.”
– 또바기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만나면 편해요. 공통 주제가 기후위기이기에 무슨 말을 해도 끄덕여 준다는 믿음 아래 대화가 오가니까 자주 만나고 싶고, 만나면 기운이 나요. 다른 데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회피하거나 불편해하는 사람이 있는데, 여기 오면 그럴 일이 없어요.”
– 민김이
1.5℃ 모임에서는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도 괜찮고, 남과 다른 생각을 꺼내도 비난하지 않고 들어줄 것이라는 신뢰가 있다. 내 이야기를 누군가 경청의 자세로 들어주고, 환대의 마음으로 맞이해주는 곳이 있다면 기꺼이 내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 있다. 나 자신을 내보일 수 있는 분위기 속에 존재한다는 것은 무언가 창조해낼 수 있다는 좋은 신호다. 무엇이든지 마음이 열려야 아이디어를 꺼내고 재미난 일을 벌일 수 있지 않던가. 1.5℃ 청소년들이 즐겁게 공부하고 다양한 기후위기 행동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는 분위기 속에서 지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들 스스로 그런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함께 약속과 기준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기후위기 시대 행동하기 4.
자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기
“부정적인 문제 인식보다는 자연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행동하자고 말하고 싶어요. 저는 지구에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 우리가 이것을 안다는 것 자체가 사실 큰일인데요. 우리가 이렇게 행동하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계속 나아가면 좋겠어요.”
– 또바기
또바기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뜻밖이다. 기후위기 행동에 앞서 지구로부터 물려받은 수많은 것에 대한 감사와 지구공동체 근간을 흔든 인간 중심적 사고에 대한 반성을 먼저 촉구한다. 그도 그럴 것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새로운 시선으로 자연을 대하게 된다. 폭염, 장마와 같이 지구가 보내는 위급한 신호를 그냥 넘어갈 수 없게 되고, 미세먼지 없는 하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삶을 살게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내면에 잠들어 있는 생태 감수성을 깨우는 일이다.
자기성찰로부터 세계로 확장해가는 실천
배움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누구에 의해 일어나는가? 1.5℃ 모임의 과정을 보면 배움은 결코 학교에서만, 교사에 의해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물리적 시스템과 전문가의 가르침도 개인의 배움을 신장시키지만, 스스로 배우고자 하는 동기와 배움을 설계해 나가는 주도성, 자신의 생각에 공감하는 동료들과의 대화, 신뢰와 존중의 분위기 속에서 더 나은 자신이 되고 세상을 이롭게 변화시킬 수 있다. 신영복 선생은 『담론』에서 “공부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키우는 것”이라 했다. 1.5℃ 청소년들은 변해가는 지구공동체에 대한 아픔을 느끼며 이를 해결해나가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만들어냈다. 자신을 알고 현재 무엇이 중요한지 알아차리며 세상을 바꿔나가는 힘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위기의 시대에 행동하는 것은 자기성찰과 올바른 세계인식으로부터 창조되는 것 아닐까.
최미나
최미나(ME나봄)
교육기획자. 협동조합 이공 청소년작업장 운영, 광주 청소년주도프로젝트 멘토로 활동하며 성공회대학교 교육대학원 재학 중이다. 광주 래미학교, 금산간디고등학교 길잡이교사로 일했으며, 독립출판물 『자기탐구생활』을 발간했다.
feelmn@naver.com
프로그램 사진제공_광주광역시청소년삶디자인센터 www.samdi.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