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이하 ‘인천센터’)는 2018년부터 생애전환 문화예술학교를 운영하기 시작하여 올해 4년 차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내가 사업을 담당하게 된 2020년에는 갑자기 닥친 코로나19로 대면 활동이 어려워져 일정 조정과 참가자 재모집 등 사업 진행에 품이 많이 드는 게 힘들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생애전환 문화예술학교가 지향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웠다. 경험에 비추어볼 때, 어려운 사업일수록 평가를 제대로 하고 결과를 체계적으로 정리해야 사업을 이어갈 동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기 위해 그간 인천센터에서 해석하고 적용한 경험과 고민을 나누는 것으로 시작을 삼고자 한다.
  • 2020 생활학교 <내 인생의 소울푸드>
  • 2020 생활학교 <새로 쓰는 농사달력>
전환의 출발점
인천 생애전환 문화예술학교의 큰 틀은 2018년과 2019년을 거치며 구성되었다. 2020년에는 이전의 고민과 노력을 이해하고 이어나가는 데 집중했다. 담당자와 지역 활동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서로 보조를 맞추어가는 게 좋지만, 사업을 하다 보면 이렇게 먼저 축적된 고민을 따라가야 할 때도 있다. 이 사업에 함께한 사람이 많지만, 특히 사업 첫해에 13회 차로 구성된 2개 클래스의 담임강사와 공부 모임을 이끌었고, 2019년부터는 참여자별 자발적 학습활동을 지원하면서 전체 사업에 대한 의견을 축적하는 데 일익을 담당한 윤진현 박사와 2018년 공부 모임부터 함께하면서 2~3년 차의 생애전환 워크숍을 정말 열심히 준비하고 운영한 이란희 영화감독, 최금예 연극 전문강사는 인천 생애전환 문화예술학교의 인적 중심이었다.
‘전환’은 어떻게 가능할까? 인천에서의 논의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50년 넘게 쌓인 삶의 형식을 전환하는 것은 쉬운 과제가 아니고, 짧은 기간에 이룰 수 있는 것은 더욱 아니다. 전환은 남이 가르쳐준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가 스스로 인식·의지·결단을 갖고 실행해야 비로소 가능하다. 그렇다고 일거에 성취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요컨대 이것은 때로 보이지 않을 만큼 아주 큰 원을 그리며 천천히 방향을 바꾸는 과정 그 자체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사업’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전환의 출발점을 이루는 영역이다. 출발에 앞서 전환을 시도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 그러니까 문화예술교육으로 일상을 발견하고, 전환을 환기하고, 작은 변신을 경험하고, 몸의 감각을 다시 깨우고, 새로운 몸을 만들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생활학교·예술학교–워크숍–활동 지원으로 이어지는 인천 생애전환 문화예술학교의 사업 구성은 이러한 이해에 바탕하고 있다.
  • 2020 사이를 잇는 선 데일리드로잉(서구평생학습관)
  • 2020 몸 그리고 쉼표(연수문화원)
생활학교‧예술학교 : 삶의 힘, 몸의 감각
문화예술교육의 지향은 분명하지만 그 영역은 넓다. 인천 생애전환 문화예술학교에서는 생애전환과의 연결지점을 고려하여 영역을 좁혀 ‘생활학교’와 ‘예술학교’로 구체화했다. ‘예술학교–읽고 쓰는 몸을 위한 예술’에서는 예술교육의 일반적인 목표를 지향한다. 전통적인 예술 표현영역을 응용하여 몸의 감각을 다시 깨우고, 주변을 관찰하고 이야기하는 표현활동을 중심에 두었다. 몸 움직이기, 날마다 그리기, 영상으로 기록하고 이야기하기 등의 활동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는 새로운 시선으로 세계를 보고 발견하고 표현하는 일련의 예술과정과 동일한데, 잃어버린 꿈을 매개로 한발 나아가기와 자주 사용하지 않았던 능력의 계발이라는 데 일차적 의미가 있었다.
‘생활학교-다시 쓰는 생활의 기술’은 인천 생애전환 문화예술학교에서 좀 더 강조하는 부분이다. 누구에게나 현재의 삶은 불만족스러울 수는 있지만, 현재를 만들고 각 개인의 삶을 지속하게 하는 소중하고 요긴한 쓸모와 의미가 있다. 이를 이해하고 긍정하는 단계는 중요한 시작이다. 이는 실재하는 ‘불만’을 인정하고 자신의 삶에 대한 이해와 화해, 자기애와 자긍심의 복원을 기초로 두고, 지키고 가져가야 할 것과 변화해야 할 것에 대해 생각하고 판단하는 과정과 연동되어 있다. 전환을 희망하면서도 망설이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불안이다. 5, 60세가 되면 누구나 무엇보다 변화하는 신체를 자각하며 다른 삶을 상상하고 구상해 보지만 좀처럼 실행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전환으로 현재 삶의 안정성이 깨질까 두렵기 때문이다. 두려움을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해보는 것이다. 스스로 생활을 꾸려나갈 힘이 있다면 좀 더 용감해질 수 있다. 혼자 여행하기, 바느질하기·수놓기, 음식 만들기, 농사짓기, 옷 입기 등의 활동은 잊었던 혹은 해보지 않아서 알지 못했던 신체 능력을 발견하고 계발하는 과정이다.
워크숍 : 관찰을 통한 발견, 전환 모색
워크숍 ‘전환을 위한 삶의 방법’은 신중년이 전환을 찾아가는 각자의 활동을 하기 전에 배치한 일종의 연습과정이다. ‘발견노트’라는 방법을 통해 일상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습관을 들인다. 이는 당연하던 자신과, 자신의 생활과 주변을 낯선 눈으로 새로이 자각하고 살피고 기록하는 일이었다. 이를 다시 말과 연극 활동 등 행동으로 드러내고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지금까지의 나와는 다른 ‘어떤’ 전환을 구상하고 구체화하는 활동으로 이어지는 구성이다. 2019년에는 6회 차로 운영하였는데, 전환 계획을 구체화하기에는 짧다는 평가가 있어 2020년에는 8회 차로 늘려 운영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관련 좌담 기사(삶의 전환-모험을 기획하기 , 2021.04.12.)에서 이란희 영화감독의 이야기로 더 생생히 들을 수 있다.

  • 2019 ‘스스로 배우는 학교’ 중간 워크숍
  • 2020 워크숍 ‘전환을 위한 삶의 방법’
활동지원 : 전환의 탐색과 시도
워크숍과 생활학교·예술학교 중 1개 이상의 과정을 수료한 참가자에게는 생애전환 활동을 직접 찾아서 해보는 활동지원 프로그램 ‘스스로 배우는 학교’를 제공했다. 막연하게 생각만 하던 전환을 실제로 실행해볼 수 있도록 소정의 활동비를 지원하고 워크숍을 진행했던 강사들의 자문을 받으며 활동 방향을 탐색하고 계획하여 실제로 진행해 보고 그 결과를 정리하는 보고서를 작성, 제출하는 일련의 과정을 수행하는 것이다. 자문단은 참가자의 활동 장르나 수준, 성취 결과보다는 스스로 해보고자 하는 계획 자체를 격려하고 이를 계획-실행-결과 정리의 과정으로 편성하는 것을 돕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이는 생애전환 사업의 대상이 지닌 특수성 때문이었다. 변화하고자 하는 의욕은 있지만 실행해본 경험은 적은 참가자에게는 무엇보다 시작하는 한걸음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고, 지정된 기간 안에 수행하고 결과물을 제출해야 하는 과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필요하였다.
2019년에는 12명, 2020년에는 11명이 활동을 완료했다. 활동 및 결과의 폭은 넓다. 전환 후 새로운 방향을 어느 정도 잡은 참가자는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결과에 이르기도 했다. 대부분 자신에 대한 이해, 자신의 생각과 꿈을 표현하거나 평소 생각만 하던 이벤트를 실천해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자신에 관하여 글과 그림으로 정리해 책으로 발간하거나, 시 산문 사진 그림 등의 형식으로 기록하거나, 공연의 형식을 취하기도 했다. 혼자만의 여행이나 다른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서 자신을 관찰하고 전환에 관한 시야 넓히기를 시도하거나, 가족과의 관계를 위해 직접 요리를 해서 대화가 있는 가족 식탁을 마련하기도 했고, 사진책을 만들어 선물하기도 했다. 활동 자체를 대단하게 보지 않을 수도 있지만, 몇 번 시도하려다가 실패한 자전거 타기에 다시 도전하기도 하고, 청년기부터 미싱 일을 했지만 정작 자신을 위해서는 간단한 옷가지만 만들다가 이번 활동으로 자신의 몸에 맞고 개성이 드러나는 멋스러운 옷을 직접 만든 경우도 있었다.
‘생애전환’은 모험이다
이 사업을 맡기 전에는 “생애전환이 50세부터 64세까지만 해당하는 것이 아닐 텐데 왜 신중년만을 대상으로 하는 거지?”라는 생각을 했었다. 나 자신을 돌아보면 나의 생애전환 지점은 20대 중후반, 30대 후반을 꼽을 수 있다. 몇 가지 상황과 작은 의지가 맞물리면서 큰 변화로 이어졌지만, 당시 특별히 전환을 고민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생애전환 문화예술교육 사업을 맡고 보니 다른 지점이 보였다. “생애주기별 문화예술교육 정책에 따라 ‘신중년’ 특화 문화예술교육을 한다면 그 지향을 ‘생애전환’으로 두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니 비로소 수긍이 되었다. 인천센터에서 신중년의 자발적 활동을 지원할 방안을 찾거나 그 전 단계로서의 워크숍을 시도했던 것은 생애전환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관한 고민에서 강구된 것이다.
이런 고민과 시도의 성과는 무엇일까? 간단히 대답하기는 불가능하다. 심지어 이 사업에는 여전히 어렵고 고민되는 지점이 많기까지 하다.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는 주요한 이유 중 하나는 결과물의 편차가 매우 크고 더구나 참가자의 전환 계획이 ‘해보고 싶었으나 그동안 못 해봤던 것’에 머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가지고 있는 것을 조금은 내려놓고 삶의 방식이나 태도에서 ‘전환’이 있기를 바라는 기대와 현실 사이에는 간극이 크다. 그러나 ‘전환’이라는 단어가 내포한 거대한 인간적 에너지를 생각하면 한두 해에 걸친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그 결과가 가시권에 들기를 바란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희망이라 할 것이다. 더구나 문화예술교육에서는 물론이고 한국 사회 전체로 보아도 이러한 ‘전환’의 경험은 별로 없다. 이런 형식의 요구를 해본 적도 없고 이런 형식의 길을 가본 적도 없다. 경험 없는 새로운 길을 가는 것은 비유하자면 대항해의 시대를 맞이하는 모험가와 다르지 않다.
‘전환’에는 오랜 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모른 척 묻어두고 사업수행 결과에 관해 변명하거나 안주할 수는 없다. 작년 말 인천 생애전환 문화예술학교를 돌아보는 자리에서 ‘전환에 대한 강박’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 ‘전환’ 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으면 홀가분하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강박은 쉽게 놓을 일이 아니다. 최소한 ‘긴장감’ 수준만큼이라도 꼭 필요하다. 이 시도를 지속하면서 정책사업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는지 가늠해보는 작업이 계속되어야 한다. 이 사업에 참여하는 신중년에 대해서, 구체적인 활동 하나하나에 대해서 점검해가면서 ‘모험’ 수준으로 나아가도록 격려해야 하고 다양한 경로와 상상을 제공하고 자극해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안정적인 사업방식에도 모험이 필요하지 않을까.
가보지 않은 세계로 향했던 모험가들이 새로운 세계를 열었다. 이러한 작업으로 열어가게 될 새로운 시공간의 힘을 정의하기는 시기상조이지만, 생각해보면 모든 교육이란 결국 변화를 목표로 한다. 이러한 모험이 문화예술교육의 전환에 한 역할을 하게 될지 누가 알 것인가.
김영경
김영경
문화예술교육에서 일한 지 어느새 10년이 훌쩍 넘었다. 새로움을 잃어버리지 않으려 하고 있다.
shal@ifac.or.kr
사진제공_인천 생애전환 문화예술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