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밈없는 질문과 성찰이 방향을 만든다

서울시 동북권역 마을배움터

말과 기록은 플러스마이너스1도씨를 항상 고민하게 한다. 문화예술 분야의 여러 작업자와 협업함에도, 기획을 했다는 이유 혹은 언어화에 좀 더 능하다는 핑계로 우리에게 쓰고 말할 권력이 자주 주어진다. 하지만 한 사람의 발화가 작업 전반을 대표할 때, 필연적으로 비약이 일어난다. 함께 한 이들의 존재, 다른 감각과 해석, 다음 방향에 대한 제안까지, 구구절절 적어도 놓치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전체가 합의한 문장이 아니기에 검열이 늘어난다. 낱말 하나하나가 무거워진다. 하지만 ‘품 청소년문화공동체’(이하 ‘품’)의 기록은 29년이 쌓였음에도 여전히 꼼꼼하고 진솔하다. 표현은 대담하고 그때그때의 고민을 거침없이 적는다. 품이 위탁 운영하는 동북권역 마을배움터 ‘숨’(이하 ‘숨’) 역시 마찬가지다. 서울시 1호 마을배움터이기에 더욱 정체성을 놓지 않으려는 의지가 숨의 홈페이지에, 공간 곳곳에 담겨있다. 품을 통과한 언어가 투명하게 숨을 보여준다.
진심 어린 나의 기록으로부터
품은 활동 초부터 기록을 남겼다. 처음에는 ‘전달’에 집중했다. 전달은 보여주는 것이고 읽는 이의 평가를 수반한다. 기획단계에서 오류가 생기고 진행 과정에서 감정이 오르내리는 것을 그대로 적기란 쉽지 않다. 문장이 가공되는 만큼 글은 과장된다. 그러기를 20여 년. 기록이 쌓일 만큼 쌓여서일까, 질문이 트이기 시작했다. 심한기 품 대표(동북권역 마을배움터 센터장)는 “나의 기록이 쌓여야 진짜 공유될 수 있는 공공의 아카이빙이 나오는 것 같다”라고 말한다. 나의 기록이란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놓쳤고, 무엇이 어렵고, 무엇을 희망하는지’ 정직하게 쓰는 글이다. 가치와 의미를 전달하기 전에, 자신을 마주하고 풀어내는 과정이다. 품은 사업기획안 하나를 쓰기 위해 몇 번이고 자기 글을 쓰고 나눈다. 진행하기도 전에 지치지는 않을까 싶지만, 기획에 대한 자기 의심과 상상, 두려움과 설렘을 토로하다 보면 지구력과 애정도가 되레 상승한다고 말한다. 사업 하나에 들이는 공이 상당하기에 동시에 여러 프로젝트를 맡을 수도 없다. 경영평가를 받으면 낙제일 것이라는 심한기 대표의 웃음 뒤로 진심과 정성이라는 단어가 지나간다.
자신을 적어가는 시도는 사업기획 과정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숨의 활동가들은 아침이면 SNS로 인사와 일과를 나누고, 퇴근할 때는 ‘업무 일기’를 공유한다. 한나절의 질문과 발견, 기분 등이 담긴 일기는 서로를 살피는 터가 된다. ‘주간 나눔’ ‘달 나눔’을 하는 시간도 있다. 이따금 수다만으로 해가 저물기도 하지만, 바쁜 업무 속에서 이 시간만큼은 자신을 진솔하게 드러내고 서로를 살뜰하게 알아가는 울타리이기도 하다. 숨에서는 활동가뿐 아니라, 참여하는 이들도 자기 기록을 남기고 나눈다. 물론 ‘말’이라는 효율적인 소통 수단이 있지만, 발화자와 수신자의 언어 사이에는 간극이 있어 이해하려는 마음은 곧잘 미끄러진다. 때론 실제보다 아름답거나 비참한 풍경이 되기도 한다. 이럴 때 글은 말 사이에 숨은 삶의 자잘한 소리, 침묵에 담긴 생각과 마음을 담아내는 옹기가 된다. 진심 어린 기록을 마주한 활동가가 감히 무엇을 미화하거나 미워할 수 있을까. 그저 ‘나는 어떠한가?’ 되물을 뿐이다. 품의 기록이 정직하다고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물론 심한기 대표의 말처럼, 기록 행위 자체에 집착하게 되면 본질을 놓칠 수도 있다. ‘나의 기록’이 정직하려면 ‘환대’가 필수적이다.
‘스스로 그러한’ 존중과 환대
서울시 동북권 NPO지원센터에서 발행한 기록집 「품을 품은 사람들」을 보면 여러 참여자가 환대란 무엇인지를 전한다.
“품은 내가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려줬어.”
“판단이나 평가 없이 나의 모습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줬어.”
“그렇게 매일 가서 라면만 먹고 오는데도 선생님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야.”
“질문과 응원, 지지를 받는 과정에서 내가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드니까 흘러가는 대로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환영과 환대는 다르다. 환대의 기본 단위는 오롯이 한 개인이다. 상대방의 위치나 말, 태도와 상관없이, 무기력한 대로 다혈질인 대로 회의적인 대로,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환대의 대상은 집단이 될 수 없다. 성격별로 취향별로 그룹화해서 공식처럼 대할 수도 없다. 환대가 학교나 학원에서 실현되기 어려운 이유이자, 문화예술교육에 있어서 중요한 까닭이다. 품은 초창기부터 자리를 열 때 가능하면 다섯 명에서 열 명 규모를 고집한다. 개개인의 고유성을 발견하고 존중하기 위해서다. 또한 기획하는 곳곳마다 빈자리를 꼭 남겨둔다. 머뭇거리는 이에게 한두 개의 빈자리는 초대석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너무 잘 짜면 안 된다”라고 심한기 대표는 말한다.
가령 숨에서 진행하는 ‘십만원 프로젝트’는 청소년이 하고 싶은 작업을 스스로 찾는 프로젝트이다. 십만 원으로 시작해서 매해 십만 원씩 프로젝트 지원금이 올라가는데, 최대 5년까지 연장 지원한다. 이제 3년 차이지만, 50만 원을 지원할 상상만으로도 미소가 가득하다. ‘십만원 프로젝트’에는 숨의 활동가 전원이 참여한다. 이렇게 저렇게 해보라는 조언자가 아닌, 질문하고 고민을 나누며 힘을 실어주는 환대자로서 말이다. 그렇기에 프로젝트 참여자들은 자신만의 사유를 놓치지 않는다. 고유의 삶과 스타일을 담아낸다. 오르내리는 감정에 대해 단편영화를 찍고, 자해를 성찰하며, 인권에 대해 사유하는 등 열 개가 넘는 프로젝트 속에는 이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동북4구 활동가들과 진행한 ‘여행학교 숨’ 또한 마찬가지다. 계속되는 사업 안에서 지쳐있는 활동가들의 성장을 응원하고 지지하기 위해 시작한 이 프로그램에 대해 심한기 대표는 “첫 모임을 수다 자리로 준비했을 뿐”이라지만, 이것이 말처럼 쉬울까. 모인 이들이 멈출 줄 모르고 이야기 삼매경에 빠진다. 약속된 시간은 끝나가지만 그럴듯한 여행 계획안은 나오지 않는다. 기획자로서 아찔한 순간이지 않을까. 하지만 숨은 집요한 과정 설계를 경계한다. 촘촘한 설계 뒤에 기획자의 불안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기획자의 불안은 시간과 과정에 대한 권력을 쥐게 하고, 참여자를 수동적으로 만든다. 품 역시 기획 권력을 이양하기까지 숱한 시행착오를 겪어왔다. 그렇기에 ‘self-so’(스스로 그러한 태도)를 좌우명처럼 입에 달게 된 것은, 어쩌면 자기 실천을 위한 주문일지도 모르겠다. 기획단계에서 치열하고 처절하게 논의했던 것은, 이토록 실행 과정을 비워놓기 위함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코로나19 속에서도 ‘여행학교 숨’은 기어코 또 다른 채비를 할 수 있던 것 아닐까.
  • 십만원 프로젝트 중간 공유회
만남의 본질은 서사다
작년, 코로나19는 일상을 정지시켰다. 수많은 공간이 버티다 못해 문을 닫았고, 숨 홈페이지에도 ‘배움터 운영 중단’이라는 공지가 올라와 있었다. 하지만 숨의 ‘별의별짓’ 소식은 여전히 공유되었고 내용 또한 풍성했다. 유튜브 채널에는 양질의 강의와 포럼, 청소년들의 영상이 자주 업로드되었다. 팬데믹 상황이라고 믿기지 않았다. 품은 어떻게 대안을 찾은 걸까?
마을배움터 곳곳을 소개해주던 활동가는 “온라인 만남이 기괴하고 우울했던 것은 우리도 매한가지”였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잠시 중단하면 상황이 나아질 거라고 여겼지만 확진자 수는 점점 늘었고, 올해 안에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계속되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있을 때 숨을 흔든 건 불현듯 돌아온 ‘판’(별명)이었다. 그는 청소년 시절 품을 만났다가 예술 공부를 하러 유학을 갔다. 한동안 방송국 피디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절을 보내다가 막 프리랜서로 전향한 그는 숨의 활동가들에게 ‘뉴노멀’에 대해 전했다.
“디지털은 경멸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할 수 있는 도구이다. 줌(Zoom)은 15년 전 할리우드 영화 속 회의 매체로 빈번하게 등장했다. 모든 만남이 온택트여야 하는 극단적 상황은 괴롭지만, 우리는 이미 하루의 절반 이상을 온라인에서 살고 있다.”

그가 건네는 이야기는 강렬했다. 과학에 대한 터부시와 기술에 대한 불편함을 다시 사유하게 했다. 숨은 장비를 샀고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판과 함께 첫 번째 비대면 포럼 <교육에 묻는다>를 진행했다. 현장에서는 아날로그 방식 그대로 진행하면서 송출만 디지털로 해봤는데, 대면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포럼 중간중간 실시간 소통이 이뤄졌다. 영등포에서, 제주도에서 질문이 건너왔다. 장소 제약은 문지방만큼 낮았고 그마저도 아카이빙이 해소해주었다. 나 역시 방송이 끝난 한참 후에 포럼을 시청했다. 디지털세계는 시공간을 초월한 접속이 가능하면서도 공유와 동시에 기록이 이루어졌다. 이후로 축제 ‘10개(開)판’에 이르기까지, 품의 29년 사상 처음으로 온라인 만남을 실험하고 시도하며 비대면 만남을 준비할 때 꼭 해야 할 질문이 무엇인지를 발견해갔다.
우리 사회는 갑작스럽게 만남의 전환기를 맞았다. 예술가들은 현장성이 사라진 자리에도 감각은 살아있기를 바라며 A부터 Z, 그 이상의 품을 들여야 했다. 그럼에도 감응이 일어나고 있는지, 마음이 닿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대면 사회가 될 때까지 버텨야 하는 것인지, 본격적으로 기술을 배워야 하는 것인지 헷갈렸다. 심한기 대표는 “전환의 시대를 건너며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서사”이며 “황금비율의 핵심은 스토리”라고 말한다. 비대면 이전의 시간을 돌아본다. 그동안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쌓기 위해 무엇을 했었나. 만나는 이들을 살뜰히 챙겼던가. 필요하다면 전화도 하고 메일도 주고받으며 서로에 대해 알아갔던가. 기획의 이유는 끊임없이 물었던가. 왜 이 시간을 꾸리고 만남을 이어가는지, 마지막까지 고민했던가. 예나 지금이나 그렇지 않았다면, 혹 만남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는 않았던가. “기술은 도구이고 매체다. 목표가 되면 그 안에 갇히고 만다.” 비대면이라고 해서 만남의 본질이 바뀌는 건 아니다. 황금비율도 마찬가지이다. 때에 따라 아날로그를 디지털로 가져오기도 하고, 반대로 디지털을 아날로그화할 수 있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아날로그만을 고집해야 하고, 디지털만으로도 갈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황금비율이란 정해진 숫자가 아니다. 모인 이와 전하는 이야기에 따라 달라져야 하는 만남의 그릇이다. 서사가 쌓이고 스토리가 표현되는 방식이다. 숨은 자신들의 황금비율을 찾았다고 한다. 이제 비대면 시대가 무섭지 않다며 미소 짓는다.
새로운 시대로 이끌 현장의 담론
지금껏 문화예술인들은 정체성 인정으로, 아티스트 페이로, 계약조건과 복지 이슈로 나름의 투쟁을 해왔다. 때마다 사업 담당자에게 호소하기도, 작은 테이블로 모여 작당을 꾀하기도 했다. 하지만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문화예술계는 와르르 무너졌다. 생존의 위기는 이어지고, 사람 잃은 예술은 시대의 동요 속에 이리저리 휩쓸린다. 표정 있는 얼굴들의 이야기를 모아낼 자리가 절실하다.
“지금이 아니면 영영 놓칠 것 같다. 현실을 쫓고 정책을 쫓다가 정말 중요한 건 잃을 것이다. 최대한 여럿이, 최대한 긴 호흡으로 현장의 언어를 모아가야 할 때다. 우선은 이 시기에 ‘문화’가 무엇인지, ‘예술’이 무엇인지, ‘문화’와 ‘예술’이 왜 합쳐져서 쓰이고 있는지부터 다시 묻고 정리하려 한다.”

심한기 대표에게 담론이란 “경험과 이론을 근거로 이 시대에 필요한 것들을 내세우는 목소리”다. 지금껏 담론은 연구자와 교수들이 형성해왔다. 자연히 경험보다는 이론에 비중이 실렸다. 문제는 언어의 차이였다. 경험과 이론의 언어 차이는 형용사와 명사만큼이나 컸다. 자잘하고 소중한 이야기는 도표 속에 정리되면서 잘려나갔다. 지지고 볶는 세월은 현장의 것인데 마침표는 다른 이가 찍는 셈이었다. 그 목소리가 정책에 깃들 리 만무했다.
그래서 숨은 현장의 담론을 만들어갈 작정이다. ‘왜’를 집요하게 파고들 심산이다. 그래야 시대의 페이지가 넘어가는 기점에서 ‘우리가 지금껏 무엇을 했는지, 왜 했고, 어떻게 했는지’를 정리하고 돌아볼 수 있을 터다. 시대적 변화와 요구 속에서 본질을 점검해야 다음 방향을 합의하고 정책으로 내밀 수 있는 언어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동북4구의 활동가들이 모여 ‘담론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공부하고 있다. 전국의 ‘마을, 문화예술, 교육’ 관련 활동가를 모으고 현장과 함께 언어를 구축해갈 연구자를 물색하고 있다.
전환의 시대, 우리는 무엇을 질문해야 할까. 자기 기록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환대를 지나 기획 권력과 개별성으로, 담론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다시 자기 기록으로 회귀했다. 전환이 “이전 것을 고민하며 다음을 제대로 연결하는 것”이라면, 이전 것을 고민하기 위해 자기 기록을 들여다봐야 한다. 자기 기록이 유의미하려면 스스럼없는 질문과 정직한 성찰이 담겨야 한다. 그것을 준거로 다음을 이어가야 새로움 속에서 쓸려 다니지 않을 수 있다. 취할 것과 버릴 것, 시도할 것과 타협하지 않을 것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우리 작업실에 돌아와 ‘작업일기’ 파일을 만들었다. 시작이 반이라지만 새 습관 들이기가 만만하지 않다. 그래도 심한기 대표가 마지막까지 얘기한 ‘공공의 아카이빙’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해마다, 이슈마다 변하는 활동의 겉모습만이 아니다. 오히려 ‘그럼에도’의 서사에 가깝다. 현실과 지향 사이의 비루한 고백, 자잘하지만 절절한 자기 의심, 그럼에도 계속해가는 별것 아닌 이유들의 들쭉날쭉한 서사. “객관적이기만 하면 피곤하고 주관적이기만 하면 헛헛하다”는 목소리가 아른거린다. 보이는 기록과 보이지 않는 기록 사이의 균형을 맞춰야겠다.
김세영
김세영
플러스마이너스1도씨. 목2동에서 나고 자란지 한참인데, 잘 누비고 제대로 발 딛기는 오 년 정도 되었다. 제 꼴대로, 제멋대로 살아도 되는 문화를 그리며 동네에서 이런저런 기획을 하고 있다. 여럿이 머리를 맞대고 골칫거리를 만들겠다며 끙끙거리는 모습이 그렇게 웃기고 또 소중하다.
plusminus1c@naver.com
썸네일사진_‘십대들의 십만원 프로젝트’
사진출처_동북권역 마을배움터 페이스북 www.facebook.com/vba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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