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50+세대(50플러스 세대)’ 혹은 ‘신중년’을 위한 문화예술교육이 또 하나의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동시대가 문화예술교육의 당사자로서 신중년에게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왜 나이듦의 과정에서 삶의 전환이라는 도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교사에서 교육연극 전문가로 삶의 전환을 맞이하고 ‘50+인생학교’에서 연극을 매개로 신중년과 소통하고 있는 구민정 홍익대학교 교수와의 만남을 통해 신중년에게 예술의 힘은 어떤 의미인지 들어보았다.
생애전환 문화예술교육의 당사자로서 선생님의 삶에서 어떤 전환이 있었는지 듣고 싶다.
어떻게 보면 흔치 않은 전환을 했다. 1991년부터 중학교 사회교과 교사로 일했다. 그러다가 2019년 50+가 되었을 때 대학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본격적으로 연극교육을 하기 시작했다. 교육이라는 큰 범주 안에는 있지만 가르치는 과목도 대상도 완전히 달라졌다. 되돌아보면 전환을 위한 준비는 꽤 일찍부터 시작했다. 사회교과 교사였을 때도 교수학습법에 연극을 접목했다. 연극을 하고 싶었고, 가장 좋은 방법이 수업시간에 연극을 하는 것이었다. 당시는 예술적인 작업이라기보다 교육적인 작업이었다. 연극을 통해 예술이라는 형식을 빌려왔지만, 내용은 어디까지나 교육이었다. 그러면서 조금 더 예술적으로 연극을 하고 싶은 열망이 생겼다. 동아리 활동을 이어갔고 대학원에 진학하게 됐다. 어쩌면 30대 후반부터 전환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연극으로의 전환을 꿈꾼 이유가 궁금하다. 어떻게 연극과 만나게 되었나.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연극을 접하면서 연출자의 경험을 했다. 한 명도 제외하지 않고 작품에 모두 함께한 것에 칭찬을 받았다. 하나의 프로젝트가 완성되는 성과를 함께 거두는 기쁨은 세상에 태어나서 얻은 기쁨 중 최고였던 것 같다. 중학교에 진학하고 사회교과 선생님을 존경하면서 연극과 사회과 교사라는 꿈을 어떻게 함께 펼칠 수 있을지 고민했다. 학교에 연극반이 없었지만 친구들과 소설책으로 희곡을 만들고 배역을 나눠 공연했다. 나에게 초등학교 6학년부터 중학교 때까지는 정체성이 형성되는 정말 중요한 시기였다. 내 인생에 대한 설계가 거의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다음부터는 내가 세운 꿈이 실현될지 안 될지 타진하는 과정이었다. 사회과 교사의 꿈을 꾸면서, 인생이 짙어지면 연극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고등학교 때 연극반 활동을 계속하며 연극에 대한 꿈을 이어갔다.
초·중학교 시기가 중요했다고 하셨다. 삶은 모든 시기가 중요한데 지금 우리는 신중년에게 ‘전환’이라는 키워드로 문화예술교육을 하려고 한다. 왜 이렇게 신중년에게 관심 가지게 되었는지, 혹은 가지려고 하는지 듣고 싶다.
사실 내가 그 연령대다. 막연히 예술이 왜 중요하고 신중년 시기가 왜 중요한지 이야기하기 전에 측은한 마음을 갖게 된다. 그분들을 만나보니 무엇을 표현하든 두리번거리고 망설이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왜 그런 태도를 몸에 체화하고 있을까. 지금의 50+세대가 살아온 삶 자체가 그런 것 같다. 그들은 부조리한 시대, 사회적으로 큰 변화의 시기를 거치면서 청춘을 희생했고, 자신을 위해 살지 않았다. 또한 생업을 유지하느라 스스로의 삶에 대해 돌아볼 겨를 없이 ‘퇴직’이라는 전환을 맞이했다. 시간이 지나서 이제 생애전환을 해야 하는데 무엇을 하며 살고 싶은지 잘 모르거나, 어떻게 구현해야 하는지 방법을 잘 모른다. ‘나만을 위해서 살아도 되나’ 하는 의문을 가지면서 계속 두리번거리기도 한다. ‘50+인생학교’를 하면서 조금은 다른 삶에 용기 낼 수 있도록 함께하고 싶었다. 당신을 위해서 이제껏 살아온 삶을 되짚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고 용기 내도록 응원하는 것이다.
인구 구성으로 봤을 때도 50+세대는 꽤 비율이 높다. 그래서 이분들을 통해 사회의 문화 자본이 형성될 수 있다고 본다. 시간과 경제력 등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 50+세대, 생애전환을 맞이한 이분들이 바뀌면 우리 사회가 바뀐다. 이분들은 무엇이든 열심히 하며 매우 잘한다. 문제의식도 있고 할 수 있는 능력도 있다. 그런데 이분들이 엉뚱한 곳에 가서 열심히 하면 안 되지 않나.
인구 구성으로 봤을 때도 50+세대는 꽤 비율이 높다. 그래서 이분들을 통해 사회의 문화 자본이 형성될 수 있다고 본다. 시간과 경제력 등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 50+세대, 생애전환을 맞이한 이분들이 바뀌면 우리 사회가 바뀐다. 이분들은 무엇이든 열심히 하며 매우 잘한다. 문제의식도 있고 할 수 있는 능력도 있다. 그런데 이분들이 엉뚱한 곳에 가서 열심히 하면 안 되지 않나.
그간 50+인생학교 부학장으로 ‘드래곤 호의 모험’ 워크숍을 통해 신중년과 연극으로 만나 왔다. 그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발견한 그들의 모습이 있다면 무엇인가.
‘드래곤 호의 모험’은 교육연극 학습모델로, 1박 2일 워크숍 형태로 진행된다.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작은 규모로 진행했다. 워크숍에 참여하는 분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발적이고 다른 사람을 많이 배려한다. 그리고 잘하지 못해도 빼지 않는다. 처음에는 망설이고 두려워하는데, 서서히 용기를 내기 시작한다. 어느 시기가 되면 어린아이처럼 잘 표현한다. 그렇게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면 용기 내는 활동을 저마다 할 수 있게 된다.
최근에 함께 쓰신 책 『생애。전환。학교』에서 50+세대의 자산은 ‘이야기’이며 그들의 ‘이야기’는 힘이라고 하셨다. 아이들과 같은 놀이, 망각과 가벼움, 모험 그 자체가 중요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책에 담지 못했던 이야기가 있다면 더 말씀해 달라.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갖는 게 중요한데, 이분들을 놀게 하는 게 진짜 어렵다. 그래서 제일 처음에 “가장 자유로운 상태가 되어 춤추면서 자기 인생을 이야기할 수 있는 어른은 어떤 어른일까”라는 약간은 철학적인 질문으로부터 출발한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어제는 싸웠지만 오늘은 다 잊어버리고 놀 수 있는, 그래서 뭔가 꽁하지 않고, 과거에 연연하지 않으며, 툭 털고 일어나서 춤을 출 수 있는. 그게 망각하고 몸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닐까. 그럴 수 있다면 너무 멋있을 텐데 그런 어른은 어떻게 살아갈까. 이런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놀이터에 아이들이 놀고 있는데 유리 조각이 몇 개 보인다. 어린아이와 같이 몸이 가벼운 어른이라면 어떻게 할까. 세상에 호통치는 어른이 아닌, 조용히 치워주는 어른이 되기 위해서 놀아보자’고 한다. 어른이 되어서는 해 보지 못한 놀이, 어린 시절에 갖고 놀았던 것들을 가지고 그림도 그리고, 춤도 추고, 연극도 하면서 논다. 그러다 보면 스스로 전혀 다른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억눌렀던 것을 다시 끄집어내서 펼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놀이, 망각과 가벼움, 모험은 그런 의미이다.
대본이 아닌 각자의 살아온 이야기로부터 연극은 출발한다. 구성원이 서로의 이야기를 하나둘 더하는 과정에서 작품이 탄생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각기 다른 이야기가 있지만 그 속에는 보편적인 내용 또한 숨어 있다. 바로 ‘희생’이라는 단어이다. 누군가를 위해 살아오다가 이제야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 이야기는 풍부한 예술적 소재가 된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연극으로 구성하고 다시금 서로의 연극을 본다. 이야기와 극을 통해 드러나는 자기 삶의 지혜를 동료들이 해석해주고 그 삶이 숭고했음을 같이 공감한다. 내 삶이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나의 삶이 숭고해지고 소중해지는 것이다. 이처럼 내 이야기가 예술이 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이야기가 가진 힘은 그런 것이다. 서로를 살게 해주는 것이고, 그 이야기들은 결국 문화 자본으로 자리 잡게 된다.
대본이 아닌 각자의 살아온 이야기로부터 연극은 출발한다. 구성원이 서로의 이야기를 하나둘 더하는 과정에서 작품이 탄생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각기 다른 이야기가 있지만 그 속에는 보편적인 내용 또한 숨어 있다. 바로 ‘희생’이라는 단어이다. 누군가를 위해 살아오다가 이제야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 이야기는 풍부한 예술적 소재가 된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연극으로 구성하고 다시금 서로의 연극을 본다. 이야기와 극을 통해 드러나는 자기 삶의 지혜를 동료들이 해석해주고 그 삶이 숭고했음을 같이 공감한다. 내 삶이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나의 삶이 숭고해지고 소중해지는 것이다. 이처럼 내 이야기가 예술이 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이야기가 가진 힘은 그런 것이다. 서로를 살게 해주는 것이고, 그 이야기들은 결국 문화 자본으로 자리 잡게 된다.
50+세대에게 ‘전환’이란 어떤 의미인지 많은 분이 궁금해한다. 앞서 언급해주셨지만, 선생님의 경험으로 설명해주시면 좋겠다.
굉장히 힘 있는 전환이다. 기름 자동차가 전기 자동차가 되는 것과 같다. 외형은 달라지지 않는데 동력이 전혀 다른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50+세대는 삶의 지혜와 그 시스템에 대한 이해를 다 갖추고 있기 때문에 진짜 전환인 것이다. 청년이 가진 도전과 모험의 전환과 달리, 50+세대가 가진 전환의 동력은 그동안의 모든 시스템을 아는 경험으로부터 이제 다시 다른 방법으로 해 보면 바뀔 수 있겠다는 가능성까지 내포하고 있다. ‘체인저(changer)’가 아니라 ‘컨버터(converter)’이다. 그래서 ‘전환’은 중의적이고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나의 삶뿐 아니라 세상을 지혜롭게 바꿀 수 있는 전환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성찰해야 한다. 잠시 멈춰서 자기가 살아온 과정에서 타성과 타의에 젖었던 것을 벗어던지고 아름다움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예술이 필요하다. 다양성이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운 세계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선배 시민으로서 신중년에게 예술은 필수사항이 된다. 아름답게 관계 맺기 위해 미적 감각과 조화가 필요하다. 그간 바삐 사느라 이것을 간과했다면, 이제는 생애전환을 맞아 이를 고려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신중년의 삶은 예술을 통해서 무언가를 하고자 한다.
신중년의 삶을 전환하기에 예술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셨다. 거꾸로 보면 전환을 맞이한 신중년 당사자들에게 예술이 가진 힘이 있기에 이렇게 주장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들에게 예술은 어떤 힘이 있을까.
이야기가 힘을 가지고 있다고 했지만, 그냥 “당신의 이야기를 해 보세요”라고 하면 너무 딱딱하고 건조할 뿐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재해석하는 힘, 그것이 예술이 가진 힘이다. 다시 해석해서 펼쳐놓을 수 있는 모든 과정 자체가 예술인 것이다. 더욱이 이들이 예술을 원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가장 잘 펼쳐낼 수 있는 좋은 그릇이 예술인 것이다. 예술과 함께 생애전환을 맞은 그들은 무언가 새로운 지식을 배워야 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어떤 삶의 경험이든 그 자체가 이미 전문적이다. 그렇기에 새로운 어떤 것이 인풋(input) 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웃풋(output) 되어야 하는데 이것을 담아내는 그릇이 예술이다. 그럴 때 조화를 이루며 가장 행복해질 수 있다. 예술적으로 표현할 때 자기가 가지고 있는 그 어떤 것이 약간 고양된다고 할까. 그런 경험이 스스로를 존엄하게 만든다. 그 존엄함이 고양되어 아름답게 표현될 때 지혜로운 선배 시민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생애전환을 맞이한 그들에게 예술은 힘이 있다.
삶을 존엄하게 만들어준다는 말이 큰 울림으로 와 닿는다.
그것이 내가 예술을 가르치는 교육자로서의 정체성을 갖는데 가장 핵심적인 주제이다. 사람은 자유로울 수 있고 누구나 존엄할 수 있다. 그래야 삶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누릴 수 있고 자기 자신만을 위한 아름다움이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2016년 서부캠퍼스에서 시작된 ‘50+인생학교’가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앞으로 어떤 경험을 확장해 가고자 하는지 궁금하다.
그동안의 과정에서 ‘총동문회’라는 커뮤니티가 만들어지고 새로운 프로그램들이 생겼다. 참여자 스스로 ‘선한 영향력을 주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하면 좋을까’라는 고민에서 조금씩 구체적인 실천으로 세상과 다시 만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사회적 기여나 봉사, 문화예술 활동, 노하우를 나누는 교육 활동 등 그것이 달라진 것이다. 50+인생학교에서 새로운 기수를 만나면 이전 과정과 같은 작업을 하지만, 기존 그룹에서는 촉진의 역할만 하고 있다. 50+그룹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하모니를 이루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각기 다른 삶의 경험이 모여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생애전환 문화예술교육에서도 경험한 것을 나눌 수 있으면 좋을 듯하다. 그리고 신중년과 함께 연극으로 좋은 무대를 만들고 싶다. 50+의 이야기로 공연을 하는 것이 나의 꿈이다. 노래도 굉장히 좋아하는데 세미 뮤지컬을 만들어 솔로를 해보고 싶다. 연출 욕심도 있다. 사실 노래는 도전영역이다. (웃음)
구민정
초등학교 시절 처음 연극을 경험하고 교사와 연극에 꿈을 품었다. 중학교 사회 교사로 교과에 연극을 접목한 수업을 진행하면서 연극학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문화예술교육 활성화를 위한 교사 TF, (사)한국교사연극협회 회장, 한국방송통신대학 프라임컬리지 ‘교육연극 지도사 과정’ 기획 및 강의 등 교육연극 관련 강의를 해왔다. 2016년부터 서울 50플러스재단 인생학교 부학장으로 프로그램 개발 및 강의를 해왔으며, 현재 홍익대학교 공연예술대학원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고등학교 『연극』 교과서, 『교과서로 연극하자』 『수업중에 연극하자』 『학교에서 연극하자』 『민주주의를 만든 생각들』 『혁신학교, 미래교육을 열다』 『생애。전환。학교』(공저) 등이 있으며, 2015년 SBS 창사특집 다큐멘터리 <바람의 학교> 프로그램에 기획·출연했다.
- 황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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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교육과 문화예술교육 사이에서 일해 왔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일했으며 대학과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강의, 컨설팅 등을 하며 무용교육 프로젝트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있다.
edudance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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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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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민정 교수님 멋져요!! 지성에 공감 감성을 결합하면 이렇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분이시네요^^
안녕하세요 독자님,
댓글은 구민정 선생님께 전달해드리겠습니다.
조금 다른 삶을 향한 용기를 북돋는다
정말 너무나도 기대만점이네요
조금 다른 삶을 향한 용기를 북돋는다
구민정 50+인생학교 부학장·홍익대학교 공연예술대학원 부교수
정말 너무나도 공감이 갑니다